대안도시 <익산>의 꿈과 좌절을 보다
1. ‘익산’에 갔다. 기차답사 본부로 활용할 숙소를 찾기 위해서다. 오피스텔이나 원룸은 눈에 띄지 않아 역주변 모텔을 수소문했다. 월 32만하는 모텔을 발견했지만, 전문적으로 ‘달방’만 취급한다는 점에서 못내 의심스러웠다. 다음에 방문한 모델은 월 45만원, 조금 낡았지만 처음 본 모텔보다는 안정감을 주었다. 주차장 면적도 제법 큰 것이 마음에 들었다. 역까지 거리도 5분 정도로 답사본부로 활용하기에는 적당했다. 익산은 과거 이리역부터 충남과 전라지역 기차여행의 허브였다. 아직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지만, 내년 한반도 서쪽 지역 기차역 답사의 출발지로 선정해둔다.
2. ‘익산’을 답사했다. 과거 S와 미륵사지와 왕궁리를 찾은 적 있지만, 대부분의 여행이 그렇듯이 주마간산의 시선에 머물렀다. 오늘은 천천히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에 유적지는 엄청나게 변화했다. 5층 석탑만 외롭게 서있던 ‘왕궁리’는 과거의 위용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왕궁리에 만들어진 ‘박물관’도 전시장 뿐 아니라 자료실까지 갖추었다는 점에서 가산점을 주고 싶었다. 익산의 랜드마크 미륵사지는 더 화려해졌고, 바로 옆에 건설된 익산박물관과 함께 새로운 백제를 꿈꿨던 무왕의 야심과 희망을 조명하고 있었다.
3, 무왕의 야심적 ‘익산 프로젝트’를 보면서 이집트 신왕국 시대 이케나톤(아멘호테프 4세)이 떠올랐다. 이케나톤은 이집트의 전통 다신교를 ‘아톤’만을 숭배하는 일신교로 전환시켰고, 수도를 이마르나로 옮긴 것이다. 구세력이 지배하는 이집트의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였으며, 대안적 이집트 건설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그의 사후 모든 계획은 좌절되었고 수도도 다시 테베로 옮겨갔다. 이케나톤 다음 권좌를 차지한 소년왕 ‘투탄카멘’은 무력하게 이 상황을 지켜 보았고 이른 나이에 사망하였다. 무왕 또한 기득권이 장악한 ‘부여’대신 새로운 도시 ‘익산’에서 원대한 백제 부흥의 꿈을 실현하려 하였다. 미륵사와 왕궁의 건설은 수도 천도를 위한 사전포석이었다. 하지만 무왕의 계획 또한 좌절되었다. 자연재해와 시대적 상황, 그리고 완강한 보수세력의 저항이 무왕의 ‘대안 프로젝트’을 무너뜨린 것이다.
4. 무왕의 좌절된 프로젝트라는 관점에서 익산을 보면, 곳곳에 숨겨진 희망의 시도가 아프게 다가온다. 당시 백제는 강렬한 부흥의 의지가 지배하였다. 얼마 전 성왕의 억울한 죽음은 백제인들의 분노를 집결시켰을 것이다. 그런 힘들을 모아 무왕은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백제를 만들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왕궁리의 폐허 속에서, 마륵사지의 슬픔 속에서, 그리고 주변에 남겨진 서로 마주보고 있는 ‘고도리 석불입상’의 안타까움에서,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건설된 ‘익산산성’의 무너진 흔적 속에서 무왕의 이루지 못한 꿈의 아픔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왕의 꿈은 혼자만의 꿈이 아니었을 것이다. 왕과 함께 했고 그를 지지했던 수많은 백제인들의 꿈이 동반했던 위대한 연대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익산 프로젝트는 중단되었고, 백제는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익산은 백제의 갈망과 위대함이 최후로 분출되었던 특별한 장소였던 것이다.
첫댓글 ^^^ 흔적이 남긴 역사를 생각하는 시공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