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계절은 24절기중 4번째 절기인 춘분春分을 열었다. 이제 태양은 점점 더 높이 오르며 길었던 제 그림자를 조금씩 거두며 짧게 할것이다. 아무리 꽃샘이 훼방하여도 봄바람은 겨울의 차가운 기억을 쓸어내고, 따스한 햇살은 대지를 어루만지며, 모든 것을 깨우리라.
매주 토요일 섶길은 우리 길벗을 초대한다. 그 초대에 응답한 53명의 길벗들이 원효길의 시발점인 평택호 수변공원의 혜초비에 서있다. 출발점을 같이 쓰던 장서방네 노을길과 비단길의 신대2리에서 협소한 장소 사정상 준비체조라는 관절 윤활유를 2번이나 넣지 못했었다. 오늘은 혜초비 앞 넓직한 공간에서 충분히 약이 스며들도록 예열을 해야한다. 오늘 걷는 원효길의 거리가 종점인 수도사까지 21km의 긴여정이기 때문이다.
충분히 예열을 마치자. 오늘 원효길은 길의 개요와 역사 그리고 각별히 긴 거리에 도로를 따라 걷는 등 위험한 구간이 있으니 안전에 유의해달라는 안내를 귀에 넣어준다. 혜초비에서 얼마를 걷지 않아 섶길 표지로 거듭난 폐보트의 안내로 마을의 고샅길을 들어서자, 벌써 볼터치 꽃단장을 한 매화 아씨는 긴여정의 길벗들에게 수줍게 응원을 보낸다. 그런 교감 때문일까. 발걸음은 더욱 가벼워지고, 길녘의 작은 들꽃에게도 자주 눈맞춤을 한다.
아직은 일교차가 큰 꽃샘에 꽃대를 높히 올리지 못하고 로제트형으로 바짝 엎드려 꽃을 피운 민들레가 그져 반갑기만 하다. 만약에 꽃들에게도 초상권이 있다면 어떠했을까. 일일히 동의를 구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들의 이야기를 정직하게 담고,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하겠다고, 꽃들에게 허락을 구하고 사진에 담는다. 꽃이 피는 봄은 아름답다. 그러나 꽃이 피는 순간은 덧없이 짧다. 아름답고 짧은것은 그리움을 남기게 마련이다. 이제는 이 몸도 세상 출고년도가 자꾸 멀어져서 그럴까. 꽃피는 봄이 더 그립고 아름다워지는것 같다.
다시 길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사람사는 마을이 점차 멀어지면서 원효길의 백미인 일명 평택의 산티아고길이 여심旅心을 자극한다. 수겹의 계단식 논이 있는 길이라서 그러하다. 섶길의 장위원장은 이 길의 운치를 돋으면서도 '산티아고길이라는 별칭은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라며 유머를 건넨다.
계단식 논이라고 해서 지리산 산골처럼 첩첩의 다랭이 논은 아니다. 이곳에는 우리의 70년대 가난한 시절, 다그쳤던 식량증산을 위해 쌀한톨이라도 더 생산하려 산을 깎아 논으로 개간하여, 멀리서 물을 끌어오고 팔십팔번(쌀米의 의미)의 손길로 고분분투했을 옛 농부들의 애환이 숨겨있다. 그래서 이 길에도 그리움과 고단함도 담겨 있다. 알수록 이 길의 미학에 빠진 필자는 가을 배경의 사진을 찍으러 오기도 했다. 걸으면서 뒤를 돌아보게 되는 길이다. 마치 소가 되새김질하여 소화시키듯, 이 길의 풍경을 천천히 되새겨 본다. 길벗 모두가 풍경이 되어 걸어가니, 이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어느 계절옷을 입더라도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이 길의 사계를 언젠가 다 담아보리라 다짐한다.
길은 곡선의 논길을 계속 내놓으며 마을과 마을을 잇는다. 고요하던 길은 농수로를 정비를 하는 구간에서 곡선을 거두고 직선화하며, 포크레인 소음을 쌓기 시작한다. 39번 국도에 이르자, 길의 풍경은 사뭇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제 길은 멀리 평택항과 서해대교를 배경으로 분주해진다. 걸음이 빨라서였을까. 점심을 약속한 뷔페식당을 이르게 도착했다. 하지만 여기서 식사하지 못하면 남은 길은 허기로울터 든든히 채워야하리라.
다시 길은 만호2리 회관을 지나 평택항 마린센타에 이른다. 누군가 산전벽해라는 말을 꺼낸다. 그렇다. 산전벽해라는 말이 따로 없구나 할 정도로 만호리 이곳은 평택항으로 바뀌면서 정말 많이 변해 있었다. 필자가 81년 군대를 가기전이다. 그당시 차가 지나면 먼지가 펄펄나던 비포장의 길이 대부분이었다. 송탄에서 자전거로 이곳을 다녀봤기 때문이다. 하물며 필자의 기억도 그러한데 포구였던 옛날의 풍경을 꺼내는 장위원장의 추억은 꿈결같기만 하다. 또 천년여전 구법고승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현세를 온다면 천지개벽이라고 할까.
길도 길었지만, 기억에 가물가물할 정도로 방향 전환이 징하게 많았던 길은 옛 만호리 포구를 잇던 언덕을 오르더니, 왼쪽의 마을을 가로지른다. 마을의 공터엔 오랜 세월을 견디다 못해 선두船頭가 무너져가는 작은 폐선 한 척이 페인트를 뒤집어 쓴채 옆으로 누워 있다. 이 작은 배가 아니었다면, 이곳이 한때 번성했던 어촌임을 상기시켜 줄 무언가가 남아 있었을까. 길은 또 방향전환하며 포승공단을 지나고 또 지난다. 어느덧 평택2함대 군부대 철책 옆에서 가까스로 길을 얻은 원효길은 평택시 포승면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수도사에 이르자, 풍경과 평택항 주변의 발전상등 볼것을 많이 보여준 긴여정의 길을 비로소 거둔다.
수도사 이곳은 참고로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화성 용주사의 말사로, 경기도 전통사찰 제28호의 지위가 있다한다. 신라 말인 852년에 염거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서기 661년 의상과 원효가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중 어느 토굴에서 밤중에 원효가 잠을 자다가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를 깨달았다'하는 그 토굴 자리로도 알려져 있어 세상의 관심을 끌고있다. 경내에는 대웅전, 명부전, 3층석탑, 관음전, 원효대사깨달음체험관, 템플스테이관 등 다양한 건물이 있다. 또한 전통사찰음식 강좌와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으며, 이곳은 전통사찰음식의 대가로 명성이 높아, 여러 방송과 언론 매체에 소개되는 등 사찰음식의 작은 성지 같은 곳이기도 하다.
오늘 길에 완공이 언제인지 모르는, 도로를 개설하는 몇 구간에서 다소 번잡함이 있었다. 또 내후년쯤엔 좀더 걷기에 좋도록 일부 구간은 변화를 예정하고 있다한다. 일부 구간이라도 그 변화를 빠르게 기대하며, 오늘도 원효길의 안전을 위해 애써주신 여러 자원봉사자와 섶길위원분들과 긴 거리에 발바닥에 불이 오르는 등의 힘들었던 여정은 오히려 성취감과 서로의 연대감을 높혔으리라 여긴다. 길의 기쁨을 공유케 하여준 길벗분들께 감사드린다.
다음주에도
우리는 소금뱃길의
봄의 초대를 기쁘게 받으리라.
첫댓글 21km의 원효길의
요모조모 아름다움을
멋지게 담으셨네요
수고많으셨습니다
원효길도 좋아하려나요? ㅎ
함께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번엔 함께 걷지 못했지만 글 읽어 내려가면서 마치 제가 그 길위에 서 있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부족한 글에도 호흡을 같이 하며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섶길이 이렇게 멋진곳이란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멋진사진들 감사드려요~~
500리 섶길 멋진 곳에 멋진 길벗님들이 있어
서로 빛이 되어주겠지요
감사합니다.
사정상 동행못한 원효길,
세심한 영상과설명속으로
들어가 천천히음미
하면서 아쉬움을 대신합니다,
먼길 앞뒤 오가시면서 영상 담으시느라
수고많이 하시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소식 들었습니다.
길을 다 담아보려 했으나
또 아쉬움이 많은 글입니다만
위안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서울숲의 개나리가 밝고 환하네요
개나리 꽃말처럼 희망 기대가 가득하시고
늘 멋진날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