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야장 긴긴 밤에 기러기 울어 예는데 은은한 다듬이소리는 그 무슨 정인고>
의 정서야말로 한국인의 생활이 그려내는 멋이다.
다듬이 소리
어느듯 추석이 먼 발치에서 성큼 닥아오고 있다. 그리운 조국에 있으면 온 가족들과 부모님 선영에 성묘를 갈 생각에 마음이 덜떠 있을텐데 이역만리 이곳에서 고향에 못가는 안타까운 마음 달랠길 없다. 추석을 생각하면 한국의 천고마비의 하늘아래 만발한 국화꽃의 그윽한 향기와 청초하고 아릿다운 코스모스가 가녀린 허리를 흔들며 손짓하는 들녘이 몹시 그리워진다.
어린시절 도시에 살던 나는 추석이 오면 내 고향 시골로 내려갔다. 시골에 있는 친척들이 솔잎을 깔고 찐 송편을 가지고 성묘가서 산에서 먹는 맛은 별미였다. 솔잎향이 떡에베고 솔잎엑기스가 스며들어 요즈음 떡집에서 사 먹는 떡하고는 맛이 영 다른 시골 특유의 정감과 정성이 서려있는 맛깔스러운 영양떡이였다.
추석 대보름달은 일년중 제일 크고 밝은 아름다운 보름달이라고 해서 시골에서는 달맞이 하러 일찍 산에올랐다. 그 큰 달을 가슴에 품고 쳐다보며 특히 처녀 총각들은 좋은 짝을 위하여 저마다 소원을 아뢰고 산에서 내려왔다. 집마당에 동네 처녀들이 다 모여 모닥불을 피워놓고 달밤에 강강술래를 부르며 손에 손을 잡고 빙빙돌며 춤을 추는 모습은 짜릿한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총각들은 새끼줄을 꼬아 두 패로 나뉘어 저마다 힘 겨루기를 하는 줄다리기를 하였다. ‘영차 영차’ 장단 맟추어 부르는 노래가락은 달밤의 정적을 가르고 하늘 높이 울러 퍼졌다. 정말 흥겨웁고 정겨운 시골 풍경이 아닐수 없었다.
추석이 오기전 시골에서는 집단장을 깨끗이 마쳤다. 헌 문 창호지를 다 떼고 새 문 창호지를 풀을 쑤어 모든 문짝에 바르고 문풍지도 새로 달았다. 추운 겨울의 바람을 막기위한 겨울 준비로 추수와 김장과 함께 연중 큰 행사중 하나였다. 재료가 나무인지라 문을 닫고 방에 앉으면 깨끗하고 하얀 창호지의 신선한 나무냄새에 심취해서 나도 모르게 눈을 지긋이 감고 시골의 특유의 정취를 만끽하였다. 시골에 며칠 머무는 동안 도시에서는 볼수없는 각양 시골 생활 풍습을 보면서 나 나름대로 배울것이 많아서 흥미진진하게 학습견학을 하듯이 재미있게 관찰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다 집에 돌아왔다.
목화솜을 따다가 물레로 실을 자아 올리는 모습은 참 아름답고 숙달된 기술이 놀라워 부러워서 나는 몇번이고 물레를 자아 실을 뽑을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실이 굵어지면서 번번히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누구나 오랫동안 쌓아올린 훈련없이 그저 되는것이 아니구나 깨달으면서….실을 다 만든다음 베틀에다 넣고 무명옷감을 짜는 모습 보면 신기해서 나는 한참을 옆에서 바라보았다.
누에를 키우려 뽕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나는 뽕나무 열매 오디 따 먹는일에 더 관심이 많아 뽕나무에 올라가서 실컨 따먹고 내려오다 떨어져 그만 발목을 삐어 온 입가에 자주색 물감으로 칠하여 놀림감이 되었던 기억이 아직도 삼삼하다. 뽕잎을 따다가 누에먹이를 주겠다고 약속하고 오디만 따먹고 내려왔으니… 중이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제삿밥에만 관심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겸연쩍어 했다.
뽕나무를 키워서 뽕잎을 따다가 누에를 키우는 것 보면 재미있지만 누에가 굼실 굼실 기어다니며 뽕잎 따먹는것 보면 징그러워서 오래 쳐다보지 못하고 도망치던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 누에가 입에서 실을 내어 누에고치를 만드는 것 보면 정말 신기하고 놀라웠다. 누에고치속에서 번데기로 남으면서 결국 죽는다. 그 번데기도 추운겨울 인간의 먹이감으로 희생당하고 만다.
누에는 인간에게 참 유용한 곤충이다. 비단옷을 제공해 주고 먹이감도 되어주고 희생만 하다가 사라지는 곤충! 벌레보다 못한 인간이란 말이 이 누에를 두고 한 말이였던가!
이렇듯 추석명절을 맞이해서 한번 시골에 내려가면 볼거리가 너무 많아 하루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다. 도시에서는 볼수없는 것들이 많아 호기심에 가득찬 나에게는 모든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소가 물레방아를 돌리고 두사람이 올라가 곡식을 찧는 방아간도 그렇고 모두가 나에겐 볼거리였다. 이 많은 볼거리 중에도 너무 가슴이 찡하도록 잊혀지지 않는 감격적인 장면이 내 기억속에 각인되어 아름다운 추억거리로 남아있다.
육촌 올케언니의 사연어린 슬픈 사랑 얘기다.
우리가문으로 시집온지 얼마 안되어 육이오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육촌 오빠가 징집되어 군대에 입대하자 온 집안은 그의 생사를 걱정하며 전쟁에서 이겨 무사히 귀환하기만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전사 통지가 날라왔다. 날벼락같은 비보에 온 일가친척들은 슬픔에 잠겨 넋을 잃고 있었다. 육촌 오빠와 올케언니는 외모가 둘다 출중하게 뛰어났고 부부가 금슬이 좋아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올케언니는 슬픔을 속으로 삭히며 고통을 견디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더 열심히 일을 했다. 시부모님을 잘 모시고 시동생들을 잘 키우며 뒷 수바라지를 잘 해 내었다.
빨래를 개울에서 해가지고 와서 양잿물로 삶아 헹군뒤 풀을 빳빳하게 해서 잘 접어서 발로 지근 지근 힘있게 밟다가 다듬이 돌에다 얹져놓고 다듬이 방망이로 밤 늦도록 다듬이질 하는 소리를 추석 보름달밤에 듣게 되었다.
자정이 넘도록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는 일정한 리듬을 타고 나의 귓전을 두드렸다. 고요한 밤중 가끔 쌉쌀개가 지저대고 귀뚜라미의 울음소리외는 고요한 정적만이 시골마을에 흐르고 있었는데 장단맟춘 다듬이 소리는 나에겐 하나의 아름다운 음악소리로 들려왔다. 일류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노련한 솜씨로 연주하듯 나에겐 그렇게 들려왔다. 그냥 들으면 잠을 방해하는 소음으로 들릴수도 있는 다듬이 소리가 나에겐 어찌 그리 아름답게 들릴수가 있었단 말인가!
추석 보름달이 너무 밝고 아름다워 밤하늘을 쳐다보면 반짝이는 별들이 속삭이듯 외치는 소리가 우렁찬 합창곡으로 울려 퍼지면서 나의 잠을 깨워 나는 잠을 잘수가 없어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짚신을 신고 살금 살금 육촌올케언니 집을 찾아가 다듬이 소리가 나는 방앞 툇마루에 걸터 앉았다.
호롱 등잔불을 켜놓고 다듬이질 하는 모습이 그림자처럼 창호지 문살에 그대로 윤곽을 들어 내면서 방망이 두개가 번갈아 올라갔다 내려갔다 장단 맞추며 몸이 움직이는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 아름다울수 있었을까! 머리를 곱게 빗어내려 따아올리고 비녀를 길게 꽂은 모습도 실루엣으로 나타나는데 정말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과 같은 여인의 모습이였다. 요즈음 처럼 디지탈 카메라가 있었다면 한장 찍어 두었으면 길이 길이 기념이 되었을 텐데 아쉽기 그지없었다.
남편을 그리워하며 보고싶어하는 애틋한 사랑을 읊는 노래가락으로 들려왔다. 그녀의 한을 다듬이 소리에다 싣고 풀고 풀어도 풀지못하는 슬픈 사랑노래를 엮어 하늘에다 날려 보내고 있었다.
그녀의 다듬이 두드리는 소리는 여느 아낙네의 다듬이 소리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구성진 노래가락이 한을 퍼 올리면서 애절하게 애처롭게 흐느끼듯 속삭이듯 처절하게 나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았다.
그 육촌 올케언니가 아직고 수절하고 남편을 평생 그리워 하면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올봄 시골에 성묘갔을때 친척에게서 듣고 깜짝 놀랐다. 시부모님이 불쌍하다고 땅을 많이 물려 주어서 소작인을 두고 농사를 크게 짓고 잘 살아간다고 했다. 자식도 없이 평생을 수절하면서 혼자 살아온 그 올케 언니가 선한일을 많이 하며 지기처럼 남편이 없는 과부들과 고아들을 많이 도와준다고 하니 나는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이 올케언니를 생각하면 한편의 슬픈 드라마를 보는것 같아 가슴이 찡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세대에 보기드문 열녀라고 생각이 들면서 장한 여인이라 자랑스럽기 까지 했다.
참소리꾼 장사익 노래모음(특집)
01. 허허바다
02. 사랑굿
03. 파도
04. 낙화
05. 귀가
06. 황혼길
07. 무덤
08. 나그네
09. 민들레
10. 회포
11. 여행
12. 꿈속
13. 아리랑
14. 아버지
15. 희망가
16. 시골장
첫댓글 소리와 향, 음영과 심금에 울리는 이야기 거리까지, 정말 선배님의 글을 읽어 내려가니, 어린시절의 풍광들이 하나하나 떠 올려져서 정말 가슴이 짠했습니다. 다듬이질 곱게 하면 돌때문에 차가운 것이 반질반질해서 여름에 뺨에 대면 시원하고 매끄러워 그리하며 어머님의 손길을 느끼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식모, 유모까지 셋이나 되면서도 어찌하여 그리도 다듬이질 솜씨들은 없는지 자주 어머님이 다듬이 방망이를 드시곤 하셨는데 건넌방에 누워 매미합창 소리와 뒤섞여 들리는 뒷방의 다듬이질 소리는 정말 내마음을 형용할 수도 없으리만큼 평안하게 하곤 했었어요.
이젠 입가에 맥도 빠지셔서 앞치마 곱게 두르고 떨어뜨리지 않으시려고 천천히 그리고 단정하게 수저를 드시는 어머님의 여리여리하신 팔을 보면 힘차게 다듬이질을 하시던 어머님의 그 푸르던 날들의 모습이 생각날 것 같으네요. 이번 추석엔, 이제는 제가 태어난 생가도 도시의 슬럼이 되었지만, 그 생가를 어머니 손을 잡고 다시 가서 둘러보며 남산에 둥그렇게 뜨던 반가운 달덩이를 함께 바라보고 싶으네요.
어머님이 아직 살아 계시는군요. 우리 부모님 세대때에는 다듬이질 다 했지요. 지금 세대는 다듬이질 하는것 못 보니 무엇인지 감이 잘 안잡힐것입니다. 후배님도 다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정말 아련한 추억입니다.
다-읽고나니 오ㅐ 이리 가슴이 아플까요?
시대에 따라 희생 하며 살아 온 우리 옛 여인들의 애환이 흠뻑 묻어나는 얘기 중 하나 같습니다. 마음이 숙연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