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루소 Henri Rousseau (1844-1910)】
"자화상, 초상화 풍경의 발명가"
구름 속에 해가 들어있다.
구름과 해가 같이 흘러간다.
하늘 저편 ㅡ 내 마음 흘러가는 곳
열기구가 내 뿜는 배기가 흰구름이 되었다.
그래서 허공을 날고저 나는 떠 있다.
에펠탑 보다 큰 나 !
내가 그리워하는 그 곳까지 나다.
그래서 나는 크고 거대하다.
정성껏 들고 있는 파렛
그 속에 한 인생의 아름답고 슬픈 뮤즈
쿨레망스 & 조세핀
어찌 그 이름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내 삶 속에 깃든 그녀의 이름을 새겨 넣는다.
아직 가지 않은 길. 더 멀리 가야할 길
그 길을 간다, 나는 나
자화상(1890)에서 루소는 검은 양복과 전통 예술가의 베레모를 쓴 자신을 묘사한다. 그는 에펠탑과 세계 국기로 장식된 배가 있는 풍경 앞에 서 있다. 나 자신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예술 작품으로 남았다. 루소는 수년에 걸쳐 자서전적 세부 사항으로 그림을 자주 업데이트했다. 1901년, 그는 옷깃에 리본을 달았는데, 이는 그가 협회 필로테크닉(Association Philotechnique)에서 드로잉 교사가 된 때를 상징한다. 그는 또한 그의 두 아내 클레망스와 조세핀의 이름도 포함시켰다.
기법과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독창적인 그림을 테마로 먹고 살기 위하여 쉬는 날에만 그림을 그리는 일요화가 '소박파' 라 하는데 정작 루소는 아무리 누가 뭐라해도 이렇게 밖에 시간을 내서 그림을 그리는 자신을 정통 사실주의 화가라고 생각했다. 인상파 입체파와 같은 새로운 예술에는 관심이 없고 고전을 기본으로 삼았다.
그의 때묻지 않은 소박함을 잘 이해하고 제대로 평가한 사람은 다름아닌 피카소다. 미술의 기본을 거의 무시한 그의 그림은 많은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어딘지 어색하고 아마츄어 같은 그의 그림은 원시적이고 순수하며 꿈꾸는 듯하고 신비롭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열대 아프리카 지방을 주제로 하는 그림이 많다. 그러나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소재, 공간과 원근법을 무시하는 구성법으로 찬사를 받기도 했다.
위 그림 「나자신, 초상 ' 풍경」은 루소가 아직 세관에 근무하고 있던 46세 때의 그림이다. 삶의 현장이었던 그가 근무했던 세관이 있는 세느강을 무대로 한 자화상이다. 공무원이면서도 전혀 공직자 같지 않은 이 자화상에서 수출입 화물을 통관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정작 하고 싶고 구상하고 있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용감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뒤를 배경으로 에펠탑,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은 이룰 수 없는 꿈이랄까? 백열전구 같이 보이는 열기구, 1889년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를 상징하는 만국기가 당당하다.
파렛에는 루소의 두 아내, 클레망스와 조세핀의 이름을 세긴다. 마치 살면서 천생연분은 하나가 아니라 둘, 아니 그보다도 많을 수 있다는 듯 파렛에 두명의 아내 이름을 새기ㅡ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조세핀의 이름은 나중에 추가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그림을 선뜻 보면 배를 보고 있는 비대칭의 두 사람과 루소의 대비가 어울리지 않음을 볼 때 마치 걸리버여행기에서 소인국에 거인으로 살아가는 걸리버를 보는 듯하다. 이는 본인이 정규 미술과정을 거치지 않고 화단에 선 그가 카르텔과 기득권 없이 이 자리에 섰어도 「나는 거대하다」라고 고함치는 듯하다.
게다가 그의 발은 공중부양하거나 하늘을 나는 열기구에 몸을 싣고 있는 것처럼 땅을 떠나 공중에 떠 있다.
구름과 태양의 대비 역시 정형화 되고 규격화된 형상이 아니다. 어디서 본 듯, 그의 심상 속에 녹아 있던 구름을 헤집고 떠다니는 태양이다.
초상화와 풍경 사이 어딘가에 있는 이 그림의 하이브리드 장르는 비평가들에게 싫어졌지만 루소는 그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주장했다. 그는 언젠가 "나는 세상사람들이 지적한 것처럼 초상화 풍경의 발명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발명가처럼 어느 누구도 그려 본적도, 그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은 그만의 그림, 그만의 자화상을 그리며 큰 눈뜨고 사람을 응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