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凌霄花)
여름은 능소화의 계절이 아닐까? 선홍빛이나 주황색 능소화에 마음을 뺏겨 가던 길 멈추고 한참이나 바라보곤 한다. 이 염천에 어쩌면 저리도 우아하면서 요염할까? 도도하고 색기있는 귀부인의 모습이다. 순전히 내 생각이니 동의하지 않아도 된다.
이십년 전인가 하여튼 예전에 바닷가 어느 작은 절집 근처를 지나다가 담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능소화에 반해 오로지 그 꽃만을 보기 위해 해마다 그 절을 찾아갔던 적이 있다. 안 가본지 수년 되어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다.
초록창 언니한테 물어보니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 기다림 영광 자존심, 그리움 또 어떤 곳에서는 여성, 명예, 이름을 날림 이라고 되어 있다.
명예 영광 자존심 이름을 날림은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들의 어사화 꽃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런 꽃말이 생겼을 것 같다.
그런데 꽃말 중 '여성'은 어떤 의미일까? 초록창 언니한테 물어도 별다른 답을 얻지 못 했다. 내가 느끼듯 능소화에 우아하고 요염한 그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닐까.
능소화의 한자는 凌霄花다. 凌자의 해석에 따라 능소화의 의미가 많이 달라진다.
먼저 많이 알려진 ‘업신여길 凌’, ‘하늘 霄’. 즉, 하늘을 업신여기는 꽃이라는 뜻이다. 霄는 옥편을 펼쳐 하늘이라는 뜻이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예쁜 꽃에게 '하늘을 업신여기는 꽃'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어떤 블로거의 글을 빌리면, 8월은 장마와 태풍, 그리고 푹푹 찌는 더위가 도사리고 있는 달이다. 능소화는 장마와 태풍을 견뎌내고 핀다. 궂은 날씨를 퍼붓는 하늘을 업신여기듯 피어난다고 해서 능소화라 한다고 했다. 그분 나름의 해석이겠지만 일리는 있다.
그분 해석에 의하면 능소화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아무리 난리를 쳐봐라. 굴복하는가. 그래 내가 능소화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예쁜 꽃을 '하늘을 업신여기는 꽃'이라 했을까.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의 정서상 그런 해석이 아닌 다른 해석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이리저리 검색해 보다가 凌이란 한자가 '(넘어서) 오르다'는 뜻이 있다는 걸 알았다. 즉 凌霄花는 '하늘로 올라가는 꽃'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겠다. 다시 말하면 凌은 업신여기다는 뜻으로 쓰인 게 아니라는 거다. 예를 들어 凌雲(능운)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구름을 업신여기다는 뜻이 아니라 구름 위로 올라서다는 뜻으로 쓰인다. 능소화는 고개를 숙이지 앓고 도도하게 하늘을 바라보며 꽃을 피운다. 가지 끝에 피어있는 능소화를 본적이 있는가? 꽃잎이 하늘을 향해 오르는 형상이다. 나는 후자의 해석에 한표를 던진다.
옛 선비들은 능소화 꽃이 질 때 송이째 품위 있게 떨어지는 것을 보고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양반꽃'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능소화에 대한 모독이란 생각이 든다. 조선시대 그 수많은 선비라고 자칭하는 사람들 중 지조와 절개있는 분들이 얼마나 될까?
평민 집에 심으면 잡아다가 곤장을 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사실일수도 있을 거다. 인류 역사상 동족을 노예로 삼은 민족이 한민족이라고 어느 학자분이 그러더라.
젊은 시절 능소화가 예쁜 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다. 어느 날 동네 노인 한 분이 찾아와 능소화를 없애야 한다고 야단을 쳤다. 아이들 눈 멀게 한다고... 몇날 며칠을 교장선생님을 못살게 굴었다. 정보가 어두운 시절이라 능소화 꽃가루가 눈을 멀게 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결국 그 예쁜 능소화가 뿌리째 뽑혀 없어졌다.
개인의 아집과 그릇된 신념이 우리 사회에 주는 해악의 작은 한 부분이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8월은 능소화가 절정을 이루는 시기다.
이 무더위에 깨끗하고 우아하면서 요염하고 도도한 꽃이 우리 주변에 피어있다는 건 축복이고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