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다시 이런 일은
곽 흥 렬
왱왱왱왱,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귀청을 난타한다. 일상다반으로 듣게 되는 경보음이기에 오늘도 또 무슨 분초를 다투는 응급환자가 병원으로 실려 가나 보다 싶었다.
잠시 후, 텔레비전 방송에서 속보가 흘러나왔다.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불이 났다는 소식이었다. 사무실의 창을 통해 중앙로역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출입구 쪽에서 시커먼 연기가 뭉실뭉실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조그만 불인 줄로 알고, 이내 꺼지겠거니 하며 대수롭잖게 여겼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결국 수백 명이나 희생되는 엄청난 인명 손실을 가져온 대참사로 막을 내렸다. 지금도 그때 일만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두근 방망이질 쳐 온다.
2003년 2월 18일 아침에 일어난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 방화 사건은 시민들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겼다. 그로부터 스무 해가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그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못하고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때의 기억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신종 코로나라는 괴질로 대구가 또다시 큰 시련에 맞닥뜨렸다.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를 시시각각 속보로 내보낸다.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급속한 전파력으로 하여 모든 사람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확산을 막기 위해 가능한 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면접촉을 피하라며 관계당국으로부터 간단없이 문자가 날아온다. 이른바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이름의 격리다.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뜰 때마다 가슴이 옥죄어드는 것 같아 이러다가 신경쇠약증에라도 걸릴 지경이다.
여태껏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소리를 골백번도 더 들어 왔다. 이번 괴질의 대유행으로 이제 그 말은 더 이상 존재가치를 잃고 말았다. 사람과 사람은 어쨌든지 서로 만나서 부대껴야 정이 생기고 교분도 돈독해질 수 있는 법이거늘, 지금은 가급적 만남을 피하고 각자 떨어져서 지내는 것이 미덕 아닌 미덕이 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기 짝이 없을 노릇인가.
기록에 따르면, 이러한 대재난이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해방이 된 이듬해인 1946년에도, 역시 대구를 중심으로 호열자虎列刺라고 불렸던 콜레라가 창궐하여 수천 명의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그때는 콜레라에 대한 의학적 지식이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보니 적절한 치료 방법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했고, 그러는 사이에 병원균이 요원의 들불처럼 번지면서 그처럼 큰 인명 손실을 가져온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 대구의 제일가는 부자로서 명성이 자자했던 서병국徐炳國도 겨우 마흔세 살이라는 창창한 나이에 이 유행병 1호 환자로 희생되었다 한다. 세상 남부러울 것 없이 살던 사람이 제대로 된 치료 한번 받아 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으니……. 그의 뜻하지 않은 죽음을 떠올리면서, 오늘을 살아있음이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일임을 새삼 헤아려 보게 된다.
이번 코로나 괴질로 인한 환란은 그동안 별 의식 없이 그냥저냥 지내 온 나날들이 얼마나 소중한 하루하루였는지를 절실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했던가. 이 재앙을 각자가 스스로의 지난 시간들을 한번쯤 돌아보면서 더욱 성숙해지기 위한 디딤돌로 삼는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하루 빨리 지금의 불행한 사태가 끝나고 예전 같은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소망한다. 그러면서 이 땅에서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고령신문 2020년 3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