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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에 관한 성경 오역의 예들
여기 율법에 관한 토론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제가 쓴글들을 읽어보지도 않고 엉뚱한 성경 번역에 근거하여 제게 지적합니다. 제가 다른 글에서 이미 성경 오역들을 지적하였습니다만, 우선 간단히 요지만을 다시 한번 지적하여 드립니다.
아래는 정식으로 번역된 글들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고 우선 이해를 돕기 위해 요점만을 지적한 것입니다.
1. 엡 2장 15절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시고
ð 원수관계,- 곧 규례들안의 계명들의 법칙-, 를 자기 육체로 폐하시고
(율법이 폐해진 것이 아니라, 적대관계가 폐해졌습니다! 만일 율법이 폐해졌다고 바울이 쓰고 있다면 그는 예수께서 거짓말 하셨다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2. 골로새서 2장 14절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규례들로서 우리를 거스려 손으로 쓰여진 우리를 대적하여 있었던 것을 도말하시고, 그것을 가운데서 취하셔서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으셨으며
(율법이 아니라 정죄문서를, 기소장을 도말하셨습니다!)
3. 갈 3:19
그런즉 율법(律法)은 무엇이냐 범법(犯法)함을 인(因)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天使)들로 말미암아 중보(中保)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約束)하신 자손(子孫)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개역 한글)
- 그러면 율법은 무엇이냐? 한 중보자의 손안에서 천사들을 통하여 처방되어진(διατασσω지시되어진) 것으로, 약속된 그 자손이 오시기까지 빗나감들을(παραβασις허물들을 범법함들을) 인하여 명하여진(παραβασεων 지시되어진 )것이라.
이 차이는 더하여진 것이고,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만 있을 것처럼 오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자손이 오시기까지 명하여진 것이라 하였지 그것이 어떻게 폐지된다는 뜻이 없습니다. 범법함을 인하여 명하여진 것이지, 더하여진 것이 아닙니다. 더하여지는 것은 무언가 있던데다 더해지는 것을 말합니다만 원문에는 더해진다는 뜻이 없습니다.
4. 갈라디아 3:10
무릇 율법(律法) 행위(行爲)에 속(屬)한 자(者)들은 저주(詛呪) 아래 있나니 기록(記錄)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律法冊)에 기록(記錄)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恒常) 행(行)하지 아니하는 자(者)는 저주(詛呪) 아래 있는 자(者)라 하였음이라.(개역한글)
율법 행위 자체가 범죄행위인듯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1) 여기서 율법행위에 속한 자들이라 할 때 < 속하다> 는 동사나 전치사는 따로 없습니다만 에크 전치사를 속하다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용례는 요한일서 4장6절등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반드시 틀렸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2) 반대로 행 8장 37-39절에서는 빌립과 내시가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옵니다. 그때에도 물 속으로부터 나올 때 에크 전치사를 썼습니다. 따라서 율법의 행함들속에 있다가 거기서 빠져나오는 사람들은 저주아래 있다는 말로도 번역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은 위의 말씀이 구약성경 어딘가에 있는 말씀이라고
< 기록된 바> 라고 인용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 어디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까?
구약성경에서 율법행위에 속한자는 저주아래 있다고 하였다면, 구약시대에도 과연 율법행위를 중단한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을 것이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책망하시는 하나님께 많은 사람이 항의하였을 것같습니다. 구약 어디에 그런 말이 있습니까?
저는 우선 이 구절에서 인용하는 성경구절을 살펴보았습니다.
한글 관주와 스코필드 관주 공히 신명기 27장 26절을 인용한 것으로 관주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구절은 이렇습니다.
신명기 27장 26절
אָרוּר אֲשֶׁר לֹא־יָקִים אֶת־דִּבְרֵי הַתֹּורָֽה־הַזֹּאת לַעֲשֹׂות אֹותָם וְאָמַר כָּל־הָעָם אָמֵֽן׃ פ
Cursed be he that confirmeth not all the words of this law to do them. And all the people shall say, Amen (KJV)
나의 이들 율법의 말씀들을 실행하기 위하여 세우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리고 모든 백성은 아멘할지어다. (하토브역)
그러므로 갈 3장 10절의 번역은 구약성경과 어긋나거나 반대되게 번역될 수 없습니다.
신명기 27장 26절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받는다고 했지, 율법행위 가운데 있는 자는 저주받는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무언가 번역과정에서 전달착오가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에크 전치사를 제가 말한바대로 < ㅇㅇ 가운데로부터> 로 번역하면 문제가 없어지며 그것은 문법상 당연히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번역해보았으며, 그 결과는 사실 동일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행함들에서 벗어난 자들은 누구든지 저주아래 있음이니, 기록되었기를, <그것들을 행하도록한 율법책에 기록되어진 모든 것들을 계속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누구든지 저주받았다> 하였음이라.(하토브역)
율법 행위에 계속 속해 있으면 저주 아래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렇게 할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행위에 한번 들어가면 나올 때 저주아래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도 그 행위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도 성전 제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성령의 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도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좇으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제사가 있는 것입니다!
율법을 거듭난 이후에 처음부터 100% 지킬수 있는 사람도 없으며 다만 거듭난 이후에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 율법의 0%부터 서서히 그 성취를 늘려갈 뿐입니다.
이 구절을 다른 각도에서 현재 킹제임스 성경이 번역하고 있는대로 번역해보았습니다.
그 경우에는
갈 3장
10 왜냐하면 율법의 행위들에 속하여 있는 자는 누구든지 저주 아래 있는 것이라. 왜냐하면 이렇게, < 율법책에 그것들을 행하라고기록된 모든 것들을 계속하야 행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저주받았느니라>쓰여있기 때문이라.
이 경우 바울은 변증에 있어서
1) 율법의 모든 계명들을 철저히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저주아래 있다.
2) 그런데 율법의 계명들 모두를 철저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3) 그러므로 율법의 계명들을 지키겠다고 하는 사람은 율법의 행위가운데 있는 것이며 그는 결국 저주아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논증의 두번째 단계를 생략하고 간단히 건너 뛴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27장 26절로 가보면, 하나님의 궁극적 기대와 요구는 율법을 버리는데 있는가? 율법의 행위에 속하면 저주받는 것이므로 지키지 말라는 뜻으로, 혹은 폐기시키라는 뜻으로 말씀하고 있는가? 입니다.
구약시대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의 그림자로서 동물희생의 성전제사, 희생제사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결국 율법의 계명들을 지키지 못한 것을 속죄하였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안지켜도 되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때에도 하나님의 영, 성령, 여호와의 영이 신자들의 마음속에 있었으며,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안에 있어서(벧전 1:11) 그들을 인도해주고,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시편 1장과 119편에서처럼 율법을 찬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킹제임스 성경처럼 번역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그것이 율법을 지킬 수 없으니까 폐기시켜 버려야 한다는 관점에서 이 구절을 해석해서는 안되고,
율법의 행위에 속하면 저주아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고, 그분께로 가면 성령께서 내주하시고, 성령께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가신다고 믿는 믿음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제가 해석하는 바와 같습니다. 즉 율법의 행위에 속한자는 저주아래 있나니, 해도 같은 해석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5. 로마서 10장 4절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者)에게 의(義)를 이루기 위(爲)하여 율법(律法)의 마침이 되시니라 (개역한글)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에 이르는 율법의 완성 (성취)이심이니라
예수님은 율법을 그냥 끝낸 것이 아니라 성취하셨으므로 더 이상 제사드릴 것이 없어서 끝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바는 성전 제사법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 인생들이 더 이상 제사드릴 것이 없다는 뜻이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는 계명을 끝내버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6. 로마서 7장 5절
우리가 육신(肉身)에 있을 때에는 율법(律法)으로 말미암는 죄(罪)의 정욕(情欲)이 우리 지체(肢體) 중(中)에 역사(役事)하여 우리로 사망(死亡)을 위(爲)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한글 개역)
이는 우리가 육신 안에 있었을 때에는 죄들의 정욕이 율법을 통하여 우리의 지체 속에서 역사하여 사망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나(한킹)
우리가 육신 안에 있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죄들의 활동이 우리 지체 안에서 일하여 사망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하였으나(흠정)
For when we were in the flesh, the motions of sins, which were by the law, did work in our members to bring forth fruit unto death. (KJV)
왜냐하면 우리가 육체가운데 있었을 때에는 율법을 무릅쓴 것들인 죄들의 감정(열정)들이 우리의 지체들 중에 역동하여 사망을 위한 열매에 이르도록 하였느니라.
이 구절은 대표적으로 율법 혐오증을 야기시키는 구절입니다.
이제 율법을 무릅쓴 것들인 죄들의 정욕들이라는 번역은 갈라디아서 4장 13절을 보면 분명해집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우리는 전치사 디아( δια) 가 쓰인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갈4장
13 내가 처음에 육체(肉體)의 약(弱)함을 인(因)하여 너희에게 복음(福音)을 전(傳)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한개역)
13 너희는 내가 처음에 육체의 연약함 중에도 어떻게 너희에게 복음을 전파하였는지 아느니라. (한킹)
13너희가 알거니와 내가 처음에 육체의 연약함을 통해 너희에게 복음을 선포하였노라. (흠정)
13 Ye know how through infirmity of the flesh I preached the gospel unto you at the first (KJV)
13처음에 내가 육체의 연약함을 무릅쓰며 너희에게 기쁜소식 전했다는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하토브)
이제 생각해보십시오. 바울이 육체의 연약함 때문에 건강해지기 위해 복음 전했습니까?
육체의 연약함이 복음 전도의 수단이었습니까?
육체의 연약함이라는 장애, 장벽을 뚫고 복음을 전했다는 말이 아닙니까?
이점에서는 한킹이 킹제임스 성경이 의미하는 바를 가장 근접하여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다시 로마서 7장 5절로 돌아갑니다. 왜 율법으로 말미암은 죄들의 정욕이라는 표현이 안맞는지를 점검합니다.
율법이 죄들입니까? 아닙니다, 율법은 거룩하고 정당하고 의로우며 선한 것입니다(롬 7:12)
율법이 죄들의 정욕들을 야기시킵니까? 죄들의 정욕들이 율법에 의해 야기되었습니까? 성경 어디에도 그런 말은 없습니다! 만일 율법이 죄들의 정욕을 야기시킨다면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으므로 하나님 자신이 죄들을 야기시키는 분이겠습니다?
이토록 하나님을 모독하는 성경번역들에 의해 수백만 이상의 한국인들이 세뇌되고 있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죄들의 정욕이 율법으로 말미암습니까? 율법은 죄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율법은 죄를 범치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패역하여 그 율법을 순종하지 않으며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외에 많은 설명을 더 할 수 있으나, 롬7장 5절의 말씀은 율법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죄들의 열정들이 지체들 가운데서 역사함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인간 육체는 그렇게 불순종하기에 육체를 좇지 말라고 말한 것입니다(갈 5장16-) . 바울은 분명히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속 사람을 따라서는 내가 하나님의 율법을 기뻐하나 (롬 7:22) 바울의 속사람( 곧 거듭난 새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기뻐하였습니다! 당신의 속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싫어합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진정으로 속사람을 가졌는지부터 점검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에 번역된 수많은 νομος 는 번역자들이 율법 혐오증이나 기피증을 야기시킬만한 곳에서는 율법으로, 순종해야할 곳들에서는 하나님의 법, 그리스도의 법과 같이 그냥 법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법이나 그리스도의 법이나 모두 원문은 하나님의 노모스, 노모 입니다. 바울은 7장 전체에서 율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5절에서는 율법이 되고, 22절에서는 법이 되어서 다른 법들을 말하고 있습니까?
한국 무법주의는 모쉐의 율법,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법, 성령의 법, 그리스도의 법, 그리스도의 율법을 크게 다른 것처럼 가르치고 세뇌시키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여러개의 법체계를 운영하고 계십니까?
계시록에 나온 하나님의 계명들은 무엇입니까? (계 12:17, 14:12) 이에 대하여 제 입장은 여러번 설명하였습니다. 그것이 정지화면과 동영상의 차이이든 그것을 지탱하고 추진하는 실체의 차이이든, 그것의 본질은 원래가 같은 것입니다!
이글은 원래 간단히 요점만 지적하려 하였는데 롬 7장 5절 때문에 길어졌습니다. 나중에 좀더 체계적으로 정리할 기회를 주님 허락하시면 있을 것입니다.
2012. 2. 2 하토브
디모데 전서 1장 9절
8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율법은 누구든지 그것을 적법하게 사용하면 선한 것이며,
9 그가 이것을 알 것이라, 즉 율법은 의인을 위해 놓여있지 아니하고, 무법자들과 불복종자들과, 불경건 자들과 죄인들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들과 비방하는 자들과, 아비 죽이는 자들과 어미 죽이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10 음행하는 자들과, 남색하는 자들과, 인신납치범들과, 거짓말쟁이들과, 헛 맹세하는 자들과, 기타 건전한 가르침에 대적하는 자라...
이 말을 근거로 사람들은 율법은 불신자들을 위하여 존재하지, 신자들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율법이 불신자들에게 정죄와 심판의 기능을 발휘하며 그들에게 현세에서도 심판기능이 있음을 말해주는 말이지 율법이 신자들에게는 무효되었다거나 정죄기능이 없어졌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앞서의 문장에서 확인됩니다. „ 우리가 아는 것은 율법은 누구든지 그것을 적법하게 사용하면 선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서 알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에는 당연히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도 포함되는 것이며 그들에게 선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며,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죄기능,범죄예방기능, 인도기능, 예언기능 등 많은 역할을 해주며, 불신자들보다, 믿는자들이 오히려 율법의 크나큰 혜택을 더보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로 율법이 오직 불신자에게나 필요하지 신자들에게는 필요치 않으며 신자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것은 율법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고 타당하지 않습니다.
율법은 바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말과 같습니다.
디모데 후서 3장
15 이는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음이니,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로 구원에 이르도록 지혜롭게 하기에 능함이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으며 가르침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안에 있는 훈계를 위하여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모든 선한 일을 위하여 온전케 되며, 완벽하게 되도록 하기 위함이라
바울이 말한 성경은 당시에 구약성경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율법인 토라는 책망과 바르게함과 의를 가르치는 중요한 교훈서였습니다.
율법이 불신자에게만 유용한듯이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가장 강력한 반증은 바로 이 앞구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딤전 1장 8절
8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율법은 누구든지 그것을 적법하게 사용하면 선한 것이며
누구든지란 바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이 율법의 효력이 거듭난 신자들에게는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주장은 잘못입니다
디모데 전서 1장 9절
우선 율법에 관하여는 디모데 전서 1장 8절을 분명히 보셔야 합니다. 율법은 적법하게 쓰면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며, 그것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합니다.
율법을 적법하게 쓴다는 말이 율법주의로 돌아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율법을 적법하게 쓰는 사람들을 율법주의자로 비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이라 할 수 있는 요한 웨슬레, 스펄젼, 무디는 율법의 유용성과 유효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개혁주의자들로서 문제가 많았던 루터, 칼빈 역시 그점에서 동일하였습니다. 그들이 도덕법을 별도 분리한 점 또한 주목할 일입니다. 또한 성공회, 웨스트민스터, 침례교 신앙고백들이 성도들에게 여전한 도덕법의 유효성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제 디모데 전서 1장 9절을 살펴봅니다. 한글의 대부분의 번역은 율법 혐오증을 유발시키도록 번역되었거나, 반율법주의 성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글로 번역된 킹제임스 성경은 그런 반율법주의 보다도, 콩글리쉬 문제가 있습니다. 9절에서 쓰인 made 는 만들다는 뜻으로 킹제임스 원문이 번역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Make 는 만들다도 되지만, 되다는 뜻도 있고 삼다는 뜻도 있습니다. 거기다가 킹제임스 성경에서 취한 make 라는 뜻은 400년 동안 상당한 어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것은 원래 수동태로 쓰일 때 처해있다, 놓여있다는 뜻으로 쓰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주로 만들다로 쓰입니다. 이제 원어와 다른 영문 번역들을 비교해보면 그것이 무슨 뜻인지가 드러납니다. 다음은 영문 번역들중 가장 신뢰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어지는 번역들입니다. HCSB는 소수사본을 바탕으로 다수사본을 반영하여 번역하기는 하였지만 어휘 변환이 정확한 번역이라 생각되므로 가져옵니다.
KJV
9Knowing this, that the law is not made for a righteous man, but for the lawless and disobedient, for the ungodly and for sinners, for unholy and profane, for murderers of fathers and murderers of mothers, for manslayers,
YLT
9having known this, that for a righteous man law is not set, but for lawless and insubordinate persons, ungodly and sinners, impious and profane, parricides and matricides, men-slayers,
HCSB
9 We know that the law is not meant for a righteous person, but for the lawless and rebellious, for the ungodly and sinful, for the unholy and irreverent, for those who kill their fathers and mothers, for murderers,
Darby
9knowing this, that law has not its application to a righteous
person, but to [the] lawless and insubordinate, to [the] impious and sinful, to [the] unholy and profane, to smiters of fathers and smiters of mothers; to murderers,
텍스투스 리셉투스 디모데 전서 1장 8-9절
8 Οιδαμεν δε οτι καλος ο νομος, εαν τις αυτω νομιμως χρηται, 9 ειδως τουτο, οτι δικαιω νομος ου κειται, ανομοις δε και ανυποτακτοις, ασεβεσι και αμαρρτωλοις, ανοσιοις και βεβηλοις, πατραλωαις και μητραλωασις, ανδροφονοις,
문제가 되는 단어는 케이타이로, 원형은 케이마이입니다. 그것의 뜻과 사용된 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κειται (=Κειμαι) : to lie, to be laid, to recline, to be lying, to have been laid down (Mt 28:6, LK 2:12) to have been set : Mt 3:10, LK 3:9, Jn 2:6 to be situated as a city, Mt 5:14 Rev 21:16, to be in store LK 12:19 to lie under influence 1 Jn 5:19, destined 1 Thess 3:3, Phil 1:17, LK 2:34 to be situated as a law 1 Tim 1:9
according to Mounce Lexicon
다시 말하면 케이타이는 놓여있다, 누워있다, 놓여져 있다, 도시로서 놓여있다, 정립해있다, 처해있다, 저장되어있다, 영향가운데 있다, 운명에 처해있다, 되어 있다의 뜻입니다
마 28장 6절에 이 동사가 쓰였습니다. 천사가 예수님의 시신이 누워 계시지 않고 부활하셨다고 말할 때 쓰였습니다. 주께서 만들어져 있던 곳을 보라, 그가 부활하셨느니라, 라고 번역해야 하겠습니까?
마 3:10 ;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만들어졌으니, 로 번역해야 하겠습니까?
하토브
2012. 3. 26
2014. 12. 28 고쳐씀 하토브
첫댓글 갈 3장 10절을 많이 보완하였습니다.
감사 합니다
가져다가 보관하며 더욱 공부해야 해야 겠습니다
성경번역상의 오역으로 그 성경을 의지하는 많은 성도님들이 율법유효믿음을 놓치는 부분은 너무나 당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