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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행자의 서원』 중 「수학분」
~~~부처님께서 발심하고, 정진하고, 고행하시고, 대각을 이루시고, 교화하시는 그 사이에 베푸신 칭량 못할 무량법문은 모두가 중생들이 닦아가야 할 표준을 보이심이십니다. 청정한 자성을 구김없이 온전히 드러내는 과정과 방법을 보이심이오니 저희들은 이 모두를 따라 배워서 본래의 함이 없는 땅에 이르겠습니다. ~~~
금주의 법어--경전을 받아 가지는 공덕
금주의 법사--경원사 주지 효림스님
오늘은 혜담스님이 각화사에서 초하루 법회를 해야 되어서 서로 날을 바꿔 법문을 하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금강경』 15분 「지경공덕분」을 하겠습니다. 저를 따라오던 젊은 가수 친구도 미리 정한 중요한 약속이 있어 오늘은 못 나오고 그래서 모처럼 시간이 있으니 설명의 강도를 좀 높여서 하도록 해보겠습니다.
오늘도 한시를 써왔습니다. 인심어중불유독, 仁心語中不有毒, 마음이 어질면 말하는 가운데 독이 있지 않다. 우리가 하는 말이 묘해서 말은 그 사람 인격의 표상입니다. 행동도 인격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그 중에 말은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을 잘 하면 그 사람의 인격이 돋보이고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그 사람의 학식과 인격의 정도와 그 사람의 사상과 철학의 내용까지 다 알 수 있습니다. 말 한 마디가 가슴에 못을 박고 수많은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을 줍니다. 그래서 언어폭력은 주먹이나 칼로 하는 폭력 못지않게 우리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불도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항상 살펴야 합니다.
임의행류무족쇄, 任意行流無足鎖, 내가 마음대로 서울이나 부산으로 가고 싶은 대로 유행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족쇄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옛날에 노비가 있었는데 불과 한 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구사회에는 노예가 도망 못 가도록 아프리카에서 사람을 사냥해와서 족쇄를 채웠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만큼 자유를 구속하는 제도는 없었습니다.
이인하언만인상, 已仁何言萬人傷, 이미 마음이 어질다면 어찌하여 말로써 만인에게 상처를 주는가. 우리가 이미 마음이 어질다면 말을 자유롭게 걸림 없이 하더라도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습니다. 금강경 논리로 하자면 상이 떨어진 사람은 남에게 상처를 잘 안 줍니다. 내가 한 행동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자랑하지만 듣는 사람은 기분이 불쾌하거나 때로는 큰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채근담에 보면 하늘을 덮고 땅을 덮을 만큼 큰 공덕이 있더라도 자랑하는 말 한 마디가 그 공덕을 다 없앤다고 합니다.
이무쇄하불거래, 已無鎖何不去來, 이미 족쇄가 없는데 어찌 가고 옴이 없겠는가, 걸림이 있겠는가. 그래서 오늘 아상이 우리 마음에 어떻게 족쇄 역할을 하고 또 우리가 하는 언어가 어떻게 남에게 상처를 주는가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경공덕분」
수보리야,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아침에 항하 모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고, 낮에 다시 항하 모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고 저녁에도 또한 항하 모래와 같은 몸으로써 보시하여 이와 같이 한량없는 백천만 겁을 몸으로써 보시할지라도 만약 다시 사람이 있어 이 경전을 듣고 신심으로 그것을 이해하면 그 복이 저보다 나으리니 항차 어찌 이 경을 베끼고 수지하고 독송하여 남을 위하여 해설함이겠느냐. 수보리야 중요한 말로 하면 이 경은 가히 생각할 수 없고 가히 칭량할 수 없는 가없는 공덕이 있느니라. 여래가 대승을 발한 자를 위하여 설한 것이요 최상승을 발한 자를 위하여 설한 것이니 만약 사람이 있어 이 경을 이해하고 독송하며 널리 사람들을 위하여 해설하면 여래가 이 사람을 다 아시고 이 사람을 다 보시어 헤아릴 수 없고 일컬을 수 없고 뜻할 수 없고 뜻을 생각할 수 없는 공덕을 얻어 성취하게 하느니라. 이와 같은 사람들은 곧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짊어지게 되느니라. 어찌한 까닭이랴 수보리야 만약 작은 법을 즐기는 자는 아견과 인견과 중생견과 수자견에 집착하여 곧 이 경의 말씀을 듣고 받아 독송하여 사람들을 위하여 해설하지 못하느니라.
시도 읽어보면 똑같은 말이라도 의미를 살리기 위해 도치법을 씁니다. 설악산 백담사에 가면 고은 시인이 쓴 시비가 하나 있습니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문법상으로 하면 올라갈 때 못 봤네. 내려오면서 그 꽃을 보았네라 할 텐데 시적인 맛을 살리기 위해 압축하여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으로 했습니다. 올라갈 때 왜 못 봤느냐 하면 정상에 올라가기 바빠서 못 봤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젊어서는 일하고 돈 버느라 많은 것을 놓치고 중요한 것을 못 보고 지나가죠.
『금강경』에서도 큰 긍정을 하기 위해서 부정을 하는 것으로 논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헷갈려합니다. 선남자선여인이 아침에 항하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몸으로 보시하고 또 점심때에도, 저녁때에도 하루종일 항하의 모래수 만큼 많은 몸으로 보시할 때 그 공덕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것도 하루 이틀 하는 것이 아니고 백천만 겁 무한 세월 동안 보시를 하는데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면 이틀도 못되어서 불교는 수행하기 어려워서 못하겠다고 포기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렇게 수많은 보시를 하는 것보다 더 수승한 공덕이 있는데 그게 아주 쉬운 방법입니다. 이 경전을 듣고 그 내용에 거슬리지 않으면 항하 모래수보다 많은 몸으로 보시하는 것보다 더 수승한 공덕, 헤아릴 수 없고 칭량할 수 없는 공덕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경전은 대승과 최상승을 발한 자를 위하여 설한 것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조금 베풀고 생색을 크게 내고 싶은데 베푼 것보다 더 큰 공덕을 지으려면 베푼 생각, 상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누차 이야기했듯이 멀리 있는 친구와 이웃한테 할 것이 아니라 당장 집에 가서 아들딸에게 실천해보라는 겁니다. 내가 아들이나 딸을 키우려면 실지로 항하수 모래보다 더 많은 내 몸을 아들과 딸에게 헌신한 건데 문제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이 말이 공덕을 까먹는데 있습니다. 뱃속에서 열 달 동안 고생하고 눈앞에 죽음이 왔다 갔다 할 정도로 고통을 느끼면서 자식을 낳은 그 공덕이 지대하여 우주를 창조한 건데 말 한 마디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게 키운 자식이지만 더 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면 됩니다.
옛날에 가난해서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한 70~80대 할머니들이 글을 몰라 글 가르치는 곳에서 배운 80대 할머니가 시를 하나 썼는데 그것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습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집도 하나 못 사줘서. 이 다음에는 부자 엄마 만나라.> 이 시를 읽는 아들이 얼마나 큰 감동을 받겠어요? 그 시를 보고 어떤 유명한 시인이 쓴 시보다 감동적이고 훌륭하다고 느꼈습니다. 좋은 시라는 것은 이런 시이고 이 시야말로 『금강경』의 무주상, 적어도 아들에게는 상을 내지 않는 경지에 간 겁니다.
작은 법을 즐기는 사람은 생색내기 좋아하고 자신이 잘났다는 사람, 나만 좋으면 된다는 극히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자기 돈을 내서 회사를 창업했지만 민주주의적 회사 운영으로 회사 주식을 다른 사람에게 팔면 주식을 산 사람들은 창업주와 동등한 권리를 가집니다. 거대한 회사를 갖고 있어도 내 회사라고 생각하면 사람들이 다 욕합니다. 주식회사에서 내 회사라고 내 마음대로 하면 다른 주주들이 비난하고 그 회사에서 만든 물건을 소비자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고무신이나 핸드폰을 만들어서 부자가 된 사람은 자기 힘으로 부자가 된 것이 아니고 고무신이나 핸드폰을 사준 사람들이 부자로 만들어준 겁니다. 식당을 차려서 운영할 때도 손님을 부처님 대하듯이 하면서 감사하다 하고 잘해주며 공덕을 손님에게 돌리는 것이 무주상입니다. 대통령이나 장관 국회의원도 마찬가집니다. 내 마음을 천하의 마음과 같이 하면 훌륭한 정치 지도자가 될 수 있어요. 나라의 주인이 대통령이 아니듯이 절의 주인도 주지스님이 아니고 그 절의 대중스님과 신도님들이 주인입니다. 오늘날 종교계가 타락하는 것도 절이나 교회를 개인소유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최선을 다해 헌신하더라도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순간 자기가 해온 공덕이 사라집니다.
법회보에 올려진 시입니다. 칼보다도 총보다도 더 힘센 놈이 있다./ 이념도 종교도 이놈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이놈으로 권력을 잡을 수도 있고/ 사랑과 행복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그대의 인격은 어쩔 수가 없다.// 이놈/ 너무 믿지 마라./ 그대를 타락시킨다.// 이놈-효림
전지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목사가 제일 먼저 하나님을 배신하고 신도들과 열심히 기도하고 철야정진하는 스님이 부처님을 먼저 배신합니다. 왜 그런가 살펴보니 이놈, 돈 때문입니다. 돈이 부처님보다 하나님보다 힘이 셉니다. 흔히 돈으로 사랑과 행복을 살 수 없다고 하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우리 어머님이 얼마나 자식이 그리웠는지 도반이 그 마을을 지나갈 때 부르면서 우리 아들도 스님이라며 반가워했다고 합니다. 집을 떠나있는 아들을 그리워하게 한 것이 어머니한테 늘 미안했습니다. 그 어머니도 돈 봉투를 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돈으로 행복도 살 수 있고 사랑도 살 수 있습니다.
정말 돈으로 살 수 없는 딱 한 가지가 있는데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연속극을 잘 안 보지만 어쩌다 보면 옛날에는 삼각관계가 제일 많더니 요즘은 돈 많은 사람이 갑질하는 내용을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돈으로 인격을 살 수 없지만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누구나 자기 의지대로 자기 인격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 경전도 수없이 많지만 금강경만큼 명확하게 우리의 완전한 인격을 설명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빛나는 인격은 아상이 없는 것으로 부처님의 인격입니다.
선종에서는 도인, 깨달은 사람의 마음을 무심이라 합니다. 초기 경전에서는 도달하고 싶은 경지를 삼매라 하고 무아를 말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무아인데 선종에서 무슨 성품을 봐서 깨닫는다고 하느냐, 불교적인 것이 아니라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심과 무아는 무아상을 설명하는 겁니다. 한 사람을 사랑할 때 자기를 잊어버리면 무심의 경지에 가고 삼매를 이룹니다. 춘향이나 이도령,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이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을 못 만나서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평생 가도 못 만납니다. 내가 정말 무아의 경지로 사랑하면 그들이 그렇게 될 수 있는데 같이 사는 사람이 못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정말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혼탁한 사회를 우리가 유일하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금강경이 지시하는 인격을 갖추는 겁니다. 금강경을 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어렵게 이해할 필요는 없어요. 우리 일상생활에서 또는 주변 사람을 만날 때 무아상으로 아상 없이 대할 줄 알면 가장 수행을 잘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밝아지는 겁니다. 군인 아파트에서는 아버지 계급대로 학교에 가면 아들도 그 계급이 된다는 말을 듣고 좋은 일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아버지의 사회적 지위가 높으면 그 집 아들 딸이 그 지위가 되어 학교에 가서 갑질을 하는데 이것은 아버지가 집에서도 국회의원이나 장관이라는 상을 갖고서 끊임없이 아들딸에게 그 상을 심어준다는 겁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금강경』 독송을 해야 합니다. 한국전쟁은 땅 뺏기 전쟁이 아니라 이념이 달라서 생긴 전쟁인데 그 이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이념이 절대적 이념이라는 생각을 극복해야 우리 민족이 살아남겠다고 생각해서 소천선사와 광덕선사가 <금강경 구국독송회>를 했습니다. 나라를 구하려면 사람들에게 금강경을 읽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가진 종교가 절대적 사상과 철학이며 우수한 종교라는 생각을 없애야 합니다. 불교만이 가장 위대한 철학이라는 사상을 없애야 됩니다.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에 불교는 위대한 사상입니다. 절대 우위적 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것이 금강경입니다. 우리 사회를 구제하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금강경을 읽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불광인의 선서>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우리는 불광법등입니다. 전법으로 정정진을 삼겠습니다.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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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바라밀님, 생소하게 효림 스님 법문을 작성하시느라고 수고 많으셨어요.
금강경 법문을 설하고 쉼 없이 듣고, 독송하는 불광에서 지금의 일들이 일어난 것은 어디서부터 잘 못된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해 보게 되는 하루였습니다.
바라밀님! 법회일지 쓰시느라
애쓰셨습니다.
항상 수고하심에 수희찬탄드리옵니다.
매일 금강경독송과 마하반야바라밀 염송 기도를 하는 불광형제들에게
효림스님의 금강경 법문은 일상
생활 속에서 쉽고 편안하게
실천 할수 있어서 더욱
마음깊이 다가오는 유용한 법문에
감사드립니다.
집착하는 마음 아상을 내려 놓지
못하는 저 자신을 반추하면서
참회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지홍스님의 상좌 동명스님이 주지로 들어앉게 되었다는
얄궂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허름한 차림에
뭔가모르게 눌변인 듯 보이면서도
소박한 언어로
일상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소재의 쉽고도 유용한 효림스님의
금강경 법문에서 평온과 행복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 평온의 바라밀 위덕이 결국은 불광승리의 자산이 되어 정상화의 대위력으로 넘쳐나리라 확신합니다.
언젠가부터 여러 사찰의 1인 시위 현장까지 이 법회일지에 편집하게 되니 그 노고가 예전보다 더욱 커진 걸로 느껴집니다
스님법문의 정확한 녹취와 여러 영상들을 편집하여 법회상황을
현장감 있게 꾸려주신 바라밀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이곳 저곳의 법회상황과
시위현장까지 사진을 찍어 보내주시는 미디어팀 보살님들도 참으로애쓰시고 계십니다.
모두모두 감사드립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