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이다지도 면목이 없느냐 / 원각 스님
진주보수(鎭州寶壽)가 풍혈(風穴) 문하에서 정진할 때 일입니다.
안거에 들어갈 무렵 풍혈선사가 말했습니다.
“본래면목을 나에게 가져 오너라.”
이 말씀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면서
이튿날 아침 선지식을 찾아 떠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스승은 가지 못하게 말렸고 안거동안
대중에게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가방화주(街坊化主) 소임을 맡겼습니다.
어느 날 화주를 하기 위해 저자거리로 나갔습니다.
길거리에서 두 사람이 서로 다투다가
한 사람이 주먹을 휘두르면서 말했습니다.
你得恁麽無面目
이득임마무면목
너는 이다지도 면목이 없느냐?”
그 말을 듣고서 보수는 그 자리에서 크게 깨쳤습니다.
수행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가시나무 숲 속이라고 할지라도
큰 도량에서 앉은 것처럼 절대로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또 진흙 속에 뒹굴고 흙탕물 속으로 뛰어 들어
온 몸이 더러워지는 상황 속에서도 수행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진주보수 선사는 진흙 속에 뒹굴고
흙탕물 속으로 뛰어 들어 온 몸이 더러워지는
홍진(紅塵)속에서도 언제나 애써 정진했기 때문에
“너는 어째서 이다지도 면목이 없느냐?”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서
그 자리에서 안목이 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래면목’이란 결코 누가 묻고 누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까닭입니다.
오직 헤아림을 넘어설 수 있는 납자라야
한 주먹으로 타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동안거 구십일동안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애써 정진한다면
선방이나 법당이나 공양간이나 운력장이나 포행길이나
모두가 수행공간이 됩니다.
그렇게 될 때 바로 풍혈이 보수를 시정(市井)에
내보낸 까닭을 알게 될 것이요,
홍진(紅塵)에서 들은
‘이득임마무면목(你得恁麽無面目),
너는 이다지도 면목이 없느냐?’
한 마디에 깨달음을 얻은 보수와 같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후에는 처처(處處)가 깨달음의 장(場)이 될 것이며
정법안(正法眼)으로 사물과 사물을 대하게 될 것이며
하는 일마다 보살행이 될 것이며
걸음걸음마다 모두 대선정(大禪定) 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요시상봉양지식(鬧市相逢兩知識)이여
면목무래태폐력(面目無來太廢力)이라.
분골쇄신미족수(粉骨碎身未足酬)이나
일구요연초백억(一句了然超百億)이로다.
시끄러운 저자거리에서 상봉한 두 선지식이여!
면목도 찾지 못하고 아예 기력마저 사라졌구나.
분골쇄신한다 하더라도 깨닫지 못하면 족히 갚을 수가 없으나.
한 구절에 환히 깨달으면 백억 배를 초과하여 은혜를 갚으리라.
임인년 동안거 결제일
원각스님 / 해인총림 방장
출처 : 불교신문
출처 : 금음마을 불광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