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소음 사이
정숙자
요즘 나는 산에 다니면서 새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멀리서 들리는 자동차의 소음 등 각종 소리를 들으며 저런 소리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소리와는 땔 수 없는 필연의 관계에 있다.
그러면서 아득한 세월 내가 신혼 때 들었던 서울의 소리들이 생각났다. 내가 처음 서울로 올라와서 시골에 살면서 들어보지 못한 낯선 소리에 놀라고 궁금했던 소리를, 시골에서 올라와 아직 시골티를 벗지 못한 나에게 들리는 새로운 소리, 나는 음력 정월에 서울로 시집을 왔다.
시골에는 한창 농악놀이로 동민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지신을 밟던 정월이라 꽹과리 소리가 동네를 울리던 때이어서 서울에서 울리는 소리들도 정월의 꽹과리 소리로 착각했다.
내가 서울에서 첫 둥지를 튼 곳이 영등포 양평동 시장통이었다. 시장통 생활은 시장을 봐 먹기는 편리하지만 각종 소음으로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상인들이 외치는 호객 행위와 엿장사의 가위 소리와 북소리, 동동구리무 장사의 장구와 노래소리 등 다양한 소리들은 조용한 시골에서 올라온 나에게는 모두가 소음이고, 신기한 소리였다.
첫째로 신기한 것은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외치는 번데기 장수의 ‘뻔’ ‘뻔’이고, 다름으로는 참기름 장수의 ‘챙’ ‘챙’이었다. 참기름이라 말하자 않고 앞의 머리 글자만 따서 ‘챙’ ‘챙’하며 외치고 다녔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몰라 대문 밖에 나가서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특이한 것은 ‘동포여’ ‘동퍼여’ 하는 소리였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방안에 엎디어 책을 보던 내가 ‘동포여!’ 하는 소리에 동포가 어쨌다는 말인가. 그즈음 북쪽의 테러단 김신조 부대가 우리의 대통령 궁인 청와대를 까러 왔다가 생포되어 경계가 삼엄하던 시절이라 동포들을 불러 모아 무슨 결사대라도 만드는 줄 알고 웃옷을 걸치고 뛰어나가 그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뒷골목으로 갔다가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동포여!’ ‘동포여!’ 허름한 옷을 걸친 남자가 어깨에 울러 멘 길다란 막대기 끝에 나무통이 달려 있는 지게를 메고 골목을 다니면서 ‘똥 퍼요!’ ‘똥 퍼요!’ 즉 화장실 청소하라는 소리였다. 지금 잚은 사람들은 그게 무슨 소린가 하겠지만 그때는 화장실이 다 재래식이어서 새입자들은 거의 공동 화장실을 썼다. 수돗물도 공동 수도이라 서민들은 물지게를 지고 다니며 물을 길러다 먹었다. 화장실도 공중 변소였으니 아침이면 변소 앞에 줄을 서던 그때의 서울 생활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다행히 나는 신혼살림이고 신랑이 좋은 집을 얻어놔서 그런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소음은 피할 수 없었다.
그 이후 남편의 직장 이동으로 인천으로 이사하여 잠시 조용한 곳에 살다가 서울 목동으로 이사했다. 길가 집이라 각종 차량들의 소음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배추장수 고구마 장수의 외침과 창문 밑으로 달리는 자동차들은 좀 천천히 가라고 설치해 둔 가로막이를 무시하고 급히 달릴 때는 안방 구들장이 들썩들썩하기도 했다. 이렇게 나는 서울에 살면서 소음과 친해져 주택이 조용한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 복지관에 공부하러 온 교실에서 강사의 말소리보다 학생들의 잡담이 더 큰 소음이어서 속이 상했다. 나는 언제쯤 소음과 멀어질 수 있을까.
지난 봄에 도회지를 떠나 경주의 한적한 시골 산 밑으로 터전을 옮긴 친척 형님집을 방문했다. 고요한 정적 속에 새소리 바람소리만 들렸다. 그곳이 너무 조용해서 낮에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밤이 되어 밤 하늘에 뿌려진 별들을 보는 순간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50여 년 전 시골에서 살 때 보았던 그 하늘이 거기 있었다.
천지를 환하게 비춰주는 보름달과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별빛 총총한 하늘은 혼자 보기가 아까웠다. 달과 별들은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만 혼탁한 서울에서 살았다는 기분이었다. 서울에선 절대로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정경. 그곳으로 터전을 옮긴 형님의 결정에 박수를 보냈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함께 살자는 형님의 권유에 그냥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구쳤다. 그러나 삶이란 것이 생각대로 금방 옮길 수 있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소음 속의 내 둥지도 소중해서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지금은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 동동구리모와 리어커 엿장수의 가윗소리가 오히려 그리운 시대가 됐다. 날만 새면 자동차의 소음과 전철 지나는 소리 등 산업화의 소음이 재래식 소음보다 훨씬 더 한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태초에 흙에서 나고 자란 고향이 그리워지는 것일까? 아니면 흙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져서인지 내가 나고 자란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
지금은 시골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지만 봄이면 뻐꾹새가 한가로이 울고 풋보리 영글던 가난한 시골의 평화로운 정경이 그립다. 젊어 벼슬을 했다던 대감님도 퇴임 후에는 낙향하여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던 여유롭던 그 모습이 새삼 그리워지는 오후이다.
첫댓글 안녕 하세요 선생님
이런 수필도 쓸수 있군요 편하게 읽은 수필 입니다
저도 한번 연습해 보겠습니다
t소리만이 아니고, 내가 경험한 모든 것들이 소재의 대상이 됩니다. 예로서, 시골집의 흙담에서, 도시 변두리의 시멘트 벽돌 불록담, 그리고 단독주택 담장에서 아파트의 담장까지, 담장이 내 삶의 궤적이 된다면 ---- 상상력 발휘하여 ---
나의 주변에서 수필의 소재를 찾아보십시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