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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포항에스라 원문보기 글쓴이: 박명수
안녕 하세요.
이 자리에 서게 해주신 하나님과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이름은 옥 은빈 입니다.
저는 177회 에스라 강좌를 다녀온 오빠를 통해 에스라하우스 라는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200회 강좌에 온 가족이 함께 다녀온 후에 오빠의 소원대로 가족 모두 샤론교회 등록하여 울산에서 출석한 지 3년이 되었습니다.
제게는 함께 나누고 싶은 은혜들이 참 많은데요.
그 중에 몇 가지만 간증 하고자 합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177회 강좌를 다녀온 오빠의 권유로 어머니께서 바로 178회 강좌에 참석 하셨고 어머니께서 큰 충격을 받으시고 그 동안 온갖 페스트푸드와 가공 식품에 중독 되있던 저에게 레위기 11장에 정결한 음식에 대해서 얘기를 해 주셨습니다.
어린 시절에 외할머니께서 유치원과 학교에 저를 데리러 오실 때마다 제가 먹고 싶은 건 다 사주셨기 때문에 불량 식품들을 매일 습관처럼 사 먹었었고 중학교 올라 와서도 그 생활은 별로 달라 진 것이 없었습니다.
제가 특히 좋아 하는 것은 아이스크림 이였는데 여름에는 보통 하루에 5-6개는 기본 이였고 껌이나 사탕은 거의 깨어 있는 동안은 항상 입에 달고 있었고 생 라면을 부셔서 스프를 뿌려 먹는 건 매일 점심을 먹은 뒤 후식 이였습니다.
학교 앞 모든 분식점은 단골 이였고 문구사에서 제가 사 먹는 것들은 대부분이 출처도 성분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불량식품들이였습니다.
지금은 상상만 해도 끔찍할 정도로 먹었었기 때문에 어머니를 통해 바른 먹거리란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예전에는 고집이 세고 한번 옳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그대로 행하는 성격 이였던 것이 그 순간에 장점으로 작용하게 되어서 정결한 음식에 대한 얘기를 듣는 그 날 당장 모든 것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몸에 해로운 모든 음식을 끊고 나서 그 동안 격었던 전신적 육체적으로 괴로웠던 많은 증상들이 눈에 띄게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멀미였습니다.
중 3때 에스라하우스를 처음으로 가게 되었는데 가는 도중에 멀미를 너무 심하게 해서 가는 내내 먹은 것이 없어서 몇 시간 동안 노란 물을 쏟아내고 두통과 복통 때문에 강좌기간 4박 5일 동안 누워서 강의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9년 동안 여행을 갈 때마다 버스 이동은 저에게 고통 이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음식을 바꾼 지 몇 달 만에 기적처럼 멀미는 사라졌습니다.
먹 거리를 바꾸지 못했더라면 지금도 울산에서 마산까지 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 이였을 것입니다.
중학교 3학년 이후는 제 인생은 바뀌기 시작했고 저에 대한 주위의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항상 산만하다는 소리를 듣던 제가 집중력이 생기기 시작했고 뒤에서 몇등하던 저는 음식을 끊고 4달 만에 전교 석차 120등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 와서 음식을 끊은 지 1년쯤이 되었을 때 학교에서 헌혈을 하게 되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처음에 피 검사를 해보시고는 이렇게 깨끗하고 맑고 좋은 피를 만나보기 힘들다며 놀라셨던 일도 있었습니다.
1년 전쯤 황 성수 박사님의 강의를 듣고 난 후 그 동안 잘 지켜 왔다고 생각 하였던 저도 먹어선 안 되는 음식들이 더 광범위 하다는 것과 채식 생활도 잘 알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작정 채식을 시작 하였을 때는 항상 부족함을 느껴서 함께 네 그릇 까지도 먹게 되었고 1년 만에 12키로 나 WL게 되었습니다.
하루 이틀 사이에 2-3키로를 왔다갔다해서 걱정을 하던 중에 100% 현미밥으로 바꾸게 되었는데 살이 조금씩 빠지더니 지금은 적정 몸무게를 1년 동안 유지하고 있습니다.
채식을 하고 나서도 매일 두 끼를 학교에서 2년 동안 급식을 하면서 음식을 가려 먹는 다는 게 너무 힘든 일이였습니다.
황 성수 박사님의 강의를 듣고 난 후 도시락을 싸다니기로 결심했고 학교에 현미 생 채식 도시락을 싸간 지는 10달 정도 되었습니다.
초반에 새 학기가 시작 되었을 때는 친구들이 아무도 도시락을 싸다니지 않아서 항상 밥 먹을 때마다 교실에서 혼자 먹곤 했습니다.
친구들이 급식 실에 다 가버리고 교실에 혼자 남아서 도시락을 꺼내 먹는데 도시락 뚜껑을 열고 고소한 냄새가 나는 현미밥을 보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찡하고 행복해서 눈물이 났었습니다.
학교에 천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한 사람 나에게 이렇게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이런 식단을 허락해 주셨다는 게 어찌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어떤 날은 감사해서 싱글벙글 어떤 날은 감사해서 눈물로 밥을 먹을 때도 있었습니다.
알고도 의지가 약하고 귀찮아서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희 엄마는 매일매일 꼬박꼬박 현미밥에 생 채식 셀러드에 견과류 과일 유기농 간식까지 챙겨 주셔서 항상 감사하고 밥을 먹을 때 엄마 생각이 가장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건 제가 음식을 바꾼 것이 아니라 바꾸고 나서의 엄마의 노력 이였던 거 같습니다.
그렇게 3년 정도 채식하던 모습을 봐 오던 친구들이 처음에는 이렇게 먹는 이유가 뭔지 물었고 가끔은 예전의 음식들이 먹고 싶을 때가 없냐고 물었습니다.
그럴 때면 저도 저는 나도 사람인데 왜 안 먹고 싶겠냐고 말 합니다.
고기나 인스턴트식품을 못 먹어서 먹지 않는 것은 제 의지가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별로 와 닿지 않을 뿐더러 못 먹는 것이 아니라 안 먹는 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런 친구들에게 내가 지금 음식을 바꾸는 것이 늦었다 해도 내 아들 딸에게는 더러워진 피와 몸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 합니다.
그럴 때면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말하지만 항상 맛있는 반찬 하면 고기, 고기 하던 친구들도 나중에는 채식을 너무 맛있게 먹는 저를 보고 나도 이렇게 먹어야겠다고 도시락을 싸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못가 친구들 엄마는 지쳤고 친구들은 저의 엄마의 노력과 정성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일단 식품 첨가물에 관한 책을 빌려 보고는 그 책을 자기 엄마에게도 보여 주고 음식을 바꿔 보려고 노력하는 친구들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이유들을 저는 3년 동안 친구 엄마들 사이에 유명해 졌고 풀만 먹는 애로 소개 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사실 제게 있어서 가장 큰 변화는 말씀 생활입니다.
샤론교회 오기 전에는 모태신앙 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이 이렇게 중요한지도 몰랐었고 엄마가 전도사님이시니까 부담스러운 맘으로 항상 억지로 성경을 읽었었습니다.
그 두꺼운 책을 언제 어떻게 다 읽어야 할지도 몰랐고 너무 막막했고 무겁기만 하고 솔직히 정말 읽기 싫었습니다.
하루에 3장만이라도 읽으라는 엄마의 말에 시편의 짧은 장을 골라서 읽기도 했지만 읽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한 장만 넘겨도 잠이 쏟아지고 항상 읽다가 잠들고 그렇게 10 몇 년을 성경도 제대로 읽지 않고 기도 생활도 하지 않고 형식적인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항상 특별한 아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언젠가 나도 변하겠지.
하고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노력 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은 항상 제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있을 때만 찾는 분이였습니다.
성경의 진리를 바르게 알게 된 후 예전에 제가 알던 알고 있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기에 충격은 너무나 컸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생각보다 완전히 뒤집어 놓으셨습니다.
인생의 전환점 이였습니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들 만큼.
노 우호 목사님을 만나기 전까지 저는 학교 공부의 중요성도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전혀 알지 못해서 그냥 자유롭게 학교엔 친구를 만나러 교회엔 당연 하듯이 출석을 해 왔습니다.
처음에 샤론교회 와서도 크게 신앙생활에 변화는 없었는데 작년 어느 날 침대에 멍하니 앉자 있다가 문득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게 되었습니다.
고3이 되기 몇 달 전 불현듯 찾아온 생각이라 얼마나 갈지 걱정도 되었지만 너무나 확고하게 마음이 굳어져갔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하고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저는 아무것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린 일이 없이 살아온 것 같았습니다.
엄마 배 속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온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세상 사람들 보다 오히려 세상에 더 억매여 있는 건 아닌가.
죄송하고 한심하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마음이 아파오고 그냥 단지 너무 죄송하고 아직도 제 손을 놓지 않으시고 잡고 계신 하나님 앞에 너무 너무 부끄럽고 초라하고 감사해서 몇 시간을 방에서 혼자 울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나도 언젠가는 하나님이 필요 하실 때 준비 되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구나.
다짐을 하고 부끄럽지만 18년 만에 하나님을 위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선 터무니없이 늦게 공부를 시작해서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믿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믿고 감사함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기초가 없어 너무 힘들었지만 무식해서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시작한 후 중요 과목 중 전교 200등으로 올린 과목도 있었고 친구들과 부모님이 놀랄 만큼 성적은 향상 되었고 12년 학교생활 중 그리기 상 만들기 상 말고는 꿈도 꾸지 못하던 제가 학력 진보 상 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고 3이니까 앞으로 1년 동안은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올해 2월에 처음으로 가족과 동반하지 않고 에스라 강좌를 갔다 왔는데 그때 하나님이 정말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 3월 중순에 성경 통독을 시작했는데 저도 모르게 성경 말씀에 열정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창세기를 시작 했는데 너무 신기했습니다.
지금까지 창세기만 한 열 번은 읽은 거 같은데 지금까지 봐왔던 천지 창조가 아니 였습니다.
처음에 학교에 성경을 가지고 가서 읽기 시작했을 때 친구들이 매일 한 시간 두 시간 씩 시간을 내서 성경을 읽는 저를 보면서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꼭 읽어야 하냐고 그 시간에 책 한 장을 더 봐라.
네가 이거 내려놓으면 서울대 갈 거라 등 오만 소리를 다 들었었고 선생님들은 김 현수 목사님 통독을 듣고 있는 제 MP를 뺏어 저를 보시고는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시면서 꿀밤을 때리시고 공부나 하라고 혼내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과 선생님의 시선이 곱지 않아도 공부에 올인 해야 할 고3 이였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 때문에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던 짜릿함 충격 신비함 하나님이 이런 분 이셨구나.
처음 느껴 보는 하나님 모습이 너무 많았고 너무, 너무 성경이 빨리 넘어가서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성경책이 처음으로 너무너무 가볍고 얿게 느껴졌습니다.
창세기부터 읽어 오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경을 읽으면서 펑펑 울어 봤습니다.
이렇게 성경이 재미있고 흥미 진지하고 인류 드라마 보다 더 슬픈 적은 처음 이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라고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들어온 말들 때문에 저는 선택받았고 엄청 대단 한줄 알았는데 제가 너무 하찮은 존재 인 걸 알게 되었습니다.
기도 할 때는 뭣도 모르고 나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을 투정하고 억지 부리고 어떻게 보면 너무 버릇없을 정도로 원망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까만 피부 때문에 기도를 했었습니다.
중 3때 좋아하는 남자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애가 너무너무 하얘서 친구들이 저와 그 친구를 두고 흑과 백이라고 불렀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아프리카 토인이니 탄 옥수수니 너무 오랫동안 스트레스 받아서 어릴 적에 밤에 이렇게 기도 하고 잔적도 있었습니다.
하나님 다음 날 눈 뜨면 제 피부가 하얘져 있게 해 주세요.
제게는 너무나 간절한 기도였고 저는 하나님이 정말 저를 사랑 하신다면 들어 주실 거야.
믿고 아침에 눈을 떴습니다.
거울 앞에 선 저는 그날 정말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 철없고 어리고 어리석은 저에게 하나님은 항상 말씀 하셨을 겁니다.
네가 어떤 모습 이던지 사랑 한다고.
거울을 보고 힘들어 하던 저를 보며 얼마나 마음 아파 하셨을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된 지금은 하나님의 저를 향한 사랑은 너무나 커서 감당하기엔 벅찰 정도입니다.
항상 열등감에 시달리고 외모를 중요시 하고 보여 지는 것만 생각하고 하나님 보다 사람을 더 우선시 하고 하나님 보다 사람을 더 사랑 하는 동안 하나님을 얼마나 마음 아파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더 간절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기도 하게 되고 그럴수록 한없이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저의 삶은 주세요, 하는 기도에서 감사해요 라는 기도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나님 사랑해요, 라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수능을 치고 나서도 하나님을 좀 원망스럽습니다.
아무도 제 노력을 다 알지 못한다 해도 하나님은 제가 얼마나 큰 결심과 큰 목표를 가지고 공부 했는지 알아주시길 바랬습니다.
고작 1년 공부 해놓고 꿈이 얼마나 컸는지 저는 철없는 아이가 대통령을 꿈꾸듯이 가능 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수능을 치고 난 후 잠시 저는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수능이 임박해 지면서부터 성경 읽기도 중단되고 수능 이후엔 아르바이트를 핑계로 하루 종일 쉬고 잠을 잤습니다.
밥 먹을 때 숩관 적인 기도 외에는 하지 않았고 얼마 전까지의 열정은 식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목사님이 간증을 준비 하라고 하셨을 때 자신이 없었습니다.
간증 문을 수정 하면서 일주일 내내 하루, 하루를 눈물로 보냈습니다.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던 것도 1년을 공부한 것도 저의 자만과 욕심 이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절대 여기서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 살아 왔던 길에서 돌아서서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많이 배우고 체워 가면서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인정받고 싶습니다.
겉으로 보여 지는 모습에 내 세울 것 없고 세상의 기준에선 낮은 자리에 있더라도 항상 처음의 열정을 가지고 앞으로도 바르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 하는 딸이 되어서 언제 어디서나 저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이 전파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동영상은 에스라하우스 홈페이지 공개자료실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