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사화에서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를 빌자 환웅은 '신령한 쑥 한 심지와 蒜 스무 개'를 주었다.
'삼국유사' 권1 기이 '고조선'조에 '靈艾一炷 蒜二十枚'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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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蒜'을 '마늘'로 읽는다. 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웠다.
그런데 '蒜'이 곧 '마늘'인가.
'설문해자'는 '蒜'을 매운 채소라고만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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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이시진의 '본초강목'은 '蒜'을 둘로 나눈다. 뿌리와 줄기가 작고 쪽이 적으며 몹시 매운 것이 '소산(小蒜)'이고, 뿌리와 줄기가 크고 쪽이 많으며 매운맛에 단맛이 섞인 것이 '호(葫)', 곧 '대산(大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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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은 한나라 장건이 서역에서 들여왔다고 전한다. 오늘 우리가 '마늘'이라 부르는 것은 이 '대산'이다.
'소산'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의견이 갈린다. '달래'라는 견해가 많고, '산달래'나 '무릇'으로 보는 연구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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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은 중앙아시아가 원산이다. 중국에 들어온 시점이 한나라 때이니 한반도에는 그 뒤에 왔다.
'삼국사기' 제사지에 신라가 입추 뒤 '산원(蒜園)'에서 '후농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어 삼국시대에 '蒜'을 재배한 사실은 확인되지만, 그 '蒜'이 '대산'인지 '소산'인지는 알 수 없다.
반면 '달래'는 한반도 전역에 자생한다. 이른 봄 산과 들에서 누구나 캘 수 있는 나물이다. 단군사화가 그리는 시대를 생각하면, 굴 속의 곰과 호랑이 앞에 놓인 것은 외래 재배 작물보다 자생 나물이었다고 보는 쪽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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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마늘'은 어떻게 굳어졌나. 1946년 첫 국역본이 '蒜'을 '마늘'로 옮긴 뒤 이 번역이 그대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있다. 한 번 정착한 번역어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문제는 번역어 하나가 이야기의 시대 배경을 바꾼다는 데 있다. '蒜'을 '마늘'로 읽으면 단군사화는 '마늘'이 한반도에 들어온 뒤의 이야기가 된다.
사화의 배경이 선사시대에서 '마늘' 전래 이후로 밀려난다. '蒜'을 '달래'로 읽으면 이야기는 이 땅의 봄의 산과 들에 다시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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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와 '쑥'은 둘 다 봄을 먼저 알리는 풀이다. 겨울을 견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뜯어 먹던 것들이다.
곰이 백일 동안 굴 속에서 먹은 것이 그 풀이었다면, 단군사화는 이 땅의 생태와 민중의 먹거리에 뿌리를 둔 이야기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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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蒜' 한 글자를 어떻게 읽느냐는 식물 이름의 문제가 아니다. 단군의 시대를 어디에 놓느냐의 문제다.
나는 '달래와 쑥'으로 되돌려 읽는 것이 본래 맥락에 가깝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