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c et Nunc(힉 에트 눈크)
보라매 공원 둘레길 숲이 울창해졌다.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나무 사이를 걸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가 된 것이다. 화살처럼 빠른 세월의 흐름을 느껴 보며 자연의 순환 속에 담긴 창조주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 앞에 옷깃을 여미게 된다. 또 이렇게 세월은 흘러가고 계절과 함께 숲의 분위기는 변할 것이다. 내게 주어진 경작의 삶도 끝나는 때가 있음을 인식하며 “지금 이곳에(hic et nunc)” 존재하는 나 그리고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향하는가?
애굽 왕자의 삶을 떠나 미디안 광야에서 양 떼를 치던 때 모세는 상대성을 경험한 후 덧없는 인생과 영원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또한 자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의 마음을 담아 감동적으로 고백한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시90]
이러한 고백 후 모세는 하나님께 부름받아 출애굽의 지도자로 쓰임받고 인간 경작의 섭리의 극상품의 열매로 나와 영원토록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40년 연단을 받은 후에야 모세를 쓰셨을까?
바로의 왕궁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양 떼를 치며 낮아지는 삶을 통해 비로소 모세는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그릇을 갖추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가르쳐 주셨다.
내 생각이 있는 만큼 순종에 이르지 못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데 쓰임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성경의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도 연단의 과정을 거쳐 순종할 수 있는 그릇으로 변화된 것을 볼 수 있다.
야곱은 환도뼈가 부러지는 간절한 기도로 철저하게 자기가 깨어지고 지렁이 같은 야곱이 되었기에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의 가슴에 가장 위대한 왕으로 남아있는 다윗은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했다.
가끔 등산을 하면서 많은 것들을 묵상하며 창조주 하나님의 섬세하신 손길을 음미하는 시간을 갖곤 한다.
높은 산의 경우 장시간 험한 기슭과 암벽을 지나 정상에 이를 때에는 벅찬 감동을 받게 된다.
그런데 올해 2월 눈 덮인 덕유산 정상에 올랐을 때는 뭔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경치는 분명 아름다운데 왜 이러한 마음이 들까? 하는 순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No Pain, No Gain! (苦盡甘來)” 라는 표현이 불현듯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노력 없이는 대가도 없음과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각종 어려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깨달아졌다.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는” 과정을 통과한 후 참된 행복과 감사를 만끽할 수 있으며, 상대성 없이 천국에 이르렀을 때는 마치 높은 산 정상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것과 같을 것이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참자녀가 되기를 그토록 애타게 바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온몸과 영혼에 전율로 다가왔다. 그러자 삶의 환경 속에 경험했던 모든 어려움들이 감사함으로 느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할렐루야!
더욱 감사한 것은 성결의 복음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믿음의 선진들처럼 육신의 생각을 깨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는지 자상하게 배웠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계명은 무겁지 않을뿐더러 불같은 기도로 간구할 때 성령님께서 도와주시고,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능히 마음의 변화를 체험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금 세계, 교회, 가나안 선교회는
세계는 지금 코로나19 팬데믹과 4차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삶의 형태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소통과 업무처리가 급속하게 디지털화되고 있으며, 비대면(언택트) 문화가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정착되었다. 새로운 소통과 삶의 공간으로 급성장 중인 메타버스(metaverse)라는 가상공간에 대한 관심과 활용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교회들도 현장예배가 제한적인 환경에서 랜선 예배, 비대면 화상회의는 자연스럽게 신앙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가나안 선교회도 화상회의로 월례회를 진행하며 소통하고 있고, 가나안 매거진 제작 및 해외선교 지원 등 선교회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3년간 우리가 경험해왔던 격동의 시간들을 회상하며 향후 펼쳐질 삶을 믿음으로 바라본다.
하나님께서는 본교회를 세우시고,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 대성전 건축의 사명을 주셨다.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먼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본주의, 적그리도적인 세계관을 깨트리는 말씀과, 육안으로 보이지 않으나 확실하게 존재하는 영의 공간을 입증해 주는 권능의 역사, 하나님의 뜻에 오직 예와 아멘으로 순종하는 영적 장수들이 필요하며, 선교 대상과 효율적,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기술, 도구)의 활용 및 후원에 필요한 재원이라 할 수 있다. 당회장님께서는 개척 이래 39년간 성결의 복음과 놀라운 권능으로 세계 도처의 무수한 영혼들을 깨우시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왔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현상과 관련 말씀해 주셨던 이스라엘 복음 회귀, EU의 설립, 남북한의 긴밀한 소통 등이 이루어졌다. 대성전 건축을 이루기 위해 변함없는 믿음으로 기도해오셨으며, 영적 장수들로 성도들을 연단하고 훈련해 오셨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55:11] 말씀하신 대로 예지예정하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과 섭리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노아의 때와 같은 마지막 때 죄악으로 관영된 이 세상의 수많은 영혼들을 깨우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는 물론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참자녀들로 이끄시기 위한 섭리도 변함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금도 당회장 직무대행 이수진 목사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성령의 감동함 속에 놀라운 권능의 역사가 따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늘 함께하시며 본 교회에 주신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변함없이 기대하고 계신 것이다.
말세에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 속에 깊은 영적 잠에 빠져있는 세상의 많은 영혼들을 바라보시며 눈물 짓고 계신 우리 주님의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우리에게 향하신 성령님의 음성이 심령에 메아리 친다.
우리는 어디를 향하는가?
인간경작을 계획하고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세계사에 획을 긋는 사건들을 허락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더욱 깨어있을 수 있도록 역사하신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창립 39주년 기념예배를 드리고 나면 성전 이전과 함께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이다.
만민의 역사에 또 하나의 획을 긋는 분기점이 될 것이다. 우리 가나안 회원들은 그 시간을 맞기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미래는 예측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말을 떠올려 본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씀대로 주어진 환경을 수동적으로 맞이하기보다는 새로운 환경에서 우리 가나안의 바람직한 모습은 무엇일까를 궁구하고 믿음으로 바라보며 그렇게 만들어가기 위해 기도하면서 준비해 나갈 때 실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올 여름에는 메타버스(metaverse) 가상공간에 전 세계 가나안 회원들이 모여 소통하고 교제하며 간증을 나누는 “가나안 선교센터”를 구축해 보면 어떨까?
* Hic et Nunc(힉 에트 눈크): 라틴어, 지금 이곳에(Now and Here)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