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뜨거운 햇살 받으며 제 살림을 이어가는 꽃과 열매
잇달아 태풍 오갑니다. 지난 주의 태풍은 별 탈 없이 조용히 지나갔지만, 지금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태풍만 두 차례가 더 있습니다. 별일 없이 지나가기를, 큰 바람 타고 이 무더위도 따라서 지나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구의 기후 변화가 심상치 않은 이 즈음의 태풍은 가을 초입에서도 찾아오는 경우가 있으니, 여전히 태풍을 맞이하는 마음 내려놓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입추 말복 모두 지났고, 백곡(百穀)이 익어가는 백중(百中)이 이번 주에 들어있습니다. 날씨 예보도 이번 주부터 찌는 듯한 무더위가 한풀 꺾인다고 하니, 이제 누구의 시(詩)처럼 기도하게 하는 계절, 가을을 가만히 채비해야 할 때입니다.
○ 상동도서관 《나무강좌》의 나무 이야기에 함께 하세요 ○
먼저 부천 상동도서관의 《나무강좌》 이야기부터 전합니다. 팔월 강좌에서는 우선 팔월에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이 땅의 대표적인 ‘명목(名木)’이라 부를 만한 대표적인 배롱나무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아울러 광복절을 앞두고 꼭 돌아보아야 할 우리의 큰 나무들도 살펴봅니다. 원래 이달의 강좌 계획에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나무〉이야기를 담기로 돼 있었는데, 이 내용은 BBC의 대표적인 다큐멘터리를 함께 시청하도록 영상을 편집했습니다. 매우 좋은 영상인데, 분량이 길어 30분 분량으로 편집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나무〉라는 주제에 꼭 맞춤한 빼어난 영상입니다. 팔월 강좌에서 준비한 내용이 많아 정해진 두 시간 안에 다 보여드리지 못할 듯합니다. 채 전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다음 구월 강좌로 이어가겠습니다. 늘 그랬듯이 많은 분들이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이제 오늘의 나무 이야기입니다. 팔월은 배롱나무와 무궁화와 같은 여름 꽃이 피어나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거개의 나무들이 한창 열매를 맺어가는 때입니다. 막 꼴을 갖춘 블루베리 열매는 안토시아닌 머금은 검푸른 빛을 그러모으는 중입니다. 맨 위의 사진과 바로 위의 사진에 담은 블루베리 열매는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블루베리 나무에 맺힌 열매입니다. 천리포수목원 큰연못과 작은연못 사이의 길섶에 서 있는 나무입니다. 열 그루 정도 되는 이 나무들은 설립자 민병갈 님의 향수를 달랠 수 있게 했던 고마운 나무입니다.
○ 마가목과 가시칠엽수도 열매를 무성히 피워올려 ○
마가목도 열매 맺기에 한창입니다. 지난 주말에 다녀온 백두대간수목원에서 만난 마가목의 열매입니다. 백두대간수목원은 산책로 초입에 가로수로 마가목을 줄지어 심어 키웁니다. 아직 큰 나무는 아니지만, 열매를 풍성하게 돋워올린 모습이 기특합니다. 이제 막 돋아난 앙증맞은 열매들은 좀 지나 ‘새빨간 우체통’만큼 빨갛게 익어가겠지요. 그리고 초록 잎 모두 진 겨울 되면 유난히 돋보이는 열매로 드러날 겁니다. 서양의 문헌에는 마가목 열매가 새들의 위장을 통과해야만 싹을 틔울 수 있다고 돼 있는데, 우리의 마가목과 관련한 기록에서는 그런 내용을 찾아볼 수 없어 아리송합니다. 좀더 알아봐야 할 이야기입니다.
가시가 선명하게 돋은 칠엽수 열매도 조롱조롱 솟아올랐습니다. 마로니에, 혹은 서양칠엽수라고도 부르는 유럽에서 들어온 나무입니다. 1920년대에 일본에서 들여와 우리나라 곳곳에서 많이 심어 키우는 칠엽수와 같은 종류이지만, 서로 다른 나무입니다. 칠엽수와 가시칠엽수는 생김새나 생육 상태 모두 꼭 닮았지만, 열매 모양에 따라 뚜렷하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열매 겉에 가시가 있으면 유럽에서 들어온 가시칠엽수이고, 가시가 없으면 칠엽수인 겁니다. 가시칠엽수 가운데에 가장 유명한 나무는 아무래도 프랑스의 마로니에 공원의 가로수이겠지만, 그밖에도 안네 프랑크의 일기에 나오는 나무도 가시칠엽수입니다. 안네 프랑크의 가시칠엽수는 오랫동안 잘 보존되었지만, 지난 2010년에 강풍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 물에서 자라서 물빛에 대조되는 붉은 빛으로 피어나 ○
이 여름에 유난히 눈에 띄는 꽃 가운데에 수생식물, 즉 수련 종류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저절로 물을 찾게 되는 이 계절에 물 속에서 자라 물빛에 대조되는 붉은 빛으로 피어나는 수련은 여름 가장 화려한 꽃 가운데 하나입니다. 최근에는 태국 호주 등 열대 지역에서 자라는 다양한 종류의 수련이 도입돼 수련 꽃 보는 재미가 큽니다. 흰 빛에서부터 분홍, 보라를 거쳐 새파란 빛깔까지 하나하나 찾아보는 즐거움은 이 여름 식물 관찰의 큰 즐거움입니다. 혹시라도 수조에 담아 전시한 수련을 만나게 돼 꽃송이에 코를 가까이 대고 향기를 맡기까지 한다면, 수련의 깊은 멋을 한껏 느낄 수 있어 더 좋습니다.
어리연꽃도 종류가 다양합니다. 우리의 어리연꽃은 하얀 꽃을 피우는데, 활짝 피었을 때 꽃송이의 지름이 대략 1센티미터 남짓밖에 안 될 만큼 작습니다. 그러나 노랑어리연꽃은 그보다 훨씬 큽니다. 꽃송이의 지름이 4센티미터 정도 될 만큼 크지요. 그래서 연못을 더 화려하게 하기 위해서 노랑어리연꽃을 더 많이 심어 키우는 편이지 싶습니다. 어리연꽃이나 노랑어리연꽃 모두 꽃잎 가장자리에 뽀솜한 털을 잔뜩 달고 있는데, 촘촘히 난 털은 사뿐한 날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리연꽃 종류 가운데에는 꽃잎 가장자리의 잔 털의 형태가 특별한 형태로 발달하는 종류도 있습니다. 연못에서 키우는 수생식물 가운데에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꽃입니다.
○ 튤립 진 자리에는 분홍 빛 나리 꽃이 한창 피어 ○
십 년 정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 해에 정식으로 개원한 백두대간수목원은 무엇보다 활기가 있어 좋습니다. 사실 식물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저절로 아름다워지는 게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만, 아시아 최대 규모라는 넓은 땅에 자리잡은 이 수목원은 식물 연구자들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으며, 수목원을 찾는 관람객들도 하루하루 달라지는 식물 풍경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지난 봄에 튤립이 자리잡고 있던 화단은 지금 나리 꽃으로 한창입니다. 어질머리가 일어날 만큼 화려한 꽃이 한데 모여 있어서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만,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고 서있으면 그 빛깔과 향기에 금세 빠져들 수밖에요.
꽃 한 가지 더 보여드리며 오늘의 《나무편지》는 마무리하겠습니다. ‘가우라 Gaura lindheimeri Engelm. & A.Gray ’라는 이름의 풀꽃입니다. 가우라 종류도 다양한데, 크게 흰 꽃을 피우는 종류와 분홍 꽃을 피우는 종류가 있습니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는 ‘가우라’를 추천명으로 권하고 있는데, ‘바늘꽃’이라고 많이 알려졌습니다. 또 꽃잎이 나비 날개를 닮았다 해서 흰 꽃을 피우는 종류를 백접초(白蝶草) 분홍 꽃을 피우는 종류를 홍접초(紅蝶草)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가늣한 줄기 위에 나비가 찾아든 것처럼 줄줄이 피어나는 꽃이 참 예쁜 꽃입니다.
햇살이 뜨거워 숲길을 걸으며 나무와 꽃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게 쉽지 않은 날들입니다. 몸 상하지 않도록 건강 잘 살피시면서 이 여름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곧 다가올 가을을 더 건강하게 맞이해야 하니까요.
- 뜨거운 여름 햇살에 맞춤하게 피어나는 꽃과 열매를 보며 8월 12일 아침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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