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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청 아카데미 通 靑 Academy | 408 회 | 주제: | 소크라테스의 무지(無知)의 지(知) | 발표자: | 이태호 (통청아카데미 원장/철학박사) | ||||
일시: | 2018. 10. 31.(수) pm 7:00~9:00 | 장소: 대구시립수성도서관 제1강좌실 | 문의 | 010-3928-286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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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청 아카데미 : 서로 소통하여 사고의 틀을 좋게 바꾸려고 하는 공부모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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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지(無知의 知)
1.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의 <무지의 지>
1)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어떤 책인가?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플라톤의 대화편』 중에서 유일하게 대화의 형식이 없는 책이다. 그리고 『플라톤의 대화편』중에서 초기 작품이며 재판과정에서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죄가 없음을 변론한 내용이 기록된 책이다.
2)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의 <무지의 지>
소크라테스는 델포이 신전의 신탁에서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사람은 없다.’라고 했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각 분야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당대의 가장 현명한 사람들을 만나서 확인을 하게 된다. 그들은 현명하지 못하면서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통해 그들의 무지함을 알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대화의 주제에 대해 그 사람들보다는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자신은 대화의 주제에 대해 거의 모른다는 것을 알고(무지의 지) 있지만 그들은 대화의 주제에 대해 모른다는 사실도 몰랐다. 때문에 신탁의 말이 옳다는 것을 느낀다. 나아가 자신이 사람들의 무지를 자각시킬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통해 자타가 인정하는 당대의 가장 현명하다고 지칭하는 사람들의 무지를 자각시키게 된다. 이들 중 상당수가 앙심을 품게 되었고, 이들이 여론을 주도하면서 소크라테스를 악인으로 몰고 가서 법정에까지 서게 만든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법정에 서게 된 이유는, 자신에게 무지를 자각당한 사람들이 자신을 모함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그리고 자신은 등애처럼 그런 일을 계속하는 것이 신탁을 받드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2. <무지의 지>의 의미
1) 무지(無知)라고 할 때 무엇을 모르는가?
어떤 것이든지 그 자체(본질, 실체, 정의)를 모르는 것이다. 특히 기초가 되는 용어는 더욱 모른다. 예를 들면 수학자에게 <수>, 물리학자에게 <물질>, 심리학자에게 <마음>이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그들은 전문가라서 잘 알 것 같은데 사실은 매우 곤혹스러워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용어들을 정확히 아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기 때문이다.
2) 우리는 얼마나 무지한가?
진리를 모르는 정도가 거의 봉사에 가깝다. 소크라테스는 동굴의 비유를 들고 그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시력을 잃은 사람의 눈 속에 시력을 넣어주겠다는 말을 한다. 동굴에 갇혀 있는 죄수들은 태양빛이 드는 입구의 반대방향으로 손발과 목이 묶여 있어서 그림자만 볼 수 있도록 벽면을 향해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림자를 실제의 사물로 여기고 있다. 즉 실재를 보지 못하고 있다.
3. 소크라테스 이외의 사람들에게서의 <무지의 지>
1) 불교(佛敎)의 여시아문(如是我聞)
불교의 경전은 대부분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는 의미인 여시아문으로 시작된다. 석가가 무엇이라고 말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석가의 말이 나에게 이렇게 들리더라는 것이다. 석가가 했는 말과 경전 결집을 하는 제자의 귀에 듣긴 말의 구분은 중요하다.
2) 공자(孔子)의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와 설산동자의 구도심
무지의 지는 자신이 봉사처럼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도록 한다. 그리고 그 무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생긴다. 이것이 구도의 자세로 나타난다. 공자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간절한 마음이나, 수행상태에 있었던 과거의 석가(釋迦)인 설산동자(雪山童子)가 귀신에게 자신의 몸을 던져 도를 구한 마음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4. <무지의 지>를 적용한 생활철학
1) 불행한 상황이라는 판단이 무지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현재 자신이 불행하다고 판단한다면 그 판단의 옳음을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옳음을 장담할 수 없다면 굳이 그렇게 판단할 필요가 없다. 나쁜 상황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상태로 충분히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전화위복(轉禍爲福)과 새옹지마(塞翁之馬) 등 같은 상황을 두고도 다양한 판단이 가능한데도 한 가지 상황판단으로 단정하는 것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2) 구도심이 일어나서 성인이나 현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바둑을 둘 때 객관적이고 물리적으로는 바둑돌이 동일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다음 수를 어떻게 둘 것인가의 가치판단에 들어가면 그 사람의 급수만큼 또 그 날의 컨디션에 따라 달리 보인다. 고수가 볼 때는 더 급하고 큰 곳이 있는데도 하수는 덜 급하고 작은 것에 매달린다. 그래서 보다 더 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급수를 높여가야 하고, 컨디션을 조정해야한다.
자신 앞에 놓여진 인생의 국면들도 바둑돌이 놓여 있는 상황과 동일하다. 그 상황을 어떻게 가치판단하고 대처해 가야 하는지는 자신의 인생급수만큼 그 날의 컨디션에 따라 결정된다. 자신의 삶이 소중하다면 인생의 고수들인 성인 현인들의 삶을 배우면서 자신의 급수를 높여가야 할 것이며, 국면마다 컨디션을 조절해서 신중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삶의 운영에 대해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아는 자로서의 태도이다. 즉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알 때 구도심이 일어나서 보다 높은 경지로 가려고 노력하게 된다.
< 다음 주 강의 예고 >
409회 (2018.11.14.): 사랑의 노래(망부가) 김성환(통청아카데미 연구원) 410회 (2018.11.21):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2) 이태호 (통청아카데미원장/철학박사) 411회 (2018.11.28): 노자 도덕경 24장 이태호 (통청아카데미원장/철학박사) 412회 (2018.12.05): 노자 도덕경 25장 이태호 (통청아카데미원장/철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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