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김유신의 전공이 거의 다 허위라면 그를 무어라 불러야 할까? 김유신은 지략과 용맹을 갖춘 명장이 아니라 음험하고 사나운 정치가다. 그는 평생의 공적을 전장에서 세운 사람이 아니라, 음모로 이웃나라를 어지럽힌 인물이었다. 그런 실례의 하나를 들고자 한다.
신라 부산현(夫山縣, 지금의 송도 부근인 듯) 현령인 조미곤이 포로가 되어 백제 좌평 임자(任子)의 가노가 되었다. 그는 충실하고 부지런히 임자를 섬겼다. 그러다 보니,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됐다. 조미곤은 몰래 신라로 도망가 김유신에게 백제의 사정을 보고했다. 김유신은 “임자는 백제왕이 총애하는 대신이라고 하니, 나의 뜻을 그에게 전해라. 그가 신라의 쓰임을 받도록 한다면 너의 공이 누구보다 클 것이다. 네가 위험을 무릅쓰고 나의 말대로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조미곤은 “생사를 가리지 않고 명령대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조미곤은 김유신의 밀명을 받고 다시 백제에 들어갔다. 그는 임자에게 “이 나라의 백성이 되어 나라의 풍속도 모르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인지라, 미처 여쭙지도 못하고 여행을 갔다 돌아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임자는 그의 말을 곧이듣고 의심하지 않았다. 조미곤은 이 틈을 타서 임자에게 “실은 고향이 그리워서 신라에 갔다 왔습니다. 여행했다는 것은 임시방편으로 꾸며낸 말이옵니다. 신라에 가서 김유신을 만났습니다. 그는 어른에게 ‘백제와 신라가 원수가 되어 전쟁을 그치지 않고 있으니, 양국 중에서 한 나라는 필시 망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둘 중 한 사람은 부귀를 잃고 포로가 될 것이다. 나는 우리 두 사람이 약속을 해서, 신라가 망하면 유신이 공의 도움으로 백제에서 벼슬하고, 백제가 망하면 공이 유신의 도움으로 신라에서 벼슬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면 어느 나라가 망하든지 간에 우리 두 사람은 부귀를 지킬 것 아니냐?’라는 말을 전하라고 했습니다”라고 고했다.
임자는 잠자코 말이 없었다. 조미곤은 황공한 낯빛으로 물러났다. 며칠 후, 임자가 조미곤을 불러 그 일을 되물었다. 조미곤은 김유신의 말을 되풀이한 뒤 “국가는 꽃과 같고 인생은 나비와 같습니다. 만일 이 꽃이 진 뒤에 저 꽃이 핀다면, 이 꽃에서 놀던 나비는 저 꽃으로 옮겨 가서 사시사철 항상 봄처럼 놀지 않겠습니까. 꽃을 위해 절개를 지키려고 부귀를 버리고 몸을 굽힐 필요가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임자는 원래 부귀에 정신이 빠진 범부였다. 이 말을 달콤하게 여긴 그는 조미곤을 보내 김유신의 말에 동의를 표시했다.
이에 김유신은 임자를 더욱 더 끌어들이기 위해 “일국의 대권을 홀로 장악하지 못한다면, 무슨 부귀의 위세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듣자 하니, 백제에서는 성충이 왕의 총애를 받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은 다 시행되지만, 공은 그저 그 밑에서 한가롭게 지낸다 합니다. 이거야말로 치욕이 아닙니까?”라는 말을 전했다. 그러고는 임자를 백방으로 유혹해서, 부여성충을 참소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요녀 금화(錦花)를 임자에게 추천해서 백제 왕궁에 들이도록 하고, 부여성충 이하의 어진 신하들을 살해 혹은 축출하도록 했다. 이렇게 그는 백제를 이용해서 백제를 망치도록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