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개의 향연(2)
고훈식
그러니까 어제, 개의 교미에 관하여 더 써야 할 내용이 넘쳐 나고 있기에 글을 마무리하려고 알람시계에 잠결을 붙들어 매고 새벽에 일어났다.
그 개가 사는 앞집 옥상을 엿보기 위하여 다시 창문을 가만히 열었다.
창 밖은 아직도 어둠이 흐르고 있어서 사물의 분간이 어렵지만 희끄무레한 새벽 기운으로 오늘도 날씨는 쾌청인 듯하다. 하루에 한 번 새벽은 오니까 차분하게 기다려야지.
어릴 적 동네 개구쟁이들과 여름날 바닷가에서 놀다 보면 신나는 일이 생길 때도 있었다.
남녀 한 쌍이 바닷가 바위에 나란히 앉아서 밀어를 속삭이면서 서로의 손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하면 우리들은 낮은 자세로 살금살금 바위 뒤로 다가가서는 호흡의 절반은 죽이고, 그 다음 동작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또 그 쪽에서 발생하는 소리 한 올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 나팔을 만들고는 조금 전보다는 훨씬 가깝게 붙어 있는 남녀의 움직임에도 눈길을 고정시켰던 얼굴 발그레한 추억이 떠오른다.
그 때의 기분은 어딘가 간지러운 호기심 천국이었지만 지금은 분명히 발끝까지 짜릿한 관음증의 몰입 준비 과정이다.
참으로 세상사는 일은 앞일을 모르는 거다.
저 개가 나로 하여금 수필을 쓰게 할 줄이야. 이건 말도 안 되는 말이다.
지난 초여름부터 밤마다 앞집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었다.
갓 변성기가 지난 듯한 개 목소리라서 듣기에 얼마나 짜증이 나는지 어떤 날은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심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인디언이 쏜 화살을 앞다리에 맞고는 식구들을 불러내는 늑대처럼 밤마다 흐느끼는 비명 비슷한 소리를 들어야 했으니, 그렇지 않아도 감성이 풍부한 내가 오죽이나 불면의 밤이 길었으랴!
정말로 무식한 동네에 사는구나! 이를 갈면서 침대 발목을 부여잡고 한탄했었지.
세상에, 개를 옥상에서 키우는 법이 어디 있나, 집안이 폭삭 망한다는데…….
그 때의 그 개가 저 개인데 저 개를 내가 날이 새길 목마르게 기다려 귀와 볼이 알싸한 초겨울 새벽 창가에 얼쩡거리고 있으니 나도 한심하구나.
개의 교미가 왜 이토록 나의 구미를 당기는가?
갈기를 휘날리며 날뛰는 말의 교미가 훨씬 야성미가 철철 넘칠 터인데 개의 교미가 은밀하면서도 확실하게 낯 뜨거워지는 감정은 인간과 가장 친한 동물이기 때문일까?
드디어 앞이 보인다. 앞집 옥상이 보인다. 그 개가 보인다.
그런데 개 형상으로 만들어 놓은 조각처럼 네 발을 딛고 오래도록 서 있다.
아마도 무슨 기 수련을 하는 자세인 듯하다.
자세히 보니까 개 줄이 길게 놓여 있었다. 어제도 개 줄에 묶인 채로 교미를 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또 한 마리 개가 와 주어야 할 텐데……. 오긴 올까?
언제 올까? 기다리자. 되도록 많이 기다리자.
기다려서 이루어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이냐, 낚시, 적금, 사랑, 소멸, 그리고 흐르는 세월도 기다림 속에 만나지는 것 아니더냐.
드디어 왔다. 또 한 마리 개가 일층 계단을 밟고 거뜬히 올라왔다.
어느 것이 암놈이고 수놈인지 알 수 없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이 대목에서는 되도록 냉정해야 한다. 주변 상황도 잘 살피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당한 사유로 변명할 알리바이도 만들어 놓고 있어야 한다. 인격이 의심받지 않도록 말이지.
킁킁 코를 갖다 댄다. 사실 킁킁, 이라는 소리는 없다.
여기서는 자세히 보이지 않기 때문에 ‘코를 벌름거리면서 다가서고 있다’라고 표현함도 어색하다. 아무튼 냄새를 맡고 있음이 분명하다.
코에 익은 냄새가 이 냄새가 맞는지 서로 확인하는 동작들이 내 코를 벌름거리게 하는 것 같다. 서로의 움직임이 은밀하고 간결하다. 나란히 서서 한 곳을 바라보다가 한 놈이 꼬리 뒤로 가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데도 한 놈은 빈 밥그릇을 혀로 핥는지 밥그릇이 뒤뚱거리는 것이 보인다. 착시 현상인가?
서서히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몇 분 동안 가볍게 준비 운동을 하더니 드디어 끈에 목이 묶여 있는 놈이 척하니 앞발을 앞에서 멀쩡하게 알짱거리는 개의 등허리에다가 올려놓고 말았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당당하고 화끈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독자들도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인데 어느 정도 품위를 유지해야 좋을지 갈등이 생긴다.
이 갈등을 매끄럽게 해소하기 위하여 무슨 말을 덧붙여야 될까.
누구라도 길을 걷다가 전혀 뜻밖의 일로 돈을 줍거나, 발목이 삐거나, 혹은 교통사고가 발생한 현장에 있을 수도 있고, 만원 버스에서 소매치기하는 장면을 목격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신들린 무당이 몸을 떨면서 굿을 하듯, 감동의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하여 글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자살 충동에 빠져 버리는 문인의 성격상 더욱 그러할 진데 이런 상황도 솔직히 공개하는 것이 더 인간적이 아닐까?
아무튼 나는 오늘 새벽에 일어난 보람으로 결합하는 장면을 확인하고 말았다.
오른쪽 주먹을 불끈 쥐고 응원의 신호를 음흉한 미소에 띄워 보냈다.
그 사이 날아가던 참새 떼가 잠시 머물면서 무엇인가 쪼아 먹고 다시 날아간다.
나는 제 1편 때의 감정 비슷한 상태로 조심스럽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이 적나라한 광경을 목격하고 있는지를, 있다면 더불어 현장에 함께 있으므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만약에 변명할 경우가 생기면 군중심리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도 즐겨 보더라고 우길 수 있으니까.
내심으로는 혼자만 보고 싶은 장면이긴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공유할 줄도 알아야 만약의 사태에서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가 있다.
뜰 앞의 감나무 잎이 붉게 물들어 있다. 그것은 단풍이다.
아직 나뭇가지에 붙어 있으므로 낙엽은 아니다. 그렇지만 벌레가 갉아먹지 않고 며칠 견디다가 떨어지면 그냥 낙엽이 되리라.
낙엽을 ‘봄의 씨앗을 덮는 이불’이라고 말하면 훨씬 멋이야 있겠지만 ‘인생은 길 잃은 낙엽’이라고 하면 입맛이 쓰겠지.
수필이라고 하는 문체가 ‘붓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라지만 내가 예상한 방향과는 다르게 쓰여 지고 있음도 고백한다.
개들의 교미에 관한 광경을 통하여 짜릿한 표현을 억제하면서, 혹은 마음을 덧칠하면서 은밀하게 본 것을 그럴싸하게 전하여 실제 상황보다 더 실감하도록 중요한 동작만 자세하게 옮겨다 놓으면 될 것을 애써 횡설수설함을 저 개들은 이해할 수 없으리라.
내가 마른침을 삼키며 글감을 더듬는 동안 개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결합이 분리되었다. 출근해야 할 시간이 임박했으므로 못 다한 말은 제 3편에서 하리라.
첫댓글 헤헤.묶인 개가 암 놈 것 같은 확실한 예감이 듭니다..99.9%...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