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마지막 날인 7월 28일 일요일. 아침에 가기로 계획되었던 금수산 등반은 비 날씨 때문에 취소되었다. 첫날 옥순봉 등산과 이튿날 소백산 등반이 조금 힘들었던지 아침에 비가 조금씩 내리자 모두 포기하는 눈치다. 7시반에 식사를 하면서 8시에 출발하여 청풍호 모노레일로 비봉산이나 오르고 나머지 시간, 단양8경이나 천천히 돌아보고 가자는 제안에 모두 동의했다.
그러나 모노레일 현장에 가보니, 예약제로 되어 있어, 2~3명 자투리 자리는 있는데 단체는 안 된다고 한다. 하여 대안으로 제시된 게 제천 청풍호 자드락길인 정방사길로 금수산 정방사를 다녀오자는 의견이었다. 제주 올레길 이후 여러 지자체마다 경쟁하듯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길 걷기 코스들이 있는데, 이곳도 바로 그런 곳이 하나다.
절이 있는 곳이 금수산 자락이며, 정방사 이름에도 금수산이 등장하니, 금수산 오르는 기분으로 다녀오자며 웃었다. 청풍 호반도로를 달리다 능강교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곡 골목으로 접어드니, 오른쪽은 얼음골 생태길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정방사길이다. 일요일을 맞아 벌써 계곡 물속에는 성급한 아이들이 들어가 있고, 피서객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이어진 숲길로 비스듬히 올라간다. 우거진 숲은 소나무를 비롯해서 신갈나무, 쪽동백, 가죽나무, 붉나무 같은 것들이 줄을 잇고, 냇물 흐르는 소리를 따라 2km 산길을 오르다보니 천년고찰 정방사의 독경소리가 울려온다. 해발 1,016m의 금수산 자락 신선봉 능선이다.
물소리가 그치고 독경소리를 따라 소라고둥처럼 돌며 높은 고개로 걸어 올라 가노라면, 일주문도 없이 조그만 바위 사이로 경내로 통하는 길이 있다. 커다란 절벽을 등에 지고 지어진 이 절은 암자 같지만, 신라 문무왕 2년(662)에 의상대사가 세운 절로 대한불교 조계종 속리산 법주사의 말사이면서 기도처로 유명하다. 들어가기 전에 속세에서 담고 온 구정물을 버리려고 해우소 남자 버리는 곳에 가서 밖을 바라본즉, 앞에 있는 봉우리가 안개로 덮이려 하고 있어 얼른 카메라에 담았다.
때맞춰 피어 있는 참나리꽃의 영접을 받으며 오른편 종각 옆에 가서 우의와 배낭을 벗고 창건 연기 설화를 읽어 본다.
‘…신라시대 의상대사의 문하에는 여러 제자가 있었다. 그 중 정원(淨園)이라는 제자가 10여 년 동안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며 공부를 하여 세상사가 모두 무상(無常)함을 깨닫고 부처님의 법을 널리 펴고자 스승을 찾았다. 수소문 끝에 설법할 장소를 묻자, 의상대사는 너의 원이라면 이 지팡이를 따라가다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지어 불법을 홍포하여라. 산밑 마을 윤씨 댁을 찾으면 너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정원이 고개를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니, 스승이 던진 지팡이가 남쪽으로 날아간다. 지팡이를 따라왔더니 멈추는 곳이 바로 이 자리였다. 정원이 마을의 윤씨를 찾으니, 어제 밤 의상대사가 구름을 타고 와서, 한 스님이 도움을 청할 테니 도와주라는 이야기를 하고 구름을 타고 가더란다. 이러한 인연으로 창건된 사찰은 정원 스님의 ‘정(淨)’자와 아름다운 산세를 지녔다는 뜻의 ‘방(芳)’을 합쳐 정방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주변경관이 빼어나고 특히 법당 앞에서 바라다 보이는 청풍호는 누가 봐도 감탄을 금치 못한다. 계단을 몇 개 올라 요사채 옆으로 난 길로 가서 먼저 석간수를 떠 벌컥벌컥 마시고 원통보전이라는 현판이 붙은 대웅전 뒤로 풍경소리를 들으며 나아가니, 관음보살상이 은은한 미소로 청풍호를 내려다보고 있다. 법당과 칠성각 유운당, 석조관음보살입상과 석조지장보살상, 산신각, 종각 등 모두가 좁은 자리를 지혜롭게 차지하고 앉아 자연과 어울렸다.
♧ 법당 주련(柱聯)의 글
高無高天還返底 높음이 하늘보다 더 높은 것 없으나 도리어 밑으로 돌아가고 淡無淡水深還墨 맑음이 담수보다 더 맑은 것 없으나 깊으니 도리어 검도다 僧居佛地少無慾 스님은 불국정토에 있으니 조금도 욕심이 없고 客入仙源老不悲 길손이 신선이 사는 곳에 들어오니 늙음 또한 슬프지 않구나.
♧ 유운당(留雲堂) 주련의 글
山中何所有 산중에는 무엇이 있을까 嶺上多白雲 산마루 흰 구름 많이 머물러 있구나 只可自怡悅 다만 나 홀로 즐길 수 있을 뿐 不堪持寄君 그대에게까지 바칠 수가 없구나.
사진을 찍고 자연을 음미하며 걸어 나오는데, 곳곳에 쌓아 놓은 작은 돌멩이 무더기가 시선을 끈다. 어느 것인들 공든 탑이 아니랴 싶어 이것저것 눈길을 주는데, 들머리 풀 속에 살짝 숨어 졸고 있는 동자승을 만났다. 천진난만한 그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나저나 올라올 때 1회용 비닐우의를 입었기 때문에 땀에 흠뻑 젖었던 옷이 이제는 너무 시원하게 느껴진다. 다만 좁은 길을 비집고 오르내리는 신도들의 차가 성가시다. 사람들이 걷는 곳으로 내놓았으면 조금 삼갈 일이지 만날 때마다 길섶으로 바짝 붙는 꼴을 보며 저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이제야 올라가는 사람, 또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먹자판을 벌이는 사람들도 있다. 벌써 계곡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코를 진동한다.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 아아, 못 오른 금수산(錦繡山)
금수산은 충청북도 단양군 적성면과 제천시에 걸쳐 있는 높이 1,016m의 산이다. 퇴계 이황 선생이 단양군수를 지낼 때 산의 자태가 너무도 곱고 아름다워 마치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다.’고 하여 고쳐 부른 것이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상리마을을 기점으로 오르는 코스에는 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얼음골과 장마나 가뭄에도 그치지 않은 샘이 있어 찾는 사람들에게 신비로움과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정상에서는 낮게 누운 산의 능선들과 충주호의 푸른 물이 어우러져 글자 그대로 비단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하늘이 막는 것은 다음에 오라는 것이니,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 바람 목소리 - 김영자
아침 강가에서 바람을 만났습니다. 그 강가에서 혼자 일어서는 바람 새 한 마리를 만나 강가를 함께 선회합니다. 그 흰 새의 날개 속에서 정방사의 새벽 풍경 소리 흩어지며 바람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풀꽃들은 잎사귀를 흔들며 구름을 봅니다. 구름 속에서 바람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천삼백 년 전 하늘을 날던 의상대사의 지팡이 내 어깨를 건드리고 지금 이곳 능강리 하늘에서 또 한 번 구름을 탑니다.
○ 천수경 - 삼보사(三寶寺)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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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김창집
첫댓글 멋드러진 곳 댕겨오셨군요.
글과 사진 너무 보배스럽습니다.
아 금수산.
더운날씨에 잘 다니셨네요 !공유만끽 *&^%$# 감사~~
금수산 정방사의 어느 스님의 독경 소리가 낭낭합니다.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