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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해우(海隅)
2010년 11월 20일 토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01120토] 교육개편 조급하게 추진하면 실패한다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가 초ㆍ중ㆍ고 교육과정 개편안을 마련했다. 골자는 인접 교과목과 문ㆍ이과 간 장벽 제거를 통한 융합교육 강화, 현행 주입식 교육을 실생활ㆍ현장 중심의 실용교육으로 내실화, 문법 위주 언어교육을 글쓰기와 말하기 중심교육으로 전환 등이다. 개편안은 교육과학기술부와의 세부 조율과정을 거쳐 교육현장에 반영된다. 한마디로 오랫동안 당연시돼온 기존 교육의 틀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내용이다.
융합교육은 학문 연구의 세계적 추세로 보거나, 특히 지식과 사고의 기초를 길러야 하는 초ㆍ중등교육의 목적으로 보아 합당한 방향이다. 주입식 교육 개선과 학습부담의 경감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의가 없다. 자문위가 개편안 마련을 앞두고 지난해 학부모와 교원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70% 이상이 현행 교육과정의 대대적 개편을 요구했다.
항상 그렇듯 문제는 구체적 추진과정이다. 말은 쉽지만 바꿔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융합교육이 가능한 교원인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초기 이행 과정에서 또 한 차례 사교육 광풍을 초래할 것은 불문가지다. 어떤 경우에도 공교육이 감당치 못하는 교육개편은 금물이다. 사범대ㆍ교육대 교육과정을 개편해야 하고, 기존 교사들에 대한 재교육도 병행돼야 한다. 담당 분야가 축소되거나 불필요해진 교원들의 반대를 어떻게 설득할지도 숙고해야 한다. 교사들의 적극적인 협조, 참여가 전제되지 않은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 대입제도 또한 개편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이다. 역시 대학과 충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대목이다.
주입식 교육 개선과 학습부담 경감은 더욱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기존 교육을 무조건 부정하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주입식 교육은 일정 부분 부인치 못할 교육기능이 있는 데다, 다소 많은 학습량도 다른 국가들이 부러워하는 우리국민의 높은 질과 국가경쟁력 제고에 기여한 바 크다는 엄연한 사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정밀하게 연구하고 현실여건을 충분히 갖춰가면서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식으로 추진하기를 주문한다. 교육에서 최악은 조급한 성과주의다.
[한겨레신문 사설-20101120토] 실업·구직자 아우르는 노조 즉각 허용해야
서울행정법원이 그제 실업자나 구직자도 노조원으로 활동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세대별 노조인 청년유니온이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제기한 ‘노조설립 반려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나온 결정이다. 너무나 당연한 판단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고 있다. 노동부는 법정 다툼을 이어가며 시간을 끌지 말고 당장 청년유니온을 노조로 인정해야 한다.
청년유니온은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를 개인이 아니라 조직 차원에서 대응하려고 모인 노조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거나, 일자리를 얻어도 불안하기 짝이 없는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하는 현실을 직접 바꾸자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지난 3월과 4월 노동부에 노조설립신고서를 냈으나 ‘조합원 가운데 재직 근로자가 아닌 자가 다수’라는 이유 등으로 거듭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핵심 쟁점인 조합원 자격 문제에 대해 청년유니온 쪽 손을 들어줬다. 노동부의 보완 요구에 청년유니온이 응하지 않은 만큼 설립신고 반려 자체는 적법하다고 판결했지만, 이는 부수적인 문제다. 노동부가 의지만 있다면 설립신고서 보완을 통해 노조설립 필증을 내줄 수 있다. 기술적인 문제야 청년유니온과 협의해서 처리하면 될 일이다. 계속 실업자나 구직자의 노조원 자격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건 명분도, 실리도 없다.
전례도 있다. 대법원은 2004년 서울여성노조가 낸 소송에서 실업자나 구직자한테도 노동3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지난달에는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구직 의사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라고 노동부에 촉구했다. 유엔과 국제노동기구의 기준이나 외국 사례를 봐도 실업·구직자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게 옳다.
이들의 권리를 인정한다고 해서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도리어 정부의 행정력이 잘 미치지 않는 불안정 노동 시장의 문제들을 개선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청년유니온은 지금도 최저임금이나 최소 노동조건이 지켜지지 않는 아르바이트 등의 권리 보장 운동을 벌이고 있다. 정부가 책임질 일을 대신 하는 단체를 지원하지는 못할망정 방해하려 해선 안 된다. 아르바이트, 임시·일용직 등이 법정 최저 수준 임금도 보장받지 못한 채 착취당하는 현실을 계속 외면하겠다는 것인가. 정부의 태도 변화를 거듭 촉구한다.
[조선일보 사설-20101120토] 불량품 武器 제조업자에게도 '전관예우'하나
'물에 뜨는 장갑차'라던 K-21 장갑차가 지난 7월 호수로 들어갔다가 침수(浸水)돼 가라앉아 조종 부사관이 사망한 사고는 설계 결함 때문이라고 군 합동조사단이 19일 밝혔다. 설계할 때 전투 병력이 탑승하지 않은 상황을 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장갑차 앞쪽의 부력(浮力)이 부족해 뒤에 병력이 다 타지 않으면 차체가 앞으로 기울면서 가라앉는다는 설명이다.
수륙(水陸)양용 장갑차 같은 첨단 군사 장비는 다양한 전투 상황과 험한 환경에서도 끄떡없이 견디도록 설계돼야 한다. 병력을 태우지 않은 채 기동(機動)하는 상황을 상정하지 못하고 설계했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K-21 장갑차는 개발 후에도 12명의 병력을 가득 태운 상황에서만 20여 차례 운용 시험을 했을 뿐이라고 한다.
미래형 소총이라며 자랑하던 K-11 소총은 불량률이 47.5%로 지난달 일선 보급을 중단했다. 최신예 고속함은 '갈지(之)자' 운항으로 실전 배치조차 못했다. 8년 연구 끝에 개발했다는 신형 전투화는 물이 새는 불량품이었다.
군은 불량 무기가 나올 때마다 실상을 소상히 밝히지 않고 덮고 넘어가려고만 한다. 지난해 말 국방과학연구소 다락대시험장 폭발 사고도 고성능 폭탄 제조사 책임이라는 결론을 내리고도 제조업체에 책임을 묻지 않았다. 국방부는 K-21 장갑차 사고도 "개발이 2007년에 끝난 사업이라서 징계시효 2년이 넘어 징계는 못하고 엄중 경고를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막대한 국민 세금을 들여 개발한 첨단 무기가 가라앉고 깨지고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걸음을 하는데도 누구 한 명 처벌하지 못한다면 부실 제품은 계속 나올 것이다.
K-21 장갑차 생산업체에는 소령 이상의 전역 군인이 18명 근무한다고 한다. 퇴직한 군 출신들이 방산업체로 들어가 후배 장교들에게 무기 개발·생산과 관련한 계약·검수 과정에 전관예우(前官禮遇)가 작용한 것은 아닌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군 수사기관·조사기관의 능력이 낮아 어렵다면 다른 방도도 찾아야 한다. 무기 개발에 민간 기업의 노하우를 접목시키면서 경쟁 시스템도 함께 도입할 때다.
[서울신문 사설-20101120토] 외규장각 도서 반환 약속 반드시 지켜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 중인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에 빨간 불이 켜졌다. 이 도서관 사서 10여명이 그제 외규장각 도서 대여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내며 반발했다고 한다. 이들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문화재 맞교환 방식을 주장해온 문화부와 국립도서관의 반대를 무시하고 무모한 결정을 내렸다.”고 비난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반환이나 다름없이 이 도서를 한국에 돌려줌으로써 결국 세계 각국으로부터 문화재 반환 요구가 쏟아질 것이 우려된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일부 진보신문에서도 ‘성급한 약속’이라고 거들고 나섰다고 한다.
남의 나라에서 소중한 문화유산을 약탈해 간 자신들의 원죄를 참회하기는커녕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이들에게서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지성과 철학을 찾아보기 어렵다. 소중한 자료를 연구하고 관리하는 지식인이라면 명분 없이 반대의 목소리를 낼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환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특히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난 12일 서울에서 가진 한·프랑스 정상회담에서 “외규장각 도서를 국내법 절차에 따라 5년마다 갱신대여 방식으로 돌려주겠다.”고 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불법적으로 약탈한 문화재를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일부의 반대 움직임이 있다고 해서 지난 1993년 미테랑 전 대통령처럼 반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면 안 된다. 우리로서는 사실 외규장각 도서가 영구반환이 아닌 대여 방식으로 돌아오는 것도 못마땅한데 그마저도 걸고 넘어지는 것을 보니 참으로 유감스럽다. 프랑스 정부는 하루속히 후속 협상 절차를 밟아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 이미 법률적 검토 과정을 거쳐 결단을 내린 만큼 사서들의 반대가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우리 정부도 외규장각 도서가 무사히 국내에 들어오도록 계속 프랑스 정부를 설득하고 압박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01120토] 자동차보험제도 개선 땜질 처방은 안된다
정부가 잇따른 자동차 보험료 인상을 계기로 과잉 수리를 막고 보험사들의 경영합리화를 유도하기 위한 자동차보험 제도 개선안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보험사들은 지난 9월 정비수가 인상을 이유로 보험료를 4% 올렸고 온라인 보험사들은 10월 2~3%를 추가 인상함으로써 가입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보험사들은 높은 사고율과 과잉 수리에 따른 손해율(보험료 대비 보험금 지급비율) 악화로 자동차보험 영업 부문의 적자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상반된 주장 속에서 사고를 내지 않는 선량한 가입자만 보험료 인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전면적인 제도 개편은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됐다.
최근 손해율이 높아진 것은 보험료 할증 기준금액(보험으로 처리해도 보험료가 인상되지 않는 기준)이 올해부터 5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높아진 게 큰 이유 중의 하나다. 지난 4~7월 할증 기준을 200만원으로 선택한 운전자의 손해율은 87.9%로 50만원을 선택한 운전자보다 5%포인트 이상 높았다. 일부 정비업소에선 190만원짜리 상품을 내걸고 과잉 수리를 조장하고 있으니 보험금 지출이 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요인들이 겹쳐 지난 4~10월 손해율은 79.6%로 5년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보험사들은 예상 손해율을 72%로 잡고 보험료를 산출하는데 손해율이 이를 웃돈다면 보험료를 인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수리 금액의 일정 비율을 가입자가 부담토록 하는 정률제를 도입함으로써 과잉 수리 유혹을 막겠다고 한다.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무엇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중 최고로 치솟은 사고율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범 정부적 대책이 시급하다.
지금처럼 운전 중 휴대폰 통화와 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 시청이 일상화돼 있고 교통사고에 대한 범칙금이 가벼운 데다 빈번한 사면(赦免)과 음주 운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을 그대로 둔 채 사고를 줄인다는 것은 연목구어일 뿐이다. 위장사고,사고금액 부풀리기,아픈 척하는 '나이롱 환자'에 대한 처벌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보험금을 더 많이 타내려는 악덕 운전자와 병원 · 정비업소 · 설계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근절되지 않는 한 보험료 인상 공방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보험사들도 대리점 등 모집 조직에 지급하는 수수료와 영업성 경비 등 판매비를 과도하게 지출하지 못하도록 감독 당국이 통제해야 한다. 보험금 누수를 최소화하기 위한 보험사들의 노력도 절실하다. 보험료는 서민 생활안정과 물가에 직결되는 공공 요금의 성격을 띠고 있다. 땜질식 처방으로는 소비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어렵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01120토] 외국자본 규제 유연한 운용이 중요
투기성 외국자본에 대한 과세방안이 확정됨에 따라 외자의 단기 유출입에 따른 부작용을 완화할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 정부는 내년부터 외국인 채권투자 비과세를 폐지하고 이자소득에 대한 원천징수와 함께 탄력세율(0~14%)을 적용하기로 했다. 지난 6월 선물환포지션 등 자본 유출입에 대한 1단계 규제에 이어 추가 규제의 윤곽이 드러난 것이다. 이번 조치로 외국법인ㆍ비거주자의 채권투자에 대해 이자소득의 14%와 양도소득세 20%의 원천징수 면제 혜택이 없어지게 됐다. 핫머니의 유출입에 따른 금융불안을 차단할 수 있는 보호막이 강화된 셈이다.
우리처럼 외국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경우 외자규제는 부작용도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미국의 2차 양적완화 조치 이후 국제적으로 단기 투기자금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대책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평가된다. 브라질ㆍ중국ㆍ태국 등 외자 유출입이 크고 이로 인한 금융불안 가능성이 높은 신흥국들을 중심으로 핫머니 유입에 따른 자산버블ㆍ물가앙등 등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우리의 경우 두 차례의 외환위기를 통해 단기 투기성 자금의 위험성을 뼈저리게 겪은 바 있다. 우리가 절감한 교훈은 경제의 펀더멘털이 아무리 좋아도 외국 투기자금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국가부도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당시 위기 때와 달리 지금은 유동성 과잉이 문제되고 있지만 위기 가능성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지난해 이후 외국인 투자자금이 대거 유입되면서 지난해 7조원 수준이던 국채의 순투자 규모가 올해는 20조원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문제는 이 돈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언제든지 외환위기에 내몰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사태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상황을 봐가며 핫머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채권투자에 대한 과세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탄력세율을 적용하기로 한 것은 외자 유입규모나 속도를 감안해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같은 탄력세제로는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게 시장의 반응이다. 핫머니의 위험성이 커질 경우 선물환포지션 한도를 더 축소하는 방안을 비롯해 은행부과금은 물론 다양한 금융거래세 도입 등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오늘과내일/육정수(논설위원)-20101120토] 한 번 판사는 영원한 판사?
우리나라 판사들은 한번 임용되면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한 ‘평생 판사’나 마찬가지다. 대법원장이나 소속 법원장이 재판능력과 자질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도 쉽게 사퇴시키지 못한다. 뇌물 비리를 저질러도 의원면직 형식으로 법복만 벗기는 게 상례다. 그러니 변호사 개업을 해서 전관예우를 받으며 큰돈을 버는 ‘인생역전’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뜻과 헌법 정신에 어긋남은 말할 것도 없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제외한 일반 판사의 임기는 헌법상 10년이다. 따라서 판사는 10년에 한 번씩 반드시 재임용(연임)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정년 63세까지 자동적으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刑) 선고에 의하지 않고는 파면되지 않으며…’라는 헌법의 신분보장 장치가 판사직을 평생직업으로 선언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재임용 절차를 정한 별도의 법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헌법 제105조의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연임할 수 있다’는 조항에 어긋나는 것이다. 10년마다 한 번씩 부적격 판사를 걸러내라는 헌법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는 정치적 배경에 의한 재임용 탈락이 상당수 있었다. 그 반작용인지 민주화 이후에는 판사가 재임용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이런 현상은 결코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법정에서 보면 부적격 판사들이 엄연히 있는데도 재임용 탈락이 없다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뜻과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 최근 경력 10년 안팎의 일부 단독판사를 중심으로 반(反)사회적 돌출 판결이 잇따르는 것은 유명무실한 재임용 제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과 가치를 훼손하는 정치적 이념적 편향 판결, 정의와 불의를 뒤바꾸는 불공정 판결에 대한 국민의 경계심과 불신감이 높아지고 있다.
전관예우의 악습과 막말재판 같은 안하무인(眼下無人)의 재판진행 사례도 끊임없이 도마에 오른다.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루어 조진다’는 말이 있듯이 늑장재판으로 당사자들에게 시간과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는 폐해도 남아 있다. 뒤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닐 수 있다.
일부 판사들의 일탈을 두고만 볼 수 없다는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대한변호사협회가 내년 2월 재임용 대상이 되는 판사 180명에 대한 평가 작업에 나섰다. 2년 전부터 서울지방변호사회 등 몇몇 지역 변호사단체가 판사 평가를 시작했지만 재임용 대상 판사에 대한 평가는 처음이다. 2001년 2월 신규 임용된 139명과 1991년 2월 신규 임용돼 2001년 한 차례 재임용을 거친 41명을 대상으로 한다. 10년 경력 판사들은 대개 단독판사나 고등법원 배석판사로 있고, 20년 경력 판사들은 고법 또는 지법 부장판사, 지원장 등으로 재직 중이다.
변협 설문지는 공정성 청렴성 성실성 전문성 적정성 도덕성을 종합 평가해 재임용의 가부(可否)를 묻고 있다. 다음 달 그 결과가 나오면 대법원에 전달해 내년 2월 재임용 심사 때 반영토록 할 예정이다. 대법원은 내부규칙에 따라 판사들에 대한 근무평정을 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는지, 기준은 뭔지, 평상시 인사와 재임용 때 어떻게 반영되는지 알려진 게 없다. 대법원장과 법원장들이 독단적으로 운영해도 사실상 견제 방법이 없다.
변호사들만큼 판사들의 재판능력이나 재판태도를 잘 알고 있는 집단은 없다. 변호사들이 판사 재임용 과정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개인감정의 표출이 아닌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가 담보돼야 의미가 있다. 김평우 대한변협 회장은 “조속히 법관재임용절차법을 만들고 미국처럼 변호사들에 의한 판사 평가를 제도화해야 국민주권 이념에 맞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칼럼-분수대/송원섭(JES 선임기자)-20101120토] 귀순 용사
1983년 5월 5일, 어린이날 오후 2시. 느닷없이 방공 사이렌이 울렸다. 워낙 잦은 민방위훈련에 익숙해 있던 시민들은 대부분 그러려니 했지만 이 상황은 훈련이 아니었다. ‘중공 민항기’가 무장 괴한들에 의해 납치돼 불시착했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이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 정부는 난생 처음 ‘두 개의 중국’을 피부로 느꼈다. 승객들의 송환이야 당연한 일이었지만 줘창런(卓長仁)을 비롯한 여섯 납치범을 어디로 보낼지는 골치 아픈 문제였다. 중국은 “범죄자 인도”를, 대만은 “정치적 망명”을 주장했고, 고심하던 한국 정부는 이들을 1년간 구속 수감한 뒤 대만으로 추방했다. 대만 정부는 이들은 ‘6의사’라고 부르며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세월이 흘러 사건이 잊혀져 갈 무렵, 왕년의 영웅들이 대만에서 살인사건으로 법정에 섰다는 보도가 신문 한 구석에 단신으로 등장했다. 민항기 납치의 주범이었던 줘창런과 장훙쥔(姜洪軍) 등이 1991년 한 부동산업자를 납치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이들은 대만 돈 50만 위안(元)의 몸값을 뜯어낸 뒤 인질을 살해하고 시체를 야산에 버렸다.
에드워드 미콜러스와 수전 시먼스의 연구서 ‘테러리즘, 1992~95’에 따르면 줘창런 등은 전형적인 적응 실패자였다. 사업 실패로 거액의 포상금을 모두 날린 이들은 문제의 부동산업자에게도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범행이 “대만의 불합리한 사회 제도에 맞선 의거”라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2001년 사형이 집행됐다. 이 사건은 ‘귀순자’에 대한 대만 여론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최근 남한 거주 탈북자가 2만 명을 넘었다. ‘자유를 찾아 남하한’ 귀순 용사가 영웅이 되던 시절은 이미 지났어도 그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 10일 발간된 ‘2010 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탈북자의 98.5%는 북한에서 ‘이것도 인간의 삶인가’ 하는 비참한 심경으로 탈출을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 중 54.4%가 생활보호 대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굳이 한반도의 미래 상황을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한 핏줄의 동포로서, 같은 인간으로서 탈북자들의 적응과 생존을 돕는 노력은 좀 더 필요해 보인다. 남한 사회마저 그들을 외면한다면 ‘줘창런의 비극’은 남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태관(논설위원)-20101120토] “우리 아빠는 ○○야”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아무개인데, 그쪽은요?” “저의 아버지는 아무개고요, 제 조상은 누구입니다.” “예?” “저는 아무개의 아들이고요, 누구가 제 조상이라고요.” “그게 아니라, 당신은 누구세요?” “아니, 저 유명한 아무개가 우리 아빠고요, 누구가 몇대 조상이라니까요.” “허 참, 당신은 누구냐고요.” “허 참, 누구 누구도 몰라요?” “정말 갑갑하네!” “나야말로 갑갑하네!” 서로가 갑갑하다고 한다. 진짜 갑갑한 사람은 누구일까. 고등학교 독일어 책에서 읽은 예화다. 기억 속에서 꺼낸 얘기라 출전은 감감하다.
“가난한 집 조상 자랑하듯 한다”는 속담이 있다. 변변치 못한 사람들이 조상을 들먹인다는 말이다. 예부터 조상 자랑을 하면 팔불출이라고 했다. 팔불용(八不用), 팔불취(八不取)라고도 일컫는 팔불출은 저 잘났다고 뽐내는 사람이 그 첫째다. 다음이 자식 자랑이고 아내(남편), 아버지와 조상, 형제 자랑 순이다. 누가 내 선배고, 누가 나와 동향이라고 뻐기는 이도 팔불출에 해당한다. 조상을 자랑하면 팔불출인 것은 서양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독일어 교재에까지 나오니 말이다. 이런 유머도 있다.
이탈리아인과 유태인이 서로 조상 자랑을 했다. 이탈리아인이 말했다. “얼마 전에 로마 유적을 발굴했는데 글쎄 땅에서 구리와 철판이 나왔지 뭐요.” “그래서요?” “허허, 우리 조상들이 그때부터 전화기를 썼다는 증거가 아니겠소.” 유태인이 이에 질세라 한마디 했다. “우리도 진작에 예루살렘을 파 봤지요.” “뭐가 나왔죠?” “아무것도 안 나왔소.” 그게 무슨 자랑이냐고 묻자 유태인이 점잖게 말했다. “아 글쎄, 우리 조상들은 그 옛날부터 무선전화기를 썼다는 거 아닙니까!”
조상 자랑이 꼭 못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못난 자손은 조상의 이름에 꼭 먹칠을 한다. 중국에서는 최근 이런 일이 있었다. 권력층 2세가 대학 캠퍼스에서 외제차로 음주 뺑소니 사고를 냈다. 차에 치여 숨진 여학생은 가난한 농부의 딸이었다. 붙잡힌 2세는 이렇게 큰소리쳤다. “내가 누군 줄 알아? 우리 아빠가 리강(경찰 고위 간부)이야!” 분노한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선 “우리 아빠는 ○○야”라는 패러디가 유행이라고 한다.
중국 이야기인데 왜 우리가 갑갑해질까. 둘러보니 우리 주위에는 누구의 아들, 누구의 후배가 너무 많다.
[매일경제신문 칼럼-매경춘추/윤영선(관세청장)-20101120토] 소매물도 斷想
남해안 통영 앞바다 소매물도. 쪽빛 바다 위로 부서지는 파도와 초원, 투명한 하늘이 한 곳에 머문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하는 노산 이은상의 시 `가고파` 한구절이 절로 생각나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섬이다.
그림 같은 풍광이지만 메밀만 재배되는 척박한 섬이다. 1800년대 살기 위해 들어온 50여 명 모두가 곡식이 없어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섬이름도 메밀의 경상도 사투리인 `매물`에서 유래됐단다.
섬에는 1970년대에 3개 공공기관이 있었다. 소매물도 등대와 지금은 폐교된 소매물도 분교, 그리고 남해안 밀수단속 전진기지인 마산세관 감시서가 그것이다. 세관 감시서가 세워진 것은 이곳이 일본 대마도와 가장 가까운 섬이기 때문이었다.
70년대 밀수꾼들은 전자제품과 시계, 카메라 등을 선박에 싣고 대마도를 오갔다. 그 시대 밀수는 사치심을 조장하고 국가 경제를 파탄시키는 범죄로 박정희 대통령이 규정해 놓은 5대 사회악(社會惡) 중 첫 번째였다.
세관원들은 빗물을 마시고 쌀 다섯 말을 지고 다니는 고생을 하며 밀수를 단속했다. 근무하던 세관원과 섬마을 처녀가 결혼한 것은 지금도 섬에서 회자되는 로맨스로 남아 있다.
밀수 감시서는 1987년 폐쇄돼 지금은 덩그러니 골조만 남아 있다. 유리창은 다 깨지고 종탑은 부러졌다. 이곳을 복원해 역사기념관으로 만들 계획이다. 세관원 활약상을 알리고 잔디밭 3000여 평을 새롭게 가꾸면 새로운 관광 명소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1878년 두모진해관에서 시작된 세관역사에는 근대 건축물이 꽤 많이 있었다. 지금은 1908년 세워진 군산세관 건물만 남아 있다. 이 건물은 독일인이 설계하고 벨기에 벽돌을 수입해 지었다. 목포에 똑같은 쌍둥이 건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부산항 상징이었던 부산세관 옛 청사도 개발 논리에 밀려 헐리고 말았다.
우리는 기록 관리를 안 하는 습관이 있다. 경제 개발 속에 역동성을 강조하다 보니 그런 듯하다. 소매물도 감시서나 군산세관 건물을 잘 살려 보존하면 200년, 300년 뒤에는 우리 근대경제사를 살펴볼 훌륭한 문화유산이 된다. 문화재는 보존뿐 아니라 만들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게 늦가을 소매물도를 찾아 느낀 단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