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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적]괴질쇼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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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를 창시한 강일순(증산도의 증산 상제님을 지칭)은 “후천개벽시대에는 지구의 축이 바로 서고, 초급성 괴질이 3년 간 전세계를 휩쓸면서 수십억명이 죽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시대 학자 남사고는 ‘격암유록’에서 “난세에는 하늘이 내린 괴질로 죽는 시체가 산처럼 쌓일 것”이라고 예언했다. 갈등과 원한으로 얼룩진 인간 세계는 하늘이 내린 재앙인 괴질로 막을 내리고 새 세상이 열린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정도는 아니지만 괴질이 특정 문명이나 종교의 흥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인류의 경제생활은 말할 것도 없다. 14세기 중엽 유럽에서 창궐한 페스트가 대표적 사례다. 당시 페스트로 유럽 전체 인구의 25%(2천5백만명) 가량이 희생되면서 경제는 파탄 상황에 이르렀다. 특히 페스트에 속수무책이던 교회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서 봉건체제가 급속히 약화되기 시작했다. 페스트 만연이 유럽 중세시대의 종말과 근세 출발의 계기가 된 셈이다.
마야, 잉카와 함께 중남미 3대 고대문명으로 불리는 멕시코의 아스텍은 16세기 천연두로 무너졌다. 스페인의 백인 정복자가 멕시코에 상륙한 뒤 반세기만에 당시 1억명이던 원주민 중 3백만명 정도만 살아남았다.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이들은 천연두에 면역된 백인을 ‘신’처럼 숭앙하는가 하면 기독교를 수용했다고 한다.
20세기 초반에는 결핵이 공포의 괴질이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나타난 대공황으로 생활이 피폐한 가운데 걷잡을 수 없이 퍼져 인류를 극도의 불안에 떨게 했다. 이어 20세기 후반엔 에볼라 바이러스와 에이즈가 무서운 괴질로 등장했다.
얼마전 홍콩에서 처음 발견된 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란 괴질이 전세계로 퍼지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외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한다. 인적, 물적 자원의 이동이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세계화 시대라 괴질 확산 속도도 무척 빠르다고 하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노응근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