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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청소년과 대중 문화
(1)대중 문화에서 왜 청소년이 중요한가
미국 케이블 TV 업계는 주요 시청 시간대에 9세에서 14세에 이르는 어린이를
공략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에 온 힘을 쏟고있다. 심지어 어린이 전용 만화
방송망까지 추진되고 있다. 이는 광고주들이 어린이들의 구매력(쓸 수 있는 돈의
크기)은 물론 어린이들이 부모의 소비 성향에 미치는 영향력을 높이 평가한
데에서 비롯한 결과이다.
부모들은 자주 집을 비워 상품 정보에도 아이들이 더 밝으며, 아이들의
직접구매도 늘어나고 있다. 30년간 4-12세 아동 집단의 소비 성향을 조사해 온
텍사스 대학의 제임스 맥닐 교수는 요즈음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지출이
사치스러운 경향이 있다면서, 부모들은 그들 자신보다 자녀를 위해서 더 돈을
많이 쓴다고 지적한다.
그렇게 자란 10대들이 소비 문화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틴에이저(teenager)라는 말도 소비 사회가 본격적으로 정착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말이다. 그 이전엔 그런 개념이 없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하는 15-29세의 신세대 고객 확보에
사활을 거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가전 제품 회사만 하더라도 그런 신세대 고객의 구매가 전체 매출액의
20-25%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들의 소비 증가율도 한 해 평균 25-30%로 전체
가전 제품 시장 매출액 증가율 15-20%를 훨씬 앞지르고 있다. 백화점들이
앞다투어 10대와 20대 전문 매장을 설치하고있는 것도 그들의 구매력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10대는 단지 수만 놓고 보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다. 92년 7월 현재,
우리 나라 인구 4천3백66만 명 중 10대는 8백27만 명으로 전체의 18.9%나 된다.
이는 8백60만9천명으로 전체 인구의 19.7%를 차지하는 20대 인구 다음으로 많다.
20대 가운데에서도 20-24세가 4백48만 명으로 전체 인구를 5세 단위로 잘랐을 때
가장 많은 무리를 형성하고 있다.
10대들의 인구 규모도 놀랍지만, 더욱 주목해야 할 건 앞서 시사한 바와 같이
그들이 쓰는 돈이 규모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그러한 구매력은 당연히 대중
문화에 그대로 반영된다. 대중 문화는 그 상품을 사 줄 수 있는 돈을 가진
사람들의 취향에 맞추는 방향으로 형성된다는 뜻이다.
92년 국민 은행 부설 국민 가계 경제 연구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나라의 60 세 이상 노인 인구는 전체의 8.1%이지만 그들의 소비는 전체의 3%에
불과하다. 이는 노인이 대중 문화에서 소외되는가를 잘 설명해준다. 미국에서도
70년대의 한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11%나 되지만
TV등에 등장하는 노인 인구는 2%에 불과하며 그것도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대가 대중 문화에 미치는 영향력은 대중 가요에서 잘
드러난다. 10대는 우리 나라 음반 시장의 70%에 해당하는 구매력을 갖고 있다.
음반 시장은 93년에 최대의 불경기를 맞았지만, 10대를 주요 팬으로 확보하고
있는 가수들의 음반은 여전히 호황을 누렸다. 신승훈의 널 사랑하니까 ,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 김건모의 팡세 등은 모두 1백만 장 이상 팔렸다.
그것도 아주 단기간 내에. 음반 회사의 판매 전략은 당연히 최대 고객인 10대와
20대들에게 맞춰지고 있다.
국민 학생들도 대중 가요의 주요 고객으로 떠오르고 있다. 어린이 잡지
굴렁쇠 가 93년 7월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 시내 국민 학교 어린이의 65%가
동요보다 가요를 즐겨 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91년 KBS와 현대 리서치
연구소가 공동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을 시내 국민 학교 4, 5, 6학년
어린이들의 애창곡 가운데 1위부터 5위는 오직 하나뿐인 그대 , 날 울리지마 ,
이별 여행 , 이젠 , 그녀를 만나는 곳 백 미터 전 등 모두 대중 가요였다.
다른 대중 문화 영역도 10대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10대는 무엇보다도
대중 문화에 대한 뜨거운 정열을 가지고 있다. 10대를 포함한 신세대 시청자들의
정열에 대해 어느 방송 담당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요즘 방송국에서 젊은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를 제작하는 PD들은
과거와는 다른 시청자들의 반응 때문에 종종 애를 먹는다. 그들이 주시청
대상으로 삼고있는 시청자들이 신세대 라는 요즘의 별칭에 알맞게 80년대의
시청자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PD를
긴장시키는 것은 프로가 방송된 후 신세대 시청자들이 보이는 반응이 전투적
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의 한 PD는
컴퓨터 통신에 각 방송사가 시청자 의견란을 개설한 이후 프로그램에 대해 많은
양의 의견이 올라온다. 그 내용 중에는 섬뜩할 정도로 예리한 지적이 많다. 며
신세대들은 침묵하는 다수 가 아니라 말을 아끼지 않는 활동하는 다수 라고
한다.
어디 그 뿐인가. 방송사의 쇼.코미디 공개 프로그램의 방청객 중 90%가
10대들이다. 공개 프로그램의 생명은 방청객의 호응이기 때문에, 정열적인
10대들을 방청객으로 한 프로그램은 10대 위주로 제작될 수밖에 없다. 또,
가수든 탤런트든 연예인을 스타로 만드는 가장 큰 힘은 그들을 우상으로
떠받드는 10대들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성인들이 즐겨 보는 TV프로그램도
10대들의 영향권 밖에 있는 건 아니다.
영화도 10대들의 호주머니에 크게 의존한다.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은 추석과
설날을 더불어 영화계의 4대 성수기이다. 외국에서 수입한 폭력물조차도
10대들의 성원이 없이는 히트하기 힘들다. 등급을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영화의
성패가 판가름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등급 판정을 내리는 공연 윤리
위원회가 그런 사정을 딱하게 여겨서인지는 일 수 없으나, 로보캅2 의 경우처럼
미국에서 R등급 (17세 미만 미성년자 입장불가)을 받은 영화도 국내에선 일부
장면들을 삭제하고 버젓이 중학생 입장가 로 둔갑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10대들이 대중 문화의 가장 왕성한 소비자인 것은 단지 그들의 커진 구매력
때문만은 아니다. 10대들은 심리적인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세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들은 어느 세대보다도 대중 문화를 필요로 한다.
기성 세대는 고생도 하지 않고 자란 10대들에게 무슨 고민이 그렇게도 많으냐고
말할지는 모르지만, 고민이라는 건 반드시 경제적 어려움에서만 비롯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나약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의 학자 다니엘 벨은
60년대에 들어 미국의 연령구조가 변화하면서 젊은 층의 비율이 엄청나게
높아졌고, 그로 말미암아 젊은이들 사이에서 경쟁이 심해졌으며, 그 결과 기존
사회 체제에 저항하는 운동이 싹트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 나라엔 그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입시 지옥 이
존재하고 있다. 학교는 대학에 가기 위한 입시 공장 으로 전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대들은 고독하며 불안해한다. 서울 YMCA의 91년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고교생의 74%가 가출 충동을 느낀다. 고 했다. 또 문화 체육부
산하 상담 기관인 청소년 대화의 광장 의 92년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12-18세의 청소년들 중 61%가 삶에 회의를 느낀다. 고 했다.
고독과 불안을 느끼는 10대들은 대중 문화에서 그 탈출구를 찾는다. 대중 문화
말고는 달리 문화를 향유할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 것도 그들을 더욱 대중
문화에 빠져들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다. 대중 문화는 일시적으로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아주 편안한 휴식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93년부터 청소년 육성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실시하고 있다곤
하지만, 청소년 관련 예산은 문화 체육부와 관련 기관의 청소년 업무 예산을
모두 합쳐도 국가 총에산의 0.09%에 불과하다. 전체 예산 중 청소년 관련 예산이
0.35%나 되는 일본과 비교하면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일반 국민도 자녀의
사교육비에 큰 지출을 하느라 마음이 있어도 자녀의 건전한 문화 활동에 큰
신경을 쓸 수 없는 처지에 있다.
실제로 다른 문화적 기회를 갖지 못해 대중 문화에 몰입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93년 5월 재단 법인 청소년의 대화의 광장 이 전국의 중고등 학생 8백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 문화의 풍속도 에 관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8명이 자신이 희망하는 문화 활동 에 거의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로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기회가 적어서 (50.7%), 공부
시간에 쫓겨서 (18.2%)등을 들었다. 그들의 문화 활동은 주로 대중 문화에
집중돼 있을 뿐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대중 문화 영역에서 10대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다 보니
중장년층의 대중 문화 소외 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 와중에서 10대 취향
이라는 용어가 마치 경박함이나 무절제함의 대명사인 것처럼 부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단지 10대가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방송을
포함한 대중 문화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10대에게서 찾는다는 건
부당한 일임에 틀림없다. 국가 차원에서 입시 지옥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10대들의 건전한 문화 육성을 위한 충분한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오히려 정반대로 대중 문화의 생산자들이 보다 많은 이윤을 올리기 위해
10대들의 취향을 무엇엔가 빨리 빠져드는 쪽으로 유인한다고 볼 수는 없는
없을까? 그들이 10대가 처해 있는 상황을 상업적 목적에 이용하고 있고,
10대들이 그런 계산에 말려드는 측면은 없을까? 아니면 10대의 취향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대중 문화 영역에서 뒷전으로 밀리는 기성 세대의 불만으로 인해
공연히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어느 경우이든 대중 문화 영역에서 10대의 영향력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10대는 전세계적으로 동질적이어서, 앞으로 대중 문화의
국제화가 진전될수록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10대 취향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국가 정책의 차원에서 10대의 독자적인 문화를 육성하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하고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편, 10대의
취향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스스로 즐기는 것과는 담을 쌓고 오로지
상업적인 대중 문화 상품의 선택을 통해서만 수동적으로 나타난다면 그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0대가 자신의 놀이 행위에서조차 주연이 되지 못하고 늘
의도적으로 연출된 대중 문화의 관객으로만 존재한다면 그것이 궁극적으로 실제
생활에 미칠 영향을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0대들이 대중 문화에
빠져드는 가장 큰 이유가 우선 당장 편하고 즐거운 것만을 찾는 성향에서 비롯한
건 아닌
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 신세대는 어떤 감각 구조를 가지고 있나
1991년 서울대 한완상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세대 갈등에 대한 연구 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한국의 사회 현실에 대한 불만은 계급이나 지역 등의
요인보다는 세대 변수에 따른 차이가 가장 크다고 주장했다. 학문적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장이지만, 그만큼 세대간 갈등이 중요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건 분명하다.
한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92년부터 언론 매체들은 세대 갈등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여러 신문에서 신세대 에 관한 특집을 연재했으며, 그러한
경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세대 갈등이 일어나는 것일까?
사실 이 질문은 기원전 5세기경의 소크라테스 이래로 존재해 왔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젊은이들은 사치를 너무 좋아한다. 그들은 버릇이 없고 권위를 무시한다.
젊은이들은 또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손님 앞에서 떠들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그들의 선생 앞에서 횡포를 부린다.
2천5백 년 전의 말인데도 오늘날의 젊은이들을 향해 어느 기성 세대가 던져도
크게 이상할 게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신세대 는 동서
고금에 걸뎌 계속돼 온 세대 갈등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갈등 요소를 담고 있는
존재이다. 신세대의 정체를 밝히는 데에는 여러 설명방식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감각 구조 의 근본적인 변화를 들 수 있다. 물론 신세대
는 광고와 언론에 의해 부풀려진 개념이다. 광고는 신세대의 새로운 가치를 널리
알리고 그에 맞는 상품을 많이 팔기 위해, 언론은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신세대의 존재를 과장하고 부추긴다. TV는 그 자체로서 신세대를
과대평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광고와 언론의 영향을 받아 신세대를 부각시키는
데에 큰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그 점을 인정하고 들어간다 해도, 신세대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영상 매체가 폭발하던 시기에 채어나고 성장한 세대로서,
그들의 감각구조는 이전의 활자 매데 세대와는 전혀 다르다. TV의 역사는 이제
불과 50년이다. 우리 나라의 TV 역사는 30년이다. 60년대의 TV 수신기 보급이
신통치 않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 나라에선 오늘 갓 태어난 아기로부터
20대 초반까지의 인구를 TV세대 로 볼 수 있다. 그러나 10세 이후에 미친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넓게 보자면 30대 초반까지의 인구를 TV 세대
에 포함시킨다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신세대는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TV 세대이며,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CTV
세대(Computer, TV, VTR)이다. 주말이면 하룻밤에 비디오 테이프 서너 편을
그것도 리모콘을 손에 쥔 채 마음에 드는 장면만 골라서 보면 서도 그 내용을 다
이해하는 신세대의 능력은 구세대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그 점에서
만화 평론가 정준영 씨가 하는 다음과 같은 말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올해로 만 예순 세 살이 되셨고 벌써 15년 이상을 텔레비전을 보아 오셨던
필자의 어머님은 아직도 텔레비전에서 외화만 나오면 재미있게 보시던
텔레비전을 끄시고 방으로 들어가신다. 나이 드신 노인들에게는 비교적 일반적인
것이겠지만, 필자의 어머니도 외화에 등장하는 등장 인물들을 구별해 내지는
못하시고 그 결과 아무리 텔레비전을 보아도 그 내용이 이해가 되지를 않는
것이다. 결국 하나의 매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매체가 지닌 독특한
언어에 익숙해져 숙달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매체 자체에 익숙해 있지 않으면 그 내용을 이해하는 건 더욱
어려워진다. 어른들은 어린이들이나 청소년이 읽는 만화가 너무 쉽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만화는 오히려 어른들에게 더 어려울 수
있다.
캐나다의 학자 마샬 맥루한은 아프리카에 처음 영화가 소개되었을 때에
아프리카 사람들이 영화를 즐길 수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때까지
아프리카 사람들이 오락이라는 건 직접 참여하여 뛰어 노는 춤과 같은
것이었는데, 어두운 영화관에 가만히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는 행위 자체가
그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노릇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신세대가 독특한 감각 구조를 갖고 있다는 건 구체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해도 상당히 신빙성 있는 걸로 볼 수 있겠다. 감각에 무슨 구조가 있느냐고
코웃음칠 일은 아니다. 최근 동아일보 기획 연재물 신세대 는 신세대의 감각
구조와 관련해 몇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싣고 있다. 결혼 이야기 등의 영화를
기획해 큰 성공을 거둔 영화기획자 심재명 씨와 임맥 만들기 라는 베스트
셀러의 작가 이경훈 씨의 이야기를 여기에 담았다.
심재명 씨는 초등 학교 때부터 TV주말의 명화는 빼 놓지 않고 다 봤으며, 만화
영화 주인공을 그려서 친구들에게 5원씩 팔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는 영상
감각이 뛰어나 한 번 본 사람의 얼굴과 옷, 구두 빛깔까지 기억하는 반면에
이름과 숫자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경훈 씨는 지루한 건 못 보기 때문에 학교 다닐 때도 책을 안 읽었으며 TV도
리모컨이 없으면 못 본다고 한다.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책은 질색이기 때문에
주로 요점만을 전해 주는 신문과 잡지를 보며 자신이 정보를 알기 쉽게 가공한
실용적인 책을 쓰는 것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로 든 두 사람은 다소 특별하다고는 할망정 결코 예외적인 신세대는 아니다.
모든 신세대가 어느 정도는 그런 능력과 성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대체로
신세대들은 지루한 건 못 견디지만 동시에 여러 감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를 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신세대의 그런 능력과 성향을 겨냥해 MBC-TV는 이야기쇼 만남 에서 아주
이색적인 형식의 방송을 선보인 적이 있다. 청소년들로부터만 인기를 얻었다는
이 방송 형식은 이야기 채널, 쇼 채널, 만남 채널 등 세 가지 내용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야기 채널은 본 방송이며, 쇼 채널은 브라운관 왼쪽 아래에 엽서 크기의
PIP(Picture In Picture) 화면으로 주로 국내외 뮤직 비디오를 내보냈으며 만남
채널은 브라운관 오른쪽 아래 화면으로 문자 방송 형식의 퀴즈를 내보냈다. 이
프로그램을 즐기는 시청자들은 리모콘을 손에 쥔 채, 본 방송을 보다가 음성
다중을 선택해 화면 아래의 뮤직 비디오를 즐기고 또 다른 눈으로 오른편의
갖가지 화제를 좇게 되어 있다. 구세대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따라갈
수도 없는 시청 형태가 아닐 수 없다.
신세대적 감각을 상업적 목적에 이용해 대성공을 거둔 산업으로 전자 오락을
빼놓을 수 없다. 사실, 우리 나라의 초등 학생과 중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가 바로 전자 오락이다. 교사들이 모여 만든 놀이 연구회 놂 이 92년 4월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 시내 초등학교 학생 중 45.5%가 오락실 출입 경험이
있고 그중 28.2%는 이틀에 한번 이상 상습적으로 오락실을 찾으며, 54.3%가 전자
오락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92년 10월 재단 법인 청소년 대화의
광장 이 서울 시내 초. 중. 고등 학생 7백6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의
전자 오락 이용에 관한 실태 조사 에 따르면 거의 매일 전자 오락을 하는 학생은
9.7% 1주일에 3, 4번 이상 하는 학생은 20.6%에 달했으며, 그만두려고 했지만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 학생도 18%나 됐다.
하루라도 전자 오락을 하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껴 안절부절못하면 그건 이미
전자 오락 중독증 에 걸린 것이다. 그건 병적인 도박 심리와 비슷하다. 집에서
하든 전자 오락실을 찾든, 청소년들은 왜 그렇게 전자 오락에 빠져드는 것일까?
전자 오락에 빠져든 중학교 학생들은 전자 오락보다 더 재미있는 건 없으며,
전자 오락을 하면 온갖 잡념이 없어진다고 말한다. 그런 기분은 아무나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구세대들은 그런 기분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청소년들을 겨냥한 세계의 전자 게임 시장 규모는 게임기와 게임 소프트웨어를
포함해 한 해에 무려 36조 원에 이른다. 이 방대한 규모의 시장을 닌텐도, 세가,
니치덴 등 일분의 3개 회사가 거의 장악하다시피 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92년
전자 게임 판매 총액이 영화관 수입을 앞지르자 파라마운트와 유니버설 등 대형
영화사들이 앞다퉈 전자 제임 회사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의 [인민일보]는 최근에 중국 어린이들이 전자 게임에 매달리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전자 게임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 일이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구세대가 신세대의감각 구조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왜 전자 게임이 신세대에게 그토록 재미있는지를 연구하면 될 것이다.
전자 게임은 사실상 온갖 그림들로 구성된 이미지들이 스크린 위에 난무하는
이미지 게임이다. 이미지는 언어보다 훨씬 더 강력한 흡인력을 갖고 있다.
체코의작가 밀란 쿤데라는 인간들을 움직이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논리적 사상
체계가 아니라 단지 일련의 이미지와 암시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데올로기
라는 말 대신에 이마골로기(imagologie)'라는 말을 만들어 냈는데, 이 표현을
TV 세대의 이데올로기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TV세대는 그 이전 세대와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다. TV 세대가
이해하는 셋P는 TV속의 세계와 비슷하다. TV 속의 세계는 질서 정연하다. 온갖
갈등도 곶 해결되게끔 되어 있다. 또한 TV속의 세계는 지루하지 않다. 속도감이
있다. 따분하다고 생각하면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면 간단히 해결된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TV 속의 세상과는 크게 다르다. TV 세대가
경험하는, 현실 세계와 TV세계 사이의 괴리는 매우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
미국의 어느 학자는 미국 10대들의 마약 복용이 늘고 있는 건 TV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지나친 억측이라고 느껴지지만, TV세대가 불확실성과 무료함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며 속도감과 감각적인 이미지의 쾌락을 체질적으로 좋아한다는
건 분명한 것 같다. 10대를 포함한 신세대를 겨냥한 상품의 광고가 어제의 나는
이미 내가 아니다. 느니 같은 모습으론 1초도 살기 싫다. 는 표어를 내걸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닐 것이다.
참을성 없는 TV 리모컨세대에 영합해 유행 주기가 빨라지고 있다는 견해는,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세대 갈등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책임을
TV세대에게만 물을 순 없다. TV 세대의 새로운 감각 구조가 갖고 있는 그 나름의
장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구세대는 그저 신세대를 개탄만 하는 독선적이거나
게으른 자세에서 벗어나 신세대의 감각구조와 이미지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공부해야 할 것이다. 세대 갈등의 해결을 위해선 그 편이 더 실천적이다.
(3) 청소년들은 왜 스타를 숭배하나
공개 방송으로 진행되는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의 방청객으로 참여하기 위한
일부 10대들의 경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열하다. 줄을 서서 몇 시간씩
기다리는 건 보통이고 심지어 매를 맞기까지 한다. 어는 방송사 앞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음과 같은 목격담은 실로 눈물겹기까지 하다.
아이들이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미는 바람에 다친 아이가 꽤있었다. 잠시 후
객석이 다 찼는지 더 이상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도 기어이
들어가려고 하는 극성 팬들을 물리치느라 관리하는 아저씨들과 모 가수의
매니저가 몽둥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어떤 아저씨는 여자아이들의 머리를
잡아당기고 또 발로 차기까지 했다. 심지어는 허리띠를 풀어 휘두르기까지도
했다.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코피가 터진 아이도 있었고 땅에는 여러
군데 핏자국이 보였다.
흡사 전쟁을 방불케 하는 장면이다. 실로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청소년, 특히 여학생들은 왜 그렇게 스타에 열광하는 것일까? 어찌 생각하면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10대들만이 그렇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스타를 우상으로 숭배하는 팬들은
있기 마련이다.
팬이라는 우상 숭배 집단의 수는 프랑스, 영국, 미국에서는 전 인구의 5%내지
6%에 달한다고 추정돼 왔다. 물론 팬 관리는 오래 전부터 영화사의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이에 대해 미국의 영화학자인 L.쟈네티는 이렇게 말한다.
비중 있는 스타는 일주일에 3천 통의 팬 레터를 받는 게 보통이었고, 그런
편지의 양이 인기를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생각했다. 영화사는 이런 편지를
처리하는 데 연간 2백만 달러를 소모했는데 이런 편지의 대부분은 배우의 자필
사인이 들어간 사진을 부탁하고 있다. 배우의 인기도는 스타에게 열성적으로
몰두하는 팬 클럽의 수효에 의해 측정되기도 한다. 1934년 무렵 이런 클럽은
모두 5백 35개가 있었고 그 회원의 총수는 75만명이 넘었다. 이 기간에 가장
많은 팬 클럽을 가지고 있었던 스타는 클라크 게이블, 진 할로우, 그리고 조안
크로포드였는데, 이들 모두 스타의 고향 인 엠지엠 사와 계약을 맺고 있었다.
게이블의 팬 클럽만 해도 70여 개였는데 이는 그가 1930년대의 최고의 남자
배우로서 왕좌를 누렸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영화 팬들은 광신적인 스타 숭배에 대해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드가 모랭은
스타 예배 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각 스타의 발 밑에 하나의 예배당 즉, 하나의 클럽이 자연스럽게 설립된다.
열광적인 회원이 2만 명도 넘는 루이스 마리아노 클럽 처럼 어떤 것은 커져서
대성당이 된다. 아메리카에서는 각각의 교회가 대성지인 할리우드를 정기적으로
순례한다. 영화제란, 스타가 친히 자신의 개선식에 강림하는 신의 축제이다.
그때에는 열정이 열광으로 숭배는 광희로 바뀔 수 있다. 잡지, 사진, 팬 레터,
클럽 순례, 의식, 영화제, 이것들은 스타 숭배의 기본적인 제도이다. 어떤
편지는 똑같은 영화를 130번 보았다고 단언하고 있다. 그 편지들은 찬사이며,
환희이며, 황홀이며, 신앙 고백이다.
그러나 스타 예배 는 꼭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만은 아니다. 그런 예배 를
받기 위한 대단히 조직적인 전도 활동 이 스타들에 의해 전개되고 있다.
오늘날엔 브룩 쉴즈도 아마 그런 팬 관리 를 잘하는 스타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어린이 포르노 배우로 출발한 그녀는 그녀가 태어나자마자 이혼해서
혼자 딸을 키운 어머니의 탁월한 사업 능력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는 브룩 쉴즈 회사 를 설립해 팬 관리 는 물론 브룩 쉴즈를 하나의
기업으로 키우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브룩 쉴즈의 어머니가 딸을 착취한다는
세간의 비판에 대해 브룩 쉴즈는 그런 착취는 내가 원하는 바 라고 응수한다.
물론 팬들의 스타 숭배는 활자 매체의 가십들은 부산물이 아니라, 스타
시스템 을 키우는 플랑크톤 이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언론은
원칙적으로 대중 문화의 감시자이고 선도자이어야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언론 자체가 시장에서 살아남가 위해 대중 문화와 손을 잡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아니,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언론 자체도 대중 문화의 일부이다.
언론과 대중 문화의 관계는, 미국의 할리우드 스타와 언론이 초기부터 공생
관계를 맺어 왔다는 데에서 분명히 들어난다.
오래 전부터 할리우드에선 가십을 지배하는 자가 할리우드를 지배한다. 는
말이 통용되어 왔다. 할리우드의 그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 내려오고 있다.
오히려 오늘날엔 활자 매체가 그 자체의 생존을 위해 더욱 스타를 판매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왔다. 신문들은 날이 갈수록 연예기사의 비중을 늘리고 있으며 연예
기사는 주로 스타에게 집중되고 있다. 텔레비전도 예외는 아니어서 스타를
중심으로 집중되고 있다. 텔레비전도 예외는 아니어서 스타를 중심으로 하여
제작되는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정규 뉴스
시간에마저 연예 뉴스라는 미명하에 스타 초대석을 아련해 스타의 자질구레한
사생활을 뉴스 로 다루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우리 나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간지들의 치열한 증명 경쟁은 연예
기사를 대폭 늘리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스포츠 신문과 연예 잡지의 경우엔
스타들 덕분에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소년용 잡지의 경우엔 스타들
덕분에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소년용 잡지들도 그러하다. 대표적
중고생잡지인 [하이틴] 93년 7월호의 경우, 총59건의 기사 중 39건이 연예 관련
기사고, 나머지 20건 중 10여 건은 애독자 엽서 추첨 등 잡지 제작에 의례적으로
끼는 난이며, 나머지도 다이어트. 패션 관련 기사로 채워져 있다.
우리 나라에서 팬들의 우상 숭배는 주로 청소년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건 우리 대중 문화에서 청소년의 비중이 그만큼 크고 활자 매체들이 청소년의
스타 숭배를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 청소년 상담 교사가
소개하는 다음과 같은 일화는 에외적인 것일망정 청소년의 스타 숭배 현상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선생님 어쩌면 좋아요. 제 아이가 드디어 일을 저질렀어요. 아빠에게
대들고 소리를 지르며 이젠 부모도 필요없고 학교도 안 가겠다는 거예요.
고등학교 다니는 딸아이를 둔 이 어머니는 상담을
하면서도 내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대학진학을 앞두고 얌전히 공부만
하던 딸아이가 좋아하는 가수가 대마초를 흡입한 혐의로 구속된 뒤로는 밥도
먹지 않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가수의 노래만 듣다가 성적까지 뚝 떨어졌다는
것이다.
스타 숭배는 어느덧 초등 학교 어린이들에게까지 확산되었다. 어느 신문에
스케치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러 보자.
서울 J초등 학교 5학년 교실에서는 정호와 영철이 심하게 다투어 선생님께
벌을 받았다. 이들이 싸운 이유는, 정호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영철이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영철에게 포기하라고 했으나 이에 반발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영철이가 정호에게는 없는 그 연예인의 사진까지 구해 온 것을
보고는 내가 그를 번저 좋아했다. 며 사진을 빼앗자 급기야 거로 주먹질까지
오가는 사태로 발전한 것이다. 최근 주먹질까지는 않더라도 연예인을 두고
벌어지는 이런 유의 다툼은 초등 학교 고학년 교실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승강이 내용은 대개 내가 좋아하는 완선 언니를 좋아하지 말아라. 내가
좋아하는 최진실이 네가 좋아하는 강수지보다 더 예쁘다. 사진을 산 곳을 알려
달라. 는 등이다.
그냥 웃어넘기기에는 좀 씁쓸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약과다.
스타들이 직접 이야기하는 열성 팬들의 작은 횡포 들을 들어보자.
신승훈: 얼마 전 차에 가 보니 한 남학생이 번호판을 떼어 내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느냐. 고 물었더니, 내가 번호판을 떼어 가면 친구들
사이에서 스타가 된다. 고 대답해 실소를 금할수 없었다.
. 최진실: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지방에서 올라와 밤샘을 하곤한다.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다른 주민들과 함께 사는 빌라 벽면 1층부터 4층까지 낙서로
도배질을 해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몇 번 칠을 새로 했지만 소용없고,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몇 번 칠을 새로 했지만 소용없고 현관문과
초인종에까지 연필, 크레용, 매직으로 낙서를 해서 이웃 주민 볼 낯이 없다.
스타 숭배 사상을 사회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친근함의 환상 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시청자들은 TV를 보면서 스타들과 마주 대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TV의 연예 오락 프로그램을 유심히 봐라. 스타들이 카메라의 정면을
응시하는 시선 관리에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친근함의 환상 은
사람들이 TV를 보는 공간적 환경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친근함의 환상 은 이외로 심각하다. TV드라마에 의사로 고정 출현했던 로버트
영이란 미국 배우는 의학적 조언을 요구하는 시청자들의 편지를 1주에 5천
통이나 받았다. 청소년들의 경우엔 그 환상을 해소할 수 있는 다른 배출구가
없는 데다 체면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인에 비해 적극적이라는 차이밖에
없다.
극단적인 경우지만, 몇 년 전 일본에서 인기 절정의 소녀 가수 오카다
유키코가 투신 자살을 했을 때에 30여 명의 청소년들이 연쇄 자살을 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그러한 환상이었다. 어느 사회학자는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인간 비애의 새로운 장르 라고 명명하지만, 정작 문제는 성인들이, 일부
청소년들이 그렇게까지 스타를 숭배하는 배경과 근본적인 이유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우선 비판을 하기에 급급하다는 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사실 여러 가지 제약 속에서 살아야 하는 청소년들에겐 스타에게 푹 빠져드는
것 이상으로 현실을 잊어버리게 하는 해 주는 게 없다. 현실이 불만스럽고
고민이 많은 청소년일수록 스타에 대한 집착이 더욱 강할 수 있다. 그런
청소년들은 사실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스타와 대중 문화 자체를
적대시해 온 일부 기성 세대에게도 책임이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현실이
못마땅할 때에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욕구는 반드시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그러한 현실 도피 욕구를 어떻게 보다 건전한 여가 활동으로
수용할 수 있는냐 하는 것이다. 그러한 여가 활동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은 채
스타에 집착하는 일부 청소년들은 아무리 꾸짖어 봐야 소용이 없다. 그리고 그
스타가 어떤 존재인지 그 실체를 알리는 대중 문화 교육이 전혀 없는 것도
문제다. 스타는 알맞게 좋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스타는 알맞게 좋아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제 다음 장에서 스타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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