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자박
자업자득은 자기가 저지른 일의 결과를 스스로가 돌려받음이다. 자승자박은 제 줄로 제 몸을 옭아 묶는다는 뜻으로, 자신이 한 말과 행동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구속되어 괴로움을 당하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제 마음으로 번뇌를 일으켜 괴로워함을 이르는 말이라 한다.
이 글을 쓰는 건 자업자득과 자승자박의 낱말풀이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냥 말 돌리지 않고 직설로 하겠다. 얼마 전 자승이란 중이 자살을 했다. 그것도 자신이 거주하는 칠장사 요사체에 불을 지른 방화에 위한 자살이었다. 또 제자들아로 시작하는 유언에 ‘탄묵, 탄무, 탄원, 향림. 각자 2억씩 출연해서 25년까지 토굴을 복원해주도록 하라’고 했다.
8억짜리 토굴이 있을까 싶어 불교는 돈도 많구나 하면서 도무지 어안이 벙벙하고 믿기지 않는다. 오죽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참으로 안타깝고 일말의 동정이 일고 그 절망의 나락에 빠진 분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미안할 때가 있다.
또 남의 신세를 위로 위무해주는 종교인이지만, 그들이라고 고통이나 고뇌가 없으랴? 그리고 종교인은 특별히 자살 하지 말란 법도 없다. 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일에 찾아온 사람에게 근엄하게 세상이 어떠니, 선은 무엇이니 하며 좋은 말만 골라했을 그 얼굴이 가증스럽고 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어디 또 있을까? 싶다.
거기에 더욱 기가 막히는 일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유인촌이 정부를 대표해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에 마련된 자살한 자승 분향소에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중 자승에게 준 것이다. 내 피같은 세금이 나라를 위해 자살한 것도 아닌, 그런 자에게 쓰이다니, 한동안 올려다보는 하늘이 캄캄했다. 그 캄캄한 하늘이 노래지며 정부가 국민의 정부인지, 그냥 자기들끼리 정을 나누는 부서인지 헷갈릴 뿐이다.
지하 셋방에 살던 모녀가 집세를 못내고 계속 밀리자, 주인에게 미안하다며 가진 돈을 탈탈 털어 유언장 옆에 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언론 보도가 문득 떠오른다. 그 한 맻힌 모녀에게도 훈장을 주었는지 궁금해진다. 안 주었다면 왜 안 주었는지 분통이 터진다.
도대체 이 세상의 정의는 무엇이며, 공정은 또 무엇인가?
나 같은 민초가 무얼 알까만, 또 속세를 떠나 이타적 삶을 추구하고 정진하는 종교인을 존경을 못할망정 비난하거나 나무랄 순 없는 일이다. 또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자승자박일지도 모르는 그 자살을 한 중에게 정부가 훈장을 주다니? 이해는커녕 일해도 되지 않는다. 그 훈장이란 게 지나가는 개나 소에게 걸어주는 장난감이란 말인가?
홍범도 장군을 육사에서 내쫓더니, 이제 세상이 미쳤거나, 정의와 공정이 탐욕과 편향이 되었나 보다.
그래선 안 된다. 죽음은 어떤 죽음이건 고귀할 수도 있지만, 자살을 하고 내가 불 지른 집을 제자 네 명이 2억씩 내서 다시 지어라고 한 그런 자를 개인의 신분으로 위로를 하건 조문을 하건 누가 뭐라겠는가?
그런데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훈장을 주다니? 이는 미쳤다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단언하건데 이미 신은 죽었지만, 이 일로 신은 우리에게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또 이런 정부는 그저 정부(情婦)일 뿐이다. 이런 정부도 필요없다.
그나마 때로는 신에게 의지하고 기도했는데, 이런 방화범 겸 자살로 죽는 자들이 신봉하는 신과 그런 자에게 훈장을 주는 정부는 없다.
참으로 징그럽다. 참으로 징그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