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15 새벽4시,
새벽이라기보다 자다가 깬 수면중 벌떡< 일어나 동동동
간밤에 미리 차를 정비하여 현관에 바짝 대놓고 덥게덥게 차유리에 큰 타올로 덮어놓고
4시 땡하면 달려가리라..
소풍 전날 설레임에 잠못이루는.. 3시까지 꼴딱 말똥말똥 눈알만 굴리다가 잠시 토끼잠을 자고
4시 알람에 일어나 보온병에 커피만 챙기고 '부릉((' '부릉부릉<<< 타타타'
흠메.. 시동 안걸리는거.. '그렇다고 못가나?'
약속은 중요한 것이여~ '본인 사망외 무조건 간다. 맨발로 뛰어라도 간다!'
뽕나무 아래서 편한잠에 빠져있는 2카에 시동을 걸고
폿트에 물을 끓여 차창에 가져다 붓기, 뜨거운 타올로 앞창 녹이기 작전!
닦아도 닦아도 순간에 얼어붙는 현상, 파주의 새벽기온은 -5도, 체감온도 -8도.
뭐 쉽게되면 재미없지.. ?
손톱으로 얼음을 긁어 빼꼼한 눈만큼만 창을 뚫어 살곰살곰 움직여 신작로에 나가니
도대체 앞이 보여야 차선을 지키던동.. 난감함이란..
길바닥에 차를 두고 다시 유리긁기!
우여곡절끝에 달려간 그곳! 원당역 승차장, 20분 지각.
일행에게 미안시럽지만
누구 이만한 일에 목숨 걸어봤나요? ^,*
..
두륜산 대흥사
일주문
두륜산 품 안에 자리를 잡은 대흥사는 한국불교의 종통이 이어지는 도량이다. 이곳에 머물며
'다신론'(茶神論) 등을 쓴 초의선사 덕분에 대흥사는 우리나라 차 문화의 성지로 꼽힌다.
대흥사는 임진왜란의 승병장이었던 서산대사(西山大師) 이후로 규모가 커졌다. 서산대사의
의발(衣鉢)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서산대사는 대흥사를 "삼재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요, 만세가 되도록 파괴됨이 없는 곳(三災
不入之處 萬歲不毁之處)"이라고 말했다.
대흥사 경내에 걸린 현판 글씨는 명필들이 직접 써 조선시대 서예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대웅보전(大雄寶殿)의 현판 글씨는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와 원교 이광
사(圓嶠 李匡師, 1705~ 1777)의 일화로 유명하다.
제주도로 귀양 가던 추사가 초의선사(草衣禪師)가 있는 대흥사에 들러 원교가 쓴 글씨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내리게 했다. 하지만 추사는 제주도 귀양에서 돌아오며 원교의 현판
을 다시 걸게 하고 자신이 쓴 현판은 내리게 하였다.
<이 부분은 검색에서 펀 자료임>
스님들이 대웅전에서 아침예불을 드리고 있는 모습
대웅전 입구 돌다리
연리목, 뿌리와 뿌리가 붙어서 자라는..
두륜산의 특이한 생김생김,
사람들은 저산이 와불의 형상이란다
담쟁이의 화려한 일생,
흙벽에 기대어 예술로 승화하다?
돌담과 기왓장, 담쟁이의 3박자 하모니
파란하늘, 조각구름, 앙상한 가지와 까치집..
음악같은 조화로움에 한점 찡겨 자연에 동화되다
피빛 동백이 기염을 토한다
퍼즐처럼 모두 모여 복닥거림 보다
떨어져 있어 여유로운 것
해남 대흥사를 대충 훑고 다음 장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