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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화미 |
<청동기>탄화미 발견
청동기, 철기 시대에는 이전부터 주요한 생산 도구로 사용되던 간석기가 매우 다양해지고 기능도 개선되어 생산 경제도 좀더 발달하였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돌도끼나 홈자귀, 괭이, 그리고 나무로 만든 농기구로 땅을 개간하여 곡식을 심고, 가을에는 반달 돌칼로 이삭을 잘라 추수하는 등 농경을 더욱 발전시켰다.
농업은 조, 보리, 콩, 수수 등 밭농사가 중심이었지만 일부 저습지에서는 벼농사를 지었다. 청동기 시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탄화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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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민무늬토기,미송리식토기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토기인 민무늬 토기와 미송리식 토기이다.
민무늬토기는 밑바닥이 편평한 원통모양의 화분형과 밑바닥이 좁은 팽이형이 기본적인 모양이며, 빛깔은 적갈색이다.
미송리식 토기는 평북 의주 미송리 동굴에서 처음 발굴되었다. 밑이 납작한 항아리 양쪽 옆으로 손잡이가 하나씩 달리고 목이 넓게 올라가서 다시 안으로 오므라들고, 표면에 집선(集線)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로 청천강 이북, 요령성과 길림성 일대에 분포한다.
이 토기는 고인돌, 거친무늬 거울, 비파형 동검과 함께 고조선의 특징적인 유물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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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돌칼과 홈자귀 |
<청동기>반달돌칼과 홈자귀
청동기 · 철기 시대에는 이전부터 주요한 생산 도구로 사용되던 간석기가 매우 다양해지고 기능도 개선되어 생산 경제도 좀더 발달하였다.
이 시기의 사람들은 돌도끼나 홈자귀, 괭이, 그리고 나무로 만든 농기구로 땅을 개간하여 곡식을 심고, 가을에는 반달 돌칼로 이삭을 잘라 추수하는 등 농경을 더욱 발전시켰다.
농업은 조, 보리, 콩, 수수 등 밭농사가 중심이었지만 일부 저습지에서는 벼농사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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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유적-부여 송국리
청동기시대 집터의 유적은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된다. 대체로 앞쪽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뒤쪽에는 북서풍을 막아 주는 나지막한 야산이 있는 곳에 우물을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배산임수). 이것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취락 여건으로 오늘날 농촌의 자연 취락과 비슷한 모습이다.
집터의 형태는 대체로 직사각형이며 움집은 점차 지상 가옥으로 바뀌어 갔다. 움집 중앙에 있던 화덕은 한쪽 벽으로 옮겨지고, 저장 구덩도 따로 설치하거나 한쪽 벽면을 밖으로 돌출시켜 만들었다. 창고와 같은 독립된 저장시설을 집 밖에 따로 만들기도 하였고, 움집을 세우는 데 주춧돌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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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바퀴 사용법 |
<신석기>가락바퀴 사용법
가락바퀴는 실을 뽑아내는 도구로서,신석기 시대 출토 유물이다. 어떻게 뽑아내는지 확인할 수 있다.ㅡ[한국생활사 박물관, (사계절출판)의 선사생활관]
<신석기>가락바퀴
가락바퀴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 발견되는 흙으로 만든 가락바퀴 농경 도구나 토기의 제작 이외에도 원시적인 수공업 생산이 이루어졌음을 가락바퀴나 뼈 바늘이 출토되는 것으로 알 수 있다. 가락바퀴는 실을 뽑는 데 사용된 도구로 옷이나 그물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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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빗살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 제조 |
신석기 시대에는 진흙으로 그릇을 빚어 불에 구워서 만든 토기를 사용하여 음식물을 조리하거나 저장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생활이 더욱 나아졌다.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 토기이다.
그러나 이보다 앞선 시기의 토기도 발견되고 있다. 이것들은 무늬가 없는 것, 토기 몸체에 덧띠를 붙인 것, 눌러 찍은 무늬가 있는 것으로 각각 이른 민무늬 토기, 덧무늬 토기, 눌러찍기무늬 토기(압인문 토기)라고 부른다.
이런 토기는 제주도 한경 고산리, 경남 고성 문암리, 강원 양양 오산리,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등에서 발견되었다.
빗살무늬 토기가 나온 유적은 전국 각지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대표적인 유적은 서울 암사동, 평양 남경, 김해 수가리 등으로 대부분 바닷가나 강가에 자리잡고 있다. 빗살무늬 토기는 도토리나 달걀 모양의 뾰족한 밑, 또는 둥근 밑 모양을 하고 있으며 크기도 다양하다.
빗살무늬 토기와 함께 탄화된 좁쌀이 발견되어 신석기 시대에 잡곡류를 경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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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정착생활의 시작
신석기 정착생활 시작, (사계절)한국생활사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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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암사동 움집터 |
<신석기>서울 암사동움집터
신석기시대는 도구가 발달하고 농경이 시작되자 주거 생활도 개선되어 갔다.
집터는 대개 움집 자리로 바닥은 원형이나 모서리가 둥근 네모꼴이다. 움집의 중앙에는 불씨를 보간하거나 취사와 난방을 위한 화덕이 위치하였다.
햇빛을 많이 받는 남쪽으로 출입문을 내었으며, 화덕이나 출입문 옆에는 저장 구덩을 만들어 식량이나 도구를 저장하였다. 집터의 규모는 4~5명 정도의 한 가족이 살기에 알맞은 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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뗀석기, 구석기 |
<구석기>뗀석기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뼈나 뿔로 만든 뼈도구와 함게 뗀석기를 가지고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생활을 하였다.
처음에는 찍개 같은 도구를 가지고 여러가지 용도로 썼으나 점차 뗀석기를 제작하는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용도가 뚜렷한 작은 석기들을 만들게 되었다.
이 가운데 주먹도끼, 찍개,팔매돌 등은 사냥 도구이고, 긁개, 밀개 등은 대표적인 조리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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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도끼,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전곡리, 구석기 대표 유적지 |
<구석기>연천군전곡리유적 발굴 모습
1978년 4월 미국병사 그렉보웬이 한탄강 주변에서 석영질 석기를 발견하여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1차('1979.3.26-4.13), 2차(1979.10.15-10.30)에 걸쳐 서울대, 영남대, 경희대, 건국대 국립 중앙 박물관 등 5개팀으로 구성하여 조사 발굴하였다
그 결과, 지하 30-120cm 점토층에서 양면핵석기를 발견하여 동 지역이 구석기시대 직립원인(약50만년 전에 생존, 1981년 자바섬에서 발견) 또는 네안데르탈인(제4 빙하기에 생존, 1857년 네안데르탈회석동에서 발견)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11차 발굴을 마친 상태에 있다.
발견된 유물로는 양면핵석기, 외날찍개, 쌍날찍개, 찌르게, 긁게, 새김돌, 망치, 석핵, 나무껍질, 화분, 목탄 등 2,600여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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