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코 13,33-37
+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오늘 미사는 운영자 미사로 토요일이지만 대림 제1주일 토요 주일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을 거예요.
‘신부님, 왜 입술이 터지셨어요?’
감기 걸려서 터진 것도 아니고, 누구랑 싸워서 얻어맞아 터진 것도 아니고, 피곤해서 터진 것도 아니에요.
립밤을 발라도 터졌어요.
그 이유는?
‘사람이 이런 이유로도 입술이 터질 수 있구나’ 생각이 들었는데, 누구를 너무너무 그리워한 거예요.
너무너무 보고 싶으니까 그 열기가 입술로 올라가 터지는 거예요.
그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였느냐? 운영자들. (웃음과 박수)
나 지금 굉장히 닭살이 돋아요. 안 하던 말을 하니.
올해 마지막 립서비스(lip service)했습니다.
혹시 오늘 아침 토요일 강론 올렸는데 들어보셨나요?
거기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 무엇이었나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죠.
똑같은 단어가 나와요.
‘늘 깨어 기도하시오’
‘늘 깨어서 기도해라.’
토요일 강론에 그랬죠.
자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졸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혼수상태가 되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 기도해라.’
그런데 그 앞에 무슨 말이 붙어요? ‘늘’
기분 내킬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급할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쉬울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 안 하면 뭔가 손해 보는 것 같아 할 수 없이 형식적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늘 깨어 기도하여라.’
그것이 토요일 복음의 핵심이었죠.
그런데 오늘 복음에 보면 ‘깨어’라는 말이 또 나와요.
‘깨어서 지켜라.’, ‘깨어 있어라.’
연중 시기 마지막 날의 토요일 복음과 대림 첫 주일의 오늘 복음은 굉장히 밀접해요.
‘늘 깨어 기도하라’는 말을 풀이하면 ‘늘 깨어 있어라.’ ‘깨어 지켜라.’입니다.
오늘 복음에 ‘깨어 지켜라.’라는 말이 한 번 나오고, ‘늘 깨어 있어라.’라는 말이 세 번 나와요.
그러면은 ‘늘 깨어 지켜라.’ 했는데 무엇을 지켜야 합니까?
늘 깨어서 내가 지켜야 할 대상이 무엇이냐는 말입니다.
그래요, 첫 번째 ‘신앙’.
두 번째 ‘십자가’.
세 번째, 내가 피정 때마다 즐겨하는 주제, ‘향주삼덕’
네 번째 ‘가족들의 영혼 구령’
가족들의 영혼 구령에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로사리오기도예요. 아멘
루르드에 발현하신 성모님은 벨라뎃다 성녀에게 어떤 말씀 하셨다고 했죠?
‘묵주 한 단을 더 만들어 그 단은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지 말고 너 자신의 영혼 구원을 위해 바쳐라.’
루르드 성모님의 팔에는 6단 묵주가 걸려 있죠.
그러면 세 번 나오는 ‘깨어 있어라.’
왜 깨어 있어야 하나요? 뭘 막기 위해.
무엇이 나한테 못 들어오게 깨어 있어 막아야 하는 것인가?
깨어서 내가 그놈을 똑바로 보면서 막아내야 할 것을 말해보세요.
첫 번째 마귀.
두 번째는 우상숭배.
우상은 수천 년 전 구약에는 금송아지였지만, 지금 우상은 그것이 아니죠.
돈이 우상 될 수도 있고, 때로는 자식이 우상이 될 수도 있어요.
우상은 뭐라 했죠?
하느님보다 윗자리에 올라가 있는 것은 다 우상이에요.
내 취미 생활이 하느님보다 윗자리에 있을 때 그것은 취미가 아니라 우상숭배를 하는 거죠.
어떤 이에게는 술이 우상이 될 수도 있죠. 술에서 헤어나지 못해.
또 어떤 사람은 음란한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해.
그것은 음란을 우상 숭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상은 하느님보다 윗자리에 있는 것인데,
마귀는 너무너무 교묘하고 교활하게 하느님보다 윗자리 놓고 내가 지배당하게 만들어 놓아요.
나도 보면 우상숭배에 빠져 한 주일 내내 하느님 생각보다 내 일,
또 나에게 상처 줬던 것 끌어안고 ‘그 인간 정말 못 됐어.’ 하면서 헤어나질 못할 때도 있죠.
누가 나에게 한 말 한마디에 평화가 다 깨져버리기도 하죠.
기도하면서 손에 묵주만 돌아갈 뿐 머릿속에서는 오늘 받은 모욕이 나를 지배하죠.
세 번째 교만, 어느 때는 내 교만이 하늘을 찔러.
그다음 네 번째는 미움, 다섯 번째는 무관심.
자꾸 이 세상은 우리에게 ‘너 혼자 잘살면 돼’하며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하게 만들어요,
에고이스트가 되게 하죠.
그리고 제일 중요한 여섯 번째, 영혼이 그 병에 못 걸리게 해야 한다고 했죠?
‘불감증’
우리가 천국을 가는데 우리 발목을 잡는 삼대 불감증이 뭐죠?
말씀의 불감증, 은총의 불감증, 죄의 불감증.
이런 것들이 못 들어오게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늘 깨어 기도해야 할 것은 깨어서 지켜야 할 것과 깨어서 막아야 할 것으로 구분되죠.
이제 정리가 되죠?
이제 우리 전례력으로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죠,
지금은 토요일이니 내일부터 전례력으로는 새해죠.
그런데 가해입니까, 나해입니까, 다해입니까? 나해.
우리 교회는 가나다가 반복되면서 복음과 독서가 바뀌죠.
그래서 작년 대림 제1주의 복음과 올해 것이 다르죠.
지난 1년 동안 우리는 깨어서 지키고 살았는가를 뒤돌아봐야 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깨어서 그놈들이 못 들어오게 막고 살았는가 되돌아봐야죠.
그런데 여러분들 온전히 깨어서 지키지 못하고 살았잖아요?
그리고 깨어서 제대로 막아보지도 못하고 마귀, 우상숭배, 교만, 미움, 무관심, 3대 불감증의 노예가 되어 살 때가 많았죠.
어찌 보면 매일매일 깨어 지킨 날 보다 지키지 못한 날도 더 많았고요.
깨어서 그놈들을 막아낸 날보다 못 막아낸 날이 더 많았을지도 몰라요.
지난 한 해 돌아보니 내가 지키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아.
어둠이 들어오게끔 무방비 상태로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그놈의 노예가 되어 산 적이 많았어.
하지만 매일매일 실패했어도 깨어 있지 못 했어도 중요한 것은 뭐냐?
‘실망해서는 안 된다. 다시 일어나야 한다.’
지금 말하는 것들은 여러분들이 대림 시기에 준비해야 하는 판공성사를 준비시키는 강론입니다.
한 수녀님이 힐링하우스에서 며칠을 보내셨다 했죠?
그분이 ‘신부님, 신자들에게 성사 보라 하면 볼 게 없다 하는데 뭐라 이야기해 줘야 해요?’고 물으시면서 막막하다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답했습니다.
‘일단 ‘죄’가 무엇인지 모르기에 그런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먼저 소죄와 대죄의 정체와 경계를 알려주셔야 합니다.
나는 본당에 있을 때 ‘양심 성찰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 주보에 껴서 주었죠.
집에 가지고 가서 일주일 동안 보면서 옆에 표시했다 성사 보라 했죠.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이고 못 들어오게 막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40여 개 적어드렸죠.
1년에 딱 두 번 보는 성사를 준비도 안 하고 들어가게 하지 않는 것도 본당 신부의 의무죠.
연중 시기의 제일 마지막 날 복음 ‘늘 깨어 기도하여라’와 연결되어 ‘늘 깨어 지켜라.’ ‘늘 깨어 있어라.’
우리가 기도하면서 생각해야 할 것은 ‘내가 얼마나 제대로 지키고 살았는가,
또 늘 깨어서 최선을 다해 막고 살았는가, 내 영혼이 오염되지 않도록 그 어둠에 지배당하지 않게 살았는가?’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판공성사 준비입니다.
판공이라는 말의 뜻은 힘쓸 판(判), 공론 공(功), 즉 힘써서 공로를 닦는 시기가 판공 시기입니다.
온 힘을 다해 내 영혼 안의 어둠이 무엇이고 내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은 안 한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죠.
성찰에는 소극적 성찰, 적극적 성찰 두 가지가 있어요.
적극적인 성찰은 마땅히 해야 할 일 안 하고 산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으로 아주 중요해요.
마땅히 베풀어야 할 선을 베풀지 못하고 산 것이 무엇인가.
지난 1년 뒤돌아보니 도둑질한 적도 없고 간음한 적도 없고
주일미사 빠진 적도 없어 별로 죄지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소극적 성찰인 거죠.
부자가 왜 지옥에 갔어요? 무관심 때문에.
부자는 지나다니며 라자로를 때린 적도 없고 발로 걷어찬 적도 없어요.
손 닦고 버린 식빵 쪼가리 주워 먹였죠.
그러면서 부자는 내 덕에 라자로가 산다고 했죠.
하지만 죽고 난 후 결과는 전혀 달랐죠?
부자는 지옥에 떨어지고, 라자로는 아브라함 할아버지 품 안에 안겼죠.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는 악행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적극적인 선을 못 베풀었기 때문에 그래요.
적극적인 선을 못 베푸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만큼 주님이 보시기에는 큰 죄입니다.
내가 적극적으로 선을 베풀고 살았나?
뒤돌아보면 누구를 도와준 적이 한 번도 없네.
내게 도움을 청할 때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기쁘게 내 것을 나누어 준 적이 없네.
이런 것이 적극적인 회개로 성사 거리죠.
소극적인 회개는 생각을 조금만 해도 바로 알아요.
간음했으면 그놈 양심 괴로운 것이고 도둑질했으면 괴로운 거죠.
영혼에 흠집이 이미 나 있어 깊이 생각 안 해도 바로 회개할 수 있는 내용이에요.
하지만 무관심의 죄 이런 것은 죄가 아닌 것처럼 느껴져요.
마귀가 계속 ‘너만 잘 살면 돼, 너 죄지은 것 없잖아, 십계명 어긴 것도 없고 성사 볼 것도 없네’ 속삭입니다.
그렇지만 깨어서 지켜야 할 것을 생각해 보면 지키지 못한 것들이 많죠.
이제 교우분들은 본당에서 성사를 보셔야 할 텐데 ‘뭘 성사 보나?’ 그렇게 생각하실 것이 아니라,
제대로 잘 성찰하셔야 합니다.
지금 말씀드린 것들을 이번 판공뿐 아니라 성사 보실 때마다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깨어서 지키고 살아야 하는 것을 얼마나 지키고 살았는가,
그리고 내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막아야 할 것을 못 막고 산 것이 무엇인가를 늘 묵상하도록 합시다.
아멘
♣2023년 대림 제1주일 (12/3)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출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신부님 하늘호수 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