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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경표(山經表)
우리가 산을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어보는 이름 산경표와 산자 분수령(山自分水嶺)이다
한국의 전통 지리사상은 천인합일의 사상이며 단군신화는 태백산, 고구려의 해모수는 웅신산,신라의 박혁거세는 양산.가야국의 김수로왕 구지산에서
나라를 열었다고 전한다.
신화에서 시조는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을 다스리고 죽어서는 다시 산신으로 기록되어 마을을 수호하는 수호신으로 전하는데 산신은 삼국시대부터 명산대천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으로 잘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산들중 조상되는 조종산(祖宗山은 어디일까? 바로 백두산이며 백두산에서 조선 왕조가 자리하는 한양으로 산줄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조선 영조때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백두산은 우리나라 산맥의 조종(祖宗)이다, 대체로 큰산맥이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중간에 태백산이 있고
지리산에서 끝난다고 적었다.
그리고 영조때 이중환의 "택리지".팔도총론에 중국의 서쪽 곤륜산에서 시작되는 산줄기가 동쪽으로 달려 백두산이 되었고 조선 산맥의 머리가 되었다고 했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산을 중심으로 체계를 인식하는 산줄기 계통을 족보처럼 기술한 18세기의 걸작인 산경표(山經表)
여암 신경준의 산수고(山水考)를 기초로 만들어진 산경표는 조선의 산줄기 체계를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대간,1정간,그리고 물줄기를 중심으로 13정맥과 15개의
산줄기로 정리 하였다.
산경표 체계는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지리산에 이르기까지 백두대간을 근간으로 하고,산줄기가 북에서 남으로 가지를 치면서 각 군현의 마을과 중심되는곳에
이르러 멈춘다는것을 족보처럼 정리한 것이다.
특히 강과 과련하여 10대강의 산줄기 이름을 정한것은 산줄기의 분수령이 되고, 산이 곧 강을 이루는 수원이 되며, 이에 따라 마을과 유역권이 형성된다는
생각을 나타낸 것으로 정리했다.
산꾼이라면 누구나 여행 떠나듯 한번은 다녀온다는 백두대간길
힘들고 외로운 백두대간길로 끌어 당기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동안 남한 구간 금강산 일만 이천봉 끝자락 신선봉을 기점으로 설악,오대산,태백산,그리고 철쭉나라 소백을 지나 죽령에 도착 했으니
가야할길에 그려지는건 반갑다며 뿌연 장막이 쳐준 안개만 보일뿐 도솔천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음속에 그끝자락에 백두가 있고 지리가 있음을 알뿐이다
죽령에 안개비가 내리고 날씨는 조금 차가운 편이다.
걸어야 하니 시작 하겠지만 도솔봉은 거리에 비해 다소 높아 초보 산꾼에게는 약간 버거운 존재이니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는편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대간길
죽령에서 오르다 보면 만나게 되는 도솔봉
수미산 꼭대기 도솔천에 살고 계신다는 미륵보살을 생각해보며
여름의 문턱에서 햇볕이 쨍쨍 내리 쬐거나, 한겨울 눈이 쌓여 있다면 몇발짝 못가서 얼반 죽겠다며 넋두리 하겠지만
지금은 촉촉한 산길이 참좋다
길 위에서 천연의 고운색을 나누라면 연초록과 뿌연 회색빛으로 나눠야 할것 같다.
기나긴 겨울을 이겨내고 땅속에서 움트던 초록 생명과 아직은 수즙은듯 돌팔이 산꾼에게 굳이 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결계을 쳐놓았다
언제까지 이런 모습으로 대간길을 보여줄지 그동안 백두대간을 진행하면서 봐서는 안될 무언가가 있는지 안개로 장막을
쳐놓은 곳을 많이 지났는데 오늘도 역시나 안개로 가득하다.
촉촉하게 빗물 머금은 나뭇들 사이로 안개가 스치듯 지나가며 한사람 겨우 지나갈 정도의 길이 곱게 이어진다.
그동안 강원도 감자골을 지났으니 보리문둥이가 살고 있다는 경상도와 "아부지 돌굴러가유!~~~의 충청도를 가르는 땅에서 걸음해야 한다.
앙상하던 나무가지에 초록빛으로 물들이기에 높은곳인가
새벽부터 해거름까지 있어야 할 태양은 어디메가고
태양은 오늘 많큼은 제구실을 못하고 안개에 자리를 내 주었다.
잠시 앞서 가시는 깽이님
도솔봉 가는길에
산이 높거나 낮거나 우리는 언제나 산을 우러러 본다.
그런데 오늘은 우러러 볼 산이 보이지 않으니
잠시 서서 바람이 불어 안개가 저멀리 사라지길 바라지만
망부석처럼 기다리며 안개 바다만 바라볼 뿐이다.
잠시 보여지는 조망
한줄기 빛이 보여 사람사는 풍경을 보여주나 싶었는데
그건 꿈이런가 하노라!~
죽령에서 가파른 경사면을 지나 전망대 바위에 올라 도솔봉을 앞에두고
보이지 않지만 영주로 흐르는 한천은 아름다운 무섬마을에서 내성천으로
고개를 돌리면 단양의 사인암을 지나 절대비경의 동강따라 흘러온 남한강을 그려본다
도솔봉 가는길에 잠시 해가 보일듯 하니
한겨울에는 따뜻한 태양을 흠모 하였고,
한여름에는 태양을 피해 다녔지만 지금은 태양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사랑하는 님을 대하듯 만나고 싶었지만
님은 고개만 살짝 내밀고 "나 여기 없다"며 뿌연 안개 사이로 숨는다
수미산 꼭대기 도솔천에서 중생을 제도 하신다는 미륵부처님이 사시는 그곳의 풍경이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땀 흘린 만큼 높이 올라와 먼곳을 보는 즐거움
힘겹게 올라와 정상에 서서 골골이 이어지는 능선들을 보며 감탄사를 크게 내지를 준비를 하고 왔건만
기댈곳 없는곳에 서있는 느낌이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도솔봉에서
초록이 반기고, 안개가 반기고,바람이 반기는 대간길이다.
도솔봉에서
물길따라 산기슭마다 정겹게 기대어 사는 백두대간 소백산 자락의 단양과 풍기 사람들
소백산에는 도솔봉-연화봉- 비로봉이 있어 소백산 자체가 신앙이며 종교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능선따라 곱게 이어지는 철쭉과 남쪽으로 풍기 인삼과 사과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소백에서 흐르는 서천의 맑은물도 빼놓을 수 없는곳이며
서쪽 단양지방은 월악산과 인접해 있어 아름다운 계곡의 맑은물은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곳이 많은곳이다
묘적봉 가는길에
우리에게는 편안한 길이지만 흙먼지가 날리는 산길에 산이 내는 고단함 소리도 함께 생각해야 할길이다.
묘적봉에서
묘적령
이곳 남쪽 계곡에서 한천이 발원하며 한천은 예천땅을 오롯이 흘러가는 물이다.
맑고 깨끗한 한천은 묘적령 남쪽에서 발원해 경북 예천땅을 지나니 예천은 인심이 좋고 무엇보다 충과 효의 땅이다.
충(忠)이라면 당연 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 장군을 구명하고자 목숨걸고"신구차 상소문"을 선조 임금께 올린 좌의정 약포 "정탁"선생을 배출한 곳이다,
이순신 장군은 중국 천하를 삼분한 제갈 공명을 능가하는 뛰어난 전략가이자 최고의 지략가 이며,장군의 명언중"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가 생각난다.
그리고,명심보감 효(孝)행편에 실린 하늘도 감동한 효자 도시복의 생가가 있는 역사가 깊은 땅이다.
효자 도시복은 예천군 용두리에 살았으며 조선 철종때 일이다
살아생전 부모 모시는일에 최선을 다 했으며 양친이 돌아 가시자 시묘살이 3년을 극진히 하였으니
임금이 도시복의 행적을 명심보감이 실어 생활의 지침서로 사용할 할정도 였다고 한다.
명심보감 효행편에 수록된
소리개가 날아준 물고기
호랑이 등을 타고 여름에 얻어온 홍시
한겨울의 수박
엄동설한에 잡은 잉어
호랑이와 시묘살이 3년이 수록되어있다
대간길이 좋을씨구
솔봉으로 가는길에 고운 연철쭉이 자리하며
QLED 100배 이상의 화질로 아름다운 모습이 연신 이어지지만 노안이라 ...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을것 같은 산길에 뜻밖의 배경이 반겨주니 가는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무릅치며 아싸!~라는 한마디 해주니
곁에 있던 깽이님은 이런 고운 모습이나 아름드리 큰 나무들 보면 "그저 고맙습니다" 며 자신의 마음을 자연에 들려준다.
떡고물 같은 발자욱을 남기며 지나는길에 흙먼지 날리지 않으니 좋고
촉촉한 안개가 마냥 싫지만은 않다
솔봉에 도착
오래된 고갯길에
아마도 오래전 단양군 대강면 사람들과 예천군 초항리 사람들이 넘어가던 고갯마루인것 같다.
산길을 걸으며 크고 작은 재나 서낭당에 돌무더기나 신목(神木) 혹은 장승이 서 있지만 이곳은 허물어진 돌무더기만 있다.
서낭당 돌무더기에 돌 세개를 얹고 세번 절 한다음 침을 세번 뱉으면 재수가 좋다는 속설이 있지만
비상시에 산짐승들에게 돌을 던져 자신을 보호 하려는 용도도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다.
가자
아프리카에 사는 미어캣이 대간길에 이사를 왔나
두리번 두리번 사방팔방 살펴 보시는 깽님
높은곳에 올라봐도 조망은 없을텐데
순간 순간 바람이 불때마다 조망이 나올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효의 고장 예천땅 자구산 방향으로 보며
미어캣 망부석이 되어 가는분
고만하고 내려오소
예천 초항리와 단양 대강면을 이어주던 고갯길
싸리재에서
"논산사는 깽이가 그네탄다" 엿쭈어라
깽이님의 대간은 그저 신나게 즐기는것뿐이어라
누구 속터지는꼴 보고 싶은지...
가야할 대간길과 대간길에서 예천군 효자면으로 이어지는 가재봉과 우측으로 대간길에 한성질하는 문복대 모습이 보인다.
묘적령에서 용두머리까지 흐르는 물은 모두 효자면을 지나 예천땅으로 흐르는 동안 산을 닮아 어느 한곳에 치우치지 않고 맑게 흐른다.
가야할 대간길 문복대
예천땅은 빗물에 겉껍질이 검은색을 띤 잣나무가 자라고 단양땅은 푸르름 자체다
사는곳과 기후가 다르니 풍경또한 다른모습
예천땅 효자면과 단양땅 대강면에도 사과가 나니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사과겠다
밥먹고 갑시다.
이런날은 불피워도 되겠지만
산에서는 가급적 불피우면 안되죠
편의점에서 사온 햇반 하나씩
잠시 앉아 쉬다보니 바람은 불고 추워서 갈길 간다.
좌측 멀리 한천 좌측 지맥길인 부용산이고
이곳에서 흐르는 물은 모두 예천앞으로 흐르는 맑은 한천이다.
앞의 마을은 효자면 용두리
용두리 황태 덕장은 진부령의 황태 덕장처럼 유명하지 않으니 아는 사람또한 그렇게 많지 않을것 같다.
진부령 덕장에 사는 명태가 저수령 아래 용두리 덕장에 왔다가 얼어 죽겠다고 난리를 쳤다는 풍문은 사실이며?
"진부령 추위는 추위도 아니다"는 소백산 추위
그속에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는 황태,꼬들 꼬들한 맛은 진부령표 황태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으니 술 마시고 난 다음날
용두리표 황태로 속풀이 해보는건 어떨까
가는이 잘 ~가시게
저수령에서
조선시대 세조의 왕위찬탈에 세상을 등지고 온 산하를 떠돌던 생육신 "김시습" 선생이나,
30년간 전국 팔도를 두루 돌아 다니신 택리지의 "이중환"선생을 만난다면 이런 모습일까?
산이란 빨리 가는게 목적이 아니며
그것으로 순위를 정하는것도 아니며
대간길 몇구간으로 했느냐로 족보를 만들지 않으며
인간의 허망한 잣대로 산을 논하지 않는다는 논산 처자 깽이님
그덕에 내가 죽어 난다는것도 좀 아셨으면 좋겠소
저수령에서 산나물 뜯으러 오신 어느 노부부가 주신 참외 하나 얻어서 먹고
그동안 강길을 걷고 해안길을 걸으며 산에서 참외 구하거나 물가에서 삼겹살 구하는 방법을 연구 했으니
산에서 먹을것 구하는 깨알같은 방법을 깽이님께 가르쳐 드리고
초록으로 물든 산길에 산새소리 좋고
크고 작은 나무들마다 서로가 나름의 품위와 격조를 내세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문복대로 오른다
오르고 내리고 힘들게 올라온 문복대
산이 있어 사람이 모여 드는건지 모여들다 보니 그곁에 산이 있는건지
산이 스스로 사람곁에 있으며 사람들을 보듬어 주는건지 ...
좌측 멀리 산정에 어림호수가 있는 곳이고 가운데 매봉 그옆에 용문산이다(이곳 문복대에서 직선거리로 약 8KM 지점)
용문산 아래 용문사라는 절이 있으며 그곳 일주문 현판에는 "소백산 용문사"라 써있다.
신라시대때 저곳 일때가 모두 소백산 자락 있었으니 소백산 자락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용문산 아래 용문사 일주문
통일 신라시대 후기때 만들어진 도선대사의 도선비기에는 비보사찰(나라의 국운을 기원하는 사찰)이 전국에 3천 800개가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래서 그런지 신라 992년, 고려와 조선은 각각 약 500년 안팍이며, 우리보다 큰 나라였던 중국의 왕조 교체 주기는 약 200년 정도였으니
신라가 천년의 역사를 간직할 수 있었던건 풍수로 좋은자리에 세워진 전국의 수많은 비보사찰 덕분도 있었겠지만
서라벌 남쪽 경주 남산에 정과 망치를 들고 올라 만들어 놓은 천년 미소 118개의 불상과 97개의 석탑이 신라 천년의 시작과 끝이 었을지 모를 일이다.
저수령에서 올라오면 좌측으로 예천군 효자면의 용머리산인 용두산이 있으며
낙동강 수계인 내성천으로 흘러드는 맑은물인 한천과 금천을 가르는 곳이기도 하다
남해에 살던 용이 비린내 나는 바다와 물고기가 싫다며 맑은물따라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내성천 인근의 예천군 용궁면에 터 잡고살고 있으며
그곳 용궁에는 아홉용이 살고 있다
용궁에 살고 있는 용은 백두대간 소백산 끝자락에 용문(龍門)을 만들고 1년에 한번 산길따라 올라 백두 천지에 몸을 담그고 다시 용궁으로 돌아간다고 한다.(믿거나 말거나)
어깨 빠질것 같은 배낭 무게
문경시 동로면, 하늘을 떠 받드는 산이란뜻의 천주봉과 그옆으로 공덕산이 우람하게 서있다.저곳으로 흐르는 물은 대미산 눈물샘에서 발원하는 금천이며
금천은 문경땅으로 흘러들어 예천군 삼강 주막 직전에서 내성천과 합류하는 물이다.
물이란 그저 아래로 흐르니
사람도 물처럼 닮아 순리대로 살면 될것 같다.
좌측으로 용문산과 그뒤로 국사봉이 있고 그넘어 예천 비행장이 있고 가운데 뽀족한 산은 천주산이고 그옆으로 공덕산
공덕산 넘어 운달산에서 이어지는 단산과 선암산이 보인다.
좌측 맨뒤로 흘러가는 물은 모두 예천의 한천이며, 바로 앞으로 흐르는 물은 금천이다
뽀족한 산넘어 흐르는 물은 대하리천이며 흘러 가다가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에서 금천에 안기고
운달산-단산-선암산 넘어 흐르는 물은 백두대간 마패봉 인근에서 발원하는 조령천 수계이며 조령천은 흘러 가다가 속리산
천왕봉 북쪽에서 흘러온 영강과 만나게 된다.
흙먼지 없으며 자연이 자연다운곳을 지나
벌재에 공단 직원들은 보이지 않으나 대간길에서 만날까 염려되어 문경시 동로면으로 내려가 식당에 들러 저녁부터 먹고
쉬다가 밤 10시 무렵에 황장산으로 오르기로 한다
커다란 배낭은 차안에 두고 조금 가벼운 배낭으로 바꾸고 배낭 안에는 물과 음료수 8개를 넣어 간다.
이제부터 월악산 구간이다.
월악산은 중원으로 가는 길목이며 미륵부처가 사신다는 미래의 땅이다.
어두운 밤 벌재에서 산길따라 오르면 동로면 안생달 금천 계곡에서 불어오는 막힘없는 바람이 참 좋은곳이다.
주간이라면 두려움 가득안고 보는 탁트인 조망이지만 밤이라 볼건 없고 그저 앞만보며 걷는 잠못드는 밤길이다
안생달 마을을 밝히는 희미한 가로등과 어느 노부부가 정답게 살것같은 독가촌의 전기불이 더욱 외롭게 보일 무렵
잠자는 바위를 깨우며 서로의 도움으로 빛을내는 청아한 별빛따라 잠시 바위에 걸터 앉아 망중한을 느껴 보기도 한다
가장 중심에 있으며 가장 밝은별 작은곰을 지키기 위해 카시오 여왕과 큰곰이 호위무사처럼 지켜주는곳
달의 순환 따라 보이는것도 있겠지만 지금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빛을내는 밤하늘의 고요한 별들 세상이다.
다소 위험해 보이는 산길따라 오면 황장산에 도착한다.
안개는 자욱하니 이런날 태양에 대한 열등감을 간직한 차가운 달빛이라도 조금 있어 준다면 좋으련만
누군가 앞에서 코 베어 가도 모를판이니 이곳은 남자가 오면 안되는 음기 강한 여신의 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대간길도 어느덧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 시작을 알리는 표지석을 지나
본격적인 월악 구간인가
실질적인 월악산 최고 주봉이지만 언제나 순위에 밀리는 대미산에서 문수봉 메두막봉-한여름에도 눈이 있다는 하설산으로 이어지는 분기점에 도착한다.
대미산 가는길에 만나는 눈물샘은 금천 발원지며 금천은 문경시 산양면-영순면 달지리에서 내성천에 합류해서 약 1,2km 더흘러가 낙동강에 합류한다.
월악산 국립공원 최고 꼭지점의 맹주이건만 예사롭지 않은 월악 영봉의 기운에 너무나 왜소해 보이는 대미산
국립공원이라는 이름아래 비지정으로 묶여 일반 산꾼들이 찾기에는 다소 부담스런 대미산
찾는이도 뜸하지만 단속되면 범법자로 처벌되기에 언제나 조용하다 그리고 특별하게 내세울것 하나 없는곳이라 조용해서 좋은데
독수리급의 파리만 윙윙 거리며 반긴다
소백이나 월악이나 뿌연 안개만 실컷보고 가라며
월악속으로 가는길에
월악산은 파란만장한 산이다.
삼국시대때는 월형산이었으니 고구려 70년, 백제400년,신라 390년 각각 한번씩 주인이 되었다가
중원을 차지하는 자가 삼국을 통일한다는 말에 그 중심의 산이 되기도 했던곳이다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후 약 천년이 지난뒤 고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월형산에서 월악산으로 바뀌었다.
구름이 구렁이 담넘어 가듯
멀리 대간길에서 벗어난 월악 영봉이 보인다.
높이 150미터 둘레 약 4km에 이르는 영봉은 보는이로 하여 경외감을 자극하며 당찬 모습으로 일인자임을 스스로 나타낸다
달(月)의 전설을 만든어낸 덕주골의 마애불과 미륵리의 미륵입상은 패망의 전설을 품은곳이기에 더욱 신령스런 곳이기도 하고
계곡 안으로 내려가면 천년 고찰 신륵사가 자리한다.
월악으로 가는길에 오래된 성터를 지난다.
삼국이 월악을 차지하던날 신라와 백제가 각각 400년 정도로 월악을 차지 했으니 성터하나 없다는건 말도 안될것 같다.
신라가 최초로 백두대간을 넘어 중원으로 지난던 하늘재가 멀리 않은곳에 있으며
안동 양반이신 추산대장님이 마중 오신다니 고운 철쭉이라도 한움큼 꺽어 들고 마중이라도 가야하나 생각하니
발길이 급해진다.
지나온 대미산 방향
대미산은 앞에 보이는 산넘어 자리한다.
밧줄 구간에
손가락 굵기의 줄 하나에 의지해서 빗물 머금은 미끄러운 바위를 올라
앞으로 포함산이 보이고 멀리 주흘산과 이어지는 대간길이 지척이다
계곡따라 이어지는 마을은 문경시 동로면 관음리 마을이고 하늘재가 보일듯 말듯하다.
이틀간 보이지 않을것 같던 조망이 이곳에서 보이니...
조금 더 가다보니 추산대장님이 슬리퍼 신고 편안하게 오신다 반갑게 인사 나누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마골치 국공 단속과 미륵대원지 사진이 필요해 깽이님을 추산 대장님에 부탁 드리고
먼저 발길을 돌린다.
마골치에서
배낭에 든 음료수 꺼내서 뒤에 오시는 분들께 전해 드리고
아무도 없는 포함산 정상에서
백두대간길에 직접 오르고 내리는 멋진산들은 한집안의 든든한 장남이라면 월악 영봉은 성공한 둘째 아들로 보면 되겠다.
당차고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빈틈없이 꽉찬 느낌이 좋은산.
중원에 달이뜨고 강물에 월악 영봉이 비추는날 다시 돌아 온다던 메세지를 남기고 금강으로 들어간 마의태자
충주호에 물이 가득하여 영봉을 비추지만 금강으로 떠난 마의태자는 안오는건지 못오는건지
그러고 보니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 어머니 정견모주의 10세손이며 대가야국의 마지막 왕자인 월광태자와 신라의 마지막 태자 마의태자
두분 다 비운의 왕자들인셈이다.
가진게 많았다가 하루 아침에 모두 잃었으니 얼마나 속터지고 허전했을지
우리야 잃을게 없으니 편해서 좋긴한데
월악산 국립공원에 속하는 하늘재가 보이고 좌측은 현세의 세상에서 중생을 구원한다는 관음리 마을이고
우측은 미래의 세상에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마을이다.
달과 산이 자리하는곳에서 길을 물으니 ...산이 말한다 여기는 중원땅이라고
서로가 변방이던 곳에서 신라가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석성성터를 지나
옛날 이곳에서 성을 쌓던 사람들이 지금의 대간꾼들을 본다면 분명 돌하나 옮겨주고 가라고 하셨을것 같다.
너무나 고단하게 돌 작업 하셨을것은 모습을 그려보며 횡성 수설...
하늘재에 도착해서 신라 제8대 아달라 왕이 중원으로 가기위해 만들었다는 최초의 도로로 내려가 미륵 대원지로 향한다.
한반도 최초의 도로이자 고갯길인 하늘재는 경상도 땅은 현세의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 하시는 관음세상이며
충주땅은 내세의 소망을 비는 미륵 세상이다.
충추 미륵리 원(院)터
하늘재에서 비포장 길로 2km가량 내려서면 충주 미륵리 원터가 나타난다. 지리적 중요성으로 원(院)을 별도로 세워 운영한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때 조령이 개통되면서 이곳은 점차 그기능을 상실해 간곳이다.
석조귀부
거북등에 올라갈 석비는 몇년간 인근땅을 발굴했지만 안나옴
학자들은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하지만
찾다가 없으니 처음부터 없다는 결론은 너무 성급한건 아닌지
거북등에는 작은 돌거북이 두마리가 있는데 석공이 거북을 만들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 생각에 정과 망치로 거북 새끼를 앙징맞게 그려 넣었던것같다
높이 10미터의 미륵부처
몸통은 천년 세월을 어쩌지 못했지만 얼굴은 그옛날 그대로다
날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인근 개울가에 내려가 세수를 한다는 전설도 있고
마의태자가 만든것이라고 하는데 석불중 유일하게 북쪽의 북두칠성을 보고있는 석불이라 한다
달이뜨면 영봉에 걸리다는 월악산 덕주골의 마애불은 덕주 공주의 얼굴이며
미륵리의 미륵석불은 마의태자 상으로 하나는 남향, 하나는 북향으로 오누이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상이다
다시 하늘재로 올라오니 깽이님과 추산대장님이 최종 하산을 하시고 기다리고 계신다.
두분 고생 많으셨구요
이제 집으로 갑시다.
하늘재 고개만 넘으면 검은 아스팔트가 깔려있는 현세의 세상이 기다리는 관음리 마을이며
우리가 사는곳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중원으로 가는 길목에서
다음 구간은 조선 선조때 최고의 무장(武將)이라던 신립 장군이 험난한 조령을 버리고
논바닥 말타기로 조선군 전원 몰살하게 만든 탄금대 사연과 아름다운 조령을 넘어 갑니다.
추산 대장님께서 가지고 오신 소머리 곰탕으로 삼시세끼 한꺼번에 해결하는 신공을 보여주고
그동안 공부삼아 몇번 찾았던 세계 유네스코에 지정된 예천 용문면 "소백산 용문사"로 향한다.
깽님 고생 많으셨구요
추산 대장님 감사했습니다.
첫댓글 황장산에서 그추운 대간길에서 얼굴동상 걸려 1달동안 고생했든걸로 방장님글로 그날의추억을 돌려봅니다~^^두분 고생하셨습니다~^^
다음에 대간 하신다면 꼭 여름에 하세요
뜨끈합니다
안개 자욱한날 볼거리도 없고 축축한 안개비 맞으면 걷는 모습 넘 처량해 보이네요~~!
이날 우리도 이틀 안개와 비로 고생 좀 했는데,,, 오늘 정맥길도 나의 건강 불량 상태로
39km 지점에서 종료 하고 비 오기전에 산행 마무리를 하고 올라 왔습니다,,,,
젊은 친구들에 배려로 다음 구간에 107km 정도 걷게 되었습니다, 화성이라는 아름다운 ☆ㅇㅅ 老 松
정맥 이번주에 또 가시죠
가다보면 끝나니 열심히 걸으십시요
이번주 다녀 가셨군요
버리미기재까지 진행하실것으로 예상했는데요 하늘재에서 접으셨군요.
지난번 부재중 늦은 시간이라 못드리고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연락도 드리지 못했내요. 저는 덕유권을 걸음하내요.
시간내서 한번 찾아 뵙겠습니다.
건강과 안전산행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코로나때문에 몇달간 쉬는틈에 혼자서 휘리릭 가셨군요
대간길에 한번 뵙나했더니 안전산행 하시기 바랍니다
안개에 가려 조망은 없어도 몽혼한 길을 걷는 느낌이 색다르게 느껴집니다
두분을 보니 어느날 훌쩍 대간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주간에는 안개 야간에도 안개
보이는건 없었지만 그래도 느끼면서 걸었습니다.
이제 속리로 가는초입이니 몇번 더가면 덕유에 설것 같습니다.
담번에는 조우하겠습니다
안개비도 몽롱한 시야도
대간길에선 상쾌한 싱그러움으로 다가오지유~~~
정성스런 대간길 잘봅니다
점심무렵에 이화령 인근에서 만날듯 합니다.
더운날 천천히 입산 하시구요 반갑게 뵙겠 습니다
어깨 많이 아프셨겠습니다
다음부터는 배방가볍게 메고 천천히 다니세요 ㅎ
참 ~벌재 차 문제는 잘 해결되셨는지?
속리산이 문제네요
그이후로는 대구에서 가까우니 좀 더 멀리 진행 하겠습니디
멋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대간길도 어느덧 중반부를 지나게되어 한여름 지리에 도착할것 같습니다.
가는길에 고운것 이쁜것 많이 보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어느듯 월악으로 들어오셨네요.
월악산 지나 속리산권으로 들어오시면
한번 뵐 시간이 날련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암릉구간 시작되니
박배낭을 지고 가기 힘들것 같네요 ㅎㅎ
정성스런 후기 잘보고 갑니다.
속리에서 큰재까지 한달음에 갈 것 같은데
시간 되시면 걸음 한번 해주시구요
이어지는 정맥길 늘 안전 산행 하시기 바랍니다.
산속에 푹 빠져 걸음하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어느날 부터인가 왜들 그리 빠르게 가는지 ,....
수고하셨습니다
혼자가면 빠르게 진행하는데 함께 걸으니
그러지 못하고 느릿 느릿 걷고 있습니다.
집에 조금 늦게 오니 좋은점도 있더군요
안개가 자욱하고 주간에는 프르름이 더욱진한 느낌입니다
벌써 월악산구간으로 진행하고 있네요.
우리는 언제나 갈가요.
두분 진행하는길 안전한 길이되길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달 부터 대간길을 이어 가시죠
그무렵이면 우리는 추풍령 구간으로 발을 옮겨 갈것 같습니다.
대장님의 대간길 무운을 빌어 드리겠습니다.
방장님이 후기 먼저 써서 올리시면
저는 살짝살짝 컨닝도좀 하고...
^^
문득 방장님 머리 한 번 해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어찌 이런 조합의 글들을 맹글어 내시는지
신통할 따름입니다.
글이.. 글이..
감히 흉내낼 수 없어요.
독보적...
후기는 한 번 읽어가꼬는 안될거 같으니..
또 찾아와 읽어보겠습니다.
이팽달~ 곱게 다녀갑니다. 고생많으셨어용.
공부도 좋지만 운동 좀 하시고 오시면 좋겠스빈다.
이번주에 운동삼아 대간길 가시도록 하구요
늘 그렇지만 편안하게 오시기 바랍니다.
방장님이야 뭐 그러려니 하지만
본인 몸집보다 더 커보이는 배낭을 매고
꼬부랑 할매처럼 걷는 깽이님 뒷모습이 애잔 합니다.
안개와 비가 자주 내려야 하는 계절이지만
제발 주말엔 그만 왔으면 하는 마음속 기도 입니다.
거부기 댈꼬 다니시느랴 고생 많으십니다...ㅎ
ㅎㅎㅎ제가 걱정되는게 아니고 깽님이 걱정 되시는 군요
저희가 가는길에는 비는 잘 오지 않는데 안개가 늘 앞을 막아 섭니다.
이번주에도 대간 가는데 바다님도 정맥 가시죠 함께 조심해서 걷도록해요
무거운 배낭메고 수고많으셨습니다.
18차 대간팀이던가 죽령에서 하늘재까지 걸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무지 더웠던 기억이 있군요.
안개속에 눈물샘에 물뜨러 내려갔던 생각도 나고....
꽃들도 피어있고, 연록의 푸르름이 보기는 좋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