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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인간을 은총의 사람으로 회복시키는 목회
기독교 신앙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는 목회의 방향을 결정한다.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복음의 의미가 달라지고, 교회의 사명과 목회의 방법도 달라진다. 특히 존 웨슬리의 목회신학에서 인간의 타락은 단순히 인간이 과거에 지은 하나의 죄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타락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며, 인간의 마음과 삶 전체가 죄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된 현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웨슬리에게 목회란 단순히 사람들의 종교적 필요를 채워주는 일이 아니라, 죄로 인해 무너진 인간을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다시 회복시키는 거룩한 사역이었다.
웨슬리는 인간의 죄성을 매우 심각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을 강조한다고 해서 인간을 절망적인 존재로만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인간의 깊은 타락을 직시할수록 하나님의 은총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은총은 웨슬리 목회신학에서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주제이다. 인간이 얼마나 깊이 타락했는지를 알 때, 선행은총과 칭의의 은총, 성화의 은총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웨슬리의 목회는 “타락한 인간을 정죄하는 목회”가 아니라 “타락한 인간을 은총 가운데 깨우고 회복시키는 목회”였다. 이것이 오늘 한국교회가 다시 깊이 생각해야 할 웨슬리 목회의 중요한 통찰이다.
Ⅰ. 인간의 타락을 직시하는 목회 ― 죄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
웨슬리의 목회에서 출발점은 인간에 대한 낙관적인 이해가 아니었다. 그는 인간이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지만 죄로 말미암아 그 형상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 보았다.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의 본성에는 하나님을 떠나려는 경향이 자리하게 되었으며, 인간의 지성과 감정과 의지 모두가 죄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인간 이해는 웨슬리의 설교와 목회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자신의 선행이나 도덕성이나 종교적 열심만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설 수 없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계발이 아니라 구원이며, 자기 개선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근본적인 변화이다.
웨슬리는 이 사실을 매우 실제적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의 죄를 단순히 지적하는 데 머물지 않고, 죄가 인간의 삶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구체적으로 다루었다. 교만, 자기의, 탐욕, 분노, 미움, 육체적 욕망, 세속적인 욕심, 하나님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등은 모두 타락한 인간의 현실이었다.
오늘의 목회에서도 이 지점은 매우 중요하다. 현대인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기보다 자신의 문제를 환경이나 다른 사람에게 돌리기 쉽다. 사회는 인간의 문제를 심리적·사회적·경제적 요인으로 설명하지만, 성경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데서 찾는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말만 전해서는 안 된다. 복음은 인간의 상처를 위로하지만 동시에 죄를 드러낸다. 복음은 인간을 존중하지만 동시에 회개를 요청한다. 복음은 “네가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죄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의 은총이 너를 찾아오셨다”고 선포한다.
웨슬리에게 회개는 목회의 주변적인 주제가 아니었다. 회개는 은총의 문을 여는 중요한 통로였다. 인간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갈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총을 깊이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의 목회는 인간의 타락을 지나치게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된다. 죄를 죄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한다. 회개를 회개라고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회개가 정죄와 절망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죄를 드러내는 목적은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웨슬리의 목회는 인간의 죄를 깊이 보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보았다.
Ⅱ. 선행은총으로 인간을 깨우는 목회 ― 타락 가운데 찾아오시는 하나님
웨슬리 신학에서 인간의 타락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선행은총(prevenient grace)이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을 스스로 찾을 능력을 상실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버려두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마음을 깨우시고 하나님을 향하도록 이끄신다.
이것이 웨슬리 목회의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다.
인간은 타락했지만 하나님의 은총은 타락보다 먼저 역사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을 찾으신다.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을 사랑하신다. 인간이 하나님께 돌아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의 마음을 두드리신다.
요한일서 4장 19절은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말씀한다. 웨슬리의 구원 이해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선행적인 사랑과 은총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목회자는 사람을 바라볼 때 “이 사람은 아직 믿음이 없다”고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이미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발견해야 한다.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에게도, 신앙이 흔들리는 사람에게도,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지만 영적으로 침체된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먼저 일하고 계신다.
웨슬리에게 목회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향해 먼저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발견하고 그 은총에 응답하도록 돕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의 목회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준다. 우리는 종종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애쓴다. 설교하고 교육하고 권면하고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그러나 웨슬리적 목회는 인간의 변화 이전에 하나님의 선행적인 은총을 바라본다.
목회자는 씨앗을 심지만 생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목회자는 말씀을 전하지만 마음을 여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목회자는 길을 안내하지만 사람의 심령을 움직이시는 분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사람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오랫동안 변화되지 않는 성도를 바라보면서도 하나님의 은총이 그 사람 안에서 일하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방황하는 청년에게도, 신앙을 떠난 가족에게도, 교회에 상처받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선행은총은 여전히 역사할 수 있다.
이것이 웨슬리의 목회가 지닌 희망이다.
인간의 타락은 깊지만 하나님의 은총은 더 깊다. 인간의 죄는 강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더 강하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떠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죄인을 향하여 정죄의 손가락을 들기보다 은총의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Ⅲ. 성화와 완전한 사랑으로 회복시키는 목회 ― 구원은 변화의 길이다
웨슬리의 목회에서 구원은 단순히 죄의 용서를 받는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구원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이것이 웨슬리의 성화론이 목회적으로 중요한 이유이다.
인간의 타락이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했다면, 성화는 그 형상을 다시 회복해 가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칭의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결정적인 사건이라면, 성화는 그 회복된 관계 안에서 인간의 존재와 삶이 실제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단순히 “죄를 용서받은 사람”의 삶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된 사람이며, 사랑 안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사람이다. 따라서 성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한 도덕적 완벽함이 아니라 사랑으로 충만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웨슬리가 강조한 “그리스도인의 완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완전은 인간이 더 이상 실수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마음을 지배하는 상태, 곧 사랑으로 성숙해 가는 삶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웨슬리의 목회는 매우 실제적인 특징을 가진다. 그는 신앙을 개인적인 내면의 체험으로만 제한하지 않았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예배하는 것뿐 아니라 병든 자를 돌보고 가난한 자를 돕고 감옥에 있는 자를 방문하고 사회적 약자를 섬기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중요하게 여겼다.
왜 그런가? 구원받은 인간은 반드시 삶으로 변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타락은 인간의 마음만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인간의 관계와 공동체를 파괴했다. 그러므로 구원도 개인의 마음만 변화시키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자신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이웃과의 관계가 회복되며, 세상과의 관계가 새롭게 되어야 한다.
이것이 웨슬리 목회의 전인적인 성격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도 바로 이것이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예배 참석자가 증가하는 것만으로 교회의 부흥을 말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얼마나 거룩해지고 있는가, 성도들이 얼마나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고 있는가, 교회가 얼마나 세상을 섬기는 공동체가 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웨슬리에게 목회는 사람을 교회 안에 붙잡아 두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목회의 목표는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을 만드는 데 있어야 한다.
맺는말 ― 타락보다 큰 은총을 선포하는 목회
존 웨슬리의 목회신학에서 인간의 타락은 매우 심각한 현실이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웨슬리는 인간의 타락에서 목회를 끝내지 않았다.
그는 타락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보았다. 선행은총은 타락한 인간에게 먼저 찾아오고, 회개와 믿음을 통해 인간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며, 칭의의 은총은 죄인을 의롭게 하고, 성화의 은총은 그 사람을 지속적으로 변화시키며, 마침내 사랑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인도한다.
따라서 웨슬리의 목회는 세 가지 방향을 가진다.
첫째, 인간의 타락을 직시하는 목회이다. 죄를 죄라고 말하고 회개를 요청하는 목회이다.
둘째, 선행은총을 믿고 사람을 바라보는 목회이다. 아무리 타락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가고 계심을 믿는 목회이다.
셋째, 성화와 사랑의 완성을 향해 사람을 세워가는 목회이다. 용서받은 사람이 거룩해지고, 거룩해진 사람이 사랑으로 세상을 섬기도록 인도하는 목회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다시 웨슬리의 목회정신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회는 인간의 죄를 외면해서도 안 되고, 인간의 가능성만을 강조해서도 안 된다. 인간의 타락을 정직하게 직면하되, 그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은총을 선포해야 한다.
목회자는 사람의 실패보다 하나님의 가능성을 보아야 한다. 성도의 현재 모습만 바라보지 말고 그 사람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을 정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를 회개와 믿음과 성화의 길로 인도해야 한다.
결국 웨슬리의 목회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가장 중요한 진리는 이것이다.
인간의 타락은 깊지만 하나님의 은총은 더 깊다. 인간의 죄는 크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더 크다. 인간은 무너졌지만 성령께서는 다시 일으키신다.
그러므로 오늘의 목회는 타락한 인간에게 복음의 은총을 선포하고, 그 은총을 경험한 사람을 거룩한 사랑의 사람으로 세워 가는 목회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타락을 넘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웨슬리적 목회이며, 오늘 교회가 다시 붙들어야 할 거룩한 목회의 길이다.
경기연회 남양지방회 원천교회
곽일석 목사(iskwa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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