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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진솔한 변명 1:12~14
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13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완전히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14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
하나님 약속에 ‘예’가 되신 그리스도 1:15~22
15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16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17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 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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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했습니다. 그들을 방문하는 계획은 육체의 지혜가 아닌, 미쁘신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우리는 ‘아멘’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 치신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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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관점을 뛰어넘어(1:12~14)
고린도 교회는 많은 문제점과 모순을 안고 있는 미숙한 공동체였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합니다. 비록 고린도 교회가 지금은 실망스러운
상태라 할지라도 마지막 날에는 자랑의 면류관이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암담한 모습이 아닌, 미래의 변화된 모습을 바라볼 때 소망이 있습니다.
- 묵상 질문: ‘육체의 지혜’와 ‘하나님의 은혜’는 어떻게 다를까요?
- 적용 질문: 성도에게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발견할 때,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까요?
하나님의 약속을 긍정하라(1:15~20)
내 기대와 다를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면 축복이 됩니다. 원래 바울은 고린도를 방문한 후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고린도에 돌아올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전 고린도 방문이 고통의 대면일 뿐이었기에
바울은 감정적 충돌을 우려해 방문을 연기합니다. 그러자 이것이 경솔한 결정이라는 비난 여론이 바울의
적대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납니다. 이에 바울은 일정 변경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진 ‘예’(yes)의 한 부분이니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긍정하는 사람은,
신실하신 하나님이 그 약속을 어떻게 이루시는지 보게 됩니다.
- 묵상 질문: 고린도 방문을 연기한 바울의 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의 약속 중에서 지금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믿어야 할 말씀은 무엇인가요?
성령의 인 치심과 보증(1:21~22)
하나님의 사람이 세운 계획은 결국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바울 일행은 자의로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고 매사에 성령의 확증을 구하고자 합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성령의 이끄심에 민감할 때,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 묵상 질문: 바울 일행을 하나님이 세우셨음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 적용 질문: 작은 일도 성령의 지시를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일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제 유익이나 다른 사람들의 판단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해결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을 살펴 주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결정을 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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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2 언제나 아멘 입니다.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과 살 소망이 끊어지고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을 만큼 심한 고난 가운데
위로의 하나님을 소개하고 또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라고 권면한 바울은
본문에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다시 소개한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 가는 것 참 즐거운 일이다.
어제 말씀에서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만났다면
오늘은 미쁘신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은 미쁘시니라(18)
영어로는 God is faithful로 되어 있다.
하나님은 진실되어 믿음성이 있다는 말씀이다.
신실하신 하나님이란 뜻일 것이다.
신실하심의 최상의 모델은 하나님이시다.
이런 신실하신 하나님을 모델로 삼아 신실함을 닮아가자.
예수쟁이가 뭐 저 모양이야 하는 소리 듣지 않도록 하자.
바울은 삶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나타내었는가?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방문 할 계획을 세웠다.
먼저 고린도를 방문했다가(15)
마게도냐에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고린도를 방문할 계획이였다.(16)
그런데 이 계획이 변경 되었다.
지금은 핸드폰 열고 전화해서 일정이 이렇게 바뀌었다고 설명하면 되었지만
당시에는 편지나 인편 말고는 전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두가지 오해가 생겼다.
비난받아 마땅한 일들이 생겨지게 되는 것이다.
1. 경홀(lightly)하다는 비난이 있을 수 있고(17)
2. 언행의 불일치에 대한 비난이 있을 수 있다.(17)
"예"(yes) "예" 하고 "아니"(No) "아니라" 하는 일이 있다.
이런 오해가 생길 때 어떻게 처신을 해야하는가?
아마도 이런 오해를 풀기 위해서 이 고린도후서를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경영할 때에 어찌 경홀히 하였으리요?(17)
육체를 좇아 계획하고 "예" "예"하고 "아니" "아니라" 하는 일이 있었겠느냐?(17)하고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18)라고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있다.
실제 바울은 고린도에 더 많이 머물기를 원했고
겨울을 고린도에서 지나기를 원했었다.(고전16:5)
가끔은 무책임 한 말을 해서 문제를 만드는 경우가 있다.
내가 행한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보증 수표처럼 그대로 잘 행해져야 한다.
실행 할 수 없는 말이라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아멘.
주여!!! 혀에 지혜를 주셔서 무책임하고 뒷 감당 못할 말을 하지 않도록
입술이 신실한 자 되도록 도와 주옵소서. 아멘.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예수님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된 적이 없으시고(19)
그 안에는 오직 "예" 만 있을 뿐이다(19) 하신다.
하나님이 신실하시듯이 예수님 또한 신실하시다.
이 신실하신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내 안에 있는 믿는 내가
어찌 "예" 했다가 "아니요"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무리 많은 약속을 하시더라도(20)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라는 응답으로 다 이루어 지기 때문에(20)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아멘"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20)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은 무엇인가?
아멘하고 동의하는 것이다.
무엇에 아멘하고 동의하는가?
구약부터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 주신 역사에 대하여
또 앞으로 그 분을 통하여 이루어 가실 그 신실하신 약속에 대하여
내가 "아멘"으로 응답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아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신실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구원과 죄사함과 천국을 약속하신 아버지
보호와 인도와 동행과 용서를 약속하신 아버지
성경에 나타난 모든 약속을 이루어 가실 하나님
내가 그 모든 약속에 대하여 아멘으로 화답하길 원합니다.
신실하심의 최상의 모델이 되신 주님
내가 그 주님의 성품을 닮기 원합니다.
기름부으시며 인치시며 보증이 되시는 성령님
어제나 오늘이나 변치않으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모든 약속을 이루어가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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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8-22절 모든 약속의 말씀을 ‘예’가 되게 하십니다. 구약의 모든 약속을 아들을 통해 성취하셨고, 성령을 보증으로 주셔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도들처럼 하나님의 신실한 삶에 동참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모든 순종하는 자녀들의 삶 속에서 ‘예’를 이루어가십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신실하시기에 그도 신실할 수밖에 없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또 예수의 제자를 자처하는 내 삶에도 희생과 대가를 감수하는 ‘예’가 실현되고 있습니까?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2-14절 바울은 고린도 성도에게 자랑이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그의 행동이 불성실하다는 비난과 그의 편지가 진실하지 못하다는 오해에 대해 자신의 진실성을 변호합니다. 그러나 사도가 바란 것은 단지 진실 규명이나 명예회복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서로 신뢰하고 자랑이 되는 성숙한 관계입니다. 우리 공동체도 이런 거짓 없고 진실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습니까?
15-17절 고린도 방문 계획이 변경된 것은 대적들의 비방처럼, 경솔하거나 이기적인 결정이 아니라, 교회를 향한 거룩함과 진실함(12절)에서 나온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정말 우려한 부분은 자신에 대한 의혹이 복음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명예보다 그가 전한 복음(18절)을 위해 적극적으로 해명합니다. 복음의 진전과 교회의 건덕을 위해 때로는 서둘러 오해를 풀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요즘 세상의 냉소와 거센 비난에서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교회의 명성입니까, 아니면 복음의 영광입니까?
17,18,20절 바울은 계획을 변경했지만 이타적인 동기로 한 결정에 하나님도 은혜를 베푸실 줄 믿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그 변경된 계획을 통해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그분께 영광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너무 하나의 결론에 경직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여지를 마련하는 것, 말씀하실 때 ‘아멘’ 하는 것이 참 성도의 자세입니다. 어떤 위기와 시련이 다가오더라도 복음의 길 위에 서 있는 한, 하나님은 길을 여시고 새 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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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자신의 말을 왜곡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 일부에게, 자신의 신실함과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의 신실함을 강변합니다.
바울의 신실함(12-14)
바울이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13)라고 말하는 이유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에 바울의 말을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진심이 있는 그대로 전달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12), '거룩함이란 단어는 사본에 따라 솔직함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진실함이란 단어는 옛날 도자기의 오류를 햇빛에 비추어서 찾아내던 일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곧 햇빛에 비추어도 흠이 없이 깨끗한 상태를 말합니다. 바울은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솔직함과 깨끗함으로 살고 사역하는 사람입니다. 육체의 지혜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의 원리를 따라 모든 것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자신의 자랑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나의 진실이 왜곡 당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변함없이 진실함 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신실하심(15~22)
바울은 고린도 교회 방문에 대한 자신의 계획을 몇 차례 바꾸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쓸 때만 해도 마게도냐를 거쳐 고린도로 내려가 거기서 겨울을 보낼 생각이었지만(고전 16:5-7), 고린도의 변화된 상황 때문에 먼저 고린도를 방문하고 마게도냐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다시 고린도를 방문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계획이 일부만 이루어지고 모두가 다 뜻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일을 트집 잡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바울은 이것이 한 입으로 두말 하기가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 자신의 원리는 하나님의 원리와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그의 약속은 언제나 예만 되지 뒤에 가서 '아니'가 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과 관련하여 결코 오리발 내미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함은 그의 첫 지불금 성령으로 보증됩니다.
자신의 약속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시는 하나님처럼 나 또한 나의 아멘의 응 답에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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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따르는 자의 신실한 삶❞
❚ 일관되고, 진실함과 신실함으로 섬기는 것이 복음을 따르는 자의 합당한 삶입니다.
✔ 복음을 따르는 자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해야 합니다(12~14절).
바울은 자신과 일행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특별히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행했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을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이 그들이 전혀 모르는 이야기들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유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바울 일행의 여행 일정을 부분적으로만 알고 오해한 것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로의 관계가 회복이 되어 ‘...주 예수의 날에...’ 그의 자랑이 되고, 그는 그들의 자랑이 되기를 바란다고 고백합니다.
서로를 신뢰하고, 상대를 이해해주는 관계를 찾아보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실수와 허점을 캐내고, 서로가 헐뜯고 험담하며 서로에게 흠집을 내고, 결국 상처와 아픔만을 남도록 하는 시대입니다. 자신들의 야망을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권력과 언론의 힘을 이용해 한 가정을 난도질 해버리는 참담한 상황을 보았고, 또 보고 있습니다. 교회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렇다면 이런 세상과 다른가?
어느 한 집사님과의 대화 속에서 자신이 속해 있는 작은 소그룹만 봐도 예전처럼 가족과 같은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한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날에 서로서로가 자랑이 될 수 있도록 내 자신부터가 선한 양심을 따라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동을 하며 서로가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로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복음을 따르는 사람답게 말입니다.
➲ 변함없는 신실함으로 행해야 합니다(15~17절).
바울은 자신들의 여행 일정이 변경된 것에 대해 해명하고자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두 번째 은혜를 얻기 위하여 그곳에 갔던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갔다가 마게도냐로 넘어가 다시 고린도로 와서 고린도 교회의 도움으로 유대로 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계획이 마음먹은 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로 인해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신실함을 의심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그가 잡은 새로운 계획들이 결코 경솔하게 잡은 것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신실한 마음과 생각으로 행한 것이라고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 자신은 아무리 신실하게 사역을 하고, 생활을 해 간다 해도 뜻하지 않게 오해를 받아 갈등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 있는 신실함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다소 억울한 면이 있겠지만 내 자신의 신실한 믿음의 삶의 모습이 다른 이들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하는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나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신실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우리 공동체의 지체들을 위해 변함없이 그리고 일관된 사랑과 신실함으로 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복음을 따르는 사람답게 말입니다.
➲ 하나님의 약속안에서 행해야 합니다(18~22절).
바울은 자신이 ‘예’라고 했다가 ‘아니오’라고 말을 뒤집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전파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 ‘예’만 되시는데, 어떻게 자신이 ‘예’라고 했다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강조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여행을 변경한 것이 ‘예’의 차원에서 한 것이지 무책임하게 뒤집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기에 바울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은 바울과 그 일행들과 함께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려고 기름을 부어주셨고, 또한 사명을 주시며 인 치시고 보증으로 마음에 성령을 주셨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구원을 향한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하게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도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맡겨진 사역들을 신실하게 이루어가야 할 사명이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위해 노력하며, 세상 속에 비춰진 삶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따라 살아갈 뿐만 아니라 성경 안에서 언제나 일관되게 사랑하며 섬김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복음을 따르는 사람답게 말입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존재답게 다른 사람의 유익과 기쁨을 위한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어떠한 환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을 따르는 자답게 일관되고 신실하게 섬김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고후 1:12~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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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4; 최고의 자랑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대한 편지에서 자랑이란 말을 29회나 사용하고 있다. 바울이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서 자랑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바울의 자랑은 자기를 과시하려는 교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도의 권위를 의심하는 성도들에게 자기의 진실성을 변명하는 내용이다. 바울의 자랑을 교훈을 삼아서, 하나님과 성도 앞에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애쓰는 성도들이 되자(행 24:16).
[1]. 거룩함과 진실함(12).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로부터 그 권위와 진실성에 대해서 의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했다고 자랑한다. 바울은 간사함이나 성도들을 속이는 궤계로 복음을 전하지 아니했다. 또한 어떤 이익을 바라는 더러움도 없었다. 오히려 자기가 전하는 복음이 방해받지 않도록 밤낮 수고함으로써, 성도들에게는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우리의 전하는 복음을 위해서 항상 거룩함과 진실함을 가져야만 한다.
[2]. 육체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12).
바울의 자랑은 계속된다. '육체로 아니했다'는 말은 사람의 말이나 지혜로 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바울은 자기의 인간적인 조건을 의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였다. 그래서 그는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고백하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지 아니한 모든 것은 사단의 자랑거리일 뿐이다.
[3]. 주 예수의 날의 고린도 성도(14).
바울의 마지막 자랑은 자신이 아니라, 자기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날에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자랑으로서 바울의 큰 상급이 될 것이다. 우리의 자랑은 누구인가?
1:15-24; 예와 아멘
사도 바울의 고린도 방문 계획의 변경은 그를 기다렸던 성도들에게는 실망이 되었고, 헐뜯는 사람들에게는 악평의 요인이 되었다. 바울은 방문 계획이 변경된 것에 대해서 설명하고 신뢰와 이해를 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기의 계획이 "육체를 좇아서 예 예하고 아니 아니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기의 '예'와 순종을 들어 고린도 성도들에게 '예와 아멘'의 신앙을 가르쳐 주고 있다.
[1].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예'가 됨(18, 20).
바울은 자기의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고린도 교회에 전파하였다. 그는 항상 '예'했고 '아니'라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기 때문이다(18). '미쁘시다'는 것은 신실하시다 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의심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20).
[2]. 예수 그리스도는 '예'가 되심(19).
하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예'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않으신 분이다. 예수께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분은 하나님께 항상 '예'하고 '아니'라 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예수님께 대해서도 '아멘'으로 영접해야 한다.
[3]. 성도들은 '예'가 되어야 함(21-24).
성도들은 전하는 자나 받는 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부름 받아 성령으로 인치 심을 받은 자들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본받아 서로 '예'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진리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할 것을 말씀하셨다. "너희 말은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마5:37). 이에서 지나는 것은 모두 악한 것이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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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2, 신실하신 하나님을 닮아가라
고린도 방문 계획이 변경된 데 대해 의혹과 비난이 그치지 않자, 바울은 계획을 변경한 의도를 설명하고 자신이 전한 복음의 신실함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개척한 교회였었지만, 바울은 고린도에만 머무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선교 여행 중에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을 듣고 편지로써 그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하였고, 그 때 썼던 편지가 고린도전서였습니다.
이후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려고 했었지만, 그 계획이 변경되었습니다. 고린도 방문 계획의 변경으로 인해 사도 바울을 기다렸던 성도들에게는 실망하게 되었고, 섣불리 고린도를 방문하겠다고 바울이 말했다며 바울을 비난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방문 계획이 변경된 것에 대해서 설명하고 신뢰와 이해를 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계획이 "육체를 따라서 방문 계획을 세우고 예 예하고 아니 아니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이 말은 경솔하고 이기적인 결정 혹은 자신의 명예를 위한 결정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사명과 하나님의 뜻에 대해 순종하였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닮아서 말과 행동과 삶에 있어 정직하고 신실한 삶을 살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신실한 말씀
2. 본문을 통하여
본문을 통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자신의 '예'라는 대답과 순종을 언급하면서 고린도 성도들에게 신실하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예와 아멘'의 신앙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예'가 된다(18, 20)
바울은 자기의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고린도 교회에 전파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는 항상 '예'라고 대답했고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고린도후서 1:18, 개역개정 성경)
'미쁘시다'(피스토스, πιστός)는 것은 '신실하다', '충분히 믿을만하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고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변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미쁘신, 믿음직하신 분이십니다.
신실하고 믿음직한 우리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는 '아멘'으로 받아들이며, 말씀을 지키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린도후서 1:20, 개역개정 성경)
(2) 예수 그리스도는 '예'가 되셨다(19)
계속해서 바울은,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변함없이 신실하신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고린도후서 1:19, 개역개정 성경)
하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예'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않으신 분(변함없이 신실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 항상 '예'하고 '아니'라 하지 않으심으로써 십자가 앞에서도 '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랑과 은혜를 '아멘'으로 받아들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3) 성도들은 '예'가 되어야 한다(21-24)
성도들은 복음을 전하는 자나 받는 자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부름 받아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본받아 서로 '예'가 되어야(언행에서 신실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진리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마태복음 5:37, 개역개정 성경)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변명하지 말고,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지고 지키는 삶이 복음 안에서 '예'라고 대답하는 삶, 신실한 삶입니다.
신실하게 십자가 지신 주님, 그 신실하심이 나를 살리셨다.
3. 나가면서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미쁘시고 신실하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를 통하여 결코 변하지 않는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하나님에 대하여 복음에 대하여 신실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말씀을 신뢰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우리의 삶에서 애를 써야만 합니다.
오늘 하루, '내가 너희와 함께 한다'라며 임마누엘의 약속을 주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닮아, 우리도 책임질수 있는 말을 함으로써 언행에 조심하고 약속을 했다면 반드시 지킴으로써 신실하신 하나님을 닮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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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믿음
하나님 약속에 '예'가 되신 그리스도
2천 년 전 내가 되어 죽으신 십자가.
이제는 내가 다시 지지 않아도 되는 고통과 고난.
나를 안아주시며 따듯하게 말씀하신다.
"이제 모든 짐을 내게 맡겨, 그리고 너는 마음껏 뛰놀렴:)"
내가 지려했던 십자가, 그 고난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내가 그 질고를 감당해야 했더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직접 지지 않으셨을 것이다.
이제는 내가 다시 멍에를 질 필요도,
고통과 고난을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그 믿음,
죄 가운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그분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
나의 자아가 당신의 십자가 위에 늘 함께 있음을 믿는 믿음
그 믿음으로 살아가리
구원받지 못할 죄가 없으며
해결 받지 못할 문제가 없는 그분께
오늘도 나는 '예' 하길 원한다.
2022.7.7. by jin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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