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 공현 대축일 강론 >(1.4.일)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을 맞아,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 예수님께 경배한 사건을 묵상합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구세주 예수님을 굳게 믿고 따르기로 결심하며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
1월 3일, 학생 10명, 성인 32명, 총 42명, 고령 강변에 가서 독수리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며 고기를 던져주었고, 다음에 독수리들이 먹을 고기를 살 수 있도록 207,000원을 모아 그 마을 이장님께 드렸습니다. 독수리들이 일주일에 두 번, 200g밖에 먹지 않고, 동료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며 욕심내지 않고 겸손하게 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굴국밥과 칼국수를 먹은 후, 대가야박물관과 왕릉전시관을 둘러보며 여러 가지를 느꼈습니다.
오늘은 ‘현대판 동방박사’라고 할 수 있는 이태석 신부님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1987년 인제대 의대 졸업 후, 육군 군의관 중위로 근무하던 그는 일과 후에, 병원시설 없는 마을에서 의료봉사를 했고, 매일 아침, 군대 근처의 시골 성당에서 기도하며, 사제관 신학생들과 성당 일을 도왔습니다. 의사였지만 “과연 이게 전부일까?”라고 생각하던 그는 어느 날, 선교 잡지에서 아프리카 수단 사진을 봤습니다. 전쟁과 기근으로 고통받는 아이들 모습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뭔가 살아 움직였습니다. ‘저 아이들에게는 내 의술이 필요하다. 내가 가야 할 곳은 바로 저곳이다.’
전의성당 황용연 신부는 그에게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발견하고, 사제의 길을 가길 권했지만, 이태석은 모친의 뜻을 알고 있기에 거절하고, 부산백병원 신경외과 전공의 시험을 치려 했습니다. 그런데 시험 당일, 시험장에 가지 않고 성당에서 기도하다가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자 부모님은 “그렇게 공부시킨 이유가 아프리카에 가라고 한 것이냐?”라며 눈물을 흘리셨고, 동료들은 “미쳤다”라고 말하며 반대했습니다.
아이들과 음악을 좋아하는 이태석은 ‘청소년의 아버지’ 돈 보스코 성인이 어려운 처지의 청소년 교육을 위해 창설한 살레시오회에 1991년 8월에 입회했고, 1992년 광주 가톨릭대학교에 살레시오수도회 소속으로 편입했습니다. 성소체험자, 지원자, 에비수련자, 수련자로 지낸 3년간, 버림받은 청소년들의 집에서 기타와 아코디언 등 악기를 가르치고, 이발해주고 함께 운동했는데, 그 체험은 훗날 선교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97년 로마 교황청립 살레시오대학교에서 유학하여, 2001년 사제 서품을 받고, 그 해 12월 7일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톤즈는 지옥 같은 곳이었습니다. 20년 내전으로 모든 게 파괴되어 병원도, 학교도 없어, 낮에는 의사로서 환자 200-300명을 치료하고, 밤에는 사제로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학교와 병원을 만들고, 초중고 12년 과정을 꾸려 수학과 음악을 가르쳤으며, 학생 기숙사도 짓고, 톤즈 브라스 밴드를 만들어 악기도 가르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에서 온 방문객이 “의사로서의 화려한 경력을 버리고 이렇게 고생하시니 후회되지 않으세요?”라고 묻자, 이 신부님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후회요? 병원에 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행복합니다. 저는 여기서 제가 찾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요.”
오늘 성탄 구유에 등장한 동방박사들은 그 당시 최고의 지성인들이었습니다.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의 대표이며 천문학자였던 그들은 특별한 별을 발견했고, 그 별을 보면서 멀고 위험한 길을 찾아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며, 황금, 유향, 몰약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이태석 신부님도 그들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세속적으로는 너무 어리석은 선택이었지만, 주님의 별을 찾는 용감한 결단이었습니다. 신부님이 찾던 예수님은 한국의 화려한 병원이 아니라, 톤즈의 가난하고 병든 이들 안에 계셨습니다. 동방박사들처럼 이 신부님은 톤즈 사람들에게 당신의 재능과 시간, 생명까지 드렸습니다.
그러던 2008년, 혈변이 계속 나와서 건강 이상을 느낀 신부님이 귀국해서 진단받아 보니 대장암 말기였습니다. 1년 남짓의 투병생활 내내 톤즈 아이들을 그리워하던 신부님은 끝내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고, 2010년 1월 14일, 48세의 나이로 선종했습니다.
톤즈 사람들의 이웃, 아픈 곳을 치료해주는 의사, 학교의 유일한 교사, 노래와 음악으로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해준 치료사, 선교사, 또 그들의 친구로 살다 가신 신부님의 마지막 말은 “돈보스꼬, Everything is Good!”이었습니다.
신부님이 하루빨리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톤즈 아이들은 신부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평생 울어본 적이 없었지만,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신부님을 애도했습니다.
2010년 9월에 개봉된 < 울지마 톤즈 > 영화에 감동받은 의료인과 선교사들이 톤즈와 또 다른 오지에서 봉사를 자원했고, 그와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이 모여 < 수단어린이장학회 >, < 이태석재단 >, < 이태석기념사업회 >, < 이태석신부참사랑실천사업회 >가 설립되어 봉사와 기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2020년 이 신부님의 선종 10주년 기념 영화 < 울지마 톤즈2_슈크란 바바 >, < 부활 >이 상영되어, 신부님의 선종 이후의 톤즈 아이들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부산 남부민동 신부님 생가가 복원되었고, 그분의 유품 60여 점이 전시된 기념관도 설립되었습니다. 남수단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교과서에 신부님 생애와 활동이 포함되었고, 신부님이 만든 학교의 졸업생 50여 명이 의사, 의대생이 되어 그분의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신부님과 함께 봉사활동을 했던 구수환 PD를 작년 2월 1일 토요일, 우리 본당에 초청해서 < 이태석 신부님의 삶과 신앙 > 토크 콘서트를 통해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별을 따라간 동방박사들과 이태석 신부님이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