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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의 컬쳐에세이 - Romantic Heart
서촌 동네밥집 2019 4 25
A Romantic Heart
오늘 피터 현 선생의 시신이 화장됐다.
그의 기막힌 머리와 글로벌한 생각, 해외에 오래 살면서도 한국인의 정체를 지니고 세계 언론에 한국을 알린 탁월한 글솜씨와 애국심, 유머감각 그리고 그 따스한 가슴을 생각할 때에 여간 아까운 일이 아니다.
그를 알게 된 것은 300년이 넘는 '모녀 시인의 집'이 길로 툭 잘려나가 할 수 없이 새로 짓고는, 갑자기 나라에 IMF 경제난이 오자 세가 나가질 않아 거기에 국내 최초 부엌이 있는 레지던스를 만들고서다.
겨울에 뉴욕, 여름이면 프랑스 크리세의 성城에 머무는 그는 봄 가을 두세 번 서울에를 왔다. 힐튼 호텔에 머물다 시인이 일생 시를 짓던 집인지도 모르고 이리로 온 것은 아마도 경제적 사정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내가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에 놀라워 했다. 어떻게 아느냐고. 이대 첫 학기 필수과목으로 그의 형인 국내 최고 신학자, 현영학 선생의 기독교 문학을 택하기도 했지만 국내 문화인으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20여 년 '시인의 집'에 머물렀고, 머무는 사람을 내가 다 알수는 없지만 현선생은 자주 연락을 했고 아낌과 사랑을 주었다.
서울에서도 자주 뵈었지만 여름마다 가시는 프랑스 크리세에도 두어 번 가며 파란만장한 그의 삶 이야기를 참 많이도 들었었다.
일찌기 미국으로 유학을 가 한창 매카시즘이 떠들썩하던 때, 공산주의자로 몰려 유럽으로 쫒겨난 이야기를 비롯해 인상에 남는 몇 가지 예만을 떠올려도 금새 찡해진다.
목사요 독립운동가인 아버지가 막내인 자신이 7살에 가시자 아버지 무덤엘 혼자 가서 누워 아버지 생각을 한 이야기. 기독교 여신도 회장이요 독립운동가인 어머니가 탄 일본에서 오는 배가 파선되었다는 소식에 10살 철부지 그는 '야 신난다, 엄마가 죽었다'고 좋아 춤을 추었다고 했다. 틀린 소식으로 살아오시자 침울해졌다.
형들은 다 반듯이 자라나는데 온갖 말썽에 자신만 교회조차 안가니, 하루는 어머니가 아프다며 함께 가자해 가서는 헌금내시는 걸 보고는 연보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걸 꺼내던 이야기, 끝에 모범 크리스챤 형들은 못하는, 어머니 모시기 16년을 말썽꾼 막내가 하자 신학자 형인 현영학 선생이 눈을 감으며 '우리 집의 진정한 크리스챤은 교회 안다닌 너다' 라고 했다.
연애 얘기도 풍부하다.
자서전을 내자 거기에 유럽의 온갖 이름있는 사람까지 연애 명단에 거명되어 한번은 TV 이주일 쇼에 초대를 받아 '그래 그렇게 대단한 연애들을 했다는데 그 중 누가 제일 인상에 남느냐?'고 묻자 '제일 인상에 남는 여자는 16년 모신 내 어머니다' 하니 이주일이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자신이 생각해도 신기한지 이야기할 제마다 눈을 적시며 웃으며 떠듬거리는 한국말로 몇 번이고 했다.
크리세에 파리에서 TGV를 타고 간 나를 주위 Loire 지역을 운전기사를 사서 보이고 여기저기 성城 앞 정원에 진보라빛 꽃과 자연, 그 풍요로운 광경을 바라보며 '참 세상은 불공평도 하지. 우리같은 척박한 나라가 있는가 하면 이런 여유넘치는 아름다운 나라도 있으니~'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조국 사랑하는 마음을 나는 줄곧 보았다.
내 어머니 책을 접하자 그 격을 대번 알아보고 감격한 이도 그이고, 몇 해 전 일본에 큰 쓰나미가 나 수 많은 사람이 죽어갈 제 쏟아진 나의 시 묶음에 일본의 지성인 나카니시 스스무 선생이 기대를 안했는데 소감을 보내와 한국 쪽에서도 마주할 글이 있어야겠다 싶어 그간 호의적인 분들에게 말했으나 '내가 노벨문학상을 받아야 하니 한일관계는 피하고 싶다'는 변명 등을 할 때에 그가 선뜻 영어로 써낸 글은 명문이었다.
뉴욕타임즈 뉴욕 헤랄드 트리뷴 같은 세계유수 언론들에 칼럼을 활발히 썼고 우리의 시詩를 서구에 알렸지만 대한항공의 고문으로 조중훈 회장과는 늘 나란히 앉아 해외를 다니기도 했다. 그 후도 세계 어느 곳에나 KAL 일등칸 자리의 혜택을 일생 누렸다.
그러나 그가 한동안 한국을 자주 찾은 건 그 혜택이 있어서가 아니라 큰 형님이 연세가 들어 치매가 좀 되자 형을 보러 그리 온 것이다. 아니 그 먼 거리를 형님보러 또 오셨어요? 하면 눈물을 글썽이며 '내가 이게 병인가봐, 병' 이라고 했다. 15시간 비행으로 일년에 몇 번이나 여러 해 서울의 노인 형을 보러 온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졌었다.
이름난 신학자 현영학 외에도 흥남 철수 시 미군 참모장에게 피란민을 배에 태워달라고 설득해 10만명을 태워 온 '한국판 쉰들러' 현봉학, 대한민국 해군 창설주역인 현시학도 다 그의 형이다. 부모님의 인품과 신앙이 짐작가는 대목이다.
늘 자신은 함경도 함흥이 고향이지 절대로 서울이 고향이 아니라고 수없이 내게 우기던 그가 오늘 묻힌 곳은 서울 양재동이다.
고향 떠나 수수십년이 되어도 사모치게 그리운 그 곳에 못 묻히는 심정이 몹시 안타까울 게 눈에 선히 보인다. 어머니 말만 나오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를 천상에서 맞이한 어머니가 일찌기 이름날린 형들보다 지독히도 속썩였던 네가 진정 승리한 거라고 끌어안아줄 듯 하다.
가실 때까지 로맨틱 하트를 지녔던 피터 현과의 20여 년 순수한 만남을 프랑스 쉬농Chinon 바람의 소리와 함께 나는 기억할 것이다.
쉬농의 바람Vent de Chinon
이승신
비엔느 강을 따라
플라타나스 긴 숲길을 걸으면
12세기 십자군의 철갑옷과
15세기 잔다크의 흰갑옷이
보이는 듯
와 와 쉬농을 휘감는 바람에
거친 함성 들려오고
9세기 전 神을 위해 싸웠고
6세기 전 어린 소녀 조국 위해 싸웠는데
어이 기껏 지난 수 십년과
오늘 일에 빠져 있나 자성하다
묵묵히 내 옆을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
수 없는 목숨 앗아간 피빛 물빛이
잎 사이 쏟아지는 햇살에 투명해져
반짝이는 이야기를 끝없이 쏟네
천년 전 이랬다고
천년 후는 이렇다고
그 사이 틈새 한 세상쯤
그저 눈 한번 깜짝할 사이라고
기껏 코앞 21세기를 생각하고
손등의 가시를 들여다 보다
30세기 40세기 생각에 정신이 들어
멀리 앞을 내다 보면
거기에 억겹 바람은 일고
햇빛 새삼 눈부시나니
천년의 시간이 켜켜이 배어든
쉬농Chinon의 숲
이 아침
바람은 또 스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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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소리방송 한국방송위원회국제협력위원 삼성영상사업단 & 제일기획고문 역임
저서 -치유와 깨우침의 여정에서, 숨을 멈추고, 오키나와에 물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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