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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리 역사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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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한민족 역사논쟁 야인시대 김두환을 미화하지 말라!!.
天風道人 추천 1 조회 5,721 14.07.18 04:33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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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4.07.18 04:46

    첫댓글 김두한은 건국의 일등공신이었나?

    국무총리를 지낸 장택상씨는 생전에 이런 질문을 즐겨 던졌다고 한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세 사람이 누군지 아나? 이승만, 나 그리고 김두한이야.”

    대공(對共) 투쟁에 관한 한 이는 맞는 말이다. 광복 직후 공산당에 몸 담고 있던 김두한은 우익 비밀결사 조직이었던 백의사 단장 염응택을 만난 뒤 무자비한 ‘백색 테러리스트’로 변신했다.

    염응택으로부터 아버지 김좌진 장군이 공산주의자에게 암살당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뒤 ‘이남 출신으로는 유일한 백의사 단원’이 되었다는 김두한은 박헌영 저격 미수 사건, 여운형 암살 사건 등 각종 테러 사건에 깊숙이 간여

  • 작성자 14.07.18 04:47

    당시 김두한이 이끈 청년단체 대한민청(대한민주청년동맹)은, ‘경찰에 걸리면 살아도 청년단에 걸리면 죽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좌익계 활동가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대한민청의 활약은 1946년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주도한 9월 총파업에서 두드러졌다. 당시 김두한은 실습용 총과 수류탄, 죽창으로 무장한 돌격대원 3천명을 위스키에 만취케 한 뒤 용산역 기지에서 파업 중이던 철도 노조원들을 덮쳤다. 순식간에 노조원들의 무장을 해제한 대한민청은 이 중 핵심 간부 8명을 추려내 죽창으로 살해한 뒤 역 구내 하수도에 시체를 묻었다.

  • 작성자 14.07.18 04:48

    김두한은 또 공산당 간부나 노조 핵심 요원들을 몰래 납치해 죽인 뒤 열차가 철교 위를 달릴 때 이들의 시체를 던져 버리는 수법도 즐겨 썼다. 회고록에서 김두한은 이렇게 해치운 ‘인간 화물’이 72구에 달했다고 회고했다. 수표교 아래서 거지 생활을 할 때부터 죽마고우였던 정진영을 납치해 쇠파이프로 직접 때려 죽인 것도 이즈음이다. 정진영은 김두한이 전향한 뒤 공산당에 그대로 남아 ‘좌익 주먹’을 이끌고 있었다. 이들 테러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김두한은 미군정 재판부에 회부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 작성자 14.07.18 04:48

    이듬해 대한민국이 건국되면서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특별 사면을 받기는 했지만, 김두한은 이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여보게, 사람 좀 그만 죽이게”라는 핀잔을 들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를 백색 테러의 선봉장으로 만든 배후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이승만이었다. 해방 정국 청년운동사를 연구한 김행선 박사에 따르면, 대한민청은 이승만 및 한민당의 친위대이자 이들이 지향하는 건국 이념을 전파하는 ‘대공 전투부대’였다.

  • 작성자 14.07.18 04:48

    이에 대해 김두한은 회고록에서 자신의 테러 행동이 영웅적인 단독 결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미군정도 경찰도 방관만 하고 있기에 자기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당시의 정치사회적 역학 관계를 고려할 때 믿기 어려운 주장이다. 더욱이 김두한은 자신의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한 측근 인사의 주장이다.

  • 작성자 14.07.18 04:49

    한때 김두한의 전기를 집필하기도 했던 이 측근 인사(전기는 결국 발행되지 않았다)는, 김두한을 일컬어 ‘단순하고 격정적이며 귀가 얇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훗날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은 국회 오물 투척 사건 또한 김두한 자신이 아니라 핵심 브레인이었던 박 아무개씨(시나리오 작가)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그는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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