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드민턴 유망주 강민혁(왼쪽)과 김원호가 '삼위일체'와 인터뷰를 마친 뒤 태릉선수촌 배드민턴경기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삼위일체>
한국 배드민턴은 그동안 '화수분'처럼 좋은 선수들을 배출해 내면서 세계 정상급의 수준을 유지해 왔다. 유망주들이 꾸준히 성장한다는 것은 그 종목의 미래를 위해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삼위일체' 배드민턴의 마지막편은 앞으로 미래를 이끌고 나갈 유망주를 소개할 차례다. 한국 국가대표팀을 지휘하고 있는 강경진 감독에게 추천을 의뢰했다. 강 감독은 자신이 대표팀에 처음 발탁한 남자복식의 강민혁-김원호 조를 손에 꼽았다. 두 소년은 수원 매원고 3학년에 같이 다니고 있는 '절친' 사이다. 한국 나이로 18살의 '피끊는 청춘'이다. 고교 시절에 국가대표팀에 뽑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의 미래가 얼마나 촉망되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레전드 박주봉이 고 1때 처음 대표팀에 뽑혔고 강경진 감독도 고 2때 대표팀에 들어갔던 전력이 있다. 두 소년이 자신의 롤모델로 생각하고 있는 이용대는 중학교 3학년이던 2003년 최연소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발탁된 뒤 승승장구의 길을 걸었다. 과연 이들이 우상 이용대의 길을 걸을지, 또는 그 이상을 달성해낼지 알 수는 없지만 배드민턴 팬들이 앞으로 크게 주목해 볼 유망주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강경진 감독은 "신체조건과 파워가 좋다. 일찌감치 선수촌에 불러들여 잘 먹이고 가르치면서 키울 수 있는 선수들이라고 판단했다. 복식 시너지도 좋다. 자기들끼리만 계속 같이하면 한계가 있으니 앞으로 선배들과도 짝을 맞춰 경기를 시켜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태장초~수원 원일중을 거쳐 매원고까지 계속 한 학교를 다녔던 '절친'은 이제 국가대표팀에서도 똑같은 출발선에 섰다. 초중고를 모두 함께 한 친구였지만 성격은 판이해 보였다. 강민혁은 밝고 말이 많았다. 김원호는 침착하고 내성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복식이란게 원래 서로의 장점을 시너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던가. 짧지 않은 대화를 마치고 나서 두 소년은 경기 플레이뿐만 아니라 성격적으로도 서로 보완재가 될 것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 인터뷰는 이들이 국가대표 선수로 첫 해외 원정을 떠나기 전이었던 지난 3월말 태릉선수촌에서 진행됐다.
-처음 국가대표팀에 선발됐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강민혁(이하 강):지난 해 (대표)선발전에 나갔을 때는 경험으로 뛴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뽑힐 줄은 몰랐는데 실감이 안나더라구요. (선발되고)하루,이틀이 지나고 나니 어렸을 때 꿈이 실현됐구나하는 실감이 났어요. 그때서야 정말 기분이 좋았죠.
김원호(이하 김): 저도 역시 실감이 안났어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는 기분이 들었죠. 어렸을 때부터 민혁이랑 같이 대표팀이 되는 것을 생각해왔는데, 이제 서로 노력해 레벨을 한번 높여보자고 다짐했죠.
-고교 선수가 국가대표팀에 뽑히는 것은 흔치 않은 경우인데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강:대표선수가 되고 나서 학교에 처음 갔을 때 반 친구들이 너무 신기해 하더라구요. 연예인보는 느낌이라고 했구요. 같이 사진찍자고 많이 그래서 부담도 됐어요.
김:민혁이랑 같은 반이어서 반응이 비슷하네요.
-원래 둘이 계속 같은 반이었나요.
김:아니요. 고3이 되면서 처음 같은 반이 됐어요. 처음에는 선생님들이 계속 일부러 안붙여놓더라구요. 반 평균 깎아먹는다고요(웃음). (운동이나 대회 출전때문에)두명이 한꺼번에 빠지면 교실 분위기도 좀 안좋잖아요.
-태릉선수촌에 처음 와보니 머가 많이 달랐나요. 대선배들과 함께 하니 어땠나요.
강:TV로만 보던 배드민턴 체육관을 직접 와보니 엄청 멋지더라구요. 이런 곳에서 앞으로 운동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죠. 학교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웨이트 트레이닝장도 신기하더라구요. 물론 웨이트를 강하게 받으니 몸은 힘들었죠. 기숙사 생활도 막내다보니 할 일이 꽤 많아요.
김: 체육관과 웨이트장이 정말 웅장한 느낌을 주더라구요. 선배님들도 군기 잡을 때는 잡고, 풀어줄 때 풀어주고 그러세요. 처음에는 우리가 먼저 다가가기 어려워서 힘들었는데 이제는 잘 챙겨주시고 해서 많이 편해졌어요.
이 대목에서 하나 밝힐 것이 있다. 김원호의 어머니는 배드민턴계의 레전드급 스타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혼합복식(김동문) 금메달을 따낸 길영아가 바로 김원호를 또다른 배드민턴 유망주로 키워낸 주역이다. 길영아는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복식(장혜옥) 은메달과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복식(심은정) 동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지금은 삼성전기 배드민턴단의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김원호가 배드민턴 레전드인 어머니 길영아 삼성전기 감독과 활짝 웃고 있다. 사진=김원호 제공>
-원호는 처음 대표팀에 뽑혔을 때 어머니가 무슨 말씀을 해주시던가요.
김:(한동안 생각하다가)엄마가 자신이 경험했던 곳에 아들도 가니까 두배로 좋다고 하시더라구요. 앞으로 인내심을 갖고 열심히 해야 한다. 또 성실하게 해야 한다고 당부하셨어요.
-두 선수는 올해 국가대표팀과 주니어 대표팀을 병행해야 하는데 힘들지 않을까요.
강:오히려 대표팀에 있으면 뛸 수 있는 대회가 많아서 좋아요. 대표경기와 주니어대표 경기를 함께 뛰면 기회가 많이 생기니까 더 좋죠.
김:이번이 처음이어서 아직 잘 모르겠네요(이 인터뷰는 두개의 대표팀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있었다).
-원호는 원래 말이 그렇게 적나요.
강:(이번에도 원호대신 민혁이가 대답한다)말이 없고 좀 내성적이예요.
-언제부터 배드민턴을 했나요.
강:부모님이 배드민턴 동호인이어서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따라다니다가 시작했어요. 의정부 배영초등학교에서 하다가 4학년때 수원에 있는 태장초로 전학을 오게 됐어요. 여기서 원호랑 처음 만났죠.
김:저는 처음부터 태장초에서 운동을 했어요. 2학년때부터 대략 라켓을 쳤던 것같네요. (어머니 영향이 있었던 것같나요)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전혀 안했어요. 지금은 어느 정도 피를 물려받은 것같다는 생각이 들죠(웃음).
-둘이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녔으니 이제는 지겹겠는데요.
강:그런 것은 별로 없고요, 자주 봐도 지겹다는 생각은 안들어요.
김:그런 이야기는 많이 들어요. 이제는 워낙 익숙해져서….
-초등학교부터 같은 복식조를 했다고 들었는데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 통하겠네요.
강:그렇기는 한데 다만 경기할 때 서로 말을 많이 해야하는데, 너무 익숙하고 편하니까 오히려 서로 말을 안하는게 단점이 된 것같아요.
김:같이 오래 한 것이 장점이지만 너무 편해서 서로 이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말을 더 안하고 그러더라구요.
-싸우지는 않았나요.
김:심각하게 싸운 적은 없어요. 장난으로 투닥투닥한 적은 있지만 감정이 서로 불편해 지게 그런 적은 없었어요.
-친구의 장점과 단점을 한마디씩 해줘요.
강:원호 장점은 성실하게 주어진 것을 잘해요. 꾀 안부리고 열심히 노력하죠. 단점은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너무 신경을 많이 쓰는 것같아요. 그러다보니 심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같고.
김:민혁이 장점은 형들에게 금방 잘하고 사교성이 좋아요. 단점은 한번씩 지나치게 까불어요(웃음).
-스스로의 장점과 단점도 한번 말해볼까요.
강: 장점은 (복식할 때)후위 공격을 하면서 볼을 빠르게 잘쳐요. 드라이브를 날리고 나서 공격적인 패턴으로 침투하는 것도 좋고, 연타공격도 잘해요. 단점은 수비할 때 너무 급하게 처리하려고 해요. 잘되는 날은 잘되는데 한번 흔들리면 수비가 불안해져서 힘들어요.
김:전위를 맡는 저는 네트플레이를 할 때 푸시에 강해요. 단점은 스윙이 커서 다음 동작이 조금 늦는 것같아요.
-복식파트너로서의 친구는 어떤가요.
강:아무래도 오래 같이하다보니 로테이션이나 약속된 플레이가 잘 되죠.
김:플레이를 할 때의 움직임이 서로 자연스럽게 되는 것같아요.
<강민혁(왼쪽)과 김원호가 어깨동무를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김원호 제공>
-존경하는 복식 선배는 누가 있나요.
강:이용대 선배님이요. 제가 부족한 수비와 네트플레이에서는 세계 최고인 것같아요.
김:저도 이용대 선배님이예요. 수비를 풀어가는 능력과 공수 전환이 빠른 것이 너무 좋아요.
-배드민턴 선수로서 최고 목표는 어디에 두고 있나요.
강:배드민턴협회가 세대교체를 위해서 저희를 키워주시는 것같아서 부담도 커요. 언젠가 올림픽 금메달 따야죠.
김: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3년반 뒤 열리는 도쿄 올림픽에는 출전할 수 있을 것같아요. 올림픽 출전이 먼저이고 나중에는 금메달을 목표로 해야죠.
-평소 운동말고 무엇을 좋아하나요.
강:PC방에서 게임하는 것과 노래방가서 노래 부는 것 정도있네요.
김:노래방에 가거나 맛있는거 먹는 걸 좋아해요.
-여자친구는 있나요.
강:없어요. 이상형 말해도 되요? (된다고 하자)배우 김소현이요. 저랑 동갑인데 청순한 모습이 너무 좋아요. (웃으면서)이 이야기는 꼭 넣어주세요.
김:(민혁이를 바라보면서)이상형 이런 거 말하는 것은 이상한거 아니야?
-요즘 무엇이 가장 고민인가요.
강:역시 고민도 운동에 있죠. 이제 고3인데 대표팀 다니다보니 학교 소속팀에 많은 도움이 되야 하는데 그게 걱정이예요.
김:운동을 하면서 성적을 내야 하는게 고민이죠. 대표팀에서도 목표를 잘 세워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고3인데 진로 문제는 어떻게 되나요.
강:둘이 같이 (졸업후)삼성전기에 입단하기로 결정됐어요.
-아, 그러면 원호는 어머니가 감독님이 되고, 민혁이는 친한 친구 어머니가 감독님이 되고 머 이렇게 되는 거네요.
강:초등학교때부터 자주 뵙고 그래서 잘 알 수밖에 없었죠. 매원고 훈련장소가 마침 삼성전기 체육관이어서 (친구 어머니가 아니라)감독님으로서도 이미 많이 뵈서 적응이 돼 있어요(웃음). 우리 둘이 매원고 출신으로는 삼성전기 입단 1호라고 하더라구요.
-원호는 입단이 확정된 뒤 어머니가 무엇이라고 하던가요.
김:(한참 생각하다가)머라고 하셨더라…. 그냥 축하한다고 하셨던 것같네요.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나요.
강:(이상형으로 꼽은)김소현 배우에게 드라마 잘 챙겨보고 있다고 전해주시고요, 나도 동갑내기니까 열심히 응원해 달라고 하고 싶네요. 김소현씨, 앞으로도 활동 잘 해주세요!
김:야, 그런 말을 어떻게 인터뷰를 하면서 하냐!!
<4월 태국에서 열린 주니어대회에서 남복 우승을 차지한 두 소년. 사진=강민혁 제공>
두 소년과의 인터뷰는 정말 유쾌했다. 필자의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인터뷰 직후 이들은 해외에서 열렸던 세 개의 대회에 연속 출전(국가대표 대회 1개, 주니어대표 대회 2개)했는데 필자와는 우승하면 사진을 꼭 보내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얼마 뒤 해외 원정중인 강민혁군에게서 '톡'이 날라왔다. 두 소년이 우승트로피를 들고 있는 사진이었다. 정말 반가운 '톡'이었다. 내친 김에 국가대표로 첫 대회에 출전한 소감을 '톡'으로 물어봤다(이들은 국가대표들이 나서는 대회 가운데는 가장 레벨이 낮은 오사카 챌린지에 출전해 남자복식 16강에 올랐다. 하지만 이후 연달아 나선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의 주니어 대회에서는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자기 나이대에서는 아시아 최강급이라는 뜻이다).
강:대표팀 소속으로 성인 무대를 뛰어보니까 확실히 더 큰 무대였지만 생각보다 실력차가 크지 않아서 해볼만 하다고 느꼈어요. 또 고교 시절에 할 수 없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해서 재미있었습니다.
김:쉬운 경기가 하나도 없었지만 한끗 차이로 이기는 짜릿함도 있었습니다 ㅎㅎ.
두 청춘의 도전을 응원한다. 그들이 지금 이용대 선배를 바라보면서 그랬던 것처럼 먼 훗날 '제2의 강민혁, 제2의 김원호'를 꿈꾸는 후배들이 나올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태국에 이어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주니어대회에서도 두 소년은 남복 우승을 차지했다. 사진=강민혁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