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개장터. 아랫마을 하동 사람 윗 마을 구례 사람이 모여서 왁자지껄 흥정하는 시골 인심이 정겹다. 섬진강은 물안개가 자욱했다. 퍼가도 퍼가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이 끊이지 않는다고 시인 김용택이 노래한 섬진강을 따라 하동 포구 80리 길을 올라가다 보면 따라 화개장터가 나온다. 전남 광양에서 삐걱삐걱 나룻배 타고, 산청에서 부릉부릉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 모여서 장을 펼치는 곳. 화개장터는 활기가 넘쳤다. '구경 한번 와보세요' 화개장터 청정지역서 채취한 농산물 가득 지리산 깊은 골짜기 칠불사엔 김수로왕 일곱 왕자 성불 전설이…
시인 묵객이 꼭 찾는다는 하동 송림 소나무·은빛 모래 절묘한 어울림
"구경 한 번 와 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장터 입구에 들어서면 가수 조영남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들려온다. 장터 마당 한중간에는 'KBS 아침 마당 출연'이라고 크게 써 붙인 어우동 엿장수가 걸쭉한 재담으로 흥을 돋운다.
때마침 매실 수확 철이라 가게마다 인근 농장에서 내놓은 청매실과 황매실이 가득 쌓여 있다. 고사리와 버섯, 취나물 등 지리산 청정지역에서 채취한 자연산 농산물이 정겹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 나오는 용이와 월선이가 첫날밤을 보낸 화개장터의 흔적은 찾아볼 길이 없지만 푸근한 시골 인심은 그대로다.
| 물새도 쉬어간다는 하동 송림. |
수수부꾸미 가게 앞을 지날 때는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맛을 내는 비결을 아주머니에게 비법을 묻자 '영업비밀'이라며 웃는다. 장터 한쪽 구석에는 대장간이 있다. 낫과 호미 등 농기구를 직접 손으로 만드는 공간이다. 벌겋게 숯불에 달아오른 쇠를 잡아 주는 사람과 망치로 담금질하는 사람이 2인 1조로 일하는 공간이다. 옛날 방식을 고집하며 땀을 뻘뻘 흘리는 두 사람은 영호남 출신의 명콤비라고 했다.
■일곱 왕자의 전설이 깃든 칠불사
화개장터를 벗어나면 지리산 계곡 길이 시작된다. 산안개가 내려앉은 골짜기엔 맑은 물이 넘쳐난다. 수 천 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 창문을 내리고 30여 분 달리면 칠불사에 도착한다.
| 초의 선사가 동다송을 집필한 칠불사 정문. |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성불했다는 전설이 깃든 절이다. 칠불사라는 이름도 그래서 붙여졌다. 전설대로라면 우리나라에서 불교를 최초로 공인한 시점이 고구려 소수림왕(373년)에서 금관가야의 김수로왕 시대로 17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구려 소수림왕 때를 정설로 삼는 주류 입장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율령을 반포해 고대국가의 기틀을 잡은 시기를 불교를 공인한 시점과 일치시키려는 일제강점기 관변 학자들의 잘못된 시각이 빚어낸 식민사관의 잔재라고 주장한다. 정확한 진실은 알 길이 없다.
칠불사 경내에 들어서면 대웅전 왼쪽에 '아자방'이 있다. 신라 효공왕 때 담공 선사가 구들을 놓았다는 선방이다. 불을 한 번 때면 100일간 온기가 유지된다는 온돌방이다. 온기가 방안 전체로 고르게 퍼지는 구조의 과학성이 입증돼 1979년 '세계건축사전'에 수록되면서 세상에 알려진 신비로운 방이다.
하지만 아자방의 진가는 한국 다도의 중흥을 이끈 초의선사가 우리나라 차 문화의 기틀을 다진 '동다송'을 집필한 곳이라는 대목에서 더욱 빛이 난다.
| 은빛 모래가 정갈한 섬진강. |
칠불사에서 하동 읍으로 향하는 길옆으로 녹차 밭이 이어진다. 신라 흥덕왕 때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가져온 녹차나무를 처음 심었다는 지리산, 화개골이 녹차 첫 재배지라는 주장에 신비성을 더해 주는 풍경이다. 잠깐 차를 세워 햇차를 구입하니 주인 할머니가 새로 만든 '뽕잎 차'를 덤으로 건넨다.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하동 솔밭
하동 읍, 섬진강 철교를 바라보는 지점에는 솔밭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조선 영조 때 강바람과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소나무를 심었다고 기록된 '하동 송림'이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사신이 모여서 군사동맹을 맺었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곳 주민들은 관심조차 두지 않는 분위기다.
솔밭에 들어서면 활시위 소리가 들려온다. 주민 쉼터로 마련된 궁터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백사장으로 내려가면 지리산 맑은 물에 씻겨온 모래 결이 정갈하다. 한때는 수십 척의 어선이 머물렀다는 나루터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다. 섬진강 물에 물장구를 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해맑을 뿐이다.
| 옛날 방식을 고집하는 화개장터 대장간. |
모래톱에 앉았다가 솔밭으로 날아가는 물새들의 몸짓이 가볍다. 백사청송. 은빛 모래와 푸른빛 소나무가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시인 묵객이 반드시 찾는다는 하동 송림.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글·사진=정순형 선임기자 junsh@busan.com
여행 팁 ■교통편 시외버스:부산 서부터미널에서 하동터미널까지 가는 버스가 오전 7시부터 수시로 운행한다. 2시간 20분 소요. 요금 1만 1천100 원. 기차:부전역에서 하동역까지 가는 무궁화호가 하루 4차례 운행한다. 하루 3시간 10분 소요. 요금 1만 1천 원. 부산역에서는 매일(월요일은 제외) 오전 8시 20분 남도해양열차 S트레인이 운행한다. 요금 1만 7천 100 원. 자가운전: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섬진강대로로 빠져나가면 하동읍에 도착한다. 2시간 20분 소요. 통행료 약 6천 800원. ■먹거리 | 섬진강 재첩국. |
하동이 자랑하는 먹거리는 재첩국이 첫 번째다. 섬진강 하구에서 잡은 재첩을 소금기가 빠질 때까지 맑은 물에 헹군 후에 냄비에 넣고 끓인 재첩국이다. 냄비 뚜껑이 넘칠 정도로 가열되면 찬물로 식혀서 다시 끓이기를 3번 이상 반복한 후에 얇게 썰은 부추와 마늘, 고추를 넣고 팔팔 끓이면 재첩국이 완성된다. 섬진강 재첩국은 숙취 해소와 혈액 순환, 변비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소현정. 055-883-9058. 1인분 1만 원. ■잠잘 곳 화개 펜션:055-884-6673 클라우스 펜션:010-8788-4875 토담 농가:055-884-3741 아름다운 산골:055-883-7601 섬진강 풍경:010-5494-7722 정순형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