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속의 대가야 문화 우리나라와 일본은 가야 이전부터 인연이 있는 나라였다는 것이 각종 유물들로 입증되고 있다. 그런데 이때부터 왜 좋은 인연으로 되지 않았고, 요즘에 이르기까지 나쁜쪽으로 만 엮을을가?
일본과 가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로, 이때부터 우리나라를 침입하여 각종 문화재를 약탈해 갔으니 참 오래전부터 악연으로 맺어진것 같다.
고령 대가야 박물관에 일본속으로 흘러 들어간 대가야의 유물들을 우리것과 비교하여 전시하고 있다.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설이 아니라 대가야의 문화를 모방하였다는것이 나타난다. 철기류, 토기류, 장신구류등에서 대가야것과 흡사한것을 비교해본다.
일본 왕들은 왕관도 대가야를 흉내 냈다.!
대가야의 왕은 화려한 금동관을 쓰고 권위를 과시하였다. 대가야의 관은 신라의 출(出)자형과는 다른 풀잎모양이나 광배모양을 하고 있다. 특히 지산동32호 고분의 금동관은 판모양의 솟은 장식 1매를 이마 쪽 정면에 배치시킨 광배형이다.
일본큐수(九州)의 후쿠이 니혼마쯔야마 고분 등에서 대가야의 왕관을 모방하여 만든 관이 출토 되었다. 1,500년 전 일본의 신분이 높은 지배자들은 대가야 왕과 비슷한 관을 쓰고 위엄을 부렸다.
일본여인 , 대가야 귀걸이로 치장하며 살았다.
대가야의 귀걸이는 가는 고리에 속이 텅 빈 공이나 참외모양의 중간 장식을 연결하고, 사슬처럼 생긴 연결고리에 하트,원뿔,산치자형,공모양의 장식을 매달았다. 이는 신라귀걸이 의 굵은 고리와 크게 구별된다.
대가야의 귀걸이는 일본 열도의 전 지역에서 출토되며, 그 수량도 우리나라에서 출토되는 것보다 훵씬 더 많다. 금,금동관,은,으로 화려하게 만든 대가야 귀걸이는 일본으로 수출되는 최고의 인기 상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500년전 일본의 여인들은 대가야 귀걸이로 예쁘게 치장하는 것을 매우 좋아 했다
같은 제품 .... 누가 이길까? 고리자루큰칼
대가야는 고리자루큰칼 , 쇠창,쇠도끼,화살등의 다양한 무기들을 만들었다. 특히 고리자루큰칼은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사용했다.대가야의 고리자루큰칼은 금과 금동으로 장식한 고리 속에 용과 봉황을 새기고,무늬를 넣어 매우 화려하다. 고리도 금판으로 장식하고 , 내부에 각목문(刻目文)을 새긴 것이 특징이다. 또 쇠창은 ?는구멍을 팔각형을 만들고 음판을 둘러 장식한 것도 있다.
일본에는 후쿠오카와 쿠마모토를 비롯해 전 지역에서 대가야의 고리자루큰칼이 출토된다. 1,500년 전 일본에는 허리춤이 대가야의 고리자루큰칼을 차고 전쟁을 지휘하던 장군이 있었다.
대가야 토기를 모방한 일본토기, 그때 우리글과말을 가져가서 섰으면 좋았을텐데....... 의식주 모두, 가야의 것들을 수입하거나, 약탈해가서 만들어 섰다. 그런데 왜 이때 우리의 말과 글을 모방하여 사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요즈음 여행하기 좋을것인데.... 일본이라는 나라와 우리나라는 참 오래전부터 맺으진 좋지 않은 인연의 흔적들을 대가야박물관에서 또한번 만나고 왔다.
고대시대의 우리나라 , 대가야의 문화가 일본 속으로 흘러들어간 흔적들을 볼수있는데........ 일본인들은 이것을 역이용해서 임나일본부설로 역이용하고있다. 이렇게 볼때 1,500여년 전부터 악연으로 이어져온 나라가 일본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여행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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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혜천의 바람흔적 원문보기 글쓴이: 바람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