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보스포루스 해협 크루즈(Cruise)
보스포루스 크루즈(Cruise) 안에서 만난 머리가 허연 서양 늙은이한테 말을 걸었는데 쉰다섯 살의 아일랜드인으로 내가 환갑이 넘었다니 놀란다.
60년대 서울 YMCA의 ‘Sing Along Y’에서 전석환씨에게 배웠던 기억으로 아일랜드 민요 ‘몰리 말론(Molly Malone)’을 한국말로 흥얼거렸더니 무척 반가워한다. 같이 ‘Molly Malone’을 흥얼거리며 아일랜드 영감과 함께 관광한 것도 아름다운 추억이다.
동서양을 잇는 다리 / 길거리에서 맛본 케밥(아들) / 현지 가이드
우리를 태운 크루즈는 마르마라(Marmara) 해협을 바라보며 보스포루스 좁은 해협을 거슬러 올라 동서양을 잇는 보가치키(Bogaziki) 다리를 지나서 멀리 흑해가 바라보이는 곳까지 갔다가 내려온다.
유럽 쪽 이스탄불은 무수한 모스크와 미나레트(첨탑)로 동화 같은 풍경을 보여주었고, 아시아 쪽 이스탄불 또한 멋진 별장들로 한 폭의 그림 같다. 가이드의 설명으로 이스탄불의 집값은 우리나라 서울과 비슷할 정도로 비싸다고 한다.
멀리 아시아 쪽 남쪽으로 우리에게 노래로 익히 알려진 ‘우스크다르(Uskdar)’도 어렴풋이 보인다.
<7> 벨리댄스(Belly Dance)와 세마춤
저녁에는 벨리댄스를 보러 다리를 건너 아시아 쪽으로 갔다. 극장식 식당으로 그다지 크지는 않은데 몇 가지 식사코스 가운데 아들 녀석이 120유로를 주고 최고급으로 예약하였더니 무대 맨 앞자리로 산해진미(山海珍味)가 그득 차려졌다.
고대 술탄의 할렘을 재현한 쇼는 2시간 정도 진행되었는데 벨리댄스의 그 화려함과 신기(神技)에 가까운 허리 흔들기는 놀라울 뿐이었고 이슬람 수피파(Sufism)의 무아지경에 빙글빙글 도는 세마 춤(Sema whirling dance)도 인상적이다.
벨리댄스(배꼽춤) / 이슬람 수피파의 세마춤
최고급 식사를 하는 사람들만 계속 무대 위로 불러올려서 쇼에 참가시키는데, 나도 수없이 끌려가 고역(苦役?)을 치렀다.
나중에는 손님 중에서 술탄(Sultan)을 선정하는데 나와 뚱뚱한 독일 녀석 둘을 놓고 선정하다가 체중에 밀려(?) 독일 녀석이 술탄이 되어 온갖 호사(好事)를 누린다. 나는 그 통에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여기에서 한쪽 구석에 식사는 하지 않고 차만 마시는 한국 젊은 여성 관광객 10여 명이 있어,
‘선생님들이지요?’ 하고 물었더니 ‘어떻게 아셨어요?’ 하며 놀란다. 선생님이 선생님을 모를까... ㅎ
귀국 전날 가죽 제품 가게와 토산품 점에 들러서 몇 가지 선물을 쇼핑하였다.
특히 질이 우수한 가죽 제품이 눈에 띄었는데 가격이 무척 싼 편이었다. 지갑 몇 개, 실크 스카프 몇 장을 샀는데 품질도 좋았고 가격도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
그런데 무척 아름답기는 하지만, 카펫은 조그만 것도 상상외로 비싸다.
카펫 가게 / 가죽 지갑 / 이스탄불 도심의 오벨리스크
관광하다 보니 시내 광장 한가운데 이집트의 오벨리스크가 있기에 무심코 가이드한테 저거 모조품이겠지? 했더니 버럭 화를 낸다. BC 1550년, 이집트 파라오(왕)가 메소포타미아 전투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카르나크(Karnak) 신전에 세웠던 것인데 비잔틴 제국의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I) 황제가 이집트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세운 것이라고 한다.
양고기 냄새가 나는 길거리의 즉석 케밥, 점심으로 먹었던 아담한 레스토랑의 깔끔한 식사, 꼬불꼬불하고 복잡한 골목길도 잊을 수 없다. 이스탄불에 국한된 터키 여행을 끝내며 무진장한 아시아 쪽 터키의 아름다운 관광지들을 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런데 터키는 워낙 면적이 넓다 보니 동부 아시아지역의 터키를 골고루 보려면 적어도 20일 이상은 잡아야 한다고 한다.
꼭 다시 한번 와서 골고루 둘러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