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여행기18 - 회항
이번 여행 일정은 4박 6일이었다.
그런데 졸지에 6박 8일이 되어 버렸다.
1박은 비행기 안에서 했다.
갑자기 이틀을 더 머물게 되었다.
우리는 태국 항공사 중에 가장 후진 항공사 비행기를 탔다.
여행비를 아끼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이름하여 저가(低價) 항공이다.
9I(구아이) 항공사였다.
두 번 다시는 “9I(구아이)” 비행기는 타고 싶지 않다.
꿈에서도...
2월 11일 밤 12시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돌아올 계획이었다.
수속을 밟고 탑승을 하고
이륙을 하고
여기까지는 순탄했다.
하지만
비행기가 뜨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기내에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지독한 냄새였다.
꼭, 전기 합선으로 전선이 타들어가는 듯한 지독한 냄새였다.
머리가 지끈 지끈 골치가 아팠다.
불안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니라 다를까 30분쯤 후..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왔다.
“알립니다.”
“알립니다.”
“비행기 엔진으로 회항합니다.”
“다시 돈무앙 공항으로 회항합니다.”
그 이후로 수차례 안내 방송이 더 나왔다.
엔진이 고장 났다고 했다.
비상 엔진으로 회항한다고 했다.
(비행기를 잘 아는 친구에게 알아본 결과 비행기에 비상엔진은 없다고 했다. 아마 엔진 두 개 중에 하나가 고장 난 것일 거라고 했다. 비행기는 엔진 하나가 꺼져도 날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다고 한다.)
모두들 숨을 죽였다.
비행기 안은 긴장감이 돌았다.
30분간 날아간 거리를
1시간 30분에 걸쳐서 회항했다.
간 시간에 비해서 되돌아온 시간이 세배나 더 걸렸다.
회항하는 세배의 시간은 고문처럼 고통스러웠다.
비상엔진으로 겨우 돌아왔다.
추락하지 않고 겨우 겨우 살아서 돌아왔다.
이를테면 유람선 좌초로 구명조끼를 입고 살아난 격이다.
십년감수했다.
그 후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항공사에서는 1시간 만에 수리하여 다시 뜬다고 했다.
승객들은 다시 탄다, 못 탄다. 수많은 갈등이 있었다.
다시 타고 가자는 팀, 죽어도 그 비행기는 못 탄다는 팀..
양 팀으로 나뉘어서 갈등이 심했다.
우리 거창고 팀들은 “죽어도 못 탄다.”에 합세했다.
워낙 관광 성수기인지라 이 비행기를 놓치면 돌아 갈 수 없다고 했다.
한 달 동안은 비행기 표가 없다고 했다.
앞으로 한 달 가량 비행기 표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그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10시간 만에 그 후진 비행기를 다시 타고 한국으로 출발했다.
우리는 원칙을 딱 정했다.
“학생들을 위험에 노출 시킬 수는 없다.”
거창고 팀들은 8명이었다.
학생 4명, 교사 3명, 여행사 가이드 1명
우리는 원칙이 분명했다.
“학생을 위험에 노출 시킬 수는 없다.”
“부모가 알면 맞아죽을 짓이다.”
“교사는 학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결국 대부분 그 비행기를 타고 돌아갔다.
승객 340명 중 11명만 남았다.
거창고 8명, 신혼 부부 2명, 배낭여행 청년 1명
신혼부부는 그 비행기를 다시 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신혼여행이잖은가?
신혼여행에서 죽을 뻔 했잖은가?
배낭여행객 1명은 일찍 가야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이틀 더 머물게 된 것이 잘 된 일인 양 생각하고 있었다.
열흘 후에 떠나도 상관없다고 했다.
거창고 8명은 학생의 안전 문제로 그 비행기를 거부했다.
절대로 다시 탈 수는 없었다.
우리는 48시간을 태국에 더 머물렀다.
16시간은 공항에서 투쟁으로 보냈다.
9I(구아이) 항공사 한국 직원은 해결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남자가 그렇게 많이 우는 거는 처음 봤다.
20번은 울었을 것이다.
태국 주재 한국 영사도 나왔다.
“그런 거는 항공사도 아닙니다.”
“그런 비행기를 허락한 대한민국 건설교통부는 지길 놈들입니다..”
한국 영사도 흥분으로 방방 뛰었다.
알고 보니 그 여행사는 상습적이었다.
우리 앞에도 그런 일이 있었고
우리 뒤에도 그런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는 죽어라 투쟁했다.
“비행기 표 내 놔라.”
“죽여라”
“배 째라”
우리는 막 나갔다.
아예 공항 청사에 드러누웠다.
먹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하고
난민도 그런 난민이 없었다.
막 나가는 우리를 보고 어느 누구도 시비를 걸지 못했다.
온 공항 바닥에 드러누워서 투쟁을 했다.
결국은 비행기표를 받아냈다.
아시아나 비행기 표였다.
우리나라 아시아나 항공이 얼마나 반갑던지..
승리의 쾌감은 하늘을 찔렀다.
역시 싸움은 필요하다.
필요할 때는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
48시간을 더 머물렀다.
16시간은 투쟁에 쓰였고
나머지 시간은 투어를 했다.
9I(구아이) 항공사에서 제공한 투어다.
호텔도 최고로 잡아줬다.
항공사측의 최소한의 예의였다.
덕분에 방콕 시장을 확실하게 구경했다.
“짜뚜짝 시장”이었다.
저가(低價)항공은 위험하다.
언제 떨어질지도 모른다.
보험도 될지 안 될지 모른다.
죽으면 개죽음이다.
그날 누군가가 그랬다.
“41년 된 비행기다.”
선반이 툭툭 떨어지기도 하고..
테이프로 붙여 놓은 곳도 있고..
어떤 곳은 노끈으로 묶어 놨다.
비행기 회항....
아픈 추억이다.
하지만 평생 추억으로 남게 생겼다.
이번 여행의 클라이막스였다.
교훈...
“저가(低價) 항공은 타지마라.”
사진1 : 앙코르왓 뒤에서 본 모습이다. 앙코르왓은 세계 최대의 문화유산이다.
사진2 : 태국 돈무앙 공항이다. 공항에서 난민 생활을 했다. 장장 16시간동안 먹지도 못하고, 씻지도, 자지도 못하고 죽을 고생을 했다. 차가운 공항 바닥에 탈진해 드러누웠다.
사진3 : 이영애다. “대장금” 광고다. 태국에서 대장금, 이영애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한국, 한류 자랑스러웠다.
이상으로...
동남아 여행기를 종결한다.
내 생애 굉장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