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books' 138호는 '아까운 책' 특집호로 꾸몄습니다. 지난해 가치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고 우리 곁을 스쳐가 버린 숨은 명저를 발굴해 소개합니다. 다양한 분야 열두 명의 필자가 심사숙고 끝에 고른 책은 무엇일까요? 여러분도 함께 '나만의 아까운 책'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이 작업은 출판사 부키와 공동으로 진행했습니다. 여기 공개되는 원고를 포함해 총 47편의 서평이 실리는 단행본 <아까운 책 2013>이 오는 5월 초 부키에서 발간됩니다. <편집자> |
기후변화를 다루는 이야기라면 열에 아홉, 주인공은 북극곰이다. 수영선수를 능가하는 북극곰이 잠시 쉴만한 유빙을 찾지 못해 익사를 하거나, 먹이가 사라져 동족을 먹이로 삼는 것은 이제 새롭지도 않을 정도다. 지구상 생물종 중에 공룡 정도를 제외하면 북극곰보다 더 많은 하이라이트를 받은 동물이 있었을까 싶다.
덕분에 우리에게 기후 변화란 북극이 녹아내리는 이미지로 제한되어 있다. 조금 더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집중호우나 가뭄을 떠올리는 정도일까. 2008년 MBC가 야심차게 준비한 <북극의 눈물>에 이어 2012년 <남극의 눈물>까지 방영되면서 이런 이미지는 더욱 관성화되었다. 여전히 환경단체들의 캠페인에는 처연한 표정의 북극곰이 등장하고, 표어는 매양 "북극곰을 살려 주세요"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화두가 한 가지 모습으로만 귀결되다 보니 그만큼 관심도 쉬이 사라진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는 정작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해본 적이 없으면서도 기후변화란 말에 너무 피로해져 있다.
'북극곰'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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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열대는 죽음의 땅이 되었나>(크리스천 퍼렌티 지음, 강혜정 옮김, 미지북스 펴냄). ⓒ미지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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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북극곰이 소중한 친구이자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걸 부인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기후변화 문제를 우리 생활과 괴리시키는 순간, 위기는 남의 얘기가 된다. 북극곰은 우리가 도덕적으로 자위를 하거나 상황을 축소해 무마시키기 위한 선전도구로 전락해버린 셈이다. 그런 점에서 "저를 광고에 쓰지 마세요. 저와 제 가족을 지켜주지 못할 거라면…"이라는 카피로 유명해진 모 석유기업의 광고는 흉악하기까지 하다.
이런 의아한 상황은 지금도 여전하다. MBC가 야심차게 준비한 <남극의 눈물>이 다큐멘터리로서는 보기 드문 12%의 시청률을 올리면서 끝난 2012년, <왜 열대는 죽음의 땅이 되었나>(크리스천 퍼렌티 지음, 강혜정 옮김, 미지북스 펴냄)라는 긴 이름의 책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 책은 초판도 다 소화하지 못한 채 1000여부 정도만 팔리며 서점에서 사라져 갔다. <쇼크 독트린>(김소희 옮김, 살림Biz 펴냄)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지성으로 꼽히는 나오미 클라인 등 유명 인사들의 추천이 쏟아졌다는 걸 감안하면 초라한 성과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미덕이 더욱 빛이 난다. 저자 크리스천 퍼렌티는 '기후변화=극지방 해빙'이라는 인간들의 관성적인 인식에 통렬한 비판을 던지기 때문이다. 그것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실증 사례를 보여주며 우회하고 있는데도 꽤 성공적이다.
시대의 비극, 기후변화로부터 오다<왜 열대는 죽음의 땅이 되었나>는 케냐 작은 부족의 청년, 에카루 로루만을 과연 누가 죽였는지부터 시작한다. 저자가 에카루를 발견했을 때 그의 사체는 훼손되어 있었고 몸에 지녔던 소품은 온데간데없었다. 눈앞의 상황만을 놓고 본다면 이건 아프리카에 만연되어 있는 부족 간의 다툼이 틀림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근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목축이 중심인 에카루의 부족은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풀과 물을 찾아 이동을 해야만 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은 이웃 부족과의 경계지역이었다. 기후변화로 인해 기후가 황량해지고 가축이 줄어들자 에카루의 부족과 이웃 부족은 서로 죽고 죽이는 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자, 이제 그럼 이 시점에서 생각해보자. 에카루는 과연 누가 죽인 걸까?
비근한 예가 적지 않다. 21세기 최악의 인종청소 사건으로 꼽히는 수단 다르푸르 사태는 최초의 기후전쟁으로 꼽히기도 한다. 수십 년간의 가뭄이 찾아들자 목축이 중심이었던 북수단 사람들은 에카루의 부족처럼 물을 찾아 남하했고, 남수단에 위치한 사람들과 대립하기 시작했다. 피부색도 다르고 종교도 다른 두 집단은 이내 전쟁을 벌였다. 이 와중에 수만 명의 남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고, 여성들은 조직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야만 했다. 씨를 아예 바꿔버려 해당 종족을 말살해버리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우리는 흔히 수단 다르푸르 사태를 인종과 종교가 빚어낸 참사라고 얘기하지만, 그 이전에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과연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나 했을까.
기후변화는 '파멸적 수렴'으로 귀결 된다기후변화는 그 자체로도 폭력적이지만, 발화점이 되어 "파멸적 수렴"을 부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전 지구적인 것이기도 하다. 크리스천 퍼넬리는 아시아의 대국인 인도에 가뭄 반란군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인도 북부 안드라프라데시 산악지대는 소규모 게릴라 전쟁이 많기로 유명하다. 마오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반군이 활동하는 지역을 묶어서 '붉은 회랑'이라고 하는데 동시에 '가뭄 회랑'이기도 하다. 인도의 강수지도와 시기, 그리고 폭력 지도를 대조해보면 가뭄이 심한 곳에서 반군의 활동도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 패턴이 예전과 달라지면서 농민들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도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기후변화가 단순히 강수량의 변화를 넘어 사회ㆍ경제적으로 어떻게 전화되어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지 보라고 강변한다. 이들 지역의 약자계층이 이런 정치적 변화의 최대 피해자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가하면 남미 지역은 기후변화로 삶의 터전을 잃은 원주민들이 대거 난민으로 내몰렸다. 가뭄으로 농업이 무너지자 사람들은 전업 벌목꾼이 되었다. 하지만 나무가 사라지자 다시 일자리를 잃었고, 결국 고향을 떠나 떠도는 신세가 됐다. 엘니뇨가 위력을 행사한 어업 쪽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하지만 저자는 피해가 여기서 그치지 않는 점을 강조한다. 과도한 벌목으로 인해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수단을 잃어 기후변화가 더 위력적으로 변하는 악순환이 남미 전체를 휘감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렇듯 저자가 말한 파멸적 수렴은 현실이다. 그래서 더 뼈아프다.
자본주의와의 위험한 동거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기후변화가 사회적 변화를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책은 많다. <왜 열대는 죽음의 땅이 되었나> 역시 그저 그런 책 중에 하나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은 기후변화를 인간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에 있지 않다. 더 나아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체계에도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까지 던진다는 데에 있다.
그런 고민의 흔적은 기후변화와 서구의 근대성, 자본주의가 결합될 때 각각 어떤 파국적 결말을 가지고 왔는지를 고찰하는 데서 나타난다. 저자는 냉전시대의 군국주의와 신자유주의적 병리 현상들이 국가와 사회의 관계를 왜곡시켰고, 기후변화로 인해 부정적인 변화가 더해져 작금의 위기가 발현됐다고 보고 있다. 아프리카의 가축 약탈은 부족의 부의 축적 수단뿐만 아니라 무역 시스템의 일환으로 확장되면서 가혹해졌다고 지적하며, 또 인도 '가뭄 회랑'의 비극은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농민들을 외면했기 때문에 파장이 커졌다고 쓴다.
이런 시각은 여타 기후변화 저서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들다. 저자의 현장 분석과 포괄적인 고찰이 힘을 발하는 순간이다. 책을 드는 순간 우리는 기후변화가 모든 원인은 아니지만 현대 문명의 구조적 고리에서 파생됐고, 따라서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선명한 결론에 다다를 수 있게 된다. 그것도 일사천리로.
개인 노력이 아닌 체제 변화가 해답우리는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전기를 아끼자는 구호에 맞춰 전등을 끄고 스스로 착한 사람이라고 자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시스템 자체를 바꾸지 않고서는 광폭해지는 그들의 비극을 막을 수도, 무의식중에 우리가 가해자가 되는 상황을 회피할 수도 없다. 내가 오늘 즐긴 스마트폰 게임 하나가 총알로 바뀌어 저 아프리카 소년병의 머리를 겨누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물론 의도한 것이 아니니 죄의식을 가질 필요까진 없다. 하지만 우리에겐 책임이 있다.
기후변화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라는 관점에 동의한다면 <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프레드 맥도프·존 벨라미 포스터 지음, 황정규 옮김, 도서출판삼화 펴냄)이나 <기후정의>(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기획, 이안 앵거스 엮음, 김현우·이정필·이진우 옮김, 이매진 펴냄)를 함께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두 책은 모두 체제 변화가 기후변화의 해답이 되는 이유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기후가 만들어낸 비극적인 사례를 더 알아보고 싶다면 <기후전쟁>(하랄트 벨처 지음, 윤종석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을 추천한다. <왜 열대는 죽음의 땅이 되었나>처럼 복합적인 관점은 덜하지만, 기후변화가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알기에는 더욱 슬픈 내용이 담겨져 있다.
북극을 넘어 기후변화를 사회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책들이 쏟아지는 건 무척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전국 각지에 산재해도 1000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일단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인터넷 홍보성 기사를 본 누리꾼들처럼 돈 얼마나 받아먹었냐고 의심해도 상관없다. 그대, 지갑을 열어라. 우리 얘기 좀 해야겠다.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자료원:www.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