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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선진편 25장에 보면 관자 5~6인에 동자 6~7인이라는 말이 나온다.
김용이 쓴 영웅문 3부작 중 제일 앞의 것인 <사조영웅전>의 여주인공 황용이 대리국 황제의 수하인 '어초경독' 네 사람을 돌파하던 중에 이것을 가지고 말장난 하는 대목이 있다.
"공자의 문하에 제자가 몇이나 있었는지 아십니까?"
"모를 리가 있습니까? 공자의 문하에 제자가 3천명이 있었고 그 중 달인이 일흔두 명이었지요."
"일흔두 명의 나이가 각각 달랐을 터인데, 그 중 젊은 사람이 몇이고 소년이 몇이었는지 혹시 아십니까?"
서생은 크게 당황하여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논어나 다른 경전에도 그에 대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만..."
"그러니 공자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지 않습니까? 방금 읽지 않으셨습니까? 관자오륙인, 동자육칠인이라... 5에 6을 곱하면 서른이니 젊은 사람은 서른 명이요, 6에 7을 곱하면 마흔둘이니 소년은 마흔두 명. 서른과 마흔둘을 더하면 꼭 일흔두 명이 아닙니까? 글을 읽으면 무엇합니까, 생각을 하셔야지요. 쯧쯧..."
- 김용, 사조영웅전 7권 21~22쪽, 김영사
보면서 재밌다고 깔깔댔었는데, 옛날부터 전해오던 유머라는 걸 몰랐다.
한천 이재(1680~1746)의 집에 낯선 이가 불쑥 들어왔다. 의복은 말쑥하지만 누군지는 알 수 없었는데 대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논어 무우장의 관동의 수가 몇 명인지요?"
"관자 5~6인, 동자 6~7인 외에 무슨 딴 뜻이 있겠소?"
"제 소견으로는 그렇게 볼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한천은 무슨 특별한 견해가 있는가 싶었다.
"고견을 듣고 싶소."
"관자는 30명이고, 동자는 42명이 아닌가요?"
- 허경진, 악인열전, 152쪽, 한길사
찾아온 사람은 박남이라 자기 이름을 밝히고 이재의 학문이 밝지 못하다고 조롱하고는 사라졌다. 나중에 알고보니 박남은 호남에 유명한 명창인데, 과거 보러 가는 유생들이 한천의 학문을 칭찬하자 자기가 골려줄 수 있다고 술내기를 한 것이었다.
박남은 코메디 센스가 대단해서, 꼬장꼬장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청음 김상헌도 웃게 만들었다고 한다.
...라고 예전에 적은 일이 있는데, 출전이 더 오래된 거라는 걸 알았다.
<태평광기>라는 중국 설화집이 있다. 송 태조의 명으로 977년 편찬된 책이다.
이 책에 석동용(石動筩)이라는 북제(550년 ~ 577년) 때 신하가 했던 이야기가 두 편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위의 이야기다.
석동용의 다른 일화는 이런 것이다.
북제의 고조(이 냥반 이름이 高歡...)가 신하들에게 수수께끼를 냈다.
"졸률갈답(卒律葛答)이 무엇이냐?"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석동용이 대답했다.
"전병(煎餅-중국식 부꾸미)입니다."
"맞았다."
졸률갈답이란 돌궐어로 그 뜻은 "불 앞에서 함께 먹는다(前火食竝)"이다. 전병이라는 말은 前火를 전煎으로, 食竝을 餅으로 묶은 것이다. 그러니까 고대의 "썰렁개그"이다.
석동용은 이번에는 자기가 문제를 내겠다고 했다.
"다시 졸률갈답이란 무엇인가입니다."
고조는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모르겠는데?"
"답은 전병입니다."
석동용이 뻔뻔하게 말했다.
"그건 짐이 낸 수수께끼 아니냐? 이게 뭐냐?"
석동용이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솥이 따끈할 때 하나 더 꺼내왔습니다."
고조가 크게 웃었다.
석동용의 이런 유머는 다른 곳에도 전해온다.
고조가 크게 법회를 열어 고승이 와서 불경을 강의했다. 석동용이 질문을 던졌다.
"부처님은 무엇을 타고 다니십니까?"
"천엽연화(千葉蓮花)나 육아백상(六牙白象)을 타고 다니십니다."
"허허, 스님은 불경을 읽고도 부처님이 타고 다니는 게 뭔지 모르시는군요."
"시주는 부처님이 뭘 타고 다니는지 아십니까?"
"소를 타고 다니십니다."
"어디에 근거해서 하시는 말씀입니까?"
석동용이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법화경에 나옵니다. 이렇게 되어있지요. 世尊甚奇特(세존은 매우 기이하고 특별하시다). 이 특(特)이라는 글자는 어린 송아지를 가리키는 한자 아닙니까."
좌중이 떠들썩하게 웃었다.
고조가 유교 경전을 놓고 학자들을 모아 토론했는데 석동용이 와서 질문을 던졌다.
"하늘의 성은 무엇입니까?"
박사가 대답했다.
"하늘의 성은 고(高-북제 황제는 고씨였다)요."
"하하, 천자의 성이 고니까 하늘의 성도 고라는 건 옛날 학설을 그냥 써먹은 거 아닙니까. 새로운 학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경서에 이미 하늘의 성이 나오니 이런 옛 설을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어느 경서에 하늘의 성이 나온단 말이요?"
"허허, 선생은 경서를 잘 읽지 않았군요. <효경>에 '부자지도는 천성야(父子之道,天性也)'라고 나오지 않습니까. 천성은 야(也)라고 떡하니 명기가 되어있단 말이죠."
내친 김에 하나 더.
사월초파일에 고조가 또 법회를 열었다. 고승이 강의를 한 뒤 석동용이 물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요?"
"오늘은 부처님 생일입니다(是佛生日)."
"부처(佛)가 해(日)를 낳았다(生)고요? 해가 부처님 아들이었군요!"
"아니, 아니. 오늘 부처가 오신 날이라는 겁니다(今日生佛)."
"오호라, 해(日)가 부처(佛)를 낳았다(生)는 거군요. 그럼 부처는 해의 아들이로군요!"
위 3편의 이야기는 수나라 때 만들어진 <계안록啓顏錄>이라는 책에 전한다.
[첨가] 하나 더
북제 고조가 어느날 <문선>을 읽다가 곽박이 쓴 유선시遊仙詩를 읽고 감탄했다. (곽박은 동진 때 도사로 <박물지>라는 책을 썼다.)
- 푸른 계곡엔 천여 길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도사가 섰구나.
"이 시는 지극히 정교하니 마치 성지聖旨와 같구나."
석동용이 즉시 몸을 일으키더니 말했다.
"이 시가 뭐 그렇게 좋습니까. 제가 지으면 이 시의 두 배는 될 겁니다."
고조가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따위가 뭐라고 나서는 거냐? 네가 죽는다고 해도 곽박보다 두 배나 좋은 시를 쓸 수는 없다."
석동용이 즉각 대꾸했다.
"폐하께서 명을 내리시니 신이 바로 지어 올리겠습니다. 만일 두 배가 되지 않으면 달게 죽음을 받겠습니다!"
그러더니 석동용이 시를 읊었다.
- 푸른 계곡엔 "이천여" 길이 있는데, 그 가운데 "두" 도사가 섰구나.
"어떻습니까? 두 배가 되는 시를 지었지 않습니까?"
고조가 파안대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