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남대문이라 불리는 숭례문은 지난 2008년 화재로 홍예문과 석축을 제외한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이지은 예술강사는 다시는 이런 마음 아픈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학생들에게 남대문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이렇게 탄생한 남대문 디자인 수업은 일반 디자인 수업과는 달리 우리나라 문화재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 숭례문의 가치와 의의를 생각해보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뜻 깊다. 일주일에 한 시간씩, 이 주 동안 진행되는 수업의 마지막 시간. 청구초등학교 4학년 1반 학생들은 지난주 스케치 해놓았던 나만의 남대문에 색연필로 옷을 입히느라 정신이 없었다.
디자인 작업 전 학생들에게는 남대문에 대한 배경지식과 함께 몇 가지 질문이 주어졌다. ‘내가 그린 남대문의 재료는 무엇인가요.’, ‘내가 그린 남대문의 용도는 무엇인가요.’, ‘내가 그린 남대문은 몇 층인가요.’ 등이었다. 아직 어린 학생들은 남대문의 겉모습에 치중하여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디자인의 목표와 목적을 설정하기 위한 구체적인 질문이 필수였다.
소실된 남대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남대문을 지키기 위한 방법’에 초점을 맞춘 학생들이 많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남대문을 지키기 위해 뾰족한 가시가 돋은 뽀로로가 서있기도 했고, 위기의 순간 우주로 도망갈 수 있는 우주선 남대문이 탄생하기도 했다. 남대문에 대한 애정이 귀여운 상상력으로 꽃피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이지은 예술강사는 자신의 수업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학생들이 꿈꾸는 모든 것이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 수업이었다. 이는 문화예술교육 디자인분야 시범사업부터 시작하여 6년 동안 강사로 일하며 깨달은 방침이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수업은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학생들은 몸을 돌려 뒷자리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친구들에게 재료를 빌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시끄럽게 굴거나 관련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은 없었다. 오히려 저마다 짧은 시간 안에 채색을 마치기 위해 작품에 집중하고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이지은 예술강사는 조력자로서 학생들을 지켜보는데 집중했다.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이건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 게 좋을까?” 등의 가벼운 질문을 던져 스스로 해답을 찾도록 했고, 학생이 하는 질문은 반 전체 학생들과 공유해 의견을 나누어 다수결로 결정하기도 했다. ‘가르치는 사람’보다는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 이지은 예술강사의 바람이었다.
아쉬운 채색 시간이 끝나고, 발표 시간이 이어졌다. 부끄럼이 많던 학생들도 이 시간만큼은 발표를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손을 들고 이름을 외쳤다. 이지은 예술강사는 준비한 마이크를 발표하는 학생들의 손에 쥐어주었다. 사소한 물건이었지만, 정식으로 나의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라는 것을 강조하는 좋은 방법이었다. 발표하는 학생은 긴장된 목소리로 자신의 작품을 소개했고, 듣는 학생들은 손을 들어 작품에 대해 질문했다. 발표의 가장 큰 의미인 ‘생각의 공유’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남대문 디자인 수업은 디자인 감각을 향상시킴은 물론, 사회적 문제까지 다루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지은 예술강사는 디자인이 가진 한계점을 아쉬워했다. 연극, 과학 등 다른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 디자인 수업이 가진 한계를 뛰어 넘고, 보다 폭 넓은 교육을 실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수업은 남대문을 디자인한다는 간단한 내용이었지만, 학생들은 이 주 동안 TV, 건물, 제품 등 주변의 모든 것에서 디자인을 찾고 발전시켜 왔다. 저도 모르게 ‘생활 속 디자인’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양한 디자인에 대해 유심히 관찰하고 한 번 더 생각해봤다면, 그것으로 됐다.”는 이지은 예술강사의 말이 비로소 이해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선생님께 받았던 짧은 칭찬으로 새로운 꿈을 꾸고는 한다. 이지은 예술강사의 수업은 꿈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다정한’ 수업이었다.
글·사진 _ 권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