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통천 송전소학교 졸업.
1975년 경희대학교 명예 공학박사
1976년 충남대학교 명예 경제학박사
1982년 미국 조지 워싱턴대학 명예 경영학박사
1985년 연세대학교 명예 경제학박사
1986년 이화여자대학교 명예 문학박사
1990년 서강대학교 명예 정치학박사
1995년 고려대학교 명예 철학박사
2000년 한국체육대학교 명예 이학박사
말년에는 대북사업에 열중하였다.
1998년 6월 16일에는 통일소라고 이름 붙인 소 500마리를 끌고 판문점을 통해 북조선을 방문하고,
2차로 1998년 10월 27일에는 소 501마리를 가져갔다.
이 과정에서 금강산 관광사업에 관한 합의를 얻어 1998년 11월 18일에 첫 금강산 관광을 위한 배가 출발하였다.
대북사업을 위해 1999년 2월에 현대아산을 설립했다.
모든 일의 성패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사고 자세에 달려 있다.
■ 자기 자신의 실패는 가슴깊이 새겨 두어야 한다. 실패를 망각하는 사람은 또 다른 실패가 있을 뿐이다. - 66년 타이 태국 고속도로 현장에서
■ 안 된다고 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기어코 해내고 말겠다는 결심은 더 굳세어지고,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더욱더 치열하게 할 수 밖에 없어진다. -70년 현대조선소 구상시
■ 배를 만드는 것도 어려울 것이 없다. 우리가 하는 건축공사를 육지에서 수상으로 장소를 옮겨서 건축하는 차이일 뿐이다. - 71년 현대조선소 건설공사를 검토하면서 -
■우리 한국인은 모두 작심만 하면 뛰어난 정신력으로 어떤 난관도 돌파할 수 있는 민족이다. - 72년 3월 조선소 기공식에서
■ 어떤 실수보다도 치명적인 실수는 일을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73년 1호선 건조시
■ 모든 것을 나에게 맡겨라. 겁이 나거든 집에 가서 누워 기다려라.- 74년 26만t급 대형유조선의 도크 이동을 지휘하며
■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내는 법이다. 의심하면 의심하는 만큼 밖에는 못하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는 것이다. - 76년 주베일 산업항 공사현장
■ 사람이 태어나서 각자 나름대로 많은 일을 하다가 죽지만,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하는 것만큼 숭고하고 가치 있는 것은 없다. - 76년 주베일 건설현장

*故정주형 회장과 관련된 일화 *
우리나라가 가난해서 공장을 지을 돈도 없고, 민간 기업이 외국에서 돈을 빌려오기도 어렵고 외국은행에서 돈을 빌려주려고 하지도 않을 때였습니다.
일화에 의하면 정주영 회장께서 공장 설립을 위한 차관을 빌리기 위해 영국에 있는 모 은행에 부지 사진(모래 백사장) 한장과 1/50,000 지도, 오백원 지폐(그 당시는 주화가 아니라 지폐였음) 하나 달랑 들고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조선소를 지을테니 돈을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영국 은행 관계자들이 보니 가난한 나라에서 배를 만들어 본 적도 없고 기술도 없는 나라에서 어떻게 조선소를 짓고 배를 만들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때 정주영 회장이 오백원 지폐를 꺼내서 이순신 장군(제너럴 리-영국인들은 넬슨 제독을 존경하는 사람이 많고 넬슨 제독만큼 이순신 장군을 잘 알고 존경한다고 하는군요)과 뒷면에 있는 거북선을 보여 주면서 '이것이 세계 최초의 철갑 함선인 거북선입니다. 우리는 이미 500년도 훨씬 전에 이런 철갑선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고는 나라입니다'라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러면 조선소를 만들면 만들 배는 있느냐? 누가 당신들한테 배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겠느냐?라고 물었답니다.
그래서 정주영 회장은 '그러면 배를 수주 받으면 조선소 만들 돈을 대주겠느냐?'하고 물었고, 영국 은행관계자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리스로 넘어가서 선주에게 (그때 그 선주가 오나시스였는지는 확실히 기억이 안 났는데, 다른 분이 오나시스의 처남이었던 그리스의 리바노스라는 사람이라고 하는군요..) 이번에는 반대로 '당신이 우리한테 배를 발주하면 그 계약서를 가지고 영국에서 돈을 빌려서 조선소를 만들어서 당신 배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답니다.
(물론 이때도 사진과 1/50,000 지도 한장 들고 갔다고 합니다. 지금은 일반 도로안내 책에도 1/10,000, 1/20,000 지도가 일반적인데 그때는 지도도 귀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선주로부터 발주 계약을 받아냈고, 이 계약서로 보증을 받아서 영국 은행으로부터 차관을 들여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울산조선소(현재의 현대중공업의 전신)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하는 장면입니다.

“지금같은 경제 위기엔 정주영같은 인물 필요” 美 경제학자
불황늪 지구촌 故 정주영을 그리다
"정주영 회장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 - 미 경제학자
"글로벌 위기 해법은 정주영"
<DMZ 평화상 시상식>대상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개성관광 개통서 잠정중단까지…정주영 ‘소떼 방북’이 신호탄
"더 이상 한국에 이병철ㆍ정주영은 없다"
[경영학자 60명이 뽑은 건국 60년 최고 기업인]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건국 60년] 정주영회장·삼성 경제성장 일등공신
CEO가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 故 정주영 명예회장
정주영 발자취 연극으로
고(故) 정주영 회장 일대기 연극 '성공을 넘어' 제작발표회
'선생님'이 존경하는 기업인 1위는 '정주영 명예회장'
윤종용 삼성전자부회장…“팸플릿식 허튼 지식보다 정주영회장의 지혜 배워라”
'정주영 기념관' 만든다

강원도 아산에서 출생한 정주영 회장님은 그의 삶의 전반적인 철학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가진 최고의 재산은 부지런함과 근검 절약이었다. 정주영 회장님 스스로 평생의 자본이라고 말하던 것이 부지런함이었다. 매일이 새로워야 하고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하루마다 더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더욱 부지런하기 위해 노력했다.
성실함은 자신감을 갖게 한다. 어떤 일을 할 때는 경력이나 학벌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시점에서 그 사람의 마음가짐과 자세가 일을 한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극복하지 못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이유 같은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성실하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큰 문제도 차근차근 풀어나 갈 수 있는 해결책이 보이게 된다.
작은 일에 성실한 이를 보고 우리는 큰일에도 성실하리라 믿는다. 작은 약속을 어김없이 지키는 사람은 큰 약속도 틀림없이 지키리라 믿는다. 그러므로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큰일에도 최선을 다한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성실한 모습은 신용을 얻는 최고의 방법이 된다.
성공 비결 - 구두쇠.
30여년 전에 지은 그의 집엔 20여년이 넘은 소파와 10년이 다 된 17인치 TV가 전부였습니다.
17년 전 작업복을 돌아가시기 전까지 입고 다녔을 정도.
정주영 회장님은 젊은 시절부터 아끼는데 있어서는 누구 못지않은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한때 한국 제일의 부자 정주영 회장님은 구두쇠였던 것이지요.
성공 비결 - 아침 형 인간
정주영 회장님의 성공비결 또 하나.
그 누구보다 부지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쌀가게 시절부터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문을 열고 점포를 정리했던 정주영 회장님은 자신이 사업을 하던 시절에도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곤 했다고 합니다..
그리곤 해가 빨리 뜨지 않는다고 역정을 내곤 했다는데.
현대회장으로 있을 당시에도 새벽 6시 기상, 7시면 회사로 출근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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