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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
룻기 1장 1-10절, 마태복음 1장 1-6a절
한 문 덕 목사
[가부장적 사회에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인가?]
지난 주 한국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군 이슈는 단연 서지현 검사의 JTBC 뉴스 인터뷰일 것입니다. 평소에 뉴스를 주의 깊게 보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현직 여성 검사가 2010년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장관을 수행하러 온 안태근 검사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였고, 이 사건을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인사불이익을 입었다고 말했습니다.
서지현 검사가 검찰 통신망인 ‘이프로스’에 소설의 형식을 빌어 직접 올린 글을 전부 읽어보면 성추행 사건과 그 사건 이후 벌어진 부당한 처리로 인해 당사자가 겪었던 깊은 상처와 혼란과 고통의 순간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권력관계 속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이들이 당하는 온갖 종류의 폭력들, 특히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과 같은 성폭력의 실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이 글을 보면 이것은 단순히 한 여성 검사가 어쩌다 겪은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 검사의 용기 있는 행동에 많은 이들이 지지와 격려를 보내고 있고, 자신 또한 비슷한 일을 당했고 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수많은 이들의 “Me Too” 운동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왜 검찰이 개혁되어야 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일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성 불평등의 실상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그에 따른 검찰 개혁이 필요하지만, 저는 이 사회의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매우 부끄러움을 느끼며 동시에 저 자신도 가부장적 문화에 물들어서 나도 모르게 타인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언설이나 행동을 한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됩니다.
[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나?]
제가 이 이야기를 꺼낸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성추행의 당사자로 지목된 안태근 검사가 작년 10월 29일 양재의 한 대형교회에서 세례를 받으면서 세례자 대표로 약 5분간의 간증을 했는데, 이 간증의 내용이 바로 서 검사가 뉴스에 나와서 폭로를 해야겠다는 계기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안태근 검사는 간증을 하면서, “나름대로는 깨끗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살아오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뜻하지 않은 일로 공직을 그만두게 되었”고, “주위 선후배, 동료, 친지, 가족들이 ‘너무 억울하겠다’며 분해하고 같이 위로해 주었”으나 “그 위로와 격려에도 자신과 가족들은 극심한 고통에 하루하루 괴로워하며 살았다”고 하면서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서 영접할 기회를 주었고, 교만을 회개했으며,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길 가치를 발견했”고, “처음 느낀 억울함과 분노가 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안태근 검사는 국정농단의 핵심적 인물로 최근 결심공판에서 징역 8년의 구형을 받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2016년 7월부터 10월까지 1,000여 차례나 통화한 사람이고, 우병우가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승진한 2015년에 검찰 인사를 총괄하는 법무부 검찰국장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검찰국장 시절인 2017년 4월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한 음식점에서, 서울중앙지검 국정 농단 수사팀 직원들과 검찰 간부 등 10여 명에게 50~100만 원이 든 돈 봉투를 검사들에게 살포한 사건에 연루돼 2017년 6월 면직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성추행 당사자로 또 지목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람이 서 검사에게는 일말의 사과도 없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구원받았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서지현 검사는 뉴스룸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이 이 인터뷰에 나오게 된 데는 세 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말하면서 두 번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두 번째는 사실은 이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고민이 많습니다마는 가해자가 최근에 종교에 귀의를 해서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다고 간증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 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런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자 세례를 베풀고 간증을 하게 하였던 대형교회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자신들은 안태근 검사가 그런 고위직에 있었고, 검찰을 그만둔 사실로 몰랐다고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렸다가 또 다시 엄청난 비난에 휩싸여 그 글을 내리고야 말았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선 그 교회 담임목사는 안태근 씨에게 세례를 주면서 “억울하게 사회적 지위를 잃어버렸지만,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를 주시리라 믿는다.”라고 말했으니 그 교회의 해명이 궁색해지는 것이고, 정말로 세례를 주면서 안태근이 어떤 인물인가를 몰랐다면 이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바로 교회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지 않을 때, 교회는 억울하고 피해를 당한 이들의 한을 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갑질하는 기득권자들의 편에 서게 됩니다.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가해자를 두둔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교회는 사랑이라는 허울로 값싼 복음을 남발하여 점차 죄에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고문기술자로 우리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이근안 같은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목사 안수를 받았고, 자신의 관사에서 근무하는 공관병, 조리병들에게 갑질 수준을 넘어 노예 부리듯 하였다는 박찬주 대장은 장로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약자를 무시하고, 힘 없고 가난한 이들을 이용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지배욕을 충족시키는 분이었다면 여러분은 그를 주님으로 모시겠습니까? 그런 분을 세상의 구주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그것을 좌지우지 하는 권력을 쥐기 위해 사탄에게 절하면서 머리를 조아렸더라면(마태 4:8-9) 우리는 그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런데 지금의 한국교회는 자꾸 예수님과 멀어지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교회가 고통당하는 사람, 울부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이미 심판은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는커녕 세상의 조롱거리 놀림거리가 되고, 개신교를 혐오하는 시민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사태들이야말로 이방 사람들을 들어 이스라엘 백성을 깨우치신 하나님의 회초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평신도 중심의 목회사역과 룻기]
주님께서 회초리를 드셨기 때문에 갈수록 교회의 사역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번 일로 다시 한 번 한국교회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생명사랑교회는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주님의 뜻을 바로 알고 그 길로 열심히 매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기 위해 우리는 작으나 건강한 교회가 되려고 했고, 이제 교인 전체가 목회자와 함께 한 마음이 되어 모두가 교회의 사역을 감당하는 평신도 중심의 목회사역에 힘쓰고자 하는 것입니다. 2월과 3월은 평신도 중심의 목회사역이 무엇인지에 대해 집중해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해 보고자 합니다.
2월은 룻기의 말씀을 가지고 3회 정도 연속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룻기는 총 4장밖에 되지 않는 짧은 이야기이지만, 매우 정교한 구조를 지닌 최고의 문학작품으로 구약성서가 지향하는 매우 다양한 신학적 의미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들을 평신도 목회 사역에 초점을 맞추어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려고 하는 것입니다.
룻기의 간단한 줄거리는 이러합니다. 기근으로 말미암아 고향 땅 베들레헴을 떠난 엘리멜렉과 아내 나오미, 아들 말론과 기룐은 모압에 정착하는데, 여기서 두 아들은 모압 여인 룻과 오르바와 결혼했지만 그 땅에 10년 동안 거주하는 사이 엘리멜렉과 말론과 기룐은 모두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며느리만 남게 됩니다. 베들레헴에 양식이 풍성해졌다는 소문을 듣고 나오미는 고향으로 가면서 며느리들에게 각각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룻은 끝내 시어머니를 따라 낯선 땅인 베들레헴에 오게 됩니다. 모압 여인 룻에게 시어머니의 고향에서의 삶이 만만치는 않았겠지만 룻은 정성스레 어머니를 모시며 이삭 줍는 일로 연명합니다. 그러다가 시아버지 엘리멜렉의 친족인 보아스의 밭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그 인연으로 보아스와 친밀해지게 되고, 보아스는 엘리멜렉 가문의 기업 무르기 절차를 통해 룻을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오벳이라는 아들이 태어났는데 바로 이 오벳은 다윗왕의 할아버지가 됩니다.
매우 간단하고 별 것 아닌 이야기로 보이는 룻기가 거룩한 성서 안에 들어 있고, 이 이야기는 특별히 보리와 밀을 추수하는 맥추절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읽혔습니다. 이 책의 시작은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사사 시대는 중앙집권적인 행정이 이루어지지 못했고, 왕도 없었기에 늘 위기와 긴장으로 가득 찼던 시대이고, 사사기가 스스로 전하는 바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사사 21:25), 즉 제 멋대로 살았던 시기입니다.
그런데 룻기는 기근과 매우 비극적인 가족의 상황에서 출발하지만 결말은 매우 아름답게 끝나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룻의 아름다운 마음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 또한 그를 도우려는 선의로 가득 차 있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이 잊지 못하는 다윗왕의 선조가 됩니다. 그러나 룻기는 그렇게 단순하고 아름다운 미담으로만 끝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선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들이 심상치 않습니다. 2절에 소개되는 베들레헴 출신의 유대 남자 엘리멜렉의 이름의 뜻은 “나의 하나님이 왕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이름은 구약성서에서 여기에만 등장합니다. 룻기의 이야기는 다윗왕의 조상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 기원을 이루는 첫 인물의 이름이 “나의 하나님이 왕이시다.”입니다. 이것은 다윗 왕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억하더라도 언제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달으라는 일종의 상징입니다.
사사기 9장에는 엘리멜렉과 비슷한 이름의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아비멜렉입니다. 아비멜렉의 뜻은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입니다. 아버지가 왕이니 자기도 왕이 되고 싶겠지요. 아비멜렉은 자기가 왕이 되고 싶은 욕심에 기드온(여룹바알)의 아들들, 곧 자기 형제 70명을 한 바위 위에 모아 놓은 다음에 건달과 불량배를 동원해서 모두 죽여 버립니다. 형제들이 도륙당하는 사건을 겪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기드온의 막내아들 요담은 그 유명한 ‘나무들의 우화’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에게 전혀 필요 없는 왕을 세웠다는 것을 비꼽니다.
요담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하루는 나무들이 기름을 부어 자기들의 왕을 세우려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들은 올리브 나무에게 가서 말하였습니다. ‘네가 우리의 왕이 되어라.’ 그러나 올리브 나무는 그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어찌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 내는 일을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 그래서 나무들은 무화과나무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와서 우리의 왕이 되어라.’ 그러나 무화과나무도 그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어찌 달고 맛있는 과일맺기를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 그래서 나무들은 포도나무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와서 우리의 왕이 되어라.’ 그러나 포도나무도 그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어찌 하나님과 사람을 즐겁게 하는 포도주 내는 일을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 그래서 모든 나무들은 가시나무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와서 우리의 왕이 되어라.’ 그러자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너희가 정말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너희의 왕으로 삼으려느냐? 그렇다면, 와서 나의 그늘 아래로 피하여 숨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가시덤불에서 불이 뿜어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살라 버릴 것이다.’(사사기 9:8-15)
룻기는 사사시대에서 왕정으로 넘어가는 과정 속에서 왕정이 어디로부터 시작된 것인지를 보여 주고자 합니다. 즉 다윗왕도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왕이 되어서 이런 사실을 잊어버리고 아비멜렉처럼 피를 부르는 일들을 저지르지 말고 왕이 되어서도 하나님 한분만이 진정한 왕 되심을 깨닫고, 백성들과 더불어서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정치를 할 것을 주문하는 책입니다.
제가 위에서 룻기가 맥추절(칠칠절)기마다 읽혔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온 이스라엘 회중은 이 이야기를 읽으며 최고 권력 다윗왕의 시원이 어디인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왕에게 많은 권력을 주었지만, 그 권력은 실제로 평범한 이들로부터 왔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은 룻기를 읽으며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체적인 평신도]
여러분들도 이런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전에 많은 목사들은 자신을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운 제사장이라고 하면서 권위주의에 찌든 방식의 목회를 하였을지 모르지만 그것 자체가 성서적이지 않습니다. 제가 오늘 주보의 목회마당에도 썼지만 모든 교회의 목회활동의 중심에는 교인 전체가 있습니다. 목회자 한 명이 모든 것을 해서도 안 되고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동시에 목회자는 명령하는 자이고, 교인들은 목회자의 말에 무조건 순종하는 자인 것도 아닙니다. 모두가 함께 하나님 나라 사역을 위해 가장 좋은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제가 예배 인사를 하면서 오늘 제직 수련회에 많이 참석해 줄 것을 부탁드렸지만, 이것은 이미 교인들을 대표하는 목회운영위원회에서 먼저 결정했던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 뿐입니다.
평신도가 스스로 자신의 권리와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평신도 중심의 목회사역은 불가능합니다. 교회 와서 목회자의 돌봄과 양육만 받겠다는 자세를 가지면 요담이 들려주는 왕이 된 가시나무 이야기처럼 결국 목사의 노예가 되기 십상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교회가 어느 목사의 교회처럼 되고, 그렇게 되는 순간 교회는 강도들의 소굴이 됩니다. 다음 번 설교에서 자세하게 얘기하겠지만 다윗왕의 탄생의 기반에는, 기근이라는 척박한 자연환경과 과부의 삶이라는 역경을 이겨낸 평범한 여성들의 주체적 삶이 있습니다. 우리 생명사랑교회가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내고 길이길이 남을 뜻 깊은 교회가 되려면 바로 평범한 보통 사람, 즉 평신도들 모두의 마음과 뜻과 정성과 행동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서지현 검사가 용기 있는 행동을 지속시킬 수 있는 힘은 바로 많은 보통 사람들의 지지와 계속되는 비판의 목소리에서 나옵니다. 지금 정부는 2016년 겨울부터 2017년 초까지 계속 되었던 이 땅의 평범한 시민들의 울부짖음으로 탄생했기에, 앞으로 이 정부는 계속해서 촛불시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구체적인 사안에서 때로 전문가의 목소리가 필요하고, 현장에서 실무를 하고 있는 행정부 수반의 판단이 중요할 때가 있겠지만 큰 틀에서 방향을 정하고 이끌어 가는 것은 역시 보통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의지와 여러분들의 뜻에 따라 우리 생명사랑교회도 만들어져 갈 것입니다.
우리는 뭔가 대단한 일들은 대단한 사람들만이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대단한 사람들을 들어 쓰시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 못지 않게 보통 사람들 뒤에 숨어서 활동하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사사기는 대단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은 룻기는 대단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의 하나님이 왕이시다”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유대인도 기근이 들면 남의 나라에 와서 몸 붙이며 살아야 하고, 거기서 얻은 아들은 말론과 기룐인데, 말론은 ‘질병’이라는 뜻이고, 기룐은 ‘황폐’라는 뜻입니다. “나의 하나님만이 왕이시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질병과 황폐함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보통 사람의 인생이 그렇습니다. 나오미는 기쁨이라는 뜻의 이름이지만 모압 땅에 왔다가 남편과 두 아들을 모두 잃어버립니다. 그것이 모압 땅에서의 10년의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고향 사람들이 나오미가 돌아왔다고 말하자, 나오미는 스스로 말합니다. “나를 더 이상 나오미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몹시도 괴롭게 하셨으니, 이제는 나를 마라라고 부르십시오”(룻 1:20) 마라의 뜻은 “괴로움”입니다.
그렇습니다. 강자가 제 이익만을 취하고, 약자를 괴롭히고, 있는 놈이 더 하다고,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세상에서 보통 사람은 이렇게 괴롭고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런 사람들을 쓰셔서 위대한 일들을 해 나가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서의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을 첫 머리에 놓지만, 이어지는 족보의 구체적 내용 속에는 평범한 아니 오히려 비천하다고 해야 할 이들의 이름이 바로바로 등장합니다. 야곱은 자신의 인생이 험했다고 고백하였고, 다말은 생명과 자신의 가업을 이어가기 위해 시아버지를 유혹해서 대를 이었으며, 라합은 기생이었고, 오늘 우리의 주인공인 룻은 바로 이방 여자였습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매우 힘들고 어려운 삶들을 이어나가실 때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때로 곤궁에 처할 때가 있고, 그럴 때면 마음이 어지럽고 힘이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그런 상황을 잘 알고 계시고,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를 들어 쓰십니다. 그 어느 누가 이방 여인의 몸에서 이스라엘이 가장 위대하게 여기는 다윗왕이 나올 줄 알았겠습니까?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우리가 변변치 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주눅 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도 기회를 주십니다. 그런 우리에게도 달란트를 주십니다. 그런 우리에게도 열매 맺기를 바라십니다.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주님 주신 기회와 능력을 가지고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어갑시다. 지금이야말로 위대한 보통 사람들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사랑의 하나님! 늘 우리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를 보살펴 주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어려운 세파에 시달릴 때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셨습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주시고, 더 나아가 우리를 통하여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셨습니다. 생명사랑교회를 세우신 하나님! 우리를 통하여 다시 한 번 당신의 뜻을 펼치시고,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크신 팔을 들어 올리소서. 우리가 순종하여 따르겠습니다.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쁨의 소식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따뜻한 봄바람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 날씨는 춥지만 어김없이 입춘이 되었습니다. 두꺼운 얼음 밑에서도 시냇물은 졸졸졸 흐르고, 긴 겨울 딱딱하게 굳은 나무에서도 보드랍고 여린 새싹이 돋아납니다. 우리가 그늘진 땅에 있을 때, 마음이 어렵고 시려 누구하나 마주하고 싶지 않을 때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찾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나 많은 일에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았고, 그래서 마음에 여백이 없이 주님과 이웃을 맞이할 여유조차 마련하지 못하며 살았지만 주님께서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드린 이 예물을 받아 주소서. 이 예물이 쓰일 때에 온전히 하나님의 이름만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게 하소서. 누군가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언제나 나의 손이 빈손이 되어야 하듯이, 우리가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릴 때, 주님께서 채워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세상으로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어디에서나 좌절하지도 절망하지도 말고 굳세게 견디어 내십시오. 복음의 진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은 어떤 권력자보다 훨씬 강한 사람입니다.
* 축도(캘틱 아일랜드 축복기도)
여러분 손에 일거리가 항상 있기를
여러분의 지갑에 언제나 돈이 좀 남아 있기를
여러분의 창가에 햇살이 늘 비치기를
비가 온 후에는 꼭 무지개가 뜨기를
친구들의 손길이 늘 여러분 가까이에 있기를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여러분 마음에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May there always be work for your hands to do
May your purse always hold a coin or two
May the sun always shine upon your window pane
May a rainbow be certain to follow each rain
May the hand of a friend always be near to you
May God fill your heart with gladness to cheer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