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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예수성심전교수녀회 (상)
창립과 영성
『이 세상안에 하느님의 마음을!』
예수성심전교수녀회(관구장=김길자 수녀)는 1900년 3월 25일 독일 뮌스터에서 예수성심전교수도회 소속인 역사적 창립자 후베르트 린켄스 신부(1861∼1922)에 의해 외방선교를 목적으로 창립된 사도적 국제 수도회이다.
『예수성심은 온 세상에서 사랑을 받으소서!』란 좌우명대로 이 수도회는 찔리신 예수마음에서 체험한 하느님의 사랑을 모든 이, 특히 시대 악에 짓눌리고 상처받은 이들과 함께 나누기 위하여 겸손과 친절, 형제적 사랑과 소박한 삶으로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주도록 부르심을 받아 살며 증거 하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하고 있다.
수녀회의 탄생 배경은 프랑스 혁명 이후 반교회주의로 변해 가는 사회의 모습을 보며 마음 아파했던 영적 창립자인 줄 슈발리에(Jules Chevalier, 1824∼1907)신부의 깨달음으로부터다. 슈발리에 신부는 하느님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영적병폐, 이기주의로 만연되어 가는 사회풍토, 세속화의 경향을 「시대의 악」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시대 악에 의해 상처받고 병든 이들의 마음을 「연민 가득한 예수 마음」 안에서 치유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같은 슈발리에 신부의 영성에 따라 예수 성심 전교 수도회(1854), 예수 성심의 우리 어머니 딸회(1874), 예수 성심 전교 수녀회(1900)순으로 설립됐다. 이들 수도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되었듯이 교회로부터 파견되어 시대 악을 식별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인권을 유린당한 이들에게 우선적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사명으로 하여 창설된 것이다.
예수성심전교수녀회의 영성은 마음의 영성과 선교의 영성으로 요약된다. 줄 슈발리에 신부의 인격 안에서 본회 카리스마의 원천을 발견하고 후베르트 린켄스 신부에 의해서 자비로우신 하느님 사랑에 대한 깊은 체험을 창립유산으로 제시한다.
이 사랑의 표지는 십자가 위에서 창에 찔리신 그분의 심장이다. 그것은 모든 인간에 대한 성부의 조건없는 사랑의 선포요 인간의 한계와 고통에 대한 하느님 아들의 연민과 자비이며, 온 인류에 대한 구원의 약속이다.
이 하느님 마음에 대한 근본적인 영감은 삼위일체의 상호증여와 관계의 신비 안에서 드러나고 있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조건 없는 수용이라는 무상의 선물을 체험하고 이러한 체험은 개인에게 주어진 선물일 뿐만 아니라 상호존중과 친교 안에서 공동체를 건설할 위대한 힘을 주며 인간과 사회 생활차원에서도 폭력적 징표에 대항하는 비폭력 영성의 표지로 나타난다.
또한 이 마음의 영성은 적극적 연민의 길을 제시한다. 창립역사의 순간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구원적 현존으로 인식하는 이 적극적 연민은 예수성심의 근본적 특징 중 하나이다.
각가지 형태로 상처받고 소외받는 이 시대의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여 동참함으로써 이들이 당하는 상황과 원인들을 의식하고, 알리고 고발하는 모험을 감행하면서 진리와 자유와 해방을 몸소 증거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다.
선교영성으로서의 카리스마 선물은 육화된 하느님 아들의 찔리신 성심에서 그 성령을 받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선교사명에 대한 절대적 순명으로 이 세상에 파견되셨듯이 회원들도 하느님 아들의 마음으로 세상에 파견되어 한계없는 선교정신으로 사랑의 문명화, 정의와 평화의 질서를 추구하면서 성심의 불을 계속 지펴나가도록 서로 격려한다.
이 선교를 위한 축성의 삶은 세상 안에 구세주의 현존의 불꽃을 타오르게 하는 거룩하고 참된 사랑의 연료가 될 것이다.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예수성심전교수녀회 (하)
사도직 활동
예수성심전교수녀회는 1965년 당시 부산교구장 최재선 주교의 초대로 독일 관구 소속 2명의 수녀들이 파견됨으로써 한국에 진출했다.
수녀회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전하기 위한 것이라면 교회가 위탁하는 모든 분야의 사도직을 수행할 것이다』(회헌14장)라고 한 창립자의 정신에 따라 어느 특정한 사도직에 구애됨이 없이 각 나라의 상황과 시대 요구에 응하여 고통당하는 이들,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선교사명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180여명의 성심의 수도가족들이 펼치고 있는 사도직은 1987년까지 대부분을 차지하던 본당사도직에서 점차 전문 특수사도직으로 전환하고 있다. 본당사도직은 1972년 마산교구 의령본당을 시작으로 부산, 마산, 대구, 안동, 서울, 전주, 광주, 제주 등 8개 교구, 27개 본당에 수도자들이 파견돼 활동중이다.
교육 사도직으로는 유아교육, 중등교육, 고등교육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유아교육 분야에서는 1968년 언양의 안나유치원을 필두로 1992년 창녕과 영양의 성모유치원 그리고 서울의 천호유치원(1990∼1992년, 1998년∼현재), 고현의 성미유치원(1998년 설립) 등에서 교육선교를 펴고 있다. 이들 유치원에서는 종교교육과 몬테소리교육 등을 중심핵으로 하여 어린이들의 전인 교육을 위해 투신하고 있다.
중고등교육 분야에서는 1972년 의령여자 중고등학교의 교육 사도직 활동을 시작으로 부산 연산고등공민학교, 양산 여자종합고등학교 그리고 대구 가톨릭대학교, 부산대학교, 부산 여자대학교, 부산 외국어대학교, 동의대학교 등에 파견되어 교육 사도직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에는 점차 교육 사도직에서 철수하고 1997년 대구가톨릭 대학교에서 철수한 이후 지금은 전주성심여자 중학교와 부산대학교에서만 교육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다.
사회복지와 특수사도직 분야에서는 1986년부터 마산 교도소의 요청에 따라 교정사목에 투신하여 1991년 마산교구 내에 사회복지국이 시작되면서 교정사목에 함께 하고 있으며 청송감호소와 서울 교도소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청소년 복지로는 미혼모를 위한 서울 성심의 어머니 집, 가출 청소년을 위한 울산 청소년 새롬터와 쉼터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노인복지로는 서울 상도동 치매노인 주간 보호소와 단기보호소, 동작 노인 종합복지관, 부산 성심의 어머니 집 등에서 외롭고 소외된 어르신들에게 마지막 생의 여정을 평화와 위로를 체험하게 하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고 있다.
아동복지로는 서울 성가정입양원, 울산 은총의 집, 부산 안창마을 아이들의 집과 공부방에서 이 시대 희생의 산물인 불우 어린이와 결손가정 어린이들을 어버이의 사랑으로 보호하며 양육하고 있다.
특수 사도직으로는 대구 천사들의 집에서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을, 서울 강동 성심병원과 부산 백병원에서 병원사목을,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빈민사목과 함께 해양사목, 맹인선교 그리고 교회사연구소 등 다양한 사도직 안에서 교회와 협력하고 있다. 고성 「성심의 피정 집」과 양산 「정하상 바오로 영성관」 사도직을 통하여 이 시대 평신도들의 신앙을 심화시키는데 교회와 협력하고 있다.
해외 선교분야에서 1997년10월 부산에서 총연합회를 개최하면서 국제적인 요구에 따라 외방선교의 문을 개방하여 현재 필리핀, 중국, 독일, 페루, 이탈리아 등 지역에 파견되어 한계없는 선교의 열정을 쏟고 있다.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착한 목자 수녀회 (상)
창립과 영성
착한 목자 수녀회는 그 영성의 중심을 그리스도의 인간성에 두고 있다. 길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착한 목자, 예수님의 마음이라 표현할 수 있다.
사람이 되시어 인간의 나약함을 몸소 짊어지신 예수님께서는 인간적 나약함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감싸 안으시어 하느님 아버지의 한없이 자비로운 사랑을 보여주심으로 사람들을 하느님 아버지와 화해하도록 하셨는데 수녀회 창립자 성녀 마리 유프라시아는 이러한 연민과 자비로 충만한 착한 목자의 모습과 정신이 회원들이 살아야할 원형이며 본받아야할 참된 모범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면에서 착한 목자 수녀들은 삶의 모든 국면에서 스스로 하느님 자비를 끊임없이 체험함으로써 어둠 속에 헤매는 사람들 가운데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 현존이 되고자 한다.
마리 유프라시아 성녀는 어떤 상처나 죄악도 인간 영혼의 본질을 상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으며 그녀의 보호 아래 있는 여성들이 회심하고 하느님이 선물하신 그들 고유의 아름다운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회원들의 노력을 독려했다.
착한 목자수녀회 수녀들은 영혼 구원을 위한 삶을 다짐하는 의미에서 정결 청빈 순명 서원 외에 제 4서원인 열성을 서원한다. 이 열성의 주요한 특징은 각 개인 안에 담긴 하느님 모상을 소중히 여기고 각 삶에 대한 하느님 구원 계획을 인식한다는 의미이다.
또 이 열성 서원은 영혼 구원을 위한 서원으로 구해야할 영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예언자적 용기를 가지고 자비와 화해를 전달하며 살도록 투신한다는 뜻을 지닌다.
수녀회 성소 중심은 이렇게 '열성'이며 그들 정체성의 뿌리 역시 이러한 열성에서 비롯된다. 회원들이 사회 안에서 드러내는 연민 자비 화해 일치 정의의 모습들을 탄생시키는 근원이 되는 것이다.
1835년 수녀회를 창립한 마리 유프라시아 성녀는 성령의 영감을 통해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에 대한 신심, 성부의 뜻과 열성에 대한 사랑을 체험하였고 이를 수녀회에 전해주었는데 이는 1641년 성 요한 에우데스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착취 구조에 허덕이는 여성들 삶을 변화시키고자 창설한 애덕 성모 수녀회 영성을 이어받고 있기도 하다.
프랑스 느와무티에 출신으로 18세때 애덕 성모수녀회에 입회한 성녀는 「하느님은 당신 아들을 사랑하신 똑같은 사랑과 똑같은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한다」는 성 요한 에우데스의 저술들에 심취했고 그같은 메시지는 전 수도생활과 전 생애에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진다.
예수 성심에 대한 관상 속에서 착한 목자의 애정과 보살핌을 체험하고 착한 목자를 수녀회 모범으로 삼았던 성녀는 예수님 구원 사업을 함께 나누려는 열망을 항상 지니고 있었고 이는 십자가에 대한 그녀의 사랑과 영혼 구원에 대한 열성을 통해 성취됐다. 그리고 회원들에게도 전해졌다.
성녀는 개인 안에 숨어 계신 하느님 모상을 소중히 여기고 인간의 나약함을 이해하시는 그리스도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에게 있어 미사전례와 영성체는 내적 삶의 원천이었다. 성녀는 회원들이 교회에 대한 사랑 가득한 마음을 가지고 오로지 이러한 방법으로 수녀회가 끊임없이 존속하고 성장하기를 바랬다.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참모습인 착한 목자의 상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성녀는 특히 버림받고 길 잃은 양들인 여성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보였다. [가톨릭신문, 2003년 2월 16일, 이주연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착한 목자 수녀회 (하)
사도직 활동
착한 목자 수녀회는 같은 은사(카리스마) 아래 활동과 관상 두가지 생활 양식을 갖는다.
착한 목자 수녀회는 적극적인 활동으로, 관상수녀회는 기도생활로 회원들의 활동을 지지한다.
즉 활동 수녀들은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응답하여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선하심과 자비와 사랑의 증거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며 착한 목자 관상 수녀들은 고독과 기도생활 속에서 하느님 자비의 보이는 표지로서 그를 증거한다.
회헌 6항 「우리의 화해 사명은 불의와 갈등으로 혼란한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도모하도록 우리를 부른다」는 내용에서 볼 수 있듯 착한 목자 수녀회 은사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화해 자비 정의 평화이다.
특히 창립자 성녀 마리 유프라시아가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참모습인 착한 목자로서 버림받고 소외된 여성들을 위해 일하며 그들이 사랑받는 이로 변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포용했듯이 전 회원들은 "한 사람은 온 세상보다 더 소중하다"는 모토 아래 불의한 사회구조로 인해, 또한 자신의 죄와 그 결과로 인해 억압당하고 소외당한 여성들과 소녀들에게 화해의 메시지를 전한다.
또 그들이 갖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성장시키고 도달할 선택권과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제공한다는 것이 사도직의 기본 방침이다.
이런 카리스마 아래 활동수녀회는 절망속에 있는 여성들이 자신의 존엄성을 되찾고 하느님께 돌아오도록 인도하며 관상수녀회는 죄인들의 회개와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와 고행의 생활을 한다.
1835년 수녀회 창립 후 성녀 마리 유프라시아가 선종한 1868년까지 전세계 5개 대륙에 110개 수녀원을 설립했던 수녀회는 2003년 현재 68개 나라에 4300여명 활동 수녀들과 660여명 관상수녀들이 활동중이다.
한국의 착한 목자 수녀회는 1966년 필리핀과 중국에서 사목하던 미국 관구 소속 로스 버지니아 헤이스(노정순) 수녀와 안나 마리 윌리그(서진숙) 수녀가 전주 교구장 한 베드로 주교 요청으로 한국에 도착함으로써 시작됐다.
이들은 우선적으로 미군부대 주둔 지역 가난한 소녀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사도직을 펼쳤으며 1968년 전북 군산 옥봉에 소녀들을 위한 직업학교와 기숙사 개설로 본격적인 활동의 장을 열었다.
이후 1973년 서울 수녀원을 건립하고 1976년에는 옥봉 수녀원 철수와 함께 근로 소녀 기숙사 '마리아 자매원'을 서울에 개설, 미혼모 사목을 전개했다.
1979년 강원도 춘천시에 미혼모를 위한 기숙사 '마리아의 집'을 건립하는 한편 1995년부터 춘천교구 사회복지회 요청으로 '여성 1366 상담실' 및 '춘천 여성 상담전화'를 운영해 오고 있다.
1996년 서울에 가출 청소녀를 위한 착한 목자의 집을 열면서 가출 청소녀 사업에도 적극 참여하기 시작한 수녀회는 1999년 마리아의 집과 연계된 10대 소녀들을 위한 보금자리로 '유프라시아의 집'을 개원했다.
이와함께 지난해부터는 외국인 매매춘 여성을 위한 쉼터로 '벗들의 집'을 개설 운영중이다. 관상수녀회는 1993년 춘천에서 시작됐고 95년 수도원 축성과 함께 양성이 진행중이다.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천주섭리수녀회 (상)
창립과 영성
『주님, 저희가 저마다의 재능을 다하여 책임있는 청지기로 충실히 살아감으로써 세상에 주님의 섭리가 더욱 더 드러나도록 헌신하겠나이다. 시대의 악과 불의에 용감히 직면함으로써 세상에 주님의 섭리가 더욱 더 드러나도록 헌신하겠나이다. 하느님 백성의 기쁨과 고통에 온 마음으로 동참함으로써 세상에 주님의 섭리가 더욱 더 드러나도록 헌신하겠나이다. 이땅에 하느님 나라를 이룩하고자 애쓰는 선의의 이웃들과 희망차게 협력함으로써 세상에 주님의 섭리가 더욱 더 드러나도록 헌신하겠나이다』
매일 매일의 성무일도 때마다 천주섭리수녀회 회원들이 바치는 이 기도문은 수녀회가 지닌 영성을 함축적으로 잘 표현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천주섭리회 수녀들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지니셨던 마음(필립 2, 5참조)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 그 정신을 추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처럼 살고자 하며 하느님 뜻을 쫓아 따르기 위해 힘쓰는 삶」이다.
곧 그러한 정신 안에서 섭리의 하느님에 대한 증거를 회원들의 봉사와 사명을 통해 세상에 드러내고 철저성과 인내심으로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섭리 그 자체는 하느님의 의지, 지혜와 영원하고 동일하다. 비록 섭리가 실체적인 하느님 일이긴 하지만 하느님은 중간자들로 하여금 관리하게 하시고…』라는 「섭리」에 대한 정의처럼 천주섭리수녀회 탄생은 가톨릭 사회정의 운동 창시자라 불리는 독일의 임마누엘 폰 케틀러 주교를 통해서였다. 케틀러 주교가 수녀회를 창립하던 시기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했던 사회적 배경과 맞물려 있다.
그는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생산 방법과 수단이 바뀐 사회 속에서 계층간 이해를 둘러싸고 빚어지는 여러가지 갈등과 혼란, 그리고 산업화가 진행돼 갈수록 심각해 지는 것은 노동자들의 비인간화라고 보았다. 노동자들이 생산 증대만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중 어린이들과 여성들의 노동력 착취에 대해 고심했다.
특히 어린이들의 교육 복지 및 도덕성 교육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케틀러 주교는 그 문제 해결은 교육과 간호 사업에 종사하는 수녀회가 맡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케틀러 주교는 노동자 문제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표명하고 교회의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했고, 또 당시 교회를 위협하던 무신론에 대항, 교회와 인간의 참된 자유를 위해 투신하는 등 대사회적인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1891년 교황 레오 13세의 「노동헌장」 반포는 이러한 케틀러 주교의 활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한 상황 안에서 케틀러 주교는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에 대한 봉사 교육이야말로 시대적 필요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판단했고 마침내 1851년 9월 29일 독일 마인츠 휜튼에서 「천주섭리 교육 간호 수녀회」가 창설됐다.
천주섭리수녀회의 카리스마에는 이러한 케틀러 주교의 삶을 특징짓는 교회에 대한 충성, 사회적 관심 및 참여 그리고 참되고 올바른 것에 대한 두려움 없는 옹호를 반영코자 하는 노력이 뒤따른다. 또 초대 원장이었던 마리아 드 라 로쉬 수녀가 활동생활과 관상 정신을 조화시킨 모범과 겸손 온유 단순성 깊은 신앙과 온전한 개방성을 본받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3년 3월 2일, 이주연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천주섭리수녀회 (하)
사도직 활동
독일 마인즈교구 케틀러 주교에 의해 1851년 9월 29일 성미카엘 대천사 축일에 「천주섭리 교육 및 간호수녀회」 이름으로 핀튼(Finthen)에서 창립된 천주섭리수녀회는 사회적 병폐로 인해 영혼과 육신이 점점 망가져가는 사람들, 특히 사회의 소외계층들-농민, 도시빈민, 어린이들, 여자들, 그리고 병자들에 대한 봉사와 교육이야말로 시대적 필요에 응답하는 것이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응답」이라는 판단으로 수도회의 사도직을 시작했다.
초대원장은 프랑스인이며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마리 드 라 로쉬 수녀였고 4명의 지원자로 출발한 수녀회는 케틀러 주교 뜻에 따라 여성교육 특히 농촌지역의 여성교육에 참여했고 병자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했다.
천주섭리수녀회의 모태인 첫 관구는 마인즈교구 주보성인 마르띠노 성인의 이름을 따게 되었고, 이 성마르띠노관구는 1861년에서 1871년 사이에 24개의 학교, 4개의 학원, 5개의 직업학교, 4개의 유치원, 19개의 선교직, 간호사 등 내외적으로 급속히 성장했다.
그러나 1872년 3월 11일 주 정부가 학교의 모든 통치 권한을 갖는다는 프러시안 학교 법이 통과되면서 많은 학교가 문을 닫았고 수녀들은 학교를 떠나는 등 파란이 일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독일 당국으로부터 추방 당해 미국서 선교활동 중이던 예수회 소속 포트가이서(Pottgeisser) 신부가 미국 진출을 제안했고 1876년 7월 7일 6명의 회원이 미국으로 출발했다.
독일과 미국교회에서 교육 병원위주 사도직을 펼치던 수녀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 쇄신의 바람을 갖게 됐고 다양한 사도직에 관심을 두었다. 여성과 어린이들을 위한 사도직을 활발하게 전개했고 난민과 청년들을 위한 사업에도 힘을 썼다.
이후 페루, 푸에르토리코 등으로 사도직 활동을 넓힌 수녀회는 1964년 1월 대전교구 백남익 신부 도움으로 한국인 지원자 13명의 수련을 시작하면서 한국교회와 인연을 맺었다.
그 이듬해 미국 피츠버그 관구에서 빅토린 베로스키 수녀와 2명의 수녀들이 한국에 와서 언어를 배우며 본격적인 한국 진출을 준비했다.
1967년 로마에서 첫서원을 한 한국 수녀들 몇몇은 독일로 가서 간호교육을 받게 되었고 한국수녀원에서는 1975년도 총회에서 빅토린 수녀가 초대 성요셉 지부 지부장에 선출됐다. 한국관구 승격은 1995년 총회를 통해 이뤄졌다.
한국관구의 주요 활동은 무의탁 노인 양로원(애덕의 가정), 불우한 노인들, 독거노인들을 위한 사랑의 이웃집 운영, 20군데의 본당, 장애인 복지관, 시립양로원, 어린이집, 간호대학 등이다.
천주섭리수녀회는 1993년부터 도미니카 공화국 산타도밍고에 미국, 독일 그리고 푸에토리코 지부 회원들이 모인 국제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극빈지역 및 환경오염지역 주민들을 돌보아 주고 있다. 최근에는 5∼12세에 이르는 어린이들이 마약에 손대지 않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문화와 언어는 달라도 전 세계에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삶을 실천코자 하는 섭리회 회원들은 『아무리 목표와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높은 이념을 성취하기 위해 힘써 노력하며 사는 이 시대를 나는 사랑합니다』고 하신 창립자 정신을 가슴에 새기며 희망의 삶을 사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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