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이천오백오십오년 오월이십삼일.
1.보현사 위, 어둠이 드리워져가는 저녁하늘에서 빗방울이 듯는다.
기후에 대한 걱정보다는 설악 공룡과 봉정암에 대한 기대에 들뜬 법우님들을 모신 '빨강색 오성관광버스'는
20시.정시에 설악으로 출발한다.
먼저 잣을 얹은 주먹밥과 밤,대추,땅콩,은행,잣,완두콩등을 섞은 현미떡,달큰하고 쫀득한 쵸코바,시원한 생수가
탑승자에게 제공된다.
받아든 비상식이 사람을 긴장에 빠뜨린다.긴장해소차원에서 우선 주먹밥 한덩이를 먹어치운다.헤헤
2.곧고 평탄한 고속도로에 접어들어서자 차중법회가 시작된다.
스님을 모시지는 않았지만 나름데로 엄숙하고 경건한 법회다.
-차창을 밤비가 적신다.
빗방울은 염주알 처럼 창을 두들기다가 흩어진다.
최영찬법우님의 청아한 목소리를 따라 동참법우님의 음성이 우렁차게 울려퍼진다.
대불대 산악회의 연륜이 행동으로 표출되는 순간이다.엄숙히 따라한다.
목탁소리에 맞춰 염불을 한다.
목탁과 염불과 밤비가 합치하면서 초발심 불자의 마음이 불심으로 채워졌다가 비워지기를 반복한다.
등뒤로 떠나온 곳이 걱정되는 데 비도 온 곳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달리는 차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입밖으로 나온 염불소리도 허공중에 흩어진다.
어떨까나.우리들의 염불한 마음자리도 흩어질까.
3.23시.늦은 밤.원주휴게소에서 튀김 우동을 한그릇씩 먹는다.비로소 여행의 정취를 느낀다.
4.잠에서 깬다.새로 두시다.
산대장의 구령에 맞춰 체조후 오색 들머리로 입산이다.
5.비가 지나간 설악의 밤하늘에는 흐린 달이 떠있다.
대청봉을 향하는 밤길에는 등산객들이 하얀 불꽃을 머리에 한송이씩 달고서 산을 오른다.
어느새 사람이 피운 야화에 밝아진 길을 따라 달이 좇아오고 숲의 나무들이 다가오고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도 따라온다.
그 길위에서 사람을 만나고 떠나보내기를 무수히 반복한다.
다리가 아프고 숨이 가쁘고
어두운 밤이 끝나고 여명과 함께 주위 모든 사물들이 깨어난 시간,
저기가 끝이고 여기가 마지막이길 염원하던 그 많은 순간들이 지나고 마침내 대청봉에 오른다.
6.아침7시.
대청봉의 돌무더기정상은 발 둘 곳이 없어서 오래 머물기가 불편하다.
먼데 산들은 구름위로 빼꼼히 고개만 들어 간신히 아침인사를 전한다.
차가운 산기운에 노출된 풀과 나무들도 말없이 눈인사만 전해온다.
동해바다 먼 곳을 배회하는 고래의 노래소리가 찬 바람에 실려온다.
7.중청대피소에서 아침을 먹는다.
김밥 두줄에 삶은 밤,방울 토마토,오이,칠레산 포도에 옆집의 라면냄새다.
이미 선두조는 공룡으로 떠났다.'한바탕 잘 놀고 오시오.산아래서 만납시다.' 뒤늦은 인사를 전한다.
8.아침8시.봉정암조를 찾았다.다행이다.
이제부터는 쭉 내리막이다.
내리막 길에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다람쥐와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엄청 분주한 딱쥐들이 살고있다.
한가한 곳과 분주한 곳의 사이로 나있는 길을 걸어서 봉정암에 도착한다.
9.부지런한 법우님은 이미 108배를 올렸고 늦어서 더 힘든 우리는 삼배도 정성이 성기다.
봉정암 그 높은 곳을 찾아오는 정성이여.
오고가는 걸음마다에 서리는 불심이여.
하늘 몇번 겨우보고
땅만 보며 걸어온 길.
한숨 뱉고 한걸음 다진 자리에
무심천의 법향이 널리 퍼지리.
-헬기가 접근한다.
'두두두'. 소리로 출현을 먼저 알리고 다가오는 도도한 힘의 생동감.
그물망에 잔뜩 사용할 물건을 부리고
그물망에 잔뜩 사용한 물건을 매달고 날아간다.
봉정암 정숙한 마당에서
속진과 법열을 맞교환하는 퍼모먼스가 몇차례 더 이어진다.
7.오전10시.백담사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계곡을 뛰쳐올라오는 '수지마라톤' 동호회원들과 마주친다.
아마 10여킬로 떨어진 백담사에서 시작했을 그들의 열정이 봉정암 가까운 이 곳에서도 여전하다.
그리고 연두색조끼를 입은 '김해여여불교대학' 분들과 하산을 같이한다.
8.정오.산속에서만 10여시간째다.
그러나 길은 산아래로 계속 나타나고 끝날 기색은 아무데도 없다.
산속에서 연두색 나뭇잎들이 초록으로 짙어가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그래.그거 좋겠다.'
높은 산정 바위절벽에 살짝 비치던 물빛이 점점 아래로 내려오면서
가파른 계곡에 이르러 자뭇 웅장하게 흘러간다.
곳곳에 족욕객들이 생겨나는 것을 보니 백담사가 머지 않았네.
이제 비로소 수렴동 대피소다.
같이 점심을 먹자던 산대장 김경수법우님에게 현미떡을 얻어 하산길을 재촉한다.
-걸음이 늦은 보리수(52.야)는 자기 때문에 막차를 놓치는 불상사로 인해
법우님들을 백담사에 재울 생각은 추호도 없으시덴다.
'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걸어두어야지'하며 보리심을 내신다.
9. 영시암을 지난다.
마치 시골의 고향집같은 암자.
법당마루에 노장스님이 해사하게 웃으며 앉아있고 보살님들이 따뜻한 차를 권하는 암자의 앞마당을 지나간다.
오후2시.
이곳은 따사로운 햇살과 바람과 시간과 세월이 잠시 머물고 그리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이 지나가는 곳이다.
10.오후4시.
이젠 평지인 것 같다.산행이 끝난 것 같다.그동안 수고하셨수.
길고 먼 산행을 함께한 법우들은 다정한 눈빛으로 서로서로 사랑의 인사를 주고받는다.
질서정연한 백담사의 계곡 푸른 물 옆에는 어리석은 중생들의 업보같은 하얀 돌들이 지천이다.
돌도 물도 햇볕아래에 있는데
물은 차고 돌은 뜨겁다.
누가 하늘의 이치를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가.하얀 돌인가 푸른 물인가.
11.저녁6시.용대리 버스 정류장.
공룡능선으로 떠난 사람과 봉정암으로 내린 사람이 모두 모였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리고 본 것을 서로 얘기한다.
지금 이 순간, 묻는 것이 불법이요 듣는 것도 또한 불법인 양 하다.
12.밤8시.단양 어느 음식점.
비린 것이 없는 단출하고 소박한 산채비빔밥을 먹는다.
비린 것이 없어 정갈하고 청아한 작은 법보시가 실행된다.
13.밤9시.저녁공양후의 회향법회는 늘 생기가 있다.
14.밤11시.보현사 큰 길가에 도착한다.
대불산악회장 수현 이경출법우님과 많은 분들의 충만한 불심과 부처님의 가피로
무탈히 정기산행행사를 마친다.
아직 버스도 다니고 전철도 끊어지지 않은 시간.
법우님들과 정다운 이별인사를 나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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