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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국문학의 오늘 ②] 비극의 전후(戰後) 문학
글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2023.6.15
[편집자 주] 올해는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70년간 문인들은 전쟁이라는 역사적 체험을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 드러냈다. 한국문학 70년을 3회에 걸쳐 돌아본다.
1950년대 문학은 ‘비극’이라는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있다. 동족상잔의 전쟁과 분단, 이산, 가난, 증오, 원한이 문학으로 드러났다. 물론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 가치라 바탕에 깔려 있지만 대개의 작품들은 원한과 증오, 그리고 상처가 담겨 있다.
기억할만한 명작들이 많고 대개는 영화화되어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이들 작품이 아직도 남아있다. 몇몇 작품을 소개한다.
1. 이호철의 《탈향》(1955)
《탈향》으로 1955년 데뷔한 이래 줄곧 실향민의 아픔과 민족화해의 메시지를 그려낸 이호철. 18세에 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그의 체험은 평생 창작의 원천이 되었다. 이 소설은 《문학 예술》에 실렸다. 줄거리는 한 마을에서 함께 월남한 네 청년의 이야기다.
중공군이 밀려오는 바람에 무턱대고 배 위에 올라타긴 했으나 도시 막막했던 것이어서 바다 위에서 넷이 만났을 땐 사실 미칠 것처럼 반가웠다. 그렇게 부산에 정착, 궁핍한 피난살이를 시작한다.
기거할 방이 없어, 정차되어 있는 화차에 숨어들어 잠깐씩 잠을 청할 정도의 어려운 삶이지만, 고향에 돌아갈 때까지 고생스럽더라도 함께 살기를 맹세한다. 그러나 나이가 많은 축인 두찬과 광석은 ‘나’와 하원을 귀찮게 생각하게 되고, 급기야 광석이 화차에서 실족하여 죽는 사건을 계기로 이들의 관계는 점차 소원해지기 시작한다. 광석이 죽은 뒤에 마침내 두찬은 이들을 버리고 도망했으며, 이젠 ‘나’ 도 하원을 버리고 도망할 궁리를 한다.
2. 이범선의 《오발탄》(1959)
6.25전쟁 후 이북 출신 실향민의 고달픈 도시 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현대문학》에 실렸다. 제5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작품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월간조선》이 1999년 10월 20일부터 11월 1일까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영화감독과 배우, 제작자, 영화평론가, 시나리오 작가 등 영화 관계자 1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20세기 한국 최고의 영화로 <오발탄>(1961)이 꼽혔다. 유현목 감독, 김진규 문정숙 주연의 이 영화는 모두 48명의 추천을 받았다.
2위는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3위는 나운규의 <아리랑>, 4위는 이만희 감독의 <만추>, 5위는 강대진 감독의 <마부>와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가 공동으로 꼽혔다.
극중 송철호는 양심적인 인물이다. 하는 일은 계리사 사무실의 서기. 치통을 견디며 싸구려 양말을 신으며 점심은 보리차로 때운다. 철호의 가족은 한국 전쟁통에 월남하였는데, 어머니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집에서 늘상 “가자! 가자”' 라고 헛소리만 외친다. 가족 모두가 문제적이다. 어머니는 실성했고 딸은 영양실조에 걸렸으며 동생은 상의군인, 여동생은 양공주다.
상의군인은 영호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만 마시며 낭비적인 삶을 살아가며 형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도덕과 윤리를 집어던지고 잘 살아보자고 대드는 식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이렇다.
<“양심을 버리고 윤리와 관심을 무시하고, 법률까지도 범하고!?”
훙분한 철호의 큰 목소리에 영호는 지금까지 철호의 얼굴에 주었던 시선을 앞으로 죽 뻗치고 앉은 자기의 발끝으로 떨구었다.
“저도 형님을 존경하고 있어요. (중략) 형님은 약한 사람이야요. 용기가 없는 거지요. 너무 양심이 강해요. 아니 어쩌면 사람이 약하면 약한 만치, 그만치 반대로 양심이란 가시를 여물고 굳어지는 것인지도 모르죠.”
“양심이란 가시?”
“네 가시지요. 양심이란 손끝의 가십니다. 빼어 버리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공연히 그냥 건드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거야요. 윤리요? 윤리. 그런 나이롱 빤쓰 같은 것이죠. 입으마마나 불알이 덜렁 비쳐 보이기는 매한가지죠.(하략)”>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한 철호는 동생 영호가 권총 강도로 붙잡혔다는 전화를 받고 경찰서로 달려간다. 집으로 돌아오니 양공주인 동생 명숙이는 아내가 병원에서 난산을 취고 있다고 알려 준다.
영호는 병원으로 달려가나 아내는 이미 죽은 뒤였다 그는 정신없이 뛰어나와 치과에서 아픈 이를 뽑아 버린 뒤 택시를 잡아타고서 운전기사에게 집으로, 병원으로, 경찰서로 가자고 정신없는 말을 내뱉는다. 운전기사는 이렇게 혼자 중얼거린다.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렀어. 자기 갈 곳도 모르게.”
3. 하근찬의 《수난이대》(1957)
《한국일보》 1957년 신춘문예 당선작인 이 작품은 회상 기법을 사용해 두 세대가 겪은 수난을 통해 본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그 초극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한 팔을 잃은 아버지가 한 다리를 잃은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다.
진수가 돌아온다. 진수가 살아서 돌아온다. 아무개는 전사했다는 통지가 왔고, 아무개, 아무개는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통 소식이 없는데, 우리 진수는 살아서 오늘 돌아오는 것이다….
6·25의 전장에 나간 아들 진수가 살아서 돌아온다는 기별을 받은 아버지 박만도는 읍내로 마중을 나간다. 여느 때 같으면 한두 번 앉아 쉬어야 넘을 수 있는 용머리재를 단숨에 올라챈 박만도는 잿마루에서도 좀 쉴 생각을 하지 않고 곧장 팔을 흔들며 휘청휘청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그런데 그의 팔은 오른쪽 하나뿐이다. 왼쪽 소맷자락은 조끼 주머니 속에 쑤셔 넣어져 있다.
일제 말엽에 징용에 끌려나가 팔을 하나 잃고 돌아온 것이다.
재를 내려서면 얼마 안가서 냇물이있는 데, 냇물에는 외나무다리가 걸려있다. 외나무다리를 건너한참 가면 신작로가 나서고, 도로변에 주막이 있다. 단골 주막이다. 주막의 방문을 열어볼까 하다가박만도는 돌아올 때 들르기로 하고 그냥 지나친다. 읍내에 들어선 박만도는 곧바로 정거장으로 향하질 않고 장터를 찾아가 고등어 한속을 산다. 전장에서 돌아오는 아들의 반찬거리로 말이다.
박만도는 대합실 걸상에 앉아 아들이 타고올 기차를 기다린다. 이 정거장에 올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일제 말엽에 징용에 끌려갈 때의 일이다.
1백명 남짓한 사람들이 이 정거장마당에 모여 기차를 기다리며 웅성거리고 있었는데, 그 속에 박만도자신도 섞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기네가 어디로 끌려가는지 그 행선지도 알지를 못했다. 다음은 작품 속 한 장면이다.
<기적 소리와 함께 기차가 들이닥쳤다.
꽤 많은 승객들이 기차에서 내려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진수의 모습은 쉬 눈에 띄지가 않았다. 박만도는 초조한 기분이 되어 이리저리 눈을 굴리고 있는데, “아부지!”
부르며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진수였다. 그러나 옛날과 같은 진수는 아니었다. 양쪽 겨드랑이에 목발을 짚고 서있는데 보니 한쪽 바짓랑이가 스쳐가는 바람에 펄럭거리는 것이 아닌가.
박만도는 자기도 모르게,
“에라이 이놈아! 이기 무슨 꼴이고!”
하고 내뱉았다. 코허리가 시큰해지며 두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어 올랐다.
“아부지—.”
진수의 눈에서도 어느 결에 지르르 눈물이 흘렀다.
“가자, 어서.”
박만도는 마치 화라도 난 사람처럼 한마디 던지고는 성큼성큼 앞장을 섰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 목발을 짚은 진수는 헐떡거리며 절름절름 부지런히 걸었다. 그러나 다리가 성한아버지를 따를 수가 없어 아주 뒤떨어지고 말았다.
도로변의 그 주막에 먼저 들어간 박만도는 대포를 거푸 두 잔 기울이고 나자 좀 기분이 풀리는 듯해서 뒤 따라 오는 진수를 불러들여 국수를 한 그릇 사먹였다.
주막을 나선 부자는 논길로 접어들었다. 이번에는 박만도가 앞서는 것이 아니라, 진수를 앞세우고, 자기는 뒤를 따른다.
목발을 짚고 절름절름 앞서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팔이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가 느릿느릿 따라가며 묻는다.
“진수야, 니 우짜다가 그래 됐노?”
“전쟁하다가 이래 안 됐심니교. 수류탄 쪼가리에 맞았심더.”
“슈류탄 쪼가리에?”
“예,얼른 낫지 않고 막 썩어 들어가기 땜에 군의관이 짤라버립띠더. 병원에서예.”
“음—.”
“아부지, 이래 가지고 나 우째 살까 싶습니더.”
“우째 살긴 뭘 우째 살아. 목숨만붙어 있으면 다 사는기다.그런 소리 하지 마라. 나 봐라. 팔뚝이 하나 없어도 잘만 안 사나. 남 봄에 좀 덜 좋아서 그렇지, 살기사 와 못살아.”
“차라리 아부지같이 팔이 하나 없는 편이 낫겠어예.다리가 하나 없으니까 첫째 걸어댕기기에 불편해서 똑 죽겠심더.”
“야야, 안 그렇다. 걸어 댕기기만하면 뭐하노. 손을 제대로 놀려야 일이 뜻대로 되지.”
“그럴까예?”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집에 앉아서 할 일은 니가 하고, 나댕기메할 일은 내가 하고, 그라면 안 되겠나. 그제?”
“예.”
진수는 대답을 한다. 그러나 절로 한숨이 흘러나온다.
부자는 냇가에 이르렀다. 외나무다리가 걸려있는 냇물이다.
팔 병신인 아버지는 외나무다리를 건널 수 있지만,다리 병신인아들을 등에 업는다.징용에 끌려나가 팔을 하나 잃어버린 아버지가 전장에 나가 다리를 하나 잘려버린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 위로 올라선다.>
조선일보 1981년 5월 24일자 기사 <다시 읽어 보는 나의 대표작>
조선일보 1981년 5월 24일자 기사 <다시 읽어 보는 나의 대표작>에서 하근찬은 작품을 쓸 무렵, 부산 모대학 재학생이었다고 고백했다. 고향인 경북 영천과 부산 사이를 동해남부선 열차로 자주 오갔었다고 한다.
그 무렵의 열차 속엔 잡상인들이 들끓었는데, 거의가 상이군인들이었다. 전쟁통에 팔이 하나 날아갔거나 다리가 하나 잘려나갔거나 얼굴이 형편없이 뭉개져버린 상이군인들이 두셋씩 떼를 지어 물건을 강매하며 차내를 누비고 다녔다.
그 인간 파편(破片) 같은 처참한 전쟁피해자들의 모습을 보며,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두 불구의 부자가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장면에 대해 하근찬은 이렇게 말했다.
“부자가 외나무 다리에서 냇물로 풍덩 떨어지게 했더라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신춘문예의 시상식이 끝나고 환담을 하는 자리에서 심사위원 가운데 어떤 분이 웃으며 이런 소감을 말했었다.
두 불구의 부자가 외나무다리를 무사히 건너지 못하고 냇물로 굴러 떨어지게 하면 비극적인 농도는 더짙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비정(非情)한 묘사로써 작품을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픽션이지만 불행한 그들 부자를 또다시 물속에 떨어뜨려버릴 수는 도저히 없었을 뿐 아니라, 그것은 절망을 상징하는 것이 되는 셈이었다. 나는 절망 쪽보다 절망의 극복 쪽을 택하고 싶었다.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끈질긴 집념과 의지를 제시하고 싶었다.
어쩌면 우리 민족의 역사는 외나무다리를 아슬아슬하게 건너가는 것과 같은 그런 극복의 연속이 아닌가 여겨진다.”
4. 박경리의 《불신시대》(1957)
박경리는 29세 되던 1955년 김동리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전후의 타락하고 부패한 현실을 비판하는 이 소설은 《현대문학》(1957)에 실렸고, 현대문학 신인상을 작가에게 안겼다. 전쟁 상황에서 훼손되는 인간 존엄성을 다룬 전후 소설로 박경리의 체험이 담겨 있는 자전적 소설이다.
진영은 한국 전쟁 와중에 남편이 폭사하여 아들 문수를 바라보며 산다.
그런데 문수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엑스레이도 찍지 않고 약도 준비하지 않는 의사의 무관심 때문에 죽게 된다. 아들의 죽음이 가져온 충격으로 인해 진영은 사회를 불신하게 된다. 진영은 폐결핵으로 병원을 찾아갔으나 병원은 주사약의 분량을 속이거나 가짜 의사 노릇을 하는 등 믿을 만한 곳이 못 되었다. 부패하기는 종교도 마찬가지였다. 여승이 찾아와 시주로 받은 쌀을 되팔려 하기도 하고 아들 문수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찾은 절은 빈부에 따라 사람 대접을 달리하는 타락한 곳이었다.
진영은 신앙이 깊어 의지하려 했던 갈월동 아주머니에게 돈을 떼이고, 종교를 빌미삼아 사기 행각을 벌인 대학생 상배 등 개인적으로 만난 종교인들에게도 실망하고. 찾아간 교회에도 절도가 만연한다는 것 등을 알게 되자 더욱 심적으로 지치게 된다. 결국 진영은 아들 문수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철에 맡겼던 위패와 사진을 찾아와 불태운다. 불심의 깊이를 논으로 따지는 절에서 아들의 영혼이 평안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진영은 아들의 위패를 태우고 돌아오면서 아직 자신에게 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 남아 있음을 자각한다.
5. 김성한의 《바비도》(1956)
1956년 《사상계》에 실린 작품이다. 그리고 그해 동인문학상 1회 수상작이 되었다. 작품은 1410년경 영국이 배경이다. 6.25전쟁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발표된 그의 소설은 소극적이며 허무주의적인 전후 소설의 인간상을 거부하고 인간 존엄성과 정의 구현을 실천하는 행동적 인간형을 보여 주고 있다.
경향신문 1956년 3월 26일 자 4면에 김성한 작 <바비도>가 제1회 동인문학상 수상작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당시 문학상 이름은 ‘김동인문학상’이다. 《사상계》가 제정했다.
15세기 초엽 헨리 4세 치하의 영국은 라틴어 성경을 통해 지식을 독점하던 교회의 부패가 극에 달하고 있었다. 한편 위클리프의 영역 복음서를 몰래 읽는 영국 백성들 사이에 성직자와 교회에 대한 불신은 날로 커져 간다. 자신의 권위가 훼손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교회 세력은 민중들을 의식화하는 영역 복음서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순회 종교 재판소를 열어 저항 세력을 처단한다. 영역 복음서 비밀 독서회에서 돌아온 재봉 직공 바비도는 교구마다 순회하면서 이단을 처형하는 순회 종교재판이 내일 이 교구에서 열리게 될 것을 생각하고 많은 동지들이 목숨을 위해서 변심했던 일을 회상한다.
바비도는 분을 참지 못해 어느 귀족이 주문한 옷에 오줌을 갈긴다. 재판정에서 죄과를 인정하고 뉘우칠 것을 요구하나 바비도는 거절하고 당당히 스미드필드 사형장으로 끌려간다. 사형장은 화형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바비도가 들어오자 교회의 권위에 맹목적인 사람들은 바비도에게 돌을 던진다. 형장에 선 바비도에게 태자 헨리가 나타나 마음을 돌릴 것을 권유하지만, 바비도는 교회와 왕정의 부조리한 모순을 지적하며 지옥에서 먼저 기다리겠노라고 빈정댄다. 사형대에 올라 불을 지피는 순간, 태자는 돌연 불을 끄고 바비도를 내리라고 명령하며 바비도에게 살려 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비도는 태자의 동정을 뿌리치고 사람들의 조롱 속에 분형으로 최후를 및는다. 다음은 소설 속 한 장면.
<“너는 한 마디만 하면 목숨을 구하고 새 출발을 할 수도 있지 않으냐?
나두 내 힘자라는 데까지 네 앞날을 개척하는 데 조력하지.”
바비도는 말없이 빙그레 웃었다.
“어때?”
“오히려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이 지금 생각하면 즐거운 길이었습니다. 이 길을 그냥 가렵니다. 다행히 하찮은 영혼이라도 없어지지 않고 지옥 한 구석에 남아 있다면 오시는 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동안 될 수만 있으면 권력세계의 주역(主役)을 깨끗이 치르고 오십시오.”
태자는 한숨을 쉬었다.
“…할 수 없구나, 법은 법이니까 집행해라!”
“법…” 하고 빙그레 웃는 바비도에게 달려들어 사형 집행리들은 다시 포승으로 묶고 장작더미 위에 비끌어 매었다.
바짝 마른 장작에 불은 순식간에 퍼져서 불길은 각각으로 바비도에게 육박하고 있었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생각에 잠겨 있던 태자는 별안간 뛰어 일어나면서 고함을 질렀다.
“불을 꺼라, 사람을 끌어내려라!”
“그 뜻은 잘 알겠습니다마는 내 스스로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가는 심사로 떠나는 길이니 염려할 건 없습니다. 이미 동정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닌가 합니다.”>
6. 오상원의 《유예》(1955)
이데올로기 전향 여부에 다라 생사가 결정되는 1시간의 유예 동안 느끼는 여러 상념들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그린 작품이다. 《한국일보》의 1955년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할 여유를 주겠소. 한 시간 후, 동무의 답변이 모든 것을 결정지을 거요.”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존재란 무엇이며 죽음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주요 내용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국군 소대장으로 적진 깊숙이 침투했다가 낙오되었다. 계속된 전투와 피로, 기아, 추위로 소대원 대부분을 잃고 결국 선임하사와 나면 남게 된다. 그러나 일본군, 팔로군, 국부군에서 살아남은 베테랑 선임하사도 결국 전사하고 말았다.
어느 마을에서 인민군들이 아군 병사를 처형하려는 모습(논둑길을 걸어가게 하고 뒤에서 총을 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의 죽음이 곧 자신의 죽음이라 생각한 ‘나’는 그들을 향해 총을 쏘다가 적의 응수로 부상, 의식을 잃은 채 포로가 된다. 적은 끊임없이 ‘나’를 회유하고 ‘나’는 엉뚱한 대답만 하다가 사형이 집행된다. 적은 남쪽으로 뻗은 길을 걸어가라 하고 뒤에서 총을 겨눈다. ‘나’는 죽음에 임박한 순간에도 존엄을 잃지 않기 위해 정신을 차리지만, 자신의 죽음이 허무하게 끝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감추지는 못한다. 눈 쌓인 둑길을 걸어가면서 ‘나’는 총을 맞고, 자신이 선택한 죽음을 맞이한다. 다음은 소설의 마지막 단락이다.
<누가 죽었건 지나가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에겐 모두가 평범한 일들이다. 나만이 피를 흘리며 흰 눈을 움켜진 채 신음하다 영원히 묵살되어 묻혀 갈 뿐이다. 전 근육이 경련을 일으킨다. 추위 탓인가……. 퀴퀴한 냄새가 또 코에 스민다. 나만이 아니라 전에도 꼭 같이 이렇게 반복된 것이다.
싸우다 끝내는 죽는 것, 그것뿐이다.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위한다는 것, 무엇을 얻기 위한다는 것, 그것도 아니다. 인간이 태어나 본연의 그대로 싸우다 죽는 것, 그것뿐이라고 생각하였다.>
7. 손창섭의 《비 오는 날》(1953)
1953년 《문예》지에 실린 이 작품은 전후(戰後) 소설의 대표작으로, 전쟁이 남긴 상처로 인해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우울한 내면 심리를 담은 작품이다.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분위기는 음산함과 우울함으로 작품 시작부터 계속되는 비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전망을 찾아볼 수 없는 암울 한 시대상황을, 동욱 동옥 남매가 기거하던 폐가와도 같은 집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세상을 드러내는 상징적 소재이다.
피난지 부산에서 잡화를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원구는 비 오는 날이면 동욱 동옥 남매가 떠오른다. 원구의 오랜 친구인 동욱은 소아마비로 한 쪽 다리가 불구인 동옥과 1·4후퇴 때 월남해서 함께 살고 있다. 동옥은 그림을 좋아하고, 동욱은 목사 지망생이었지만 전쟁은 이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피난지에서 그들 남매는 미군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번은 동욱이 원구와 술을 마시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동옥이 년이 정말 가엾어. 안만 생각해도 그 총기며 인물이 아까워.” 그러고는 다시 잔을 비우고 나서 “할 수 있나. 모두가 운명인걸”하고 고개를 흔드는 것이었다. 동욱은 머리를 떨어뜨린 채, “내가 자네람 주저 없이 동옥이랑 결혼할 테야, 암 장담하구말고” 하고 혼잣말처럼 그렇게도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어느 비 오는 날 남매를 찾아간 원구는 인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딴 허름한 목조 건물 안에서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 후 그들의 초상화 벌이도 끊기고 동옥은 주인 노파에게 빌려 준 돈과 전세금까지 떼여 어려운 처지에 빠진다. 나중 원구는 동욱의 집을 찾아가지만 집의 주인은 바뀌어 있고, 동욱 남매도 보이지 않는다. 원구는 새 주인 사나이의 말에서 동옥이 팔려 갔다는 의심을 하고 분노하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그냥 되돌아오고 만다.
8. 선우휘의 《불꽃》(1957)
선우휘는 현역 대령으로 33세의 나이인 1955년 단편소설 <귀신>을 《신세계》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처음 이름을 알렸다.
경향신문 1957년 8월 2일자 4면에 선우휘 작 <불꽃>이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알림 기사다.
2년 뒤 57년 7월호 《문학예술》에 발표된 《불꽃》은 바로 그해 9월호 《사상계》에 다시 수록되었다. 7월호와 9월호 사이는 두 달의 간격이 있지만 잡지 편집을 아는 사람이면 7월호에 실린 글을 곧바로 받지 않고서는 9월호에 싣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해 동인문학상 2회 수상작으로 《불꽃》이 뽑혔다.
이듬해 군복을 벗고 본격적인 창작에 돌입, <깃발없는 기수>, <단독강화>, <아아, 산하여> 등 중장편 및 단편들을 발표하는 한편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새로운 길을 걸었다. 그리고 1962년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겨 편집국장과 주필 등을 지냈다.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불꽃》은 3.1운동에서부터 6.25 전쟁에 이르는 이 나라 민족사의 가장 어두웠던 격동기를 짜임새 있게 응축한 야심작이다. 중편으로서는 다루기 벅찬 소재를 ‘고현’이라는 주인공을 통해 민족의 비극사를 극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선우휘의 소설은 한국전쟁의 의미화를 위해 일제 태평양 전쟁을 대입시키거나 중첩시키며 집단주체에 대응하는 개인 주체와 그 자유의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불꽃》이 그렇고 《반역》이 그렇다.
《불꽃》은 자유주의자인 ‘고현’이 불안한 역사 속에서 자신의 자유주의적 태도를 더는 견지할 수 없게 만드는 극도의 예민한 공동체 현실을 다루고 있다. 예컨대 ‘고현’에게 있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모두들 두 줄로 마구 세워놓고 서로 두드리게 하는 일이다. 군에서 개인적으로 손톱만한 원한이 없는 인간끼리 서로의 육체에 고통을 가한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현’은 일제 강점기 일본 유학 후 학병으로 끌려가 중국에 파병되었다가 탈주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평범하게 살고자 한다. 하지만 월북했다가 6.25 때 돌아온 친구 연호(공산주의자)가 주도하는 인민재판에 분노하여 총을 난사하고 동굴로 피신한다.
‘현’은 끊임없이 시대와 이념과 자신에게 물을 던지면서 개인의 자유를 저해하는, 시대적 불협화음이 무엇인지 되새김질을 한다. 그리고 그가 얻은 해답은 먼저 전쟁으로 인해 육체에 표상되는 폭력의 잔재로부터 오는 원한의식이다. 다음은 작품 속 한 장면이다.
<나는 다음 탄환으로 연호의 가슴을 뚫었다. 사람을 죽인 것이다. 남에게 손가락 하나 가풋하지 않으려던 내가 사람을 죽인 것이다. 가엾은 연호. 연호와 나와는 아무런 원한도 없었는데, 인간이란 이래서 죄인이라는 것일까, 어쩔 수 없이 살인을 하게 되는 인간의 불여의. 죄악을 내포한 인간의 숙명? 그것은 원죄? (중략)
그것은 먼저 내가 질러야 할 비명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그 어린 병사 대신 내가 그 길가에 누웠어야 했을는지도 모른다. 나 같은 인간은 아직 살아 있었고, 살아야 할 인간은 죽어갔다. 이런 것이 그대로 용허될 수 있었다고 생각되는가. 동굴에서 죽은 부친. 강렬히 살아서 아낌없이 그 생명을 일순에 불태운 부친. 부친은 살아남은 인간들을 대신해서 죽었고 그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했을는지도 모른다. (중략)
―살아야겠다. 그리고 살았다는 증거를 보이고 다시 죽어야 한다―
현은 기를 쓰는 반발의 감정 속에서 얘기치 않은 새로운 힘이 움터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힘이 조금씩 조금씩 마음에 무게를 가하더니 전신에 어떤 충족감이 느껴지자 현은 가슴 속에서 갑자기 우직하고 깨뜨려지는 자기 껍질의 소리를 들었다. 조각을 내고 부숴지는 껍질. 그와 함께 거기서 무수한 불꽃이 튀는 듯했다.>
9.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1953)
황순원의 두 번째 장편 소설인 《카인의 후예》는 1953년 9월부터 《문예》에 연재되었다. 연재 도중 잡지가 폐간되어 이듬해 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카인은 구약에서 동생 아벨을 죽인 인류역사상 최초의 살인자 이다. 카인의 후예란 형제의 피를 흘린 민족의 후예라는 의미이다. 작품 속에서 서로 갈등하고 서로 죽이려는 사람들은 가족이 나 다름없는 한마을 사람들이다. 즉, ‘카인의 후예’는 우리 민족의 비극을 담고 있다.
작품은 해방 직후의 토지개혁과 인민재판 등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농민들 간의 의식화와 지주의 몰락, 과거 자신들의 소행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지주 숙청에 앞장서는 마름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박훈은 지주인 조부와 부모의 사망으로 많은 땅을 물려받게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향 청년을 위해 야학을 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북한 세력이 들어와 토지 개혁이 일어나고 박훈과 그의 숙부인 박용제는 ‘개털 오바 청년’에 의해 반동 지주로 몰려 인민재판 대에 오른다.
박훈은 도섭 영감의 딸인 오작녀 덕분에 목숨을 건지지만, 도섭 영감은 이에 분개하여 박훈 할아버지의 송덕비를 도끼로 부순다. 한편 박용제는 도섭 영감 등에게 쫓기어 자살하고, 이 사건으로 훈은 도섭 영감을 죽이려 하지만 도리어 도섭 영감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놓이게 된다. 그때 오작녀의 동생 삼득이가 나타나 박훈을 구해주며 누나와 함께 떠나라고 한다. 박훈은 오작녀를 데리고 양짓골을 떠날 결심을 한다.
이 작품에서 작가가 가장 커다란 열정을 가지고 부각시키려 한 것은 오작녀라는 인간상이다.
오작녀는 박훈에게 육체를 초월한 사랑, 가없는 모성적 사랑의 화신으로 다가온다. 다음은 작품 속 한 장면이다.
<개털 오버 청년이 다시 종이를 펴 들고,
*“우리 민주 혁명에 불평을 품고 매일같이 술로써 소일하는 한편, 무지한 청년들을 유혹하여 반동 결사를 조직해 가지고 우리 면 농민 위원장 동무를 살해하게 한 사실, 그리고….”
개털 오버 청년은 이 자리에 오작녀까지 나타난 것이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며,
“…… 그리고 지주의 권력으로 소작인의 딸이자 남의 유부녀인 여성 동무를 유린한 사실, 이런 사실로 보아……….”
“여보!”
오작녀가 청년의 말을 가로챘다.
“대관절 누가 그런 소릴 덕었소?”
청년의 의아한 눈을 들었으나 타이르듯,
“농민대회의 결정이오.”
“왜 그런 허튼 소릴 덕었소?”
청년의 얼굴에 어떤 놀람과 격분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여성 동무, 말을 삼가오! 우리는 시방 동무를 반동분자 손아귀에서 해방시키자구 그러는 게요.”
“해방이구 뭐구 다 일없소. 어서 집으루들 돌아가시오.”
“동무, 시방도 말했지만 그동안 동무의 고생은 우리가 모르는 배 앙이오, 그러나 그건 오늘의 이 공작과는 딴 문제요.”
“당신네는 아무것두 몰라요!”
“뭘 모른단 말이오?”
“당신네는 아무것두 몰라요!”
오작녀는 입술을 잘끈 깨물고 나서,
“우리는 부부가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