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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신자와 초보 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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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 나눔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장코뱅 추천 4 조회 391 25.12.13 08:07 댓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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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5.12.13 08:55

    첫댓글 즐거운 주말, 기쁜 주일 되세요!

    이 포스팅은, 초신자나 시간이 없는 분들은 묵상 본문만 읽으셔도 충분합니다. 아래의 댓글과 주석은 시간이 많은 분들께 다양한 이해를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 작성자 25.12.13 09:00

    <호크마 주석: 골로새서>

    =====1:9
    이로써...우리도 듣던 날부터...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 여기서부터는 골로새 교인들을 위한 바울의 중보 기도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에바브라의 귀환과 골로새에 대한 소식의 청취에서 강하게 동기지워진 것이다. 바울이 에바브라를통해 들은 골로새 교회의 상황은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상황, 즉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열매 맺는 생활을 하는 것도 있었지만, 다소 불안한 점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본절에 대해 골로새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불만이 점잖은 방식으로 표현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Scott). 신령한 지혜와 총명 - 공동번역은 이를 '성령께서 주시는 모든 지혜와 판단력'으로번역하고 있다. 분명 '지혜와 총명'은 성령의 역사의 산물이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 성령께서 주신 지혜와 총명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데까지 나아가야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 '아는 것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텐 에피그노신'(* )에서 '알다'는 피상적인 인식이 아니라 근본적인 인식을 뜻한다. 이 지식은 하나님의 요구, 뜻을 깨달아 아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 작성자 25.12.13 09:00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하는 온전한 지식이다(O'Brien).

    =====1:10
    주께 합당히 행하여 - 본문은 당시 교회들에서 사용되었던 정형화된 격언과도 같은것이었다(엡 4:1 ; 빌 1:27 ; 살전 2:12). '주께 합당히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의 필연적인 전개라고 할 수 있다(9절). 이것은 기독교의 지식이 지식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것이 아니라 신앙적 행실을 지향하는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Lightfoot).
    범사에 기쁘시게 - '주께 합당히 행함'은 구체적으로 '주를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기쁘시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레스케이안'(* )은 거의 아부에 가까울 정도로 상대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 미리 알아서 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성도에게 있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모종의 반대 급부(給付)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 '열매를 맺게'(* ,카르포포룬테스)는 현재 시제로 되어 있는데 이는 성도의 삶이 계속해서 열매 맺는 것임을 말해준다. '선한 일에 열매를 맺는 것'은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과 더불어

  • 작성자 25.12.13 09:01

    '주께 합당하게 행하는 것'의 구체화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 '하나님을 아는 것'과 더불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같은 의미일 수 있으나 전자가 후자보다 더 깊은 영적 성장을 암시한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1:11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 바울의 기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주께 합당한 삶, 그리고 열매 맺는 삶을 넘어 하나님의 권능을 골로새 교인들이 체험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으로 향하고 있다. 본문의 '능하게 하시며'(* , 뒤나무메노이)는 현재형으로, 성도에게 발휘되는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한편'영광의 힘'은 인간의 지성으로는 더듬어 올라갈 수 없는 초월적 영역에서 오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덤의 예수를 일으킨 능력이요, 환난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능력이다.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 '견딤'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모넨'(* )는 정해진 목표 지점을 향해 고난을 무릅쓰며 정진하는 것을 뜻하는데, 경주자가 총력을 기울여 달려가는 것에 대해서도 사용되는 말이다(히 12:1).

  • 작성자 25.12.13 09:01

    결국 '견딤'은 유혹과 저항을 물리치고 한 곳 목표만을 향하여 묵묵히 달려가는 것을 뜻한다. 또한 '오래 참음'(* , 마크로뒤미안)은 무거운 짐에 눌리거나 실패를 당하여도 좌절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불굴의 투지(鬪志)를 가리킨다. 분명 '견딤'과 '오래 참음'은 즐거움과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기쁨으로 감당한다는 것은 바로 '영광의 힘'을 좇아오는 하나님의 능력에 기인한다.

    =====1:12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 '기업'에 대한 언급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영토를 분배받았던 것을 연상시킨다. 그것이 하나님의 옛 백성들에게 주어진 '육적인 기업'이라고 한다면, 미래에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분깃은'영적인 기업'이라고 할수 있다. 한편 '합당하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히카노산티'(* )는 근본적으로 '충분하게 하다', '적절하게 하다'는 뜻으로 갖추어진 자격을 의미한다. 이 자격은 인간이 자생적으로 구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시는 것인 바 자격 없는 자를 회개시켜 빛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것이다(Vaughan).

  • 작성자 25.12.13 09:02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본절의 요지는 '감사'이다. '감사'는 '열매 맺음','자라남', '능하게 됨'에 이어지는 신앙의 중요한 덕목으로 성도의 필연적인 삶의 양식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격없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자격을 주며 장차 받을영적 기업까지 허락하셨으므로 감사는 그 은혜에 대한 합당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1:13
    흑암의 권세 - 이는 앞절의 '빛 가운데서'와 대조된다. 이러한 대조는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에 나오고 쿰란의 문서들에서도 발견되는 개념이나 바울이 여기서 그들의 개념을 빌어서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악한 세력'으로 상징되는 '흑암'과 '선한 세력'으로 상징되는 '빛'의 대조는 보편적인 인간 세계의 개념이라고 볼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본문의 '흑암의 권세'는 일찍이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 직전에 체포되셨을 때 예수를 대적하는 악한 세력에 대해 언급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있는 바(눅 22:53), 그 세력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성도들을 탄압하거나 오도하는 인간들을 의미한다기보다는 그들의 배후에서 하나님께 대적하는 비가시적인 사단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 작성자 25.12.13 09:02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 '사랑의 아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이란 뜻이며 '나라'(* , 바실레이안)는 종말론적이고 영토적인의미라기보다는 골로새 교인들의 마음에 현존하는 하나님의 나라이며(요 3:3-5)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주권적 통치를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 장차 기업으로 받을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를 전혀 배제할 수도 없다.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는 미래적인 것이며 반드시 유업으로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미래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고 이미 현재에 도래해 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 나라는 지금 성도들의 마음에 현존하는 하나님의 통치이다(Vaughan).

    =====1:14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 '구속'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폴뤼트로신'(* )은 '값을 지불하고 어떤 대상을 획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흑암의 권세에 매여 종노릇하던 우리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취하였음을 말해준다(롬 3:24, 25 ; 엡 1:7 ; 히 9:14, 15). 성도는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통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 작성자 25.12.13 09:03

    =====1:15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 -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고후4:4에도 나오는 표현이다. 복음서에 의하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고 했고 예수 자신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 14:9)고 선언하기도 하셨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불가시적인 하나님의 분명한 현현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물질적이거나 신체적인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표현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실체, 본성, 그리고 영원성에 있어서 성부와 그리스도가 완전한 동등성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 - 본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그리스도가 하나님의피조물로서 최초로 창조된 피조물임을 말해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실제로 아리우스(Arius A.D. 256-336)는 본절을 근거로 그리스도도 피조물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본문은 결코 그렇게 이해될 수 없다. 이것은 성경의 다른 본문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요 1:1, 2 ; 8:58 ; 히 1-3 ; 10:5-9). 본문이 뜻하는 바는

  • 작성자 25.12.13 09:04

    그리스도가 시간적으로 만물의 창조 이전에 존재하였고 그런 만큼 만물에 대한 우월성을 갖는다는 것을 말해준다(Carson).

  • 25.12.13 09:36

    늘 내용이 좋습니다. 그래서 공감이 됩니다.

  • 25.12.13 11:44

    묵상 본문과 같은 범위라서 잘 읽고 참고합니다.

  • 작성자 25.12.13 09:07

    요1:18
    <호크마 주석>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 문자적으로는 '결코 보이신 적이 없는 하나님'이란 의미이다. 비록 모세가 여호와와 대면했다는 명성을 얻기는 했으나(출 33:11;신34:10) 그 역시 하나님의 본체를 본것은 아니었다(출 33:17-34:9). 왜냐하면 유한하고죄악된 인생이 거룩하고 영광스러우신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출 33:20).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드러내신데 대한 유대인들의반응이 예수를 죽이려고 할 정도로 격력하였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10:20-33).
    아버지 품속에 있는 - 이 표현은 친밀한 인격적인 관계를 나타낸다. 즉 1절의 '이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라는 말씀과 동일한 의미를 전달하는 이 표현은 영원전부터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존재하고 계셨던 그리스도의 선재성을 암시하며 또한 그리스도의 신성까지도 함유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 품속에 있는'이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구절이다.
    독생하신 하나님 - 14절의 '아버지의 독생자'와 상호 연관되는 이 칭호는 바로 은혜와 진리의 부여자(附與者)이신

  • 작성자 25.12.13 09:08

    예수 그리스도(17절)를 가리킨다('득생자'에 대해서는 14절 주석을 참조하라).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의 본성인 은혜와 진리로 교회를 형성하신 분이라는 의미를 '독생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 속에서 드러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와 같은 신앙은 기독교가 당시의 이방 철학이나 종교 그리고 율법주의 및 로마 제국주의에 대항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源泉)이었다. 특히 로마 제국의 기독교 박해시 성도들 사이에 암호로 통용된 물고기 그림에서 당시의 신앙을 발견할 수 있다. 헬라어로 '물고기'는 '잎뒤스'(* )로서,'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주'(에에수스 크리스토스, 데우 휘오스, 소텔, '*, , )라는 말의 약자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굳건한 신앙 고백을 토대로 교회가 온갖 박해를 이기고 어두움 속에 빛을 비추었듯이, 오늘날의 물신주의와 이데올로기(ideology)의 와중에서도 교회가 설 수 있는 기반이 바로 '독생하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라는 사실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 25.12.13 10:36

    독생하신 하나님도 좋지만 독생하신 아들, 독생자가 더 확실히 위격을 표현한다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 25.12.13 09:13

    <매튜 헨리 주석>

    === 골로새 교인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골로새서 1:9-11)

    사도는 본문에서도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계속한다. 그는 그들이 훌륭하다는 사실에 대하여 들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더욱 진보되기를 위해 기도했다. 그는 그들을 위한 기도를 쉬지 않았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그는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9절)고 말한다. 그는 그들에 대하여 자주 소식을 들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쉬지 않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했다. 그의 기도는 "그들이 지식으로 채워지기를 간구한"것이었다. 그가 하나님께 그들을 위하여 간구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Ⅰ. 그는 그들이 지식 있고 총명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기도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라고 본문에서 기도하였다. 다음의 사실을 명심하자.

    1. 우리의 의무에 대한 지식이 최선의 지식이다. 아무리 위대한 진리라 할지라도 개념에 불과한 지식은 무의미하다. 하나님의 뜻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항상 실제적이어야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그것을 알아야 한다.

  • 작성자 25.12.13 09:14

    2. 우리의 지식이 지혜 안에서 활용되고 또 우리가 모든 지식을 실제의 경우에 적응시키는 방법과 그것을 모든 긴박한 사태에 적용시키는 방법을 알게 될 때, 우리의 지식은 실제로 축복이 된다.

    3. 그리스도인들은 지식으로 자신을 채우고자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알며,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야 하며"(10절에서와 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한다(벧후 3:18).

    Ⅱ. 그들이 선한 생활을 살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였다. 선한 생활이 없는 선한 지식은 유익이 없다. 우리가 깨달은 것을 우리의 생활 속에서 실현시킬 때 비로소 그것은 진정한 영적인 깨달음이 된다. 그러므로 사도는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도록"(10절) 하라고 하였다. 즉 우리가 그와 맺은 관계와 또 그에 대하여 행한 신앙 고백에 부끄럽지 않게 행하라는 말이다.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일치는 선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은 물론 선한 사람들도 기쁘게 한다.

  • 작성자 25.12.13 09:14

    그러므로 사도는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라고 기도 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목적해야 하는 것이다. 선행이 따르지 않는 선한 말들은 아무런 힘도 없다. 우리는 모든 선한 일에 풍성해야 한다. 쉽고 자기에게 맞으며 안전한 경우에만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조건 가운데서도 선을 행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모든 뜻에는 변칙적인 것이 없다. 그리고 우리가 선한 일에 더욱 많은 열매를 맺을수록 우리는 더욱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알게 되리라"(요 7:17)고 하였다.

    Ⅲ. 그들이 강건하게 되기를 위해 기도했다. 그러므로 그는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고"(11절)라고 기도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사탄의 유혹들에 대적할 수 있게 되고 그들의 모든 의무를 감당할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하였다.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시는 이가 능력의 즉 영광의 능력의 하나님이신 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며 영적 생활이 있는 곳에는 영적 힘 즉, 영적 생활을 활력 있게 하는 힘이 또한 필요하다. 강건하게 된다는 것은 모든 선행을 행할 때마다

  • 작성자 25.12.13 09:14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받는다는 말이요, 그리고 모든 악한 일에 대적할 수 있도록 은혜에 의하여 강하게 되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우리의 의무를 행할 수 있게 하며, 그리고 우리의 완전함을 굳게 붙잡을 수 있게 해 준다. 복되신 성령이 이 힘의 공급자이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케 되었기"때문이다(엡 3:16). 하나님의 말씀은 이 힘의 매개체이다. 성령은 이 말씀에 의해서 힘을 공급하신다. 그리고 그것은 기도를 통하여 실현된다. 사도가 충분한 은혜를 얻은 것은 그의 간절한 기도가 응답되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영적 힘을 위하여 기도한다고 해서 약속들이 제한을 받는 것이 아니며, 또 우리 자신의 소망들이나 갈구함에 제한을 받는 것이 아니다. 다음의 사실들을 생각해 보자.

    1. 그는 그들이 능력으로 강하게 되기를 기도했다. "능력으로 강하게"란 말은 같은 말을 반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의미하고자 한 것은 그들이 강력한 함을 얻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었고 서로의 능력을 합하여 강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 것이었다.

    2. 또한 그는 "모든 능력으로"그들을 능하게 하시기를 위해 기도했다.

  • 작성자 25.12.13 09:15

    피조물이 모든 능력으로 강하게 될 수 있다는 말은 불합리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것은 피조물이 전능하게 된다는 말로 오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말한 능력은 우리도 소지할 수 있는 것으로 우리로 우리의 의무를 감당하게 하며, 우리의 순수성을 보존케 해 주는 그러한 능력이었다. 이 능력의 은혜는 우리로 생의 온갖 시련을 견디게 하며 궁핍한 때에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에 충분한 은혜이다.

    3. "그의 영광의 힘을 좇아서"란 말은 그들을 강건하게 하시기를 기도하였다. 그가 말한 "그의 영광의 힘을 좇아"서란 말은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라는 의미와도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신자들의 마음 안에 거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그리고 이 능력 안에는 영광이 있다. 그것은 고상하고 충분한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은 그 힘을 받아야 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좇아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전달된다. 하나님이 주실 때 그는 자신의 형상과 같은 것을 주시며 그리고 그가 강하게 하실 때는 그 자신과 같이 강하게 하신다.

    4. 이 힘을 고난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 특별히 유용하다.

  • 작성자 25.12.13 09:15

    그러므로 사도는 "모든 능력으로 너희를 능하게 하사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기를"(11절) 간구 하였다. 그는 그들이 곤란을 견뎌낼 수 있기를 위해 기도했을 뿐만 아니라, 교통에 직면하여 강건하기를 기도하였다. 이로 보아 이 세상에는 우리가 고난을 당할지라도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영광의 힘을 좇아" 강하게 된 자들은 다음 사실들에 대해서 강하게 된다.

    (1) 모든 견디는 일에 강하여진다. 우리가 "인내를 온전히 이른다는 것은"(약 1:4) 우리가 강건하여져 무엇이든 참을 수 있게 된다. 즉 우리는 우리의 곤란을 참을성 있게 견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선물들도 받아들이며 그리고 그 고난에 대해서 감사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시기 위하여서"라고 하였다(빌 1:29). 우리의 어려움이 너무나 많고 그 고통의 상황들이 더욱 악화될지라도 우리가 그것들을 잘 감당할 때 우리가 모든 인내로 그것을 감당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정당한 것이 정당하다면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본문에 말한 "모든 견딤"은 모든 종류의 견딤을 포함한다.

  • 작성자 25.12.13 09:15

    즉 고통을 견뎌내는 인내뿐만 아니라 주님을 기다리는 인내까지 포함된다.

    (2) 그의 영광의 힘을 좇아 우리에게 임한 능력은 우리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한다. 그것은 한동안의 곤란을 견디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그것을 계속하기를 기뻐하시는 한도까지 그것을 견딜 수 있게 한다.

    (3) 또한 그 능력은 우리를 기쁨으로 함께 하신다. 즉 환난 중에도 기뻐하게 하며, 물질이 손해가 나도 기쁘게 하며 그리고 우리가 그의 이름을 위해서 고난받을 가치가 있는 자로 여겨졌다는 것을 기뻐하게 하며, 그리고 생활의 곤경 속에서 인내는 물론 기쁨을 갖게 하신다. 이것을 우리는 결코 자신의 어떤 힘으로는 할 수 없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강하게 될 때 비로소 할 수 있다.

    === 바울의 기독론(골로새서 1:12-29)

    본문에서 그리스도에 의한 우리의 구원의 위대한 사업에 관한 복음의 내용이 요약되어 있다. 이 내용은 본문에서는 설교의 형태로써가 아니고 감사의 형태로 취급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은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에게 풍성한 감사의 조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는 "아버지께 감사케 하시기를 원하노라"(12절)고 하였다.

  • 작성자 25.12.13 09:16

    그는 구원의 역사를 논리적인 순서에 의거하여 강론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구원의 역사를 논리적으로 논하려 했다면 먼저 구원의 획득을 논하고 나서 다음 그것의 구체적 적용을 논해야 옳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그 순서를 뒤집는다. 왜냐하면 구속을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구속의 실제적인 적용이 그 획득 과정보다 더 우리의 관심을 끄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먼저 우리들의 마음 속에 구원의 은혜를 발견하고 그런 다음 구원의 역사의 근본 원천이 어디 있는가를 관심하게 된다. 그 사도의 강론의 순서와 배열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생각될 수 있다.

    Ⅰ. 그는 우리에게 대한 은혜의 성령의 활동에 관하여 말한다. 우리는 그 활동에 관하여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활동들에 의해서 우리가 아들의 중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받게 때문이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아버지께 감사드리기를 원하노라"(12,13절)고 하였다. 그 이유는 성령의 활동은 아버지의 일로써 얘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은혜의 영은 곧 아버지의 영이시며 그리고 아버지께서 그의 영을 통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인 것이다. 은혜의 역사가 그들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들은

  • 작성자 25.12.13 09:17

    아버지께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우리가 그것의 위로를 받았다면 하나님은 그것으로 인해 영광을 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구원이 우리를 위해 이루어졌는가를 살펴보자

    1.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셨기 때문이다"(13절) 그는 우리를 어두움인 죄의 지배에서(요일 1:6), 어두움의 임금인 사탄의 지배에서 (엡 6:12) 그리고 어둡기가 비교할 수 없는 지옥 형벌의 저주에서(마 25:30) 구원하셨다. 또한 그들은 그를 통해 "어두움에서 불러냄을 받은 것이다"(벧전 2:9).

    2. "그가 우리를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고 복음의 빛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셨고 빛과 정결의 나라인 그리스도의 교회의 일원으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전에는 어두움이러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엡 5:8)고 하였고 또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셨다"(벧전 2:9)고 하였다. 사탄의 종들이었던 그들을 그가 그리스도의 종들로 삼으셨다. 죄인의 회개는 그의 영혼이 악마의 왕국에서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옮기는 것을 뜻한다. 그리하여 그에게서 죄의 세력은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지배한다.

  • 작성자 25.12.13 09:18

    그리스도 예수의 세력은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지배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그들을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케 한다. 또한 그가 우리를 옮기신 나라는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혹은 그의 특별히 사랑하는 아들, 그의 아끼는 아들(마 3:17)그리고 특별히 사랑받는 자(엡 1:6)의 왕국이다.

    3. "그는 이 일을 이루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다"(12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비를 뽑아 약속된 땅을 나눈 것같이 그는 우리에게 하늘의 영원한 복을 위하여 준비시키신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원한 행복에의 보증과 확신을 주신다." 그가 하늘나라에서의 행복을 먼저 언급한 것은 그것이 장래 축복의 최초의 표시이기 때문인데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우리는 어느 정도 그것을 위하여 준비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와 영광"을 주신다. 그리고 본문에는 이 두 가지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말씀되고 있다.

    (1) 그 때의 영광의 본체에 대해서. 이 영광은 "광명의 나라에서 성도들이 받을 상속"이다. 그것은 유산으로 자녀로서의 그들에게 속하는 것이다. 이 영광은 그들에게 최대로 보장된

  • 작성자 25.12.13 09:20

    것이요 영원토록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로마서에서도 "만일 자녀라면 상속자이다"(롬 8:17)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성도들의 유산인데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화된 영혼들의 유산이다. 땅 위의 성도들이 아닌 자들은 결코 나라에서 주어지는 유산이다. 즉 자신이 빛이시오, 또한 모든 빛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의 교제에 의하여 완전한 지식과 거룩함과 기쁨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약 1:17; 요일 1:5)

    (2) 이 은혜의 본체 대해서. 이 은혜는 상속에 필요한 구비 조건이다. 이 은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그가 우리를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셨다. 즉 우리의 영혼을 하늘나라에 타당한 기질과 습관으로 교정하사 알맞게 하셨다. 그리고 그는 우리를 그의 성령의 강력한 영향에 의하여 그의 나라에 합당하게 하신다"고 하였다. 마음을 변화시키고 그것을 하늘나라에 합당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결과다. 이것이 곧 은혜이다. 다음의 사실을 명심하자. 이후에 천국을 목적으로 삼는 자들은 지금 천국을 위하여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성화되지 못하고 살거나 또는 죽은 자들이 세상을 떠나서 지옥으로 가게 되듯이 성화되고 거듭난 자들은

  • 작성자 25.12.13 09:21

    세상을 떠날 때 천국으로 가게 된다. 아들의 유산을 물려받은 자들은 또한 아들 됨을 위한 교육과 성품을 배워야 한다. 그들은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롬 8:15). 또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 하였다. 이 천국에 합당한 자격이 주어졌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성령이 있다는 증거다. 그러나 이것은 지불의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전액 지불을 보증해 주는 것이다. 거룩하게 된 자들은 영광을 받을 것이다(롬 8:30).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그들을 거룩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빛을 지고 있는 것이다.

    Ⅱ. 구원자의 품성에 관하여 그는 말씀한다. 그가 영광스러운 성품을 지니셨음이 본문에서 말씀된다. 복된 바울은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는 구속자에 대하여 영광되게 말하였다. 그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서 그리고 중재자로서 분류하여 말한다.

    1. 사도는 하나님으로서의 구원자에 대하여 말한다(15-17절).

    (1)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 작성자 25.12.13 09:21

    그의 "하나님의 형상"됨은 인간이 지음을 받았을 때 부여받은 "하나님의 형상"과는 다르다. 오히려 그는 "그의 본체의 형상"이시다(히 1:3). 아들아 그의 아버지의 형상인 것과 같이 그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그는 아버지와 본질적인 유사성을 갖는다. 그래서 그를 본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 하였고 그리고 그의 "영광을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라고 하였다(요 1:14; 14:9).

    (2) 그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이다." 이 말은 그 자신이 피조물이라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즉 만물보다 먼저 혹은 만물이 지어지기 전에 난바 되었기 때문이다. 또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란 말은 영원을 나타내는 성서의 표현 방법이다. 다음의 인용귀 가운데서도 이러한 식으로 하나님의 영원성이 우리에게 표현된다. "내가 만세 전부터, 상고(上古)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세움을 입었고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하나님이 아직 땅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 내가 세움을 입었다"(잠 8:23-26)고 하였다. 따라서 이 말씀의 본의는 만물에 대한 그의 통치권을 의미하고자 한 데 있는 것이다.

  • 작성자 25.12.13 09:22

    한 가정의 장자가 모든 것의 상속자이며 주인인 것처럼 그는 "만물의 상속자시라는 말이다"(히 1:2). 본문의 처음난 자는 다만 액센트를 변화시키기만 하면 -즉 만물을 처음 나게 한 자 혹은 만물의 생산자란 뜻으로 된다. (후략)

  • 25.12.13 10:52

    길지만 읽어볼 만한 내용입니다.

  • 25.12.13 09:45

    내용이 복음적이고 심하게 어렵지는 않아서 좋습니다. 삼위일체를 신조로 선언한 것은 안전한 조치인 것 같습니다 .

  • 25.12.13 11:44

    삼위일체 교리를 벨기에 신조 8조, 11조, 니케아 신조에서 정확하게 잘 정리해놓은 것을 비교해서 보니 내용이 풍성해지고 좋습니다.
    벨기에 8조가 내용이 많고 자세하게 잘 기록되었네요. 니케아 신조도 너무도 중요한 필리오케 교리를 천명해주어서 후대의 신앙고백문들에 인용된 것 같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동일본질로서 한 분이시고 세 위격으로 존재하시는데, 성부의 품 속에서 독생하신 성자께서 자신을 낮추어 육신을 입고 오셔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셨고, 또한 십자가의 죽음으로 마귀의 권세를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성부께서 그를 이끄셔서 하늘 보좌에 앉히신 것처럼, 우리들도 이 땅에서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셨다고 했네요. 이것이 죽음 이후 하늘나라로도 연장이 되겠지요. 모든 감사와 영광을 삼위일체의 하나님께 드립니다!!

  • 25.12.13 11:45

    종합적으로 정리해 주시니 저의 이해가 더 잘 됩니다^^

  • 25.12.13 16:04

    좋은 댓글에 공감합니다.

  • 25.12.13 16:05

    하나님의 구원과 삼위일체의 교리에 대해서 더 잘 알게 해주는 좋은 포스팅입니다.

  • 작성자 25.12.15 11:53

    댓글과 공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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