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했어요. 김옥춘 이사를 했어요. 창이 큰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땅속이 아닌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햇살이 길게 누워 놀다 갈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창문을 열면 옆 건물 벽이 코앞까지 와 있지 않은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주인이 대문 걸으면 열어 달라고 초인종 누르는 게 싫어서 속을 보글보글 끓이지 않아도 되는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빨래 말리는 게 무섭지 않은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옆집 젊은이들 사랑 나누는 거친 숨소리 사랑 나눈 후 샤워하는 소리 안 들리는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옆집 아저씨 오줌 줄기 굵은지 가는지 안 들리는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비 올 때마다 폭풍우 치는 바다 한가운데 던져진 듯 시끄럽지 않은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부엌에서 식구들 나올까 봐 대강 샤워를 하지 않아도 되는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두 팔 벌려도 팔이 펴지고 남는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문만 열면 도망치던 쥐들 죽어서 썩는 냄새 고약하지 않은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비 맞으면서 밥하지 않아도 되는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숨 쉴 때마다 곰팡내로 숨 막히지 않는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비 올 때마다 방바닥에 빗물 고이지 않는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바닥은 뜨거워도 코는 시럽 지 않은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화장실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화장실 갈 때마다 엉덩이에 똥물 튈까 봐 무섭지 않은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어쩌다 온 조카에게 옆집에서 시끄럽다고 쫓아온다고 속삭이듯 말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집에 갈 때마다 땅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창이 넓고 햇살이 방안에 들어와 편안하게 놀다 갈 수 있는 방으로 이사를 했어요. 그렇지만 아궁이에 나무 때고 아궁이에 볏짚 때고 아궁이에 풍로로 왕겨를 때던 어린 시절 마당의 햇살만큼은 아니네요. 이사를 했어요. 하루하루 눈치 보지 않고 살아도 되는 집으로 이사를 했어요. 그렇지만 대문도 없었던 토담 초가집과 나무 대문 삐걱 닫아걸고도 안마당에 햇살과 사랑 나누는 꽃밭을 걸터앉아 바라보던 마루만큼은 아니네요. 이사를 했어요. 이삿짐 다 풀고 나니 서러웠던 삶의 보따리가 끈을 풀고 기어 나와 눈물 고이게 하네요. 가슴 저리게 하네요. 2006.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