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善知識)과 악지식(惡知識) 그리고 악(惡)의 인(因) = 십사비방(十四誹謗)에 관한 어서말씀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11.17 조회수: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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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선지식(善知識)과 악지식(惡知識) 그리고 악(惡)의 인(因) = 십사비방(十四誹謗)에 관한 어서말씀 등
지금이야말로..
더욱더 강성(强盛)하게 대신력(大信力)을 내시라. 자기 운명(運命)이 다하고 나서, 제천(諸天)의 수호(守護)가 없다고 하여 원망(怨望)하는 일이 없을지어다. <중략>
기원(祈願)을 한다 해도 불신(不信)한다면, 젖은 부싯깃을 대고 부시를 치는 것과 같이 될 것이니, 더욱 면려(勉勵)하여 강성(强盛)하게 신력(信力)을 다 내도록 하시라. 지난 번의 존명(存命)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고 생각하시라, 어떠한 병법(兵法)보다도 법화경(法華經)의 병법(兵法)을 쓰실지어다. 「제여원적(諸餘怨敵)·개실최멸(皆悉摧滅)」의 금언(金言)은 헛되지 않으리라. 병법(兵法) 검형(劍形)의 대사(大事)도 이 묘법(妙法)으로부터 나왔느니라, 깊이 신심(信心)을 취(取)하시라, 결코 겁이 많아서는 불가능(不可能)하니라. 공공근언(恐恐謹言).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五殿答書) 미노부에서 58세에 술작 1193~4쪽
대지(大地)를 가리켜서 빗나갈지라도 허공(虛空)을 동여매는 자(者)는 있을지라도·조수(潮水)의 간만(干滿)이 없는 일은 있을지라도, 해는 서(西)쪽에서 돋을지라도,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의 기원(祈願)이 성취(成就)되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모든 보살(菩薩)·인천(人天)·팔부(八部) 등(等)·이성(二聖)·이천(二天)·십나찰(十羅刹) 등(等)이 천(千)에 하나라도 와서 수호(守護)하시지 않는 일이 있다면 위로는 석가제불(釋迦諸佛)을 업신여기고 아래로는 구계(九界)를 속이는 죄가 되리라. 행자(行者)는 확실히 부실(不實)할지라도 지혜(智慧)는 어리석을지라도 몸은 부정(不淨)할지라도, 계덕(戒德)은 갖추지 않았을지라도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른다면 반드시 수호(守護)하시리라. 주머니가 더럽다고 하여 금(金)을 버리지 말지니라. <중략> 속히 속히 이생(利生)을 주십사 하고 강성(强盛)히 기원(祈願)한다면 어찌 기원(祈願)이 성취(成就)되지 않으리요.
기도초(祈禱抄 사도에서 51세에 술작 1351~2쪽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弟子)는 제난(諸難)이 있을지라도 의심(疑心)이 없으면 자연(自然)히 불계(佛界)에 이르리라 . 천(天)의 가호(加護)가 없음을 의심(疑心)하지 말 것이며 현세(現世)가 안온(安穩)하지 않음을 한탄(恨歎)하지 말지어다. 나의 제자(弟子)에게 조석(朝夕)으로 가르쳐 왔건만 의심(疑心)을 일으켜서 모두 버렸으리라. 어리석은 자(者)의 버릇이란 약속(約束)한 일을 필요한 때에는 잊어버리느니라.
개목초(開目抄) 사도에서 51세에 술작 234쪽
오로지 법화경(法華經)의 문자(文字)가 여러분의 몸에 바뀌어 들어가서 도우시는 것이라 생각되느니라.
어떠한 세상의 혼란에도 여러분을 법화경(法華經)·십나찰(十羅刹)이여, 도우십사고 젖은 나무에서 불을 내고 마른 흙에서 물을 얻으려 하듯, 강성(强盛)하게 말하느니라.
가책방법멸죄초(呵責謗法滅罪抄) 사도에서 52세에 술작 1132쪽
《 본문 어서말씀들 》
재세멸후(在世滅後)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진실한 선지식(善知識)은 법화경(法華經) 이것이니라.
수호국가론(守護國家論) 가마쿠라에서 38세에 술작 68쪽
선지식(善知識)은 실(實)로 만나기가 어렵다.
성우문답초(聖愚問答抄) 가마쿠라에서 44세에 술작 478쪽
인(因)이란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신중(身中)에 총(總)의 삼제(三諦)가 있어서 상주불변(常住不變)이니 이를 통틀어 인(因)이라 하느니라. 연(緣)이란 삼인불성(三因佛性)은 있다 해도 선지식(善知識)의 연(緣)을 만나지 않는다면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나타나지 않으며, 선지식(善知識)의 연(緣)을 만나면 반드시 나타나는 고(故)로 연(緣)이라고 하느니라.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三世諸佛總勘文敎相廢立) 미노부에서 58세에 술작 574쪽
※ 삼제(三諦) : "법보응(法報應)의 삼신(三身)이고 공가중(空假中)의 삼제(三諦)이며 신구의(身口意)의 삼업(三業)이니라."(어서 737쪽)
"오직 법화경(法華經)을 믿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사람은 번뇌(煩惱)·업(業)·고(苦)의 삼도(三道)가 법신(法身)·반야(般若)·해탈(解脫)의 삼덕(三德)으로 전(轉)하여 삼관(三觀)·삼제(三諦)·즉(卽) 일심(一心)에 나타나서 그 사람이 소주(所住)하는 곳은 상적광토(常寂光土)이니라."(어서 512쪽)
※ 삼인불성(三因佛性) : 성불해야 할 세 종류의 인연종자. 즉 정인불성(正因佛性 : 모든 것에 본래 갖추어져 있는 진여의 이(理)). 요인불성(了因佛性 : 이(理)를 비춰서 나타내는 지혜). 연인불성(緣因佛性 : 지혜를 일으키는 인연이 될 모든 선행)의 3가지를 말함.
말법당금(末法當今)에 있어서 악지식(惡知識)이라 함은 호넨(法然)·고보(弘法)·지카쿠(慈覺)·지쇼(智證) 등(等)의 권인(權人) 방법(謗法)의 사람들이며 선지식(善知識)이라고 함은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를 가리키느니라. 통틀어 지식(知識)에 있어서 층층(層層)이 있으니 외호(外護)의 지식(知識)·동행(同行)의 지식(知識)·실상(實相)의 지식(知識)이 이것이니라. 결국(結局) 실상(實相)의 지식(知識)이란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이것이니라. 지식(知識)이란 형체(形體)를 알고 마음을 아는 것을 말하느니라. 이는 즉(卽) 색심(色心)의 이법(二法)이니라, 방법(謗法)의 색심(色心)을 버리고 법화경(法華經)의 묘경(妙境)·묘지(妙智)의 색심(色心)을 현현(顯現)해야 할 것이니라. 악우(惡友)는 방법(謗法)하는 사람들이며, 선우(善友)는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이니라.
어강문서(御講聞書)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 823~4쪽
선지식(善知識)이라 함은 오로지 스승도 아니고 오로지 제자(弟子)도 아닌 것이니라 .
개목초(開目抄) 사도에서 51세에 술작 208쪽
부처가 되는 길은 선지식(善知識)보다 더함은 없느니라. 나의 지혜(智慧)가 무슨 소용(所用)이 있으리요. 다만 뜨겁고 찬것을 알 만한 지혜(智慧)라도 있다면 선지식(善知識)이 소중(所重)하니라. 그런데 선지식(善知識)을 만나는 일이 제일(第一)의 난사(難事)로다 . 그러므로 부처는 선지식(善知識)을 만남을 일안(一眼)의 거북이가 부목(浮木)에 들어가고·범천(梵天)에서 실을 내려서 대지(大地)위의 바늘구멍에 꿰는것에 비유(譬喩)하셨느니라. 그런데 말대(末代) 악세(惡世)에는 악지식(惡知識)은 대지미진(大地微塵)보다도 많고 선지식(善知識)은 조상(爪上)의 흙보다도 적으니라.
삼삼장기우사(三三藏祈雨事) 미노부에서 54세에 술작 1468쪽
악(惡)의 인(因)에 십사(十四)가 있으니·일(一)에는 교만(憍慢)·이(二)에는 해태(懈怠)·삼(三)에는 계아(計我)·사(四)에는 천식(淺識)·오(五)에는 착욕(著欲)·육(六)에는 불해(不解)·칠(七)에는 불신(不信)·팔(八)에는 빈축(顰蹙)·구(九)에는 의혹(疑惑)·십(十)에는 비방(誹謗)·십일(十一)은 경선(輕善)·십이(十二)는 증선(憎善)·십삼(十三)은 질선(嫉善)·십사(十四)는 한선(恨善)이니라」 이 십사비방(十四誹謗)은 재가(在家) 출가(出家)에 걸치는지라 두렵도다 두렵도다, 과거(過去)에 불경보살(不輕菩薩)은 일체중생(一切衆生)에게 불성(佛性)이 있으니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면 반드시 성불(成佛)하리라. 그를 가벼이 하면 부처를 가벼이 하는 것으로 된다고 하여 예배(禮拜)의 행(行)을 세우셨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을 갖지 않은 사람마저도 만약 갖게 된다면, 불성(佛性)이 있다 하여 그와 같이 예배(禮拜)하시었다. 하물며 수지(受持)한 재가(在家) 출가(出家)의 자(者)에 있어서랴, 이 경(經)의 사(四)의 권(卷)에는 「혹은 재가(在家)이든 출가(出家)이든 법화경(法華經)을 갖고 설(說)하는 자(者)를 일언(一言)이라도 헐뜯는 일이 있으면 그 죄(罪)가 많기를 석가불(釋迦佛)을 일겁(一劫)동안 직접(直接) 헐뜯는 죄(罪)보다도 더하다고 쓰여 있느니라. 혹(或)은 「약실(若實) 약부실(若不實)」이라고도 설해져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이를 생각 하건대 어떠한 경우라도 법화경(法華經)을 가진 자(者)를 서로 헐뜯지 말지어다. 그 까닭은 법화경(法華經)을 가진 자(者)는 반드시 모두 부처이며, 부처를 헐뜯는다면 죄(罪)를 받는 것이니라.
이렇게 알고서 부르는 제목(題目)의 공덕(功德)은 석존(釋尊)의 공덕(功德)과 동등(同等)하니라.
마쓰노전답서(松野殿答書) 미노부에서 55세에 술작 13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