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정의 문학사회학적 연구 6/ 임형
그러나 시대의 흐름 속에서 시회는 단순한 친목회로 변질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한문사회에서 한글사회로의 변화, 문학사회에서 비문학사회로의 변화와 맞물린다. 근대교육기관이 들어서면서 서당의 역할이 축소되고, 매스컴이나 교통의 발달 등은 더 이상 한문 지식인 사회의 시회를 불가능하게 했다. 외지에 나가서 신식학문을 익히고 새로운 정보와 풍습에 익숙한 사람들은 더 이상 고지식하고 난해한 한시에 얽매이지 않으려 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 전반의 한문학 단절 현상과의 연관성 속에서 살펴볼 수도 있겠다.
1970, 80년대 중반까지는 서당 세대로서 어린 시절 한문을 익혔던 인사들이 시회의 주축세력이어서 시회에서의 시 창작이 가능했다. 그러나 해방 후에는 근대식 학교 교육이 보편화하면서 한문세대가 퇴조하게 되어 시회를 이끌어갈 구성원이 끊기게 된다. 1990년 무렵이 이러한 시회가 순수 친목회로 전환되는 분기점이 된다고 보겠다. 정사계에서 1980년대 후반 이후로는 시회를 1박 2일에서 당일로 단축하고 친목 모임만을 갖는 것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
동백정을 중심으로 이제까지 이루어졌던 문학 활동이나 시회 활동에 대해서 문체면이나 연대순으로 고찰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한 작가의 작품을 가능한 연대순으로 문체의 특성, 형식적인 관습, 서술의 기술, 성격묘사, 구성, 상징 등 겉으로 드러나는 경험적 사실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것이 문학사회학이다. 바로 그러한 면에서 15세기부터 시작한 동백정의 문학의 역사가 16세기로 이어졌고 그것이 다시 한동안 침체기를 거쳤다가 다시 19세기에 와서 크게 성황을 이룬 것은 시대의 분위기나 마을의 역사, 문중의 성쇠 등 문학 외적인 요소들에 영향을 받은 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이 지역에서 시회를 이끌어간 동백정은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누정이라 할 수 있겠다.
Ⅵ. 결론
이상으로 동백정을 중심으로 한 문학 활동에 대해 알아보았다.
동백정은 전남 장흥군 장동면 만년리의 경치가 수려한 곳에 자리를 잡은 누정으로서 뜰 앞에 선조가 심어 놓은 동백나무의 이름을 따서 '동백정'이라고 명명하였다. 많은 선비들이 이 곳에 모여 학문을 연마하고 시재를 겨루기도 하였는데, 건물 내부에 박광전의 [동백정기] 등 17개의 현판을 포함해서 기문이 22건, 시문이 154건 정도가 남아 있다.
동백정은 흔히 시회의 장소가 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그밖에 씨족끼리 회합하는 문중회의나 마을 대동계, 별신제의 회의소 또는 각종 계모임의 장소로도 활용되었다. 이는 건립할 때의 취지에 따라 선비들이 시대를 한탄하고 자연을 감상하기도 하다가 필요에 따라서는 지역사회의 사랑방 구실을 겸하기도 하였음을 보여준다. 양반문화와 평민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누정 문화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이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작시모임은 시계 또는 시회라고 부르고 있다. 알려진 것만도 난정회, 풍영계, 상영계, 정사계 등인데 이외에도 팔정회 등 존재하던 시계가 사라지고 없는 것도 있을 것이다. 또한 시계가 아니라도 몇 사람이 모여 그때 그때의 시흥을 토로하였고, 어떤 이는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거나 문집으로 엮어 내기도 했다. {동백정기운집}과 {만천시고} 또는 {호은세고}, {독우재집유고}나 {소천유고} 등의 문집이 그것을 증명한다.
시회는 비단 동백정 뿐만이 아니라 용호정이나 농월정, 경호정, 부춘정, 독우재, 영귀정 등 탐진강이 흐르는 부산면 일대의 누정에서 두루 이루어졌다. '칠정계(七亭契)'니 '팔정계(八亭契)'니 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누정들을 중심으로 시회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누정마다 각 성씨를 대표하는 정주(亭主)가 있어서 매년 돌아가며 일정한 날을 정해 유사를 맡으며 수계를 하였다. 이 지역은 탐진강을 끼고 늘어선 누정을 중심으로 시가문학의 한 띠를 형성했다고도 볼 수 있는데, 문인들은 시회를 조직하여 시흥을 달래었고 또한 글을 배우며 시대의 아픔에 괴로워하기도 했다. 청주김씨, 장흥위씨, 탐진최씨, 인천이씨 등 이곳에 터전을 잡은 씨족들은 누정을 지어 선조들을 추모함과 동시에 후손을 교육시키고자 했다. 그리하여 자연풍광을 감상하며 학문을 연마하고 시를 지으며 문풍을 진작시켰으니 탐진강 유역 문화권이 하나의 문향(文鄕)으로 자리 매김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면서도 국난을 당하여서는 분연히 일어서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자 했던 이 지역 인사들의 기개는 평상시 심신연마를 통해 길러진 의리정신의 표상일 것이다. 진정 선비는 문무를 겸해야만 실천적 힘이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 할 수 있겠다.
또한 근세에 이르러서는 금계 이수하나 금강 백영윤, 만천 김진규 같은 이 지방의 선각자들이 후학 교육에 열정을 쏟았다. 더구나 효당 김문옥 같은 당대의 문장을 초빙하여 후진을 양성하려고 한 것만 봐도 지역민들이 얼마나 학문추구의 열정이 강한가를 짐작케 한다.
한시를 짓는 모임인 시회에는 아무나 참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시문에 어느 정도의 조예가 있으면서 나름대로 시간적인 여유를 확보할 수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시회는 지식층의 문화이자 양반문화의 잔존이라고 할 수 있다. 상층 지식인들이 세상이나 자연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받아들였는가는 그들이 남긴 시와 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문학과 사회와의 연관성은 밀접하다고 볼 수 있다.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한 편의 시로서 심회를 토로하고 그때 그때의 일을 기록해 두었던 선학들의 치밀함이나 문학적 소양은 후대인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문학작품과 사회 현실과의 상호관계를 밝히는 데는 문학작품과 사회, 경제, 정치, 문화와의 연관성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이제는 어느 지역이나 양반과 선비의 구별이 없고, 시회를 끌어갈 수 있는 문인이 드물며, 한시를 읊을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이러한 점에서 사라져 가는 이 지역 지식인들의 시회 양상을 고찰해 보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일 것이다. 앞으로 또 다른 연구자에 의해 충분한 자료를 확보하여 더 심도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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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장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