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주에 있을 제 개인전에 소설가 이경자 선생님께서 글을 보내오셨습니다.
전시도록 맨 첫장에 게재된 글을 이번주 글로 소개할까 합니다.
시간되시는 회원님들께서는 "알려드립니다"에 전시안내 보시고 참석하여 주셔서 축하해 주세요 ^^
(이경자 선생님댁에 걸려있는 양귀비 그림으로...지난 6월 파주에서 그린 그림입니다)
모든 그림 앞에서 그런 건 아니지만, 더러 그림 앞에서 우두커니 정신을 놓는다.
한동안 바라보면서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더러는 강한 인상에 질리고 더러는 안식 같은
휴식을 얻는다. 그림을 그린 화가의 마음, 그 그림을 형상화하는 동안 몰입했을 화가의
혼신이 느껴지면 가슴이 저려든다. 어쩌면 세상 모든 예술가의 밑바닥엔 커다란 슬픔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 슬픔을 활활 태워 자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자연, 사람, 세상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그림에 대해 무식하기 때문에 그저 내 멋대로 그림을 좋아한다.
그림이 어떤 기법으로 그려졌는지, 경향이 어떤지 그런 건 모른다.
그러나 그림을 그린 화가의 마음이 순수한지, 무언가 억지가 있는지, 감각적으로 꾸미기만
했는지, 그런 건 본능적으로 느낀다.
방에 꽃 그림을 붙이고 싶어졌을 때 박주경 화가를 만났다. 청초하게 붉은 양귀비
한 무더기가 그려진 10호 그림을 거실 벽에 붙여놓고 요즘도 즐거워한다.
맘이 맞는 식구 하나가 는 것 같다. 비록 사람이 아닐지라도 살아 숨 쉬는 그림의 생명감과
생동감은 순수한 에너지이다. 그 해맑은 붉은 색은 언제나 나를 기쁘게 해준다.
양귀비는 열정과 자유분방함에 더하여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신묘한 능력까지 갖춘 식물,
그런 생명이라 더 좋다.
한동안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면 양귀비 앞에 선다. 바람결이 없어도 막 흔들릴 것 같은
부드러운 꽃잎이 하는 말, 따뜻한 인사를 느낀다. 양귀비와 내가 함께 확인하는 느낌은
생명의 에너지다.
붉은 양귀비는 박주경 화가의 화실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는 좁은 방에서 생활하며 그림을 그린다. 그 방의 주인은 그림이다.
화가는 그림을 위해 존재한다. 그림 그리는 것보다 더 행복한 것이 없다고, 그걸 대신할 수 있는
기쁨을 느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그러나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었다. 예술가도 전문가이니, 세상의 모든 전문가는 자신의 일에서
마력을 발견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일 밖에 할 줄 모른다.
그림만 그리며 사는 박 주경 화가. 세상에서 그림보다 자신을 더 기쁘게 해 주는 것을
만나지 못했다는 화가 박주경이, 이제 그림과 더 편안한 관계가 되길 바란다.
그림과 거리를 두어도 그림이 떠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얻게 된다면, 더 깊어지지 않을까,
문득 상상해본다.
(6월의 데이트-10호)
작가노트
나는 예술이 사람들의 마음을 동요시키고 감정의 파장을 일으켜서 세상을 순화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다.
내 인생의 화두가 되는 낱말은 순수, 열정, 그리움, 기다림...같은 삶의 순정한 영역에서
파생된 단어들이다.
화려함이나 아름다움으로 포장한 인위적인 많은 것들로부터
달아나서 그 말들을 곧게 따라가다 보면 결국 자연에 다다른다.
자연이 주는 강력한 끌림이 없다면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붓을 쓰지 않고 나이프로 그리는 가장 큰 이유는 자연에서 느끼는 강한 힘을
속도와 밀도로 빠르게 표현하는데 나이프가 적합하기 때문이다.
또한 현장작업을 많이 하는데, 방안에서 바람을 느낄 수 없고,
햇빛드는 창가에 앉아 비를 그릴 수 없는 것은 삶의 보편적 정서를 리얼리티로 접근해
공감의 파동을 일으켜내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감정이입이 빠른 현장작업과 숨고르며 하는 실내작업을 병행하면서 완급을 조절하고 있다.
지나고 보면 그림그리며 적지 않은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그 시간들이 언제나
내 삶의 기쁜날이었다.
오늘도 아바의 치키키타가 흐르는 작업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주변을 온통 물감 범벅을
하고선 번잡스럽게 그림을 그린다.
아, 행복한 날이다.
첫댓글 개인전을 이렇게 빨리 또 하시게 된 그 열정과 애정에 다시한번 놀랄뿐입니다.
개인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좋은 결과 기다리겠습니다.
부회장님, 바쁘실텐데 축하글 남겨주시공~ 캄싸! 전시때 봐요.
그림과 글이 같이 있어 더욱 더 자세히 그림을 감상 하게 되는듯.
참 내가 누구냐구? 조정옥이라네. 전시회에서 보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