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그리고 새로운 만남
만나고 헤어지는 것
어쩔 수 없는 운명인 것
사람과 사람, 사람과 이 세상 모든 생물과 미생물 심지어 흘러가는 강물과 불어오는 바람마저도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헤어지는 것
쉽게 잊히는 것과 잊을 수 없는 것
사랑하는 부모님과도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고
헤어졌기에 더욱 아쉽고 그리운 것이 첫사랑인 것처럼,
살아 있는 동안은 수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인생이지만, 나에게는 특별한 이별이 있다
생사고락을 같이 하던 정든 내 중장비들이 있다
철없던 어린 시절 동네 망나니로 살다가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아놓고 홀연히 집을 떠나 어쩌다 건설 공사장에서 마주한 중장비와 인연이 되어 40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처음 불도저를 마주하던 날, 큰 덩치와 웅장한 소리에 압도되어 과연 내가 저 큰괴물 같은 물채를 움직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우선 친해져야 한다
"매일 닦고 조이고 기름을 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서서히 친구가 되고 내가 조종을 하는 데로 따라오게 된다."
지금은 이별을 하고 이 세상에 안계시지만 그 당시 불도저 기사님이 큰형님처럼 항상 나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셨면서 하시던 말씀이었다
닦고 조이고 기름 치고 잔심부름을 하면서 짬짬이 운전석에서 기사님이 가르쳐주는 데로 조종레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러는 기사님이 "오늘은 볼일이 있으니 네가 일을 해라," 이렇게 하루를 맡기는 날도 있었고
오전과 오후 시간을 교대를 하면서 나는 중장비 기사 되었다
못 배운 한을 가슴에 품고 부모님을 원망만 하며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앞날이 캄캄했는데 거대한 불도저에 올라타고 산을 깎아 길을 내고 바둑판 같은 들판을 만들 때 불도저 삽날에 못 배운 서러움과 괴로움마저 몽땅 밀어 붙였다
거대한 불도저가 집채같은 바위며 아름드리 고목을 밀어붙일 때 나는 비로소 운명같이 진정한 나를 발견했다
그래, 나는 중장비로 인생의 승부를 걸어야겠다
하루하루가 희망이었고 꿈이 또 한 생겼다
그 꿈을 가슴에 품고 한 집에서 12년을 근무했다
'어디 가면 일 안 하고 그저 돈 주랴,'
이것이 내 생활의 철칙이었다
처음에는 불도저를 운전했지만 사장님이 굴착기를 수입해와서 불도저와 이별을 하고 1978년도부터 굴착기 운전을 했다
새로 만난 굴착기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운전탑도 없이 천막 하나로 눈비를 피하던 불도저에 비하면 굴착기는 깨끗한 조종실에서 추우면 히터를 틀고 눈비가 오면 부러쉬를 움직이면서 그야말로 신선 노름이었다
가는 곳마다 굴착기를 구경하러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좋은 기술 배웠다고 장비기사들이 그 시절에는 인기 최고의 신랑감 후보였다
덕분에 예쁜 색시를 만나서 결혼도 하게 되었다
'인간지사 새옹지마'라고 누가 말했던가?
승승장구 잘 나갈 줄 알았던 우리 회사 사장님이 부도를 내고 미국으로 달아나 버렸다
퇴직금은 고사하고 몇 달 치 월급도 못 받았다
그러나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운명인 것을 누구를 원망하랴만, 너무나 허무한 이별이었다
1986년 처음으로 빚을 내어서 중고 굴착기를 사서 운영하기 시작했다
한강개발, 지하철 공사, 등 서울에서 일을 하다가 전방에 농지개간 사업이 수입이 좋다는 말을 듣고 강원도 철원 최전방으로 갔다
지뢰와 폭발물이 하루에도 몇 개씩 나오고 심지어 옆에서 일하던 굴착기가 지뢰를 건드려 장비는 대파되고 기사가 사망하는 사고도 일어났다
그 참담한 현장을 목격하고서도 나는 그곳에서 일을 했다
돌이켜보면 참 무모한 행동이었다
열심히 일을 했지만 중고 굴착기라서 그만큼 또 고장이 많이 났다
아내와 아이들은 서울에 두고 전방에서 3년이란 세월을 보냈지만 굴착기 수리비와 수금이 원활하지 못하여 생활은 나아지질 않았다
그래도 간신히 빚은 갚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일이 너무 힘들어 쉬기도 할 겸 대성산에 더덕 캐러 갔다가 천종 산삼을아홉 뿌리나 켔다
하늘이 준 선물이었다
산삼을 판 돈으로 새 굴착기 계약금 내고 승용차 한 대 사고 전방 생활을 마감했다
우리 조상님들이 위험한 곳에서 어서 나가라고 산삼을 하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대남방송이 밤새도록 들려오고 더러는 조명탄이 대낮처럼 밝았던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에서 3년 동안 수고했다, 안전하게 나를 지켜줘서 고마웠다 잘 가라! '나의 수호신, 서울 02-6233호'
새 장비를 구입해서 부푼 꿈을 안고 수 많은 공사장을 다니면서 일했지만 그 당시에는
현금을 주는 현장이 없어 할부금도 항상 몇 달치가 밀려서 독촉을 받으면서 근근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농경지 정리를 많이 하던 어떤 회사는 국가에서는 현금을 받아서 장비업자에게는
결제일로부터 3~5개월짜리 어음을 줬으니 오 즉했으랴 심지어 6개월짜리 어음도 정당한 것처럼 주고 세금계산서는 몇 배나 많은 금액을 끊어서 세금까지 덤터기를 쒸웠다
그리고도 그 들은 부끄럼 없이 가슴에 금배지를 다는 것을 보았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란 말이 있듯이 다른 일은 할 수 없었다
IMF 시절에는 일감이 없어서 정비사들을 따라다니면서 남의 장비를 정비해주고 일당을 받아 생활에 보태기도 하면서 지냈다
어느덧 새장비도 10년이 훌쩍 지나갔다
장비가 낡아서 이번에는 정비가 손쉽고 장비의 가격이 낮은 소형 굴착기를 구입하면서 또 한 번의 아쉬운 이별을 해야 했다
잘 가라! '너나 나나 참 고생 많이 했다, 서울 02다 8475'
큰 장비를 하다가 소형 장비를 처음 하던 날,
망해서 큰집 팔고 작은 셋방살이 가는 기분이 들었다
남들 앞에 나서기가 조금은 쑥스럽고 부끄러웠다
그러나 소형 장비는 일감이 많았다
일감이 많은 대신 일하고 못 받은 돈도 많았다
서울 명륜동 지하 터 파기 현장에서는 4개월 치를 못 받았다 아이들 둘이 대학을 다니는데 학비를 구하지 못해 정말 힘들었다
돈을 받기 위해 소송, 압류를 신청했으나 공탁금을 낼 돈이 없어 포기했다
노동부에 진정서를 넣어봤으나 우린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자이므로 노동청 소관이 아니라는 답변을 받았고 법무부, 청와대, 국민 고층 처리 위원회 등 나의 억울함을 호소하여 봤으나 정부기관의 답은 모두가 하나같이 '귀하의 민원은 노동부로 이첩하였습니다' 하는 답변뿐이었다
KBS 방송국에 호소를 하였더니 취재파일 4321이란 프로그램에서 '체불노임에 우는 사람들'이란 재목으로 방송도 나왔으나 같이 일하던 근로자들은 모두가 돈을 받고 해결되었지만 나는 개인사업자란 이유로 한 푼의 임금도 받지 못했다
돈 없고 백 없는 나로서는 역부족이었다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돈을 받기 위해 아까운 세월만 허비했다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못 배운 한을 가슴 깊이 숨기고 오로지 두 남매를 훌륭하게 키워야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어려움도 참고 살아왔는데, 아! 이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어렵게 마련한 집이라도 팔아야 한단 말인가?
부동산에 집을 내어놓고 나니 눈앞이 깜깜하였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울적하고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고 인천에서 꽤 먼 경기도 모처에 있는 산에 올랐다
세상을 향해 소리라도 질러보고 목놓아 울어도 보고 싶었으나 산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해가 될까 봐 마음대로 울지도 못하고 응어리진 가슴을 쓸어안고 사람 없는 곳에 가서 실컷 울어 볼 요량으로 길이 아닌 산비탈을 헤치면서 하산하다가 산삼을 열여덟 뿌리나 켔다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그걸 팔아서 아이들의 학비를 낼 수 있었다
또 한 번 하늘이 내린 선물을 받았다
소형 장비를 하면서 전국의 참 많은 현장을 다녔다
내 핏줄과 신경이 살아있던 나의 친구 꼬마 굴착기, 늙었다는 이유로 또 떠나보내야 했다
"아직 살아 움직이지 만 나는 너를 보낸다
잘 가거라!"
안전을 생각하고 수리비를 생각하면 너와 나의 헤어짐이 옳은 결정이였다
처음 수줍은 새색시같이 고운 너를 만나 동고동락하면서 우리 가족의 밥줄이고 희망이었지,
한때 부도를 만나 어려움도 겪었지만 내 너를 믿고 부지런히 일 한 덕분에 큰 부자는 못 됐지만
아들 딸 대학 졸업시키고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 수 있었다
네가 병이 나면 나는 의사가 되고 약사가 되고
내가 못 고치면 박사를 부르고 생과 사의 고갯길도 여러 번 넘었지,
살아움직이는 생명체와 같은, 나는 너를 조종하고 너는 끝까지 복종만 하다가
마디 마디 늙어서 삐거덕 거리며 헤어졌다, 내 너를 잊지 않으마, 서울 02아 8953
잘 가라
굿바이 굿바이!!
또다시 새로운 식구를 맞이했다
아침해가 붉게 떠오르는 울산의 동해 바닷가 아파트 현장에서 막걸리 한 잔 부어놓고 북어와, 실타래를 걸어놓고 부디 사고 없이 나와 함께 하기를 신에게 빌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새로운 장비가 나올 때마다 운전하기에는 무척 편리하지만 전자 장치가 많아서 이제는 웬만하면 기술자를 불러야 한다
태안 화력발전소 9,10호기 건설현장에서 근로기준법이 정한 일요일 휴일과 정시 출퇴근을 난생처음으로 맞이했다
시간의 여유로움이 생기자 학암포 바닷가의 일몰을 보면서 시의 세계에 빠지기 시작했다
하루 열 시간씩 일하면서 2주에 한 번 쉴 때는 집에 다녀오기도 힘들었지만 정시출퇴근하고 공휴일 날 쉬면서 나는 비로소 사람다움을 경험하게 되었다
소형 굴착기는 비가 오면 배수작업을 위해 물도랑을 파는 일이 많아서 현장에서 대기하는 일이 많다
그 무료함을 휴대폰으로 글을 쓰면서 보낸다
서울 02파 8891호 그 운전석에서 여러 문학상을 탄생시켰다
운전석에 앉으면 세상 잡념이 다 사라진다
휴식을 취하는 점심시간에는 오로지 글쓰기에만 집중했다
어느 날 점심 식사 후 근로자들이 쉬고 있는 앞을 지나갈 때 사회에 불만을 토로하며 가난을 한탄하는 곁을 지나오는데 보도블록 사이에 간신히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비단풀을 보았다
운전석에 앉자마자 휴대폰으로 시를 써 내려갔다
비단풀
가난해서 못 살겠다 푸념해서 무엇하고
세상살이 힘들다고 낙심하면 무엇하리
길바닥 비단풀처럼 끈질기게 살아야지
척박해서 못 산다고 모두가 포기한 땅
보도블록 사이사이 바늘보다 좁은 틈새
비단풀
고귀한 생명
밟히며 사는 풀을 보라
태안 화력발전소 9,10호기 건설현장 3년 동안의 파일항타 작업을 마치고 다시 수많은 아파트 건설 공사장을 돌아다녔다
이제 내 나이 예순다섯,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크레인 붕괴사고와 항타기 전도 사고가 날 때마다 옆에서 작업하던 굴착기 기사들이 다치거나 사망하는 일이 간간이 일어난다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나도 언제 저들처럼 될지 알 수없다
아내와 아들 딸이 이제 일을 그만하라고 권유한다
몇 년 전부터 농촌으로 귀촌해서 살고 있었기에 농사를 지으며 살았으면 했다
굴착기를 집에 실어다놓고 도라지도 케고 집주변도 손보고 있는데 여주에서 골제사업을 하는 사돈께서 아직은 젊으니 대형굴착기를 한 대 줄 테니 할부금 내면서 한 번 운영해보라고 해서 지금은 골제장에서 대형 굴착기를 하고 있다
"반갑다 경기 02로 3356호"
내가 너를 끝까지 지켜주려면 우선 내 몸이 건강해야겠다
아직은 젊은이 못지않지만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는 옛 말씀이 있기에 백세시대에 건강한 노후를 위하여 퇴근 후에는 헬스장에서 몸을 단련하고 있다
굴착기보다 더 빨리 늙어가는 것은 싫다
열심히 운동을 해서 몇 년 후에는 힘센 굴착기 같은 보디빌더가 되어 미스터 코리아로 거듭나고 싶다
첫댓글 경계에서 꽃이 피듯 내보이지 않은 속내가 다 있다고......
그러므로 스스로 짠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제 손톱밑 가시만 아프다고 생각한것이 투정에 불가했구나.
라는 각성이 일어나게 하네요.
한편의 인간극장을 보는 듯한 선생님 글 !
눈물 찔끔 하며 감동으로 읽었습니다.
마구마구 박수를 드립니다.
찾아주심에 감사를드립니다
2년전부터 헬스장에 다니느라고 글쓰기에 소흘해졌습니다
짬짬이 쓰는 글이라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